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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기획14]세계로 나아가는 연변의 명절문화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2-24 10:02:07 ] 클릭: [ ]

대형계렬보도 “두만강은 말한다”(14)

세계 어느곳보다도 명절이 많은 연변, 연변고유의 명절 타향에서도 즐긴다

2012년 9월 3일 자치주성립 60주년 경축대회 대형광장무 한 장면.

연변은 세계 어느곳보다도 명절이 많다. 설명절이나 추석을 비롯한 전통명절은 물론 련인절, 어머니절과 같은 차래명절도 꼬박꼬박 챙겨 쇠다보니 자연히 그렇게 된것 같다. 하지만 연변사람들에게 허다히 많은 명절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반드시 기념해야 할 명절을 들라면 우리 조선족이 중국 56개 민족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치권을 향수하면서 나라의 주인으로 된 “9.3명절”과 녀성들이 봉건사상에서 해방되여 남성과 평등권리를 향수한 “3.8”국제로동부녀절, 어린이들의 권리를 보장받은 “6.1”국제아동절, 자식과 사회를 위해 등이 휜 로인들에게 효도하기 만들어진 “8.15” 로인절 등등을 꼽을것이다.

연변조선민족자치구(1955년 12월 연변조선족자치주로 변경)는 1952년 9월 3일에 성립되였다. 이는 망국의 설음을 안고 남부녀대하고 고향을 등진채 중국땅에 이주하여 황무지를 일구던 조선족이 자주적인 민족독립과 구국운동을 시작으로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항일전쟁과 해방전쟁에 적극 참가하면서 자치권리를 가지고 또 이 나라의 주인으로 되였다는 징표였다. 그때로부터 “9.3명절”은 연변조선족들을 포함한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의 공동한 명절로 되였다.

가무의 고향, 축구의 고향이라 불리는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설립되여서 60여년 사이에 인구가 70여만명으로부터 217만명으로 불었으며 당의 민족정책의 빛발아래 경제건설과 사회사업에서 거족적인 발전을 거두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련속 5회 “전국민족단결진보 선진집체”칭호를 수여받은 소수민족 거주지역인 연변은 개혁개방이후 민생주제를 긴밀히 둘러싸고 교육, 문화, 체육, 위생 등 각항 사업을 다그쳐 발전시키고 알심 들여 창업취업, 빈곤부축, 농촌위험주택 개조 등 민생공정을 조직, 실행하여 인민군중들로 하여금 확실하게 개혁개방 발전성과의 혜택을 받게 하였다

제1임 자치구정부 주석이였던 주덕해는 조선민족의 력사와 자치구설립준비사업을 회고, 《자치구는 비록 하루아침에 설립되였지만 기실은 100여년의 준비사업을 해왔다》고 의미심장하게 말하면서 《당과 모주석이 없으면 새 중국이 없고 새 연변도 없다. 우리는 물 마실 때 우물 판 사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바 있다.

자치주성립 60주년을 맞는 2012년 9월 3일은 하늘도 푸르고 날씨도 따스했다. 자치주가 환갑을 맞는 이 뜻깊은 날에 국내외 래빈들과 연변 각지에서 모여온 3만여명의 인민군중들은 자치주성립60주년 헌례공정으로 건설된 연길시인민경기장에 모여 60번째 “9.3명절”을 경축했다.

경축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연변찬가”로 이름한 대형광장무였다.

서막 《행복한 연변》에 이어 《천지를 감동시키다》, 《갑자성경》, 《나날이 향상》, 《아름다운 전망》 등 4개 장절에 《연변축복》 등 4장7경으로 90분간 펼쳐진 “연변찬가”는 중국조선족민족예술의 집대성이며 연변문화발전성과와 수준의 최고 대표작이라 불리웠는데 연변의 이미지와 《얼굴》로 되여 연변을 찾은 허다한 국내외 손님들에게 연변자치주창립경축활동의 아름다운 화폭을 선물하였다.

“이건 진짜 예술이다. 이때까지 보아온 광장무가운데서 최고수준이다! 70주년에는 모든 일을 제쳐놓고서라도 꼭 올것이다!” 마침 한국에 갔다가 체류기한이 만기되여 돌아왔던 큰 누님이 눈물이 글썽하여 박수를 치고 또 박수를 친다. 시간이 가면서 뜨거운 가을해볕이 사정없이 내리쬐였지만 웅장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표현에 매료된 관중들은 시간가는 줄 몰랐다.

축제에 앞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관객들.

이날 점심부터 연길시내는 물론 연변주의 모든 음식점들은 빈자리 하나 없을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기실 연변에서 “9.3”명절은 5년에 혹은 10년에 한번씩 쇠는 명절이 아니라 해년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즐기는 명절로 자리매김한지 오라다.

“ ‘9.3’경축대회가 있던 날, 우리는 온 저녁 ‘에루화 어절씨구 좋구나 좋네’를 불렀다. 뉴욕에 있는 연변사람들이 우리 식당에 모여서 인터넷으로 생방송을 보았다.” 뉴욕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다. 연변식으로 저가락장단에 “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를 부르는 그들을 보고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그들이 노래에 담겨진 내용과 배경을 이야기하자 모두 엄지를 내들더란다. 이처럼 연변의 조선족들은 고향을 멀리 떠나있어도 항상 고향의 노래를 부르고 고향의 발전을 관심한다.

진달래광장 서남쪽에 세워진 “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비.

