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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기획21] 홍기촌, 그 이름 천리만리 전해가리

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3-30 10:51:55 ] 클릭: [ ]

대형계렬보도 “두만강은 말한다”(21)

—홍기촌 촌장의 고뇌: 조선족민속문화만은 지켜야 할텐데

23일 아침 8시 30분, 홍기촌은 향항관광팀에 이어 심수관광팀을 맞아들였다. 관광객들이 민속관으로 향하고있다.

“홍기촌”은 여전히“중국조선족제1촌”

“여기엔 민족의 발자취가 새겨졌고

여기엔 원고의 민요가 전해졌으며

여기엔 향기로운 막걸리가 있고

여기엔 우아한 례의가 있다네

아, 홍기촌-‘조선족제1촌’, 그 이름 천리만리 전해가리”

이는 “중국조선족제1촌”으로 불리우는 안도현 만보진 홍기촌 촌가 가사의 한구절이다.

홍기촌 “100년 민옥”

홍기촌은 안도현성에서 70킬로메터, 장백산풍경구에서 103킬로메터정도 떨어진 명(명월진)—장(장백산)도로구간에 위치해있다. 장백산관광길이 열리면서 홍기촌은 민속관광코스의 하나로 떴다. 지난해 홍기촌을 경유한 해내외 관광객이 근 20만명에 달했다.

홍기촌의 전신은 1939년에 조선반도로부터 집단이민해온“2호부락”이다. 이 촌의 원터는 지금의 자리에서 서쪽으로 2킬로메터 떨어진 곳에 있다. 개혁개방이후 촌에서는 통일로 지금의 자리에 세대당 600평방메터씩 집터와 건축구조를 설계해주고 3년을 기한으로 무리식대부금을 조달해주어 촌민들더러 가옥을 짓게 하였다. 86가구에 300여명 인구(호적상인구), 이들 전부가 조선족이다.

홍기촌사람들은 예로부터 례의를 지키고 의좋게 살아오면서 아름다운 마을기풍을 형성해 린근에 소문이 났다. 일치하고 특색이 있는 민가, 정갈하고 아름다운 마을풍경 또한 이색적이다. 장백산관광업의 흥기와 더불어 지난 세기 90년대부터 관광봉사업을 시작해온 홍기촌은 오늘에 이르러 민속특색의 관광체계를 초보적으로 이루었다. 음식, 민박, 특산품가게, 민속공연청, 민속박물관 등을 구전하게 갖춘 전형적인 조선족마을로,  중국조선족의 경제, 문화를 전시하는 창구로 되여왔다.

2004년에 홍기촌이 성급재정에서 지지하는 초요시범촌으로 된후 갖가지 기초시설건설개선에만 600여만원이 투입되였었다. 2010년 특대홍수의 피해를 입은후 재정, 사회, 기업에서 도합 1500만원을 투자하여 마을을 새롭게 복구하였다. 안도현에서도 조선족민속관광자원을 적극 개발해 홍기촌의 민속관광업발전을 크게 추진하였다.

2006년부터 련속 5년동안 《중국조선족제1촌》민속문화관광축제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홍기촌의《중국조선족제1촌》브랜드를 만방에 알리였다.

오늘날의 홍기촌은 국가급 생태촌, 전국특색경관명촌, 전국문명촌, 전국의 가장 아름다운 레저촌의 영예를 안고 그 이름을 떨치고있다.

권영경(76세)로인의 민박집 년간수입 만원

기자가 홍기촌에 취재를 간 그날 오후, 마침 30여명으로 구성된 향항에서 온 관광팀이 민박집 권영경(76세)로인댁으로 우루루 몰려들고있었다. “참관민가”로 지정된 권로인네 민박집을 보러오는 관관객들이다.

22일 오후 4시, 향항에서 온 관광팀이 권영경(76세)로인댁을 참관하고있다.

“부엌아궁이가 이(널마루) 밑에 있다구요? 이렇게 무거운 솥뚜껑을 밥한끼 해먹는데 주부가 몇번을 들어야 해요? 하하하...”

관광객들은 널마루를 열어보기도 하고 김치움도 들여다보자면서 조선족민가에 대해 신기함을 금치못했다.

“민속관에서 조선족에 대해 다소 료해하긴 했지만 이렇게 오늘 제눈으로 실감하기는 처음이다. 마을도 아름답고 집안도 깨끗하고 사람들도 너무너무 이쁘다, 장백산에 오면서 드디여 조선족을 알게 되였다!”며 관광객들은 감탄해마지않았다.

관광객들이 떠나간후 권로인은 기자를 보고 “그래도 지금은 관광객이 끊기지 않아 우리 량주의‘밥벌이’는 문제없네요.”하면서 1년에 참관비에 민박료까지 합치면 만원은 쉽게 벌수 있다고 했다.

지금 홍기촌에는 권로인댁과 같은 민박집이 22집, “참관민가”가 14집이 있으며 음식점이 12집, 관광상품가게가 2집이다. 관광성수기에 들어서면 떡을 파는 집과 과일, 관광기념상품, 특산물 등을 파는 집이 10여호로 늘어난다.

