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유경봉-“목동”의 꿈이 공채1기 입사로 흐드러져

편집/기자: [ 김성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8 20:38:17 ] 클릭: [ ]

[제2편] (하)

유경봉-“목동”의 꿈이 공채 1기입사로 흐드러져

25년전, 화룡에 《길림신문》을 애독한 한 소년이 있었다. 때는 1990년 여름, 140센치메터도 안되는 자그마한 키에 40킬로그람 되나마나한 가녀린 몸매의 소년은 황소 11마리를 끌고 마을 뒤산에 올라 방목하고있었다.

마을의 실농군으로 고생많은 부모님들을 측은히 여겨10살 밖에 안되는 년은 소학교 3학년 여름방학부터 소방목을 자원해나선것이다.

성년 암소 4마리와 두살배기 수소 4마리, 한살배기 송아지 3마리 도합 11마리를 끌고 매일 오후마다 힘겹게 마을 뒤산을 톺아오르는 소년의 손에는 곱게 접은 흑백신문지 몇장이 방학숙제책과 함께 쥐여져있었다.

소년의 손에는 간혹《 장백산》,《 도라지》,《 은하수》,《 대중과학》,《지부생활》 등 우리 글 잡지도 가끔씩 보였지만 《길림신문》만은 늘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소년은 소를 방목하면서 잣나무 그늘밑에서 방학숙제를 마치고 《길림신문》을 열심히 읽다가 피곤하면 신문지를 덮고 낮잠을 자군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귀가한 소년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 “아부지, ‘산재지역’이란게 뭐임까? 장춘이나 길림은 우리 화룡이나 연길보다 더 큰 도시라는데 왜 《길림신문》에서는 자꾸 ‘산재지역’이라구 함까? ‘산재지역’이란게 산골이란 말이 아임까?”

“허허- 이 녀석아, 니가 ‘산재지역’과 ‘산간지대’를 헛갈렸나보구나.”

시간이 흘러 2008년 10월말, “소년”은 《길림신문》의 “가족”(실습기자)으로 들어왔다.

이 “소년”이 바로 현재 《길림신문》에서 사회, 법제 분야 취재를 맡고있는 유경봉기자이다.

지난 7년간 유경봉은 동북3성과 내몽골, 북경, 천진 등 국내 여러 산재지역에 많은 발자욱을 남겼다. 취재반경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관광, 예술, 출국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망라되였다.

2009년초, 신문사 입사 몇달만에 대형계렬보도 “공화국 창립60돐 기념 특별기획 60주년에 만나본 60인”의 취재기회를 얻은 유경봉은 “물 만난 고기”마냥 더없이 흥분에 젖게 되였다. 그는 1년 동안 도합 8명의 각계 유명인사를 취재, 그외에도 여러편의 사회문제 관련 비판보도를 쓰면서 취재기교를 련마하였다.

2011년 11월 8일 “기자절” 당일, 유경봉은 입사 3년 10일만에 사업편제가 정식으로 락착됐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는 길림신문사 공개채용 1기라는 행운의 기쁨을 가족과 함께 만긱할 겨를도 없이 사전의 약속대로 편집국장 최승호와 함께 내몽골 울란호트로 떠나는 밤기차에 몸을 실었다. “좋은 선생님” 취재차 내몽골에 남은 4개의 조선족중소학교 탐방에 나선것이다.

울란호트의 조선족 학교와 농촌에 대한 취재를 마치니 나흘이 지났다. 최승호국장은 다른 업무때문에 귀향길에 올라야만 했다.

“기온도 많이 떨어지고 며칠동안 쉼없이 련속 취재 다니느라 너도 몹시 피곤할텐데 같이 장춘에 돌아갔다가 다시 약속 잡고 오자.”는 최승호국장의 관심조로 던진 건의를 뒤로 한채 유경봉은 홀로 하던 취재를 다그쳤다. 아영기의 운영건교장, 짜란툰의 박애화교장과 이미 취재약속을 해놓았기때문이였다.