그해 8월 31일 150여톤의 한백옥, 묵옥, 장백화강암으로 조각된 “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비를 진달래광장 서남쪽에 경립하였는데 이는 중국공산당의 올바른 민족정책과 그를 노래하고 기념하려는 조선족사회의 한결같은 마음외에도 우리의 티없이 깨끗하고 순박한 마음과 정서, 나라의 주인으로 된 무한한 기쁨을 세세대대 전해가려는 노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연변에서 음력설이후 맞는 가장 큰 명절은 “3.8”국제로동부녀절이다. 이날은 녀성의 정치•경제•사회적 업적을 범세계적으로 기리는 날이지만 연변조선족들에게는 또 다른 의의가 있다. 고향을 등지고 타향에 정착한 디아스포라, 남존녀비사상에 오래동안 습관되여온 조선족녀성들이 해방을 받아 사회적지위가 훨씬 제고된 날이라는 뜻이 가첨되였기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불교사상이 깊이 뿌리내린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해 연변은 “3.8”절을 매우 중시한다.

2014년 3월 5일, 연길시 하남가 장청사회구역에서 3.8절을 맞아 료리솜씨겨루기를 조직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3.8”절은 연변에서 그 기간이 가장 길고 가장 잘 먹는 명절이라 할수 있다. 3월 1일부터 시작된 “3.8”절은 3월이 다 갈때까지 이어지며 녀성동사자나 동창생이나 풋면목이 있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꼭꼭 “3.8”절 문안을 전하고 시간이 허락되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것이 관례처럼 되였다. 이런 의미에서 연변의 3월은 “녀성의 달”이라고 부를수도 있다. 어머니를 존경하고 안해를 사랑하고 딸과 며느리를 아낄줄 아는 연변사람들의 토배기 품성이 잘 보여지는 부분이다.

연변에서 또 다른 큰 명절은 “6.1”국제아동절이다. 어린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이날 역시 연변에서는 남다른 의의가 있는 날이다. 조선족들은 예로부터 가정과 민족과 사회의 미래인 후대들을 각별히 아끼고 사랑하였다. 지난세기 80년대까지는 “6.1”절을 그냥 학교나 유치원에서 조직하는 들놀이나 운동회에 참가하는데 그쳤지만 개혁개방이후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는 집체행사외에도 부모와 함께 하는 명절로 되였고 그후부터는 아예 온 가정이 함께 하는 명절로 발전하였다.

한 가정에 아이 2, 3명은 보통이고 5, 6명까지 키웠던 60, 70년대와 산아제한정책이 실시된 이후 그리고 개혁개방이후 많은 부모들이 외국이나 타향에 나가 돈을 벌고 할아버지할머니 들이 애지중지 손주들을 키워야 하는 현재의 “6.1”절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외사촌동생의 딸은 3살때부터 친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연길에서 유치원까지 다녔으나 호적관계로 외가집이 있는 화룡시 서성진에 가 다녀야 했다. 해마다 “6.1”절이면 멀리 한국에 있는 부모들로부터 무엇무엇을 사주고 어떤어떤 음식을 사먹이며 누구누구랑 같이 쇠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외할머니 내외, 친할머니 내외는 물론 가까이에 있는 나까지 참석하여 축하해준다. 곁에 없는 부모때문에 아이가 어려서부터 기죽고 살가봐 근심하는 부모의 마음도 마음이겠지만 가까운 친척가운데 어린이가 그애뿐이다보니 오지말라 해도 갈 처지가 되였던것이다.

연변은 광활한 중국대지에 놓고보면 변강의 자그마한 오지에 불과하고 사는 인구라야 200여만, 그중 조선족은 겨우 60여만명뿐이다. 하지만 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들에 의해 뜻이 가첨되고 기념되는 명절들은 또한 그들에 의해 멀리멀리 타향에로 전파되기도 한다. 개혁개방이후 세계 방방곡곡에 나가 거주하면서 생활하는 조선족이 50여만명이 넘어 된다. 그들은 당지에서 생활하면서 연변의 “9.3”, “3.8”, “6.1”, “8.15”와 같은 명절을 잊지 않고 연변방식대로 기념하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되고있으며 당지 사람들에게 연변을 소개하는 좋은 매개로 활용되고있다.

1982년 8월 15일 룡정시 동성용진에서 첫 로인절을 경축하고있다.

2004년도 위해에서 한국어학원 교사로 있을때 마침 “9.3”명절이여서 “9.3”의 유래를 설명하였더니 학생들이 저녁에 맛나는 음식을 사고 축하해주던 일이 기억난다. 그때 흑룡강에서 온 박선생이 연변사람들은 기념할만한 명절이 있어 좋겠다고 부러워하던 일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명절은 그 지역 인민들의 인정풍토를 잘 나타낸다. 고향을 사랑하고 부모를 공대하고 로인과 녀성을 존중하며 자식을 아끼는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성이지만 연변처럼 특별히 명절을 만들어 해년마다 기념하는 곳은 아마 없을것이다.

하긴 미국뉴욕에서 “9.3”명절을 쇠였다는 친구내외, 한국에서 동네분들끼리 모여 “3.8”절을 쇠였다는 누나와 매형, 광주에서 동아리친구들끼리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가서 “6.1”절을 즐겁게 쇠였다는 제자내외, 8월 15일 상해에서 부모님들께 로인절을 쇠드렸다는 짜개바지친구…이런 사연들이 어찌 나혼자만의 일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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