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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기획16]인화촌, 민속생태발전의 “돛” 올렸다

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2-29 21:13:30 ] 클릭: [ ]

대형계렬보도 “두만강은 말한다”(16)

—룡정시 동성용진 인화촌 민속생태특색촌으로 거듭난다

연길시의  민영기업인으로부터 룡정시 동성용진 인화촌의 농민으로 변신하고 촌당지부서기로 당선되여 촌당지부, 촌민위원회의 력량을 응집해 인화촌을 민속생태특색촌으로 “경영”해가는  원영진 , 본기 동성용진, 룡정시, 연변주, 길림성 인대대표이고 길림성로동모범이다. 

국가 “흥변부민행동”은 변경지역 경제사회발전의 가속기와 촉매제로 되고있다. 한편 “소수민족특색촌락보호 및 발전”정책은 민족문화의 가장 효과적인 담체인 전통촌락의 “보호우산”으로 되고있으며 흥변부민행동을 유력하게 추진하고있다.

일전에 기자는“12.5”기간 연변에서 실시한 34개“특색촌”중의 하나, 486여개 “정체적빈곤퇴치개발촌”중의 하나인 룡정시 동성용진 인화촌을 다녀왔다. 인화촌은 바로 이런 나라의 다차원 혜민정책의 빛발아래 당지의 자원을 개발, 리용하고 기업인이 투입, 협력하는 모식으로 “조혈식빈곤퇴치 및 쾌속발전”의 길을 모색하고있다.

세전이벌의 오아시스—“해란강민속생태원”

룡정시 동성용진 인화촌은 해란강하류의 남안, 세전이벌의 동쪽자락에 자리하고있다. 434세대, 촌민 1779명에서 조선족이 81% 되는 인화촌은 과거에는 툭 털면 먼지밖에 없는 락후한 촌이였다.

8년만에 와보는 인화촌은 그야말로 몰라보게 변했다. 초가집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한산한 페교자리에는 옥수수건조공장 건조탑이 하늘높이 솟아있었으며 마을길들이 반듯하게 포장된데다 민속화벽, 민속문화광장이 눈길을 끌었고 해빛에너지가로등에 가로수록화대까지 마련되여있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었다.

마을에 들어서면“해란강민속생태원”이란 간판이 돛대처럼 한눈에 안겨든다.

“여긴 구경할만하오... 이제는 해란강다리가 통하니 이렇게 산책할수 있다오.”

생태원 대문앞에서 인화촌과 해란강을 사이두고있는 룡산촌 (영성) 에서 건너온 몇몇 할머니들이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기자는 인화촌의 원영진서기(57세)의 안내로 4년간 추진해온 인화촌 “민속생태특색촌”건설대상인 해란강민속생태원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마주한 거물 일광하우스와 정원—해란강민속생태원은 촌의 해란강민속생태원유한회사에서 경영하는 12개 경영항목중의 하나이며 민속, 생태테마의 가든이다. 한번에 350명을 접대할수 있는 규모로 설계되였다고 한다. 하우스안에는 화초와 기석, 미니오아시스생태조형구가 바깥의 겨울을 잊게 하고있다. 하우스에서 나오면 정겨운 조선족전통가옥(15채)구역이 민속마을을 이루어 민족특색의 거주, 생활상을 전시하고있다.

민속마을과 실개천을 사이두고 해란강을 배경으로 유난히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신기루처럼 보였는데 이를“천지기석관”이라고 한다. 다가가보니 기석관내외에는 억만년전의 지각 및 지각운동을 련상시키는 500여점의 크고 작은 장백산지역특색의 기석을 소장하고있어 기석공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관상성, 지식성, 소장성, 친자연성의 고품격, 큰 규모의 기석경관은 장백산지역의 지리, 지각특색을 보여주는 연변지역의 가장 대표성 기석경관이라 할수 있다.

천지기석관

기석경관을 핵심으로 인화촌의 민속생태원은 지난해 AAA급풍경구로 이미 비준받았다. 꽃피는 5월부터 민속생태원, 기석관은 본격적으로 대외로 개방해 손님을 맞게 된다며 원영진서기는 기자를 “특색촌”건설대상의 또 하나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되는 하우스재배기지로 안내한다. 기지에는 19채의 일광, 온실하우스가 줄지어져있다. 6개의 하우스안에는 록색, 유기농법으로 재배한다는 딸기가 빨갛게 익고있었다. 딸기하우스는 “특색촌”건설이래 “첫수익(第一桶金)”을 거두게 했다고 한다. 이곳의 딸기는 리상적인 가격으로 전부 예매되고있었다.

