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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기획18]연변의 력사문화 기념비가 말해준다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3-11 10:34:36 ] 클릭: [ ]

대형계렬보도 “두만강은 말한다”(18)

—백여년 중국조선족의 발자취 기념비에 남겨

룡가미원의 김학철문학비를 찾은 학생들.

“삼촌, ‘3.13의사릉’ 어떻게 가죠? 그리고 서일장군의 묘지는 어디에 있죠?”

려행사를 경영하는 조카가 외지관광팀의 요구에 따라 코스를 짜야 하는데 자기들이 모르는 곳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나를 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이렇게 물을 때가 많다. 내두산근거지와 어랑촌근거지, 처창즈근거지에 대해선 더구나 감감이다. 지금 이런 조카또래 사장님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해마다 진달래가 산을 붉게 물들이는 봄이 오면 내고향 진달래촌(화룡시 서성진)에서는 진달래축제가 열린다. 나는 제1회축제가 개최된 2006년부터 한번도 빼놓지 않고 이 축제에 다녀왔다. 고향사람들을 만나 훈훈한 고향소식을 듣고 그리웠던 정을 나누는 좋은 자리였고 도시에 살고있는 친구들에게 산좋고 물맑은 고향산천을 자랑하고 잊혀져가는 고향의 력사를 보여주는 좋은 자리였기때문이였다.

그럴 때면 의례 동행한 친구들을 이끌고 가는 곳이 있으니 바로 마을 북쪽 신선덕자락에 자리잡은 렬사기념비다.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기념비”—이는 저명한 시인 하경지가 1986년에 연변을 시찰하고 남긴 유명한 시구다. 연변에는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시기의 렬사가 도합 15453명이 있는데 그중 절대 대부분인 94%를 차지하는 14512명이 조선족들이기에 연변의 조선족마을을 찾아가면 어김없이 렬사기념비를 볼수 있다.

진달래촌 북산에는 공도진렬사기념비가 있다.

렬사기념비앞에 서면 저도몰래 숙연해진다. 고향마을 20여명 렬사들의 합동렬사기념비 서쪽켠에는 검은색 대리석을 정갈하게 다듬은 공도진렬사기념비가 홀로 서있다. 명암촌(진달래촌의 전신) 2대(오호동네)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항일렬사 공도진(김동범, 리복림)은 주하유격대의 창시자의 한사람이며 동북항일련군 제3군 제1사 사장 겸 정위로 1937년 7월의 어느날, 중공북만성위 위원들을 엄호하다가 29세의 젊은 나이로 빛나는 생을 마감하였다.

우리는 마을 서쪽 진달래언덕에 자리잡은 진달래정자를 향해 계단을 오른다. 그곳에는 고향이 낳은 작가 류연산선생의 “혈연의 강들”문학비가 멀리 조개산아래 자리잡은 고향집(서성진 북대촌)을 바라보며 조용히 서있다.

류연산작가의 문학비를 찾은 학생들.

류연산작가가 두만강, 압록강, 송화강, 흑룡강 4대강 류역 15,000리를 답사하고 쓴 장편기행문 《혈연의 강들》(상,하)은 “중국에 사는 우리 민족의 력사와 현황을 백과전서처럼 집대성한 책”(김병민)으로 평가받았다. 작가가 2011년 1월 22일, 암으로 타계한후 그의 생전의 문우들과 지인들은 2013년 8월 24일에 작가의 유언대로 고향의 언덕에 그의 문학비를 경립하였다.

내고향 진달래촌에만 이런 렬사비와 문학비가 있는것이 아니다. 연변은 가는 곳마다 그 지방의 력사와 문화를 담은 기념비가 많다. 이런 기념비들은 모두 지난 100여년의 조선족력사와 문화를 담고있는 기념비적인 의의와 후세에 전할만한 내용들을 담았다는것이 공동한 특점이다.

2010년 6월 19일, 당시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상무부회장이였던 허응복(연변윤동주연구회 회장)씨의 후원으로 연변지역의 평론가와 작가 시인 30여명이 연변지역 문학비 16개를 답사하는 행사를 조직하였는데 이는 연변에서 제일 처음으로 되는 조직적인 문화력사탐방이였다. 그후 연변작가협회에서 리륙사문학제일환으로 해마다 문학을 애호하는 조선족대학생들을 조직하여 두만강지역의 항일전적지와 문학비를 답사하는 활동을 조직하고 연변시랑송협회에서 방학기간을 리용하여 학생들과 부모들이 참가하는 문화답사를 조직하는 외 중국조선족력사문화동호회, 룡정시윤동주연구회 등 단체들에서 비정기적으로 력사문화탐방활동을 조직하면서 력사문화탐방은 갈수록 인기를 끌어 연변관광의 또 하나의 풍경선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 옛터를 찾은 대학생문학답사팀(연변작가협회).

