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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홍군26]홍14군기념관에 모셔진 홍군사장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9-19 15:12:21 ] 클릭: [ ]

특별기고-겨레홍군 장정 발자취 따라(26)

■ 리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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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새해를 잡아 4일만에 굉장한 일이 터졌다. 인터넷 구글을 검색하니 홍군음악가 최음파 관련 중문자료들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나로서는, 아니 우리 중국조선족사회에서는 거의 모두가 처음 보는 자료들이다. 세상의 일이란 종잡기 어려운가부다. 이 몇해간 그렇게 힘써보아도 변변한 자료 한편 쥐기도 어려웠는데 1월 4일 이날 밤은 처음 보는 자료들이 말그대로 무더기를 이룬다. 이에 고무를 받아 홍군사장 장세걸을 검색하니 강소땅과 중앙혁명근거지 땅에서 활동한 자료들이 놀라울 지경이다. 쏟아지는 정강산 중대장 진룡학 자료도 얼마든지 한편의 전기를 무을수가 있다.

온밤 둥둥 뜨는 기분이다. 기분이 절정을 이룬다. 연변시절부터 지난 몇년간 중앙홍군에서 활동한 최음파, 장세걸, 진룡학 세 겨레 홍군렬사들 자료를 추적할수가 없어 머리를 가로젓다가 하루밤새 세 홍군렬사 자료가 마구 쏟아지니 흥분이 절정을 이룰수 밖에 없다. 이튿날과 그 다음날 1월 5일, 1월 6일 밤도 이들 세 홍군렬사 자료 찾기로 밤을 새우다싶이했다. 장세걸이 활동한 강소 여고에 홍14군기념관이 있다는 글들도 쏟아졌다. 력사는, 우리 조선족사회는 세 홍군렬사에 대한 연구의 기회를 나한테 주는것 같았다.

이제 남은것은 현지답사의 간고한 길.

기다리고 기다리던 겨울방학이 오면서 2012년 1월 31일 마침내 절강 소흥-강소 남통행 쾌속뻐스에 올랐다. 아침 7시 45분에 소흥을 출발한 쾌속뻐스는 330여키로메터 거리를 4시간 반만에 축내며 남통중심뻐스부에 들어선다. 남통에서 다시 여고행 뻐스를 잡으니 60여키로메터 사이가 한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또 택시를 바꾸어타니 시야에는 홍14군이란 굉장한 주제공원으로 이루어진 넓은 광장이 안겨든다. 광장너머로 비껴드는 웅장한 건물이 “중국로농홍군 제14군 기념관”이 아니던가!

홍14군 주제공원 광장너머로 보이는 중국로농홍군 제14군 기념관  /2012년 1월 31일 현지촬영

가슴은 벌써부터 쿵쿵 뛴다. 제14군 기념관 광장입구에 이르러 강렬한 자석에 끌리듯 선자리에 굳어져버렸다. 보고 또 보아도 광장너머로 안겨오는 웅장한 건물은 제14군 기념관이 틀림없다. 정녕 꿈을 꾸는것만 같다. 그렇게 찾고싶던 홍14군 1사 사장 장세걸, 그렇게 찾고싶던 장세걸 소속부대가 하나의 거대한 기념관으로 응고되여 필자앞에 나타난다. 선자리에서 몇번이나 심호흡을 하고서야 발길을 옮겨놓으니 홍14군기념관 정문은 엄청 크기의 붉은 오각별 아래로 열려져있다.