딸기하우스외에 포도, 남새재배하우스에서도 바야흐로 소출이 난다고 한다. 하우스재배기지는 “1석3조”의 효과성, 즉 촌의 집체경제수입원으로, 민속생태원의 열매따기, 남새캐기체험원으로, 식재료기지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민속생태특색촌”건설대상은 표준화민속주택구, 민속생태원구, 특색경제작물재배구, 인화호(仁化湖)수상구, 해란강반관광농경산업구 등 5대 산업구역으로 설계되였는데 커버 면적은 지금의 26헥타르에서 서쪽으로 더 확장된다고 한다.지금까지 예정투자계획을 7000여만원 완수했다. 그중 흥변부민보조자금, 특색촌건설자금, 빈곤부축자금 등 국가자금이 50% 넘는다. 그외 자금은 기업 및 사회부축자금이다.

해란강홍수방지시설, 관개구건설, 토지정비 등 중대한 수토공정과 촌도로공사를 완수, 해란강교 및 해란강교와 연길시로 직통하는 도로련결공사를 완수, 안전음용수 공사 완수, 촌위생소, 민속문화광장 등 체육문화오락시설, 주가양로 및 로인활동실건설, 촌사무실 확건, 중심마을 정체적인 개조와 미화공사를 완수, 하우스재배기지건설, 전통가옥구역, 생태원, 옥수수건조공장을 건설했다. 보완공사투자 및 민속관 등 대상건설투자가 계속될 전망이다.

“천시지리인화”의 시너지효과

인화촌에는 각급 부문 책임자들의 발자국이 많이 새겨져있다면서 원영진은  길림성당위 파음조로서기의 래방을 떠올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1월 5일, 파음조로서기가 연변의 빈곤퇴치공략전사업차로 인화촌을 찾았다. 원영진은 파음조로서기는 올해 인화촌의 첫 “방문객”이라고 말하며 촌민들은 새해벽두에 성당위 서기가 인화촌까지 찾아올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그후  1월 27일 본기 인대대표로 길림성 12기인대5차회의에 참가했다가 원영진은  어렵사리 성당위 서기 파음조로와 기념사진을 한장 남겼다며 기자한테 보인다.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파음조로서기는 원영진의 손을 꼭 잡아주는것으로 관심을 표하고 격려하고 당부했다고 한다.

원영진은 당과 국가의 관련 혜민, 혜농정책조치가 인화촌발전에 “천시”적인 기회를 주고있다면서 원영진은 인화촌의 발전동력을 “천시지리인화”로 귀납한다.

생태원 및 재배기지 등 곳들을 다녀보고 인화촌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는 정오 12시가 넘었다. 촌사무실에는 몇몇 촌간부들과 일보러 온 촌민들이 있었다. 사무실에는 전과 달리 원스톱봉사대가 놓여져 정규화한 촌무봉사창구라는걸 각인시키고있었다. 그외 전에 볼수 없었던 성과 주급의 각종 영예패가 여기서저기서 빛나고있는것이 인화촌의 또 하나의 진풍경으로 안겨왔다.

 “지금은 자부심이 생기고 일을 많이 해도 힘이 난다”.

촌의 간부들은 촌의 변모에는 원서기의 공로가 크다고 이구동성이다.

민속생태원유한공사는 원영진이 연변의“연룡도”발전전략 및 조선족민속문화건설과 향촌관광발전전략의 실시를 계기로 촌민위원회와 토론결책하여 설립한것이다. 기석관은 원영진이 자기의 창업수확금 2000여만원과 안방의 “보석”(원서기가 안방에 소장했던 기석을 기석관에 내놓은것을 말함)까지 안아내와 세운 인화촌 “특색촌”건설을 위한 모델하우스이고“기석(基石)”공사이다.

촌무감독위원회 류취련주임은 “원서기가 촌민들에게 희망과 신심을 안겨주었다.”고 말한다.

인화촌 사무실은 문닫는 날이 없다고 한다. 당직제도까지 세워 촌민들과 촌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제기되는 문제를 제때에 처리하고있다고 한다.

“촌민들의 일이면 작은 일이 없다. 촌민이 만족하도록 처리해주는것이 처사표준이다. 무릇 촌간부들이 처리한 일이라면 그 어떤 흠집이 잡히지 않도록 참답게 잘하자. 무릇 촌민들의것은 받아먹으면 안된다. 촌장부지출에서 접대비용지출을 취소한다... ”

원서기는 이는 인화촌 간부들이 지켜야할“규제(规矩)”라고 한다.