왕청현은 항일유적으로 유명하다. 왕청현새일대관심위원회 주임 김춘섭은 11년간 력사를 계승하고 영령을 위로하고 후대를 교육하려는 책임감을 가슴에 지니고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항일영렬들의 사적을 끈질기게 발굴하고 항일력사유적을 복원하면서 위대한 항일정신을 전파하고 청소년들의 성장을 관심하였다. 그는 선후로 동장영렬사릉원 등 77개의 항전유적기념비를 세웠고 40여부, 100여만자에 달하는 항전자료를 집필, 왕청항일전쟁기념관을 일떠세우고 왕청영렬넷을 개통하였다. 그는 2015년 8월 중공중앙선전부로부터 “시대의 본보기”로 선정되여 표창을 받았다.

왕청현에서는 2011년 9월 23일에 연변에서 첫 홍색관광코스를 개발하였는데 왕청현 제5구 쏘베트정부 옛터와 동만특위 이불공장 옛터까지의 35킬로메터구간의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 옛터”, “대감자참안 옛터”, “김금녀렬사 기념비” 등 23개 기념비와 옛터 등이 코스에 들었다. 얼마전에 93세의 고령인 하경지가 “왕청의 항일봉화, 동만대지를 불태웠네”라는 제사를 써 왕청현의 로혁명근거지건설과 혁명전통교육에 대해 높이 평가하였다.

2006년에 설립된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는 채택룡, 김례삼, 윤동주, 윤정석, 최문섭, 한석윤 등 동시인들의 시비를 연길공원 동시동네에 세워 연길공원에 문화향기가 흠씬 풍기게 하였으며 진달래광장에 “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비를 세워 후세에 당의 옳바른 민족정책과 자치주를 사랑하는 연변인민들의 마음을 널리 전해가게 하였다.

연길공원 동시동네에 가면 조선족 백년의 대표적동시들을 읽을수 있다.

중국조선족의 력사와 문화, 교육의 발상지로 불리우는 룡정시에도 이와같은 기념비가 많다. 우선 룡정중학교 대성중학교옛터에 있는 리상설기념비, 윤동주시비, 윤동주동상과 대성중학교기념전시관 1층에 복원된 윤동주문학교실은 이미 대내외에 개방되여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고 지신진 명동촌에 자리잡은 윤동주생가, 승지촌의 주덕해옛집터, 15만원탈취사건유적지, 룡정시외곽에 자리잡은 “3.13의사릉” 룡정시정부자리에 건설한 일본룡정령사관죄증전시관, 륙도하와 해란강 합수처에 건설한 락연공원, 비암산의 일송정과 강경애문학비 등은 조선족백년사를 료해하기 위하여 룡정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목을 잡는 곳들로 되였다. 요즘 토성포남산에 자리한 명동학교 창립자, 중국조선족교육의 선각자의 한사람으로 불리는 항일지사 김하규선생의 묘지도 발굴되여 인기화제로 되고있다.

2015년 4월 5일, 김하규선생의 유족과 지인들이 묘소를 찾아 한식제를 지냈다.

도문시 장안진에 자리잡은 룡가미원은 필충국화백이 필생의 정력을 바쳐 일떠세운 하나의 문화생태공간으로 2014년에 중국민족문화관광시범건설기지로 명명되였다. 이곳에는 김학철문학비를 비롯하여 새중국을 창건하고 “인민만세”를 외쳤던 중화인민공화국 초대주석 모택동, 중국조선족 백년력사에 중요한 발자국을 남긴 신정(신규식), 한락연, 정률성 등 위인들의 동상(노래비)이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찾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두만강가에도 연변의 문화와 력사는 기념비로 남아있다. 훈춘시의 방천에 가면 볼수 있는 토자비와 룡호각아래에 옮겨간 룡호비, 오대징동상 등은 물론 도문시 두만강광장 유보도의 정몽호시비와 김파시비, 화룡시 호곡령의 리욱시비, 선경대의 최룡관, 박화, 리근영시비 등은 장백산에서 발원하여 이땅을 비옥하게 적시며 유유히 흘러가는 두만강과 함께 또 하나의 관광명소로 되고있다.…

훈춘 방천에 가면 볼수 있는 그 유명한 토자비.

이러한것들은 연변산하에 남겨진 연변비석문화의 전부가 아니며 근근히 빙산의 일각일뿐이다. 고향을 등지고 이땅에 정착하여 불과 백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중국조선족의 발전력사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피를 흘리고 생명까지 바쳤던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를 비롯하여 정풍운동, 문화대혁명과 같은 사상운동까지 중국조선족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력사시기를 소화하면서 자신의 발자취를 력사와 자연에 뚜벅뚜벅 남겼다. 이런 력사와 문화가 지금 기념비들에 고스란히 담겨있고 그것이 여러가지 형식으로 재조명되면서 세세대대 전해가는것이 문화의 공성이 아니겠는가.

장백산을 찾는 외지인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연변의 력사와 문화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연변을 찾는 분들도 점차 많아지고있다. 연변의 수려한 풍경에 매료되여 연변을 찾아왔다가 연변의 력사문화에 흠뻑 취해 다시 한번 연변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고있다.

연변의 산마다에 진달래가 피여나듯 마을마다에는 렬사비가 있고 현(시)마다에는 렬사릉원이, 유적지마다에는 기념비가 있으며 공원마다에는 문학비(시비)가 세워져있고 또 세워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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