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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기획20] “백년클럽”을 지향하는 연변축구

편집/기자: [ 김룡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3-17 11:15:29 ] 클릭: [ ]

대형계렬보도 “두만강은 말한다”(20)

-연변축구팀은 중국축구계의 상록수이며 풍향계

1965년 전국축구갑급련맹경기에서 우승을 한 연변팀.

2015년에 창단 60돐을 맞이한 연변팀은 갑급리그에서 우승을 따내며 슈퍼리그에 뛰여든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냈다.

15년만에 중국 최정상 리그인 슈퍼리그에 복귀한건 물론 을급팀으로 떨어졌다가 행운스럽게 갑급팀에 잔류한 상황에서 거둔 성과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특히 이번 우승은 연변팀의 전신이였던 길림성축구팀이 1965년 갑급리그에서 우승을 따낸지 50돐이 되는 뜻깊은 해에 다시 일궈낸 우승이라 그 기쁨과 감격은 이루다 형언할수 없다.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연변팀을 비롯한 연변축구에 다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연변의 대표적인 명함”이라는 부름에서 멀어지는가 싶던 연변축구는 “박태하호”의 출항과 더불어 연변 자체 특색의 축구를 다시 연출하면서 살과 뼈와도 같은 연변과 축구의 떨어질수 없는 관계를 다시 한번 립증했고 가무, 교육, 미식, 관광 등과 더불어 두만강지역의 우수문화로 대변되는 민족의 “브랜드 명함장” 자리에 떳떳이 컴백했다.

중국축구계의 상록수

오늘날의 연변축구를 말하자면 지난 1965년 전국갑급리그에서 우승을 따낸 길림성축구팀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왜냐하면 길림성축구팀은 설립되여서부터 중국축구계의 상록수였고 축구인재 “비축은행”이였다. 1955년 8월, 주로 연변의 조선족선수들로 무어진 길림성축구팀이 장춘에서 설립되였다. 길림성축구팀은 그해 4월 16일부터 6월 8일까지 펼쳐진 전국축구련맹경기(도합 11개  팀 참가)에서 7등을 따내며 조선족의 축구수준을 만방에 알렸다. 특히 이듬해부터 펼쳐진 전국축구갑조련맹경기(全国足球联赛甲组比赛)에서 5등(도합 10개 팀)을 따내며 전국 강팀의 항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것은 당시 전국축구련맹경기에서 7위까지 이름을 올린 중앙체육학원팀, 동북체육학원팀, 화동체육학원팀, 중남체육학원팀, 서남체육학원팀, 중국기관차체육협회팀, 길림성팀가운데서 오늘날까지 중국 최정상리그에서 활약하고있는 팀은 길림성축구팀을 전신으로 둔 연변팀이 유일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연변팀은 길림성축구계의 “맏아들”일뿐만 아니라 중국축구계의 큰형님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진정 중국축구계의 살아있는 화석이요, 상록수이다.

1956년 상해홍구축구장에서 사상 첫 동계훈련을 한 연변팀(당시 길림성축구팀).

“신화”에서 “신화”에로

1965년 을급리그에서 갑급리그로 복귀한 첫해 길림성축구팀은 전국축구갑급팀련맹경기에서 일약 우승을 따내며 전국을 들썽케 했다. 그때로부터 50년이 흐른 2015년, 역시 을급리그에 강등했다가 기적같이 갑급리그자격을 회복한 연변팀은 일약 우승을 따내며 전국을 경악케 했다.

국내의 많은 언론인들과 축구팬들은 지난해 우승을 따낸 연변팀을 두고 1997년 2부리그에서 승격해 1998년 1부리그에서 우승을 따낸 독일의 명문구단 “카이저슬라우테른(凯泽斯劳滕) 신화”에 비유하는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국내에서는 현재의 슈퍼리그 맹주 광주항대팀이 2010년 갑급리그에서 승격해 2011년 슈퍼리그에서 우승을 따낸것을 두고 역시 “카이저슬라우테른 신화”를 달성했다고 대서특필을 했었다. 하지만 길림성축구팀은 50년전에 이미 그와 같은 신화를 이룩했으니 마땅히 “길림성축구팀 신화”라고 일컽는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가 싶다.

