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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52]서숙자할머니의 영웅 찾기 행보

편집/기자: [ 김룡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2-20 09:43:20 ] 클릭: [ ]

—가두 주민 서숙자할머니 “애심가게” 세워 렬사유가족 돕는다

연길시 동쪽 영락가에 자리잡은 영락농부산품시장. 계획경제시대의 자그마한 공장건물을 털어 만든 자그마한 시장안에는 쌀, 부식품 등을 경영하는 자그마한 가게가 있다. 가게의 주인공은 연길출신의 서숙자(66세)할머니. 가게 이름은 “특수곤난어린이구조애심가게”이다.

서숙자할머니가 이 가게를 경영하고있는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2003년, 북경에 계시는 어머니를 보살펴드리기 위해 서숙자는 북경으로 갔다. 병원에서 어머니의 간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객지에 친구도 없었던지라 심심하기만 했다. 그래서 신문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 “심심한 소일거리”가 바로 서숙자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당시는 마침 중국의 항전승리 60주년을 맞이하는 시기여서 신문에는 항일전쟁시기 영웅인물들의 사적이 자주 실리고있었다. 이들 인물들가운데는 자신이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닐 때 읽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서숙자는 신문에 실린 영웅인물들을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지 모아두고 집에 가서 보기 위해서였다.

2014년 4월 2일 연길시 건공가 장해사회구역에서 전시를 하고있는 서숙자할머니.

영웅인물들이 실린 신문을 스크랩하면서 서숙자는 갑자기 이런 영웅인물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들을 통해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으니 모두들 지금 모두가 돈벌이에 혈안이 된 세상에 누가 이런걸 보겠느냐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시기가 아니라는것이였다.

하지만 서숙자는 단념하지 않았다. “세월은 변해도 영웅은 절대로 변색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이같은 생각을 굳히게 되자 그녀는 사비를 털어 영웅들의 사적을 적은 길이 10여메터 되는 현수막을 만들어 2005년 정월 초사흗날, 북경시의 한 큰 거리에 시험적으로 전시했다. 5분도 안되여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주목하게 되였다.

하지만 거리에서의 전시는 교통혼잡 등을 불러올수 있었다. 마침 사연을 파악한 북경시 조양구의 한 사회구역에서 조치를 강구해나섰다. 덕분에 조양구의 한 희망소학교에서 전시를 요구해오게 되면서 서숙자는 인물정보를 새롭게 갱신한후 사회구역, 학교, 공공구역 등에서 반달에 한번씩 정기적인 전시를 이어갈수 있었다. 지난 2012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서숙자는 그해 9월에 연길로 돌아왔다. 당시 그녀가 렬차편으로 운송한 모든 서류는 운수비용이 500원에 이를 정도로 많았는데 대부분이 그녀가 수년간 수집하고 스크랩하고 정리한 영웅인물들의 사적 그리고 관련자료였다.

영락농산품시장 서숙자할머니의 특수곤난어린이구조애심가게.

연길로 돌아온 서숙자는 북경에서와 같은 행보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처음엔 많은 반대를 받았고 설음도 적지 않게 당했다. 어떤 사람은 이런건 전문부문에서 하는 일이지 개인이 할 일이 아니라는것이였다. 하지만 서숙자는 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이라면 우리 사회는 희생된 영웅들을 잊지 않는 동시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는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했던 로전사들을 찾아 이들을 관심하고 돌봐주는것이 바람직하다는것이였다. 그해 국경절을 전후해 서숙자는 본격적인 영웅찾기에 나섰다. 전문기관을 통할수 없으니 길거리에서 로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색을 제공받았다. 그렇게 시작되여 수집한 영웅인물, 로병들이 지금까지 148명에 달한다.

서숙자는 유명한 항일렬사의 유가족과 친지들도 찾을수 있었는데 어떤 렬사유가족은 한집에서 3명내지 4명의 혁명렬사가 나오기도 했다.

처음에 이들을 도우려고 시작한 서숙자할머니, 100원내지 200원 정도의 간단한 일로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정작 이들의 정황을 알게 된다음에는 달마다 나오는 퇴직금으로는 역부족이였다. 그래서 시작한게 이들을 돕기 위해 세운 애심매대. 서숙자할머니는 연길시 철남 농산물시장에서 매대를 시작했다가 그후 연길시 영락거리에 있는 영락농산품시장에 매대를 내오고 그 수익금을 이들을 돕는데 쓰기로 했다. 또한 생활이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특수곤난어린이구조애심가게”라는 이름까지 내걸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후원에 나서기보다 스스로 벌어 지원하는게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 참전용사들을 찾아나선다거나 애심가게를 세우는 과정엔 사실 애로도 적지 않았다. 가족들도 서숙자로인의 행동을 리해하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도 지금 무슨 세월인데 “바보”같은 노릇을 하냐며 수근거렸다. 하지만 후대들에게 이들을 알리고 이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도와나서며 또 생활이 어려운 주변의 어린이들을 도와나서려는 서숙자할머니의 의지를 꺾을수 없었다. 그럴수록 그는 자기가 하는 일들은 결코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라 영웅인물들을 알아가면서 마음속 깊이 새기는 성스러운 직책이라고 선언한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가족들도 그녀의 행동을 리해하기 시작했고 주변에서도 하나 둘 지지해나섰으며 그녀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관심이 쏠려지고 후원도 이어졌다.

서숙자할머니는 자신의 노력과 주변사람들의 지지로 2015년에 13명을 후원했는데 후원금이 5200원, 2016년에는 2만여원에 달했다. 렬사유가족 여섯집을 방문하고 건재한 참전용사 23명을 찾아뵙고 위문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서숙자할머니는 영웅인물전시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동안 영웅인물전시는 연길시 54개 사회구역에서 이루어졌고 연길시 5개 중소학교와 직업고중, 룡정시 3개 학교, 연길시 여러 부대들에서 이어졌는데 참관자수가 10만명에 달했다. 언젠가는 연길시정보화및공업국의 초청으로 근 보름동안 전시자료를 남겨두고 전시를 이어가기도 했다.

우연찮게 시작된 일이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이어지고있는 서숙자할머니의 아름다운 행동, 그녀가 지금까지 후원한 돈은 도합 3만여원에 달한다.

“돈만을 생각하면 혹간 아까울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돈이 남아있다 해서 부자가 되는것은 아니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수 있다는데서 자부감을 느낀다.”는 서숙자할머니, 그녀는 앞으로도 더욱 많은 참전용사들을 찾기 위해 열심히 뛸것이며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데 자신의 여생의 힘을 보탤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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