홍기촌 함주원촌장의 소개에 의하면 홍기촌에서 관광업을 추진해온지 20년이 된다. 경영인재 및 경영책략이 따라가지 못함을 절감한 홍기촌에서는 몇년전부터 관광 전문업체와 협력해 관광업을 활성화시키는 경영모식을 탐색하였다. 특대홍수가 쓸고간 이듬해인 2011년부터 연변흠박관광경제무역회사(주: 이하 “흠박관광회사”로 략칭) 에서 민속공연중심 및 음식점경영을 임대료계약형식으로 도맡고 민박 및 민가참관, 민속놀이마당공연엔 촌민들이 참여하게 되였다. 국내의 많은 관광업체와 제휴관계를 맺고있는 흠박관광회사의 관광객유치의 덕을 입어 홍기촌은 사시장철 관광객이 끊기지 않게 되였다.

관광수입은 지금 홍기촌의 유일한 집체경제수입래원이다. 새로운 경영리념이 도입되니 집체수입이 늘어나고 촌민들에게도 수입래원이 생겼다. 계약한대로 관광회사에서 촌에 들여놓는 임대료가 1년에 몇만원, 해마다 증가되고있으며 체험 및 참관관광인원수에 따라 민가에 때때로 지불하는“참관체험”비도 수만원에 달했다. 

 “이제 조금만 더 벌고 돌아오렵니다”

홍기촌 촌민들이 한집, 두집씩 홍기촌을 떠나고있다. 이 때문에 함주원촌장은 깊은 우려에 잠겨있다.

주민호들이 민가를 타민족들에게 팔고 안도현성으로 혹은 연길 등 도시와 해외로 떠나는 바람에 지금 홍기촌에는 20채 민가에 타민족들이 살고있다. 그러다나니 민박집이 35채로부터 지금의 22채로 줄어들었다. 요즘 한채가 또 줄어들게 된단다.

원래 조선족촌민들이 경영하던 과거의 음식점 12집도 지금은 단 한집을 제외하곤 전부 타민족들이 경영하고있다.

기자는 홍기촌의 유일한 조선족식당인 강남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사장 리녀사와도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이도백하진에서 온 그는 식당이 잘된다면서 이는 진정한 조선족집이라는 우세가 있기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실지 한국에 나가 버는것보다는 낫다”고 락관하였다.

올해 58세인 김순자아주머니가 흠박관광회사에 해설원으로 취직한 유일한 조선족“젊은이”다. 그는 관광객들이 올 때마다 민속관에서 관광객들에게 떡과 김치만들기를 시범해보이면서 민속음식문화에 대한 소개를 담당하는 해설원이다.

“관광성수기엔 조선족음식은 없어 못팝니다. 이 좋은 판에 조선족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김순자는 기자에게 안타까운 심정을 토한다.

김순자아주머니의 남편 박금석(59세)씨는 청도 한국기업을 거쳐 한국에 나가 취직한지 10년나마 된다. 마침 그는 설 쇠러 왔다가 집에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최근 3,4년간 집으로 올 때마다 또 아무개네가 촌을 떠난다는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참말로 그때마다 마음이 아팠지요. 이대로 나가면 안되겠는데...그때 저도 부득이한 상황에서 촌을 떠났습니다. 네 식솔에 손바닥만한 경작지를 붙이고 살자니 한해에 만원도 안되는 수입으로 도무지 계산이 안나오더군요. 나가서 벌수밖에 없었지요. 이제는 두 딸을 성가시켰으니 큰 부담은 없습니다. 그저 로후를 고려해 조금만 더 벌고 돌아오렵니다. 요즘 돌아와 무엇을 할가고 고민하고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나말고도 더 있을겁니다. ”

 

   김순자아주머니댁 손님방.

함촌장도 밖에 나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이다. 고향의 땅이 아까워 정든 고향이 그리워 돌아왔단다. 떠나는 촌민들이 양도하는 경작지를 한집한집씩 맡다나니 지금은 촌의 1/4에 해당되는 경작지를 함촌장이 다루게 되였다. 남한테로 가옥이 넘어가는것을 막기 위해 요즘 함주임은 민가 한채를 또 사들였다.

촌장이 나서서 이웃 신흥촌에 근근히 남아있던 조선족 7,8가구를 홍기촌으로 이주시켜오려고 우대조건을 내걸기도 했지만 결국 허사였다고 한다. 

지금 관광협력업체의 경영진은 물론 민가참관 안내원도, 민속공연중심의 출연대오도 전부 타민족으로 되여 있는 실정이다. 조선족문화에 대한 리해가 깊지 못한 타민족들이 늘어나는것때문에 민족문화가 무너질가봐 근심이 태산같아 한시도 탕개를 풀수없다면서 함주원촌장은 망연해한다. 촌에 남은 조선족 장년로동력은 불과 대여섯명, 촌에 남은 “식구”는 로약자와 아이들 뿐이니 말이다. 

“이제 5년후면 홍기촌이 대체 어떻게 될가?”

홍기촌사람들은 이대로 이렇게 나가다간 홍기촌이 아예 조선족이 없는 민속촌으로 남게 될거고 그렇게 되면 민족문화를 지킬수 없게 되지 않을가 우려하고있다.

그럴수록 민속문화의 완정한 상품화포장 및 과학적인 인도가 절실하다고 호소하고있다.

홍기촌사람들은 한편 원주민이든 타민족이든 손에 손잡고 “중국조선족제1촌”이란 브랜드를 잘 살리고 관광자원을 충분히 발굴해 촌경제를 더한층 활성화시킨다면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듯이 떠나갔던 촌민들도 돌아올것이라는 신심도 가져본다. 기자도 그날을 기대해본다.

 
2005년 당시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 리덕수가 홍기촌에 “중국조선족제1촌”이란 제사를 써주었다. 2006년 5월 30일,“중국조선족제1촌”간판 제막식 및 제1회민속관광절이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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