기실 원영진을 위수로 하는 인화촌 본기 지도부가 촌사무관리를 임계받을 때 인화촌의 집체경제수익금은 “0”이였다. 지금은 그때의 상황을 역전시켜 집체경제자금을 여섯자리수로 상승시켰다. 촌민들은 더는 상급부문을 찾아다니며 신소하지 않았으며 40%까지 치솟던 빈집률도 “0”으로 변했다.

민속생태라는 “그림”은 영원토록 잘 그려야 하는 그림

인화촌은 드디여 빈곤의 모자를 벗어버렸다.

지난해 촌 스스로의 “조혈”수익금으로 촌민들의 의료보험금을 부담하고 농경생산길을 닦는 등 혜민공사도 담당했다.

원영진은 이를 만리장성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원영진, 그는 대체 누구인가?

원영진은 군에서 입당하고 제대한후 20여년간 벽돌공장, 소형탄광경영, 부동산개발업에 종사했던 연길시의 한 기업인이였고 연변기석협회 회장이다. 해란강에 뜯기워 생긴 인화촌의“모래장(采沙场)”땅을 임대하던 10년전부터 인화촌과 인연을 맺아온 사람이다. 지금은 호구까지 올린 명실상부한 인화촌사람이다. 원영진은 그렇게 된데는 “철저한 개혁이 있었기때문이다.”며 유머러스하게 말한다.

민족정책, 변강지원정책, “3농”정책 등 일련의 정책, 전략실시를 페부로 느끼면서 원영진은 단연 자기의 후반생의 창업꿈을 인화촌 민속생태특색촌건설에 융합시켰다.

전에 촌민들이 “인화엔 돈도 인재도 자원도 없다”고들 말했지만 원영진은 인화촌을 “길지(风水宝地)”라고 미칭(美称)한다. 그러면서 원영진은 인화촌은 3면이 산과 잇대여있고 한면이 해란강을 끼고있고 오래전부터 조선족이 살아온 곳이며 조선족자치주 수부인 연길시, 조선족발상지인 룡정시와 11키로메터 상거한 유리한 지리적우세를 갖고있다고 말한다.

2000여만원을 투자해 하천에 밀리운 “촌”의 모래자갈땅에 “루각”을 세운 원영진, 물론 여기에 그로서의 전망성과 원견성이 따로 있었다.

사실 원영진은 오래전부터 머리속에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있었다.

“솔직히말해 우리 민족은 자기의 자리를 지켜야 할뿐만아니라 자부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세세대대로 우리 민족이 살아온 인화촌과 같은 오랜 마을은 민족의 생산, 생활의 터전이고 민족의 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장소로서 우리의 보귀한 자원이지요. 민속생태특색촌건설은 우리 민속문화를 보호하는 한가지 방식입니다. 민속생태관광업을 통하여 우리 민족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영원토록 잘 그려가야 할 거대한‘그림’이지요. 후반생을 이렇게 투입하는것은 내 생에 기억을 남기는 보람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더 큰 돈도 벌수 있는 승산이 있지요. 다르다면 이제는 인화촌사람들과 하나가 되여 ‘자원을 공유하고 공동히 치부’해가는 길을 선택한거지요. ”

원서기의 의미심장한 말이다.

옥수수건조공장

딸기재배기지에 이어 올해부터 옥수수가공공장, 생태원가든, 민속공연광장, 특색작물재배기지운영 등 채산이 촌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촌민들에게도 취업수입, 임대수입, 경영수입 등 수입원이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원영진서기는 인화촌의 수입원은 비로소 단순농경생산으로부터 다원화를 실현해가는 국면을 개척하게 된다고 한다.

원영진은 “농촌의 사업은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한다면서 “‘농’자산업에 할일이 너무 많고 또 제일 좋은 시기가 왔다.”고 말한다.

해란강은 세전이벌에서 마감으로 인화촌을 스쳐흘러 부르하통하와, 두만강과 만나 함께 바다로 나간다. 인화촌은 마치도 해란강 강만에 정박했던 한척의 선박과도 같다. 이“선박”은 오늘 드디여 인화촌사람들의 “초요”꿈과 이야기를 만재하고 민속생태발전의 “돛”을 올렸다.

/사진 김성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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