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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남-압록강반에 남긴 발자국

편집/기자: [ 김성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8 17:26:06 ] 클릭: [ ]

[제2편] (하)

최창남-압록강반에 남긴 발자국

 
1985년에 장백조선족자치현삼림경영국 아이스크림공장에 로동자로 배치받은 최창남은 공장에서 밤대거리작업을 하면서도 짬짬의 시간을 타 부지런히 기업의 운영상황과 로동자들의 선진사적을 글로 써 여러 신문과 방송에 투고하였다. 그의 정성과 꾸준한 노력으로 현삼림경영국은 그 몇해간 여러차례 전 현 통신보도사업 최우수상을 수여받았으며 최창남도 장백조선족자치현당위 선전부와 현삼림경영국으로부터 “우수통신원”, “최우수통신원”, “장백우수신문상” 등 상을 수여받았다.

1997년 9월, 최창남은 진정 신문기자생애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되였다. 과외글쓰기열성자, 통신원으로부터 현텔레비죤방송국에 전근되여 조선어편집 겸 기자로 사업하게 된것이다.

갓 방송국에 전근되여왔을 때 최창남은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동료들과는 달리 고중밖에 졸업 못한 최창남은 학력부터 남보다 뒤떨어졌다. 하루빨리 일터에 적응하고 합격된 신문기자로 되기 위해 최창남은 신문습작에 관한 여러가지 도서와 리론문장을 참답게 탐독하는 한편 촬영기술을 부단히 익혀왔으며 대학교 통신학부 조선어학과에 진학해 지식을 꾸준히 쌓아갔다.

명절이나 휴식일이 따로 없이 경상적으로 기업소, 부대, 학교와 공장, 광산, 농촌마을에 심입해 신문가치가 있는 보도단서를 찾았고 비가 오나 눈이 와도 현의 중요한 회의나 조선족들의 행사가 있으면 제일시간대에 달려가 취재임무를 원만히 완성하군 했다.

2006년 5월, 최창남은 길림신문사로 전근되면서 백산지역을 책임지게 되였다. 신문사에 전근된후에도 최창남은 장백의 대외선전을 위해 부지런히 뛰였다. 교통이 불편하고 활동자금이 딸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백을 중심으로 백산지역의 여러 현, 시를 돌면서 투자유치대상과 새 농촌 건설, 조선족사회동태에 대해 알아보고 조선족군중들의 생산과 생활의 이모저모, 치부 정보와 경험을 제때에 정확하게 보도해 백산시 당위와 정부는 물론 장백조선족자치현 당위와 정부 및 사회의 충분한 긍정을 받았다.

근년래 최창남은 또 선후로 혁명의 성지 연안, 서안에 가 국가중보련(国家中报联) 신문출판강습쎈터에서 조직한 편집기자일터강습에 참가했고 초청으로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방송 개시 55주년경축대회, 흑룡강조선어방송국과 한국 KBS방송국에서 공동주최한 표준한국어강습에 참가했으며 조선 라선-금강산시범국제관광, 제3회 중국조선족고위층경제포럼, 제5회 중국백산국제관광문화축제, 성급지도자들의 기층조사연구 등 중대한 보도취재임무를 원만히 완수했다.

특히 특간 “장백의 메아리”를 창간하고 백산시 및 장백의 정치와 경제 건설, 민족단결진보, 사회의 각항 사업에서 이룩한 휘황한 성과를 대대적으로 대외에 알렸다. 그리고 2007년에는 또 《인민일보》인터넷 조문판에 “최창남전문란”을 설치해 대량의 사진과 기사로 조선족들의 치부정보, 본보기인물들에 대해 선전하고있다.

그의 노력으로 장백현의 신문발행량도 전에 비해 대폭 증가되였는데 2005년의 130부로부터 지난해에는 300여부로 늘었다. 신근한 로동은 풍만한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20여년간 장백의 방방곡곡에 그의 신근한 발자국이 찍혀있지 않은 곳이 없다. 아글타글 노력한 보람으로 1997년이래 3000여편에 달하는 통신보도기사가 선후로 인민넷 중국공산당뉴스와 중국민족잡지, 중국국제방송,중앙인민방송과 흑룡강조선어방송, 길림인민방송, 《길림일보》, 《길림신문》, 《흑룡강신문》, 《료녕신문》, 《동북과학기술신문》, 《연변일보》,《 로년세계》잡지, 연변인민방송국,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등 국가와 성급, 시급 보도매체에 발표되였다.

한 보통로동자로부터 현텔레비죤방송국 기자, 오늘의 길림신문사 기자로 되기까지는 자신의 꾸준한 노력은 물론 신문사 편집선생님들의 고무와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그는 자세를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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