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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2009년 12월 15일,잊지못할 그때그날

편집/기자: [ 김성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8 17:30:22 ] 클릭: [ ]

[제2편] (하)

홍옥-열정, 진실, 책임을 좌우명으로

1998년 10월, 연변일보사에서 길림신문사로 전근해온 홍옥은 새 고장, 새 일터, 새 사람에 적응해야 했다. 모든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신입사원 느낌이였다. 선후하여 사장판공실, 교정실, 편집국에서 일하다 2005년부터는 1선 기자로 뛰게 되였다.

10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홍옥은 열정, 진실, 책임 그리고 식견이 바로 기자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임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였다.

10년간 의료보건, 로인, 사회 등 분야의 취재를 책임진 홍옥은 독자들의 “가정의사”로 로인들의 벗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섰다.

특히 의료보건분야를 맡으면서 내약성페결핵환자를 만나야 하고 에이즈환자, 전염성이 강한 독감환자들을 두루 취재해야 할 때에도 번마다 주저없이 선뜻 나섰다.

배움에 게으름 없고 선배와 동료들한테서 허심하게 배우면서 보낸 지난 세월이였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뚫고나가는 그의 성미는 기자생활에서 려과없이 나타났다.

여러 경로를 통해 취재상대를 찾은 일, 상해에서 생면부지인 조선족부부가 전화를 걸어와 둘째생육허가를 받지 못해 안타까와하자 관련 부문에 알아보고 해결해준 일, 불쑥불쑥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로인들을 도와주고 자식들에게 배우자를 찾아주었으면 하는 부모들의 심정을 헤아려 많은 시간을 들이면서 도와나선 일… 특히 2009년 12월 15일, 신종플루 관련 취재때 현장에서 겪은 체험은 아직도 등골이 오싹해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2009년 4월, 메히꼬에서 처음으로 신종플루(H1N1)환자가 발생해서부터 신종플루는 전세계 214개 나라에 확산되였다. 그해 6월11일, 세계보건기구는 신종플루 경계등급을 5급으로부터 최고등급인 6급으로 상향조절하였다. 감염환자의 기침, 재채기로 인해 바이러스가 호흡기로 전파되면서 고열, 근육통, 두통, 오한 등 증상이 나타나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였다.

신종플루로 만 8500여명이 사망했다는 세계보건기구의 보고를 보아도 그 사태를 어렵잖게 짐작할수 있었다.

2010년 3월말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12만 7000여명이 신종플루에 걸렸으며 800여명이 숨졌다. 길림성은 신종플루 저발병 지역이지만 2009년 12월 6일까지 839명이 신종플루로 확정됐으며 6명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 당시 장춘시아동병원에서만 근 40명 어린이 신종플루환자를 접수했다.

당시 민간에는 신종플루환자가 언론에서 공개한 수자보다 더 많을수 있다는 등 각종 루머가 떠돌았고 적지 않은 시민들은 신종플루의 공포에 눌려 숨이 한줌만해있었다.

신종플루에 대한 정부의 대응능력을 보여주고 의사들의 의료수준, 헌신정신을 선전하여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2009년 12월 15일, 길림성위생청에서는 장춘시아동병원에서 신종플루에 대한 부분 매체들의 현장취재를 조직했다.

취재진에 든 홍옥은 다른 매체의 기자들과 함께 장춘시아동병원으로 달려갔다. 기자회견이 끝난후 신종플루 중증환자가 입원한 병실취재를 허용했다. 대부분 기자들 특히 녀기자들은 후과가 걱정됐던지 중증환자를 취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사진이 있어야만 이 기사의 진실성을 보여줄수 있다고 판단한 홍옥기자는 5, 6명 남성기자들과 함께 소독실에 들어가 위생복을 입었다.

위생복을 입고 기자들과 함께 여러 병실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데 한 의무일군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위생복을 잡아당겼다. 모자를 쓰지 않았던것이다. 기자들이 한꺼번에 소독실에 들어서는 바람에 다른 기자들을 거들어주느라고 모자를 쓰는걸 깜박 잊은거였다. 의무일군은 머리가 가장 먼저 또 쉽게 병균에 감염되는데 자기의 불찰로 이런 실수가 생겼다며 매우 불안해했다. 그러나 홍옥은 사진 찍고 취재하는데 열중하다보니 그의 말을 들은둥만둥 그냥 지나쳐버렸다.

취재를 마치고 신문사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머리가 로출됐던 일이 떠올랐다. (거의 6분간 로출되였으니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을가? 사진기마저 꼼꼼히 소독하라 하던데 정말 감염되였다면 어쩌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겁이 더럭 났다.

신문사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한겨울 추위도 마다하고 차거운 수도물에 머리를 감고 또 감았다. 손이 시리고 머리가 시려나서 감각이 없을 정도였지만 씻고 또 씻었다.

(열이 좀 나도 격리당하는 판인데… 제발 열이 나지 말아다오.

정말 걸리게 되면 격리당할 동료들한테는 더없이 죄송스러운 일이다.)

며칠동안 벙어리 랭가슴 앓듯 혼자 전전긍긍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두주일이 지나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안도의 숨이 나왔다.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홍옥은 앞으로 또 이 같은 취재가 있더라도 여전히 주저하지 않을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단 개인의 안전에 주의하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그리고 책임성 있게 일한 보람으로 그녀는 독자들의 인정을 받았고 독자, 취재대상들과 벗이 되기도 했다.

이리하여 독자들의 아낌없는 도움으로 전국조선족로인 생활실태조사를 할수 있었고 청도조선족학교 설립과 관련된 조사보고까지 올릴수 있게 되였다.

이 두 조사를 거쳐 홍옥이 주요 집필자로 된 계렬보도 “중국 부분지역 조선족로인 생활실태조사”, 통신 “청도조선족공립학교 설립고대한다”는 2012년 전국소수민족지역신문 우수신문상 평의에서 1등과 3등상을 받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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