울란호트에서 아영기, 짜란툰까지는 기차가 통하지 않아 뻐스에 탑승한 유경봉은 도중에서 하마트면 교통사고를 당할번 한다. 그가 탑승한 뻐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란히 달리던 유조차 한대가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길바닥에 뒤덮인 싸락눈에 미끌면서 근 10메터 깊이의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졌던것이다. 조급히 뻐스조종석까지 달려가서 운전사에게 기자증을 제시하며 뻐스를 세워줄것을 요구했지만 운전사는 “미쳤냐?”고 소리치며 눈알을 부라리더니 계속 하여 운전했다. 다행히 그사이 승객들이 앞다투어 경찰에 신고했기에 운전사도 풀이 죽고말았다.

유경봉이 5시간만에 아영기에 도착하니 울란호트에서는 령상 10도가 넘던 기온이 령하 10도 이하로 떨어져있었다.

유경봉은 추위를 못이겨 그만 된감기에 걸렸다. 하지만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취재를 끝까지 했다.

“고생끝에 락”이라고 그번 길에 취재한 짜란툰조선족학교의 박주옥교원은 2012년 9월에 길림신문사와 한중친선교류협회가 공동주최한 “좋은 선생님”시상식에서 대상의 영예를 받아안았고 아영기조선족학교의 남영애교원은 우수상을 받아안았다.

유경봉은 내몽골취재만 네번, 그사이에 그는 내몽골의 조선족학교와 조선족농촌을 거의 한번 훑었다. 그래서 신문사내에서는 그한테 “내몽골전담기자”라는 별호까지 붙여주었다. 하지만 세계 4대 초원으로 불리우고있는 아름다운 훌룬부이르초원 구경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근년에 유경봉은 밥상에 마주앉아서도 화장실에서 세수하다가고 길을 걷다가도 혼자말로 웅얼거리고 새벽에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무언가를 적는 습관이 생겨났다. 마치 취재에 미치기라도 한듯이…

2013년 7월에 그는 장기간 몸관리에 소홀한탓에 부득불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튿날에 당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마침 이튿날에 있게 되는 장춘국제자동차박람회의 취재를 밀어버릴수 없어 수술수속을 일주일 연기하고 자동차박람회가 개최되는 국제컨벤션쎈터로 달려갔다. 이런 유경봉을 두고 가족과 지인들은 또 “아Q기자”라는 별호까지 달아주었다. 그러나 유경봉은 개의치 않았다. 우직한 그는 본인이 의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피곤도 아픔도 잊고 열심히 일했다.

유경봉은 기사를 때로는 감칠맛나게 때로는 우아하게 쓰다가도 사회문제를 다룰 때에는 족집게처럼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집어내군 했다. 때로는 독자들을 크게 감화시킬수 있는 인기 기사를 써보려고 고민하는 대견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사이 유경봉은 《길림신문상》, 《전국소수민족신문상》 등을 수차례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신문에 나가는 자기의 이름 석자에 미안한 기사를 쓰지 말라는 선배기자들의 조언을 사업철칙으로 여기고 안깐힘을 쓰고있다.

유경봉은 신문사에서의 7년의 경험루적을 통해 신인기자시절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사회열점” 추적기자로 자기의 신분을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한것이 제일 기쁘다고 흥미진진하게 말한다.

조선족사회를 몸살나게 하는 그릇된 부조기풍에 관한 기사, 워이신을 통한 화룡선봉복리원 허위사실 배포사건 정정기사, 외국어교육과열현상 계렬보도 등 나름대로 묵직하다고 생각되는 기사들을 발판으로 더욱 큰 성장을 꿈 꾸고있다.

25년전, “산재지역”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목동소년” 유경봉은 현재 하고싶은것에 미치고 주어진 시간과 기회에 설레이며 기자를 “직”이 아닌 “업”으로 생각하면서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있다.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