홍14군기념관내 1층 중앙홀에 세워진 홍14군 17명 장령 립체군상  /2012년 1월 31일 현지촬영

정문으로 들어서니 1층 중앙홀은 홍14군 군기아래 홍14군 장병들 립체군상으로 빛나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후회되는지 모른다. 이 기행 련재를 쓰면서 바이두(百度)에서 강소 여고의 홍14군기념관을 검색하니 2012년 1월 31일 그날 오후 기념관내 중앙홀에서 보고 사진찍은 홍14군 장병 립체군상은 홍14군의 쟁쟁한 17명 장령들로 조각된 립체군상이였다. 그렇다면 홍14군 1사 사장인 장세걸도 립체군상속의 한 조각상으로 섰을것이 아니겠는가. 모르니 그대로 지나쳐버린 현지탐방이 후회스러울뿐이다. 물론 장세걸 평전 준비로 장세걸 발자취 년내 전면답사를 준비하고있으니 더는 후회가 없도록 윽벼르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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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 여고의 홍14군기념관은 2009년 4월에 정식 착공하고 2010년 4월말에 락성되고 2011년 6월 9일에 정식 대외로 개방된 대형기념관으로서 점유면적 6.3무에 건축면적 7860평방메터, 전시청 면적이 약 6350평방메터에 이른다. 상하 2층으로 이루어진 8개 전시청은 1300여폭의 관련 사진과 근 4만자의 문자설명, 실물자료 600여건으로 구성되여 1930년 홍14군의 빛나는 력사를 진실하게 보여주고있다. 조선사람 장세걸은 이런 전시, 이런 홍14군 력사속의 한 인물이요 사건으로서 홍14군기념관의 주요한 한 부분을 이루어 참으로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알려지는 장세걸(张世杰)은 홍14군 1사 사장이고 홍22군 참모장으로서 원명은 김홍묵(金洪默)이며 서울사람으로 나타난다. 서울에서도 종로구 수은동 5번지내 뢰혜붕(汉城授恩洞五番地转 赖慧鹏)으로 또렷이 밝혀진다. 이런 수은동에서 장래 중국 홍군의 고급장령으로 성장한 김홍묵이 고고성을 터치며 인생의 노를 받아쥐니 그해가 1901년으로 알려진다.

김홍묵은 서울 종로구 수은동에서 태여나 소년시절을 보냈다. 어린 마음에도 삼천리강산을 삼켜버린 간악한 일제놈들과는 한하늘을 떠이고 살수 없다는것을 깊이깊이 느끼게 되였다. 관련 자료는 또 소년 김홍묵은 앙가슴에 더운 피 흐르는 청년으로 자라난 뒤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의 망명길에 올랐고 1925년에 중국 남녘땅 광주에 자리한 황포군관학교 제4기생으로 들어가 군사를 배우며 그해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고 전한다. 황포 제4기생 재학기간은 1925년 7월-1926년 1월으로 밝혀지는데 김홍묵의 진짜 입학시간이 언제인가는 아직 알지 못한다. 관련 자료 연구로부터 보면 황포 4기생 김홍묵은 키가 크고 실팍한 편이며 목소리까지 웅글어 제4기 동기생들한테서 “검은 곰”(黑瞎子)으로 통하고있었다.

강서 여고의 홍14군기념관을 찾으니 첫눈에 안겨드는 홍14군주제공원 안내전경도 /2012년 1월 31일 현지촬영

1926년 1월, 황포군관학교 제4기를 졸업한후 김홍묵은 당조직의 지시로 국민혁명군 제4군 독립퇀 즉 엽정독립퇀 직속 공병련 중위 부련장 책임을 맡아나섰다. 이해 5월 20일, 중국공산당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는 국민혁명군 제4군 엽정독립퇀이 북벌군의 선견대로 우선 호남으로 진격하면서 북벌전쟁의 서막을 열어제끼자 김홍묵은 북벌군 선견대의 중위 부련장으로 나섰다.

7월 9일에 국민혁명군 8개 군의 약 10만명 대오는 서로, 중로, 동로 세갈래로 나뉘여 정식으로 북벌을 시작하였다. 김홍묵 소속 제4군은 서로북벌군의 주력부대로서 엽정독립퇀을 선봉으로 호남, 호북으로 진격한 뒤 장사, 악양을 신속히 공략하고 8월 26일에 무한 삼진의 남대문으로 불리우는 정사교를 공격하였다. 정사교를 공격하는 전투에서 김홍묵은 독립퇀 직속 공병련을 지휘하여 용감히 싸웠다.