2015년 전국축구 갑급리그 우승을 확정한 연변팀.

특이한것은 50년전 길림성축구팀이 거둔 우승과 50년후 연변팀이 거둔 우승에서 당시 처했던 환경을 볼 때 거의 일치했다는 점이다. 1963년 을급리그로 강등해 이듬해 갑급리그에 다시 복귀한 길림성축구팀이 1965년에 전국갑급련맹경기에서 우승을 따낸것과 마찬가지로 2014년 을급리그에 강등한 연변팀이 이듬해에 기적적으로 갑급리그자격을 회복하며 역시 우승을 일궈낸것. 두번의 우승 모두가 갑급리그에 복귀한 해에 우승을 따냈다는 류사성이 있다면 감독의 성씨에서도 묘하게 일치성을 보이고있다. 우승을 일궈낸 두 감독의 성씨가 모두 박(朴)씨라는점이다. 박만복과 박태하...

중국축구계의 이색 풍향계

오늘날까지 각 년령별 국가대표팀에 약 150여명의 선수(조선족 위주)를 수송한 연변팀은 중국 축구계의 인재비축은행(人才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연변축구팀은 가끔 가다가 중국축구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이색 풍향계로도 등장해 축구계는 물론 언론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 연변팀 리호은감독은 지난 1993년도 전국 제7기운동회에서 전면공격, 전면방어의 “전공전수(全攻全守)”전술로 중국축구무대에 활력을 주입했는가 하면 전 연변팀 첫 한국인 감독인 고 최은택교수는 선진적인 한국축구로 연변팀을 4강에 끌어올리며 중국축구계에 김정남, 차범근, 박종환, 리장수 등 한국인 감독들이 대거 진출하는 “한류(韓流)”돌풍을 불러일으켰다. 전 연변팀의 간판급 스타이자 전 국가팀의 주력선수로 활약했던 고종훈명장은 1998년 중경에서 “중국축구는 볼장 다 봤다!(中国足球没戏啦)”는 “명언”을 발표, 지금도 중국축구를 편달하는 채찍으로 언론에 회자되고있다.

2015시즌 갑급리그 우승을 한 뒤 선수들의 헝가래를 받고있는 박태하감독.

오늘날 박태하감독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중국축구계의 눈길은 또다시 한국감독들에게 쏠리고있다. 홍명보(항주록성), 장외룡(중경력범), 김상호(상해신흠)를 비롯한 유명한 감독들이 륙속 중국프로팀의 고삐를 잡고있다. 연변팀이 중국축구의 풍향계로 다시 도약하고있는것이다.

“연변에서 축구를 모르면 지도자로 될수 없다!”

“연변에서 축구를 모르면 지도자로 될수 없다!”이는 오래전부터 연변의 항간에서 떠돈 말이다. 그만큼 축구가 연변의 독특한 문화로 주(州)민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잡았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축구가 없는 연변은 감히 상상할수조차 없을 정도다. 연변에서의 축구는 선수, 감독, 구단, 관련 행정일군들뿐만이 아닌 연변 력대의 제1책임자들을 비롯해 당위와 정부는 물론 사회각계 남녀로소가 끊임없이 동참해 가꾸어온 결실이기도 하다. 축구를 아예 삶으로 여기고 보람찬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아마 전국적으로도 그 류례를 찾아볼수가 없을것이다.

올 3월 5일부터 장장 15년만에 새롭게 중국슈퍼리그에 뛰여든 연변팀은 세월의 년륜만이 아닌 진정한 실력의 백년클럽을 말로만이 아닌 실제행동으로 구축하려는 웅심을 보이고있다. 또 이같은 연변축구의 지향은 당중앙과 국무원에서 제시한 “중국축구개혁발전총체방안”에 따라 보다 멋지게 보다 튼실하게 다져지고있다.

연변축구의 래일은 휘황찬란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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