정사교전투후 북벌군은 무한을 점령하였다. 김홍묵은 당조직의 파견으로 제4군 엽정독립퇀으로부터 황포군관학교 무한분교로 넘어가 입오생 공병구 대장(入伍生工兵区队长)을 맡아보았다. 잇달아 무한분교내 국공량당간의 모순이 격화되면서 공산당측의 많은 사람들이 무장해제를 당하였다. 붙들려나와 거리돌림을 당하거나 비판투쟁을 당하거나 살해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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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밖의 잔혹한 현실이였다. 김홍묵은 처음에는 어떨떨하고 잘 리해되지 않았지만 1927년 장개석의 상해 “4.12”반혁명정변과 국민정부 주석 왕정위의 무한 “7.15” 혁명배반앞에서 제정신이 들었다. 한시대를 움직이던 제1차 국공합작이 파렬되고 기세드높던 북벌전쟁—대혁명도 실패로 돌아갔다. 북벌전쟁에 뛰여든 수백명 겨레전사의 한 사람이였고 무한까지 진출하였던 김홍묵은 국민당반동파의 무자비한 백색공포에서 결연히 벗어나 상해에 가서 상해한인지부를 찾았다.

상해한인지부로 말하면 중공강소성위 지도를 받은 상해 법남구(法南区) 한인지부를 가리킨다. 이 한인지부는 1927년 5월에 상해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상해지부의 려운형, 조봉암, 홍남표, 무정 등에 의해 조직된 조선인 지하혁명단체로서 겨레 혁명투쟁에서 중요하고도 특수한 역할을 놀고있었다. 김홍묵이 이같은 상해한인지부를 찾은것은 천만 옳았다. 이 한인지부는 상해에서 활동하고있은데서 상해에서 활동하는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과 그 산하 중공강소성위를 통한 당의 정신과 요구, 포치 등을 빨리 받아들이고 조선인 혁명가들에게 전달할수 있었고 각지 중공당조직과 조선인 중공당원들과 긴밀한 련계를 가질수가 있었다. 김홍묵은 이름을 장세걸로 바꾸었다.

홍14군기념관내 홍14군 주요간부들 소개속에 보이는 장세걸(오른쪽 첫 사진)   /2012년 1월 31일 현지촬영 

김홍묵-장세걸의 상해한인지부 활동 시절, 상해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장강북안의 강소 소중(苏中)땅 남통, 해안, 여고, 태흥 일대에는 중국공산당 지방조직과 무장활동이 활발히 움직이고있었다. 1929년 11월 이후 중공강소성위 서기 리유한은 성위의 이름으로 중앙에 홍14군을 조직할데 관한 서면보고를 올리고 중앙군위서기인 주은래가 신속히 답복하면서 강소땅에 중국로농홍군 제14군을 조직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2월에 중앙군위에서는 하곤(何昆)을 정식으로 홍14군 군장으로 임명하였다. 1930년 4월 3일에는 강소 여고 서향의 비가항(贲家巷)에서 홍14군 건군대회가 열렸다.

1930년 5월, 상해의 중앙군위와 중공강소성위에서는 리초시(李超时), 장세걸, 진초(秦超), 황화청(黄火青) 등 한패의 유력한 군사간부들을 강소 통해여태(通海如泰)지구에 파견하여 홍14군에 대한 령도를 강화하였다. 중공통해특위 서기 리초시가 제14군 군장 겸 정위로 나섰다. 홍14군은 산하 제1지대를 제2사로 개편하고 제2지대를 제1사로 개편하였다. 조선인 장세걸이 홍14군 제1사 사장 겸 제2퇀 퇀장으로 부임하였다. 제2퇀은 제1사의 주력부대로서 사아래에 제4, 제5, 제6 세개 영을 두었다. 후날 1982년 11월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 중책을 맡은 장애평(张爱萍)이 제4영 영장으로 나섰다.

장세걸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하나 오래동안 중문 바이두(百度) 등에서 장세걸을 검색해도 잘 알려지지 않다가 2012년 새해잡아 많은 연구자료들이 쏟아진것은 나름의 연유가 있었다. 홍14군기념관이 2010년 4월말에 준공되여 2011년 6월에 대외로 개방되니 홍14군내에서의 장세걸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숱한 연구자료들이 중문인터넷에 오르게 되였다. 이 연구자료들이 2012년 1월초에 인터넷으로 다가오니 놀랐고, 기념관 대외개방 반년만에 강소 여고로 달려가게 된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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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14군기념관에서도 말초신경 모두가 장세걸에게 쏠려있었다. 드디여 기념관의 제4전시청-중국로농홍군 제14군 창립 부분에서 14군의 주요인물들과 함께 장세걸 사진과 장세걸 략력을 찾아내니 그때의 흥분된 마음은 이루다 말할수가 없다. 그럼 그렇지, 당당한 2개 사로 구성된 홍14군에서 1사 사장 장세걸이 빠진다는것은 말도 안되지.

그러나 인차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야 했다. 홍14군기념관에서 장세걸이라고 전시한 사진은 그때까지 분명 양림으로 알고있던 양림 사진 2장중의 한장이였으니 말이다. 중문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나, 양림 관련 자료들로 보나, 전국 여러 기념관들에서 보나 홍14군기념관에서 내건 장세걸 사진은 모두 양림으로 되여있었으니 혼란스러울수 밖에 없었다. 가까이 기념관 강사들을 찾아 장세걸 사진이 잘못된것 같다, 이 사진은 분명 홍1군단 참모장 양림 사진이라고 알리니 그들은 자기들은 모른다, 홍14군연구회를 찾아보라고 한다.

기념관 강사들이 리해도 된다. 강사들은 관련 부분, 관련이들의 작성고를 외워서 설명하는 사람들이지 연구가는 아니니까. 그러던 필자가 그후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되였으니 때는 2015년 11월 1일의 일이다.

이해 2015년 8월 하순에 김광현씨를 팀장으로 하는 “중국조선족항일투쟁사” 다큐팀을 안내하여 복건 영안과 장정, 강서 서금, 회창 등지를 현지탐방한적이 있다. 그러던 11월 1일, 연변의 김광현씨로부터 홍22군 참모장 장세걸의 사진 문의전화를 받았고 아직 없다고 대답하였지만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그날로 다시 중문 인터넷 추적에 나섰다가 장세걸 관련 새 기사들을 접하게 되였다. 새 기사들중 얼마전인 9월 12일, 101세로 알려지는 여고 강언장타진(姜堰蒋躲镇)의 오구성(吴九成)로인이 자손들에게 받들려 홍14군기념관을 참관한 기사는 너무도 충격적이다.

장세걸 사진아래에 전시된 문자설명. /2012년 1월 31일 현지촬영)

9월 12일 그날, 지팽이를 짚은 오구성로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기념관을 돌아보다가 장세걸 사진앞에 이르러 지팽이를 던지며 온힘을 다해 극력 허리를 꿋꿋이 펴며 군례를 올린다.

“장세걸동지, 안녕하시우! 마음 편히 계시세유!”(张世杰同志,你好!你安心啊!)

장세걸 사진앞에서의 오구성로인의 거동과 눈물겨운 인사는 기념관 사업인원들의 주의와 여고 “중국로농홍군 제14군 연구회”의 중시를 자아냈다. 여러면의 조사와 증실을 거쳐 오구성로인이 일찍 홍14군 제1사 사장 장세걸의 수하에서 싸웠던 로홍군전사라는것이 알려졌다. 이 뉴스는 신속히 하나의 특종으로 떠올라 당지의 여러 신문과 인터넷을 달구었고 필자도 보게 되였다.

필자를 놀라게 한것은 101세(2015년)에 달하는 오구성로인이 장세걸의 사진을 보더니 자기들 1사 사장이라며 군례와 인사를 올리는 장면이였다. 로인님이 대하는 사진, 홍14군기념관에서 기념관 한면에 모신 장세걸 사진은 일찍 기념관 강사들과 양림의 사진이라던 그 두번째 사진이 아니던가. 당지 홍14군연구회에서 이 사진을 장세걸 사진이라고 정중히 전시하고, 오구성로인까지 장세걸로 확인하니 장세걸 사진이 아니라고 할 그 어떤 리유도 서지 않았다. 필자는 이같이 평전 《홍군장령 양림》에 올린 두번째 사진을 장세걸로 받아들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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