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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옥-유아사범학교 정치교원에서 언론인으로

편집/기자: [ 김성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8 17:07:44 ] 클릭: [ ]

[제2편] (하)

심영옥-유아사범학교 정치교원에서 언론인으로

지금으로부터 25년전인 1990년, 심영옥은 동북사범대학 정치학부를 졸업하고 길림유아사범학교 정치교원으로 배치받게 되였다.

고중시절부터 그는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어떤 직업이 자기에게 가장 알맞을지 수없이 생각해왔지만 “교원”이란 두 글자만은 종래로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운명이랄가, 어쩌다 그는 사범대학에 입학하게 되였고 졸업후에는 교편을 잡아야만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교수안을 쓰고 강의에 몰두했다. 그러던중 3년이 되는 해인 1993년, 남편이 장춘으로 전근하게 되면서 그도 그닥은 내키지 않아했던 교원생활을 접게 되였다. 그해 국경절날, 남편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사짐 실을 트럭을 가지고 들이닥치는 바람에 총망히 이사짐을 챙겨가지고 장춘에 맡아놓은 코구멍만한 세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였다. 국경절휴일이 끝난후 그는 학교를 찾아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당장은 정식 전근수속을 할수 없는 상황에서 리직수속을 밟았다.

집에서 밥짓고 애를 돌보며 1년 넘게 “전직주부”생활을 해오던 어느날, 심영옥은 뜻밖에 길림신문사에서 사람을 모집한다는 기별을 듣게 되였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이 일을 여쭈어보았더니 남편은 한번 응해보라며 지지해나섰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그때까지 그는 장춘에 길림신문사가 있다는것도 몰랐고 신문에 대해서는 아예 “문외한”이였다. 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해서부터 줄곧 한족생활권에서 살아왔던만큼 조선문신문사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고 매일 우리 글을 쓰고 우리 말을 구사할수 있다는게 은근히 유혹으로 다가왔다. 자기가 배운 전공이 아니여서 주저되기도 했지만 한번 부딪쳐보고싶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찾아간 길림신문사는 상운거리(翔运街)에 있는 한 낡은 3층건물의 맨 웃층을 세 맡고 사무를 보고있었다(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 신문사는 본부를 연변에서 장춘에 옮긴지 몇년 밖에 안되였다).

어둑시그레한 복도, 거멓게 그을러있는 벽, 열어놓은 출입문으로 피여나오는 담배연기, 점심차비중인지 부엌칸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칼도마소리… 사무환경은 전연 그의 상상밖이였다고, 정말 눈이 감겼다고 심영옥은 후날 그날의 정경을 회억한다.

그때 인사를 책임졌던 고 권세환주임이 어딘가 휑뎅그렁한 느낌이 드는 응접실에서 그를 맞이했다. 자기소개후 신문사 취직의향을 밝혔더니 권세환주임은 신문사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고나서 신문사에 입사하더라도 우선은 교정실에서 교정부터 배워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어 그를 응접실옆에 딸린 사장실로 안내했다. 사장실은 창문 하나 없는 자그마한 방이였는데 사무용책상 하나가 댕그랗게 놓여있고 그뒤에 일인용침대가 놓여있었다. 사무실 겸 침실로 사용하고 있는것 같았다. 틀거지 없고 후덕해보이는 고 리금남사장이 해빛 한오리 흘러들어오지 않는 그 비좁은 공간에서 사무를 보고있었다. 권세환주임의 소개를 듣고나서 리사장은 면접과 함께 간단한 필기시험을 맡기였다. 시험절차가 끝난후 권세환주임은 그더러 집에 가서 소식을 기다리라고 했다.

소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마냥 소식을 기다릴것 없이 래일 한번 더 가보라며 남편이 등을 떠미는 바람에 심영옥은 이튿날 출근시간에 맞추어 다시 길림신문사를 찾아갔다. 권세환주임을 만나 무작정 일을 맡겨달라고, 안될것 같다고 하면 스스로 물러나겠노라고 “억지”를 부렸다. 그 “억지”가 통했는지 권세환주임은 몇몇 령도분들과 잠간 의논하는듯하더니 다음주부터 교정실에 출근하라고 했다.

“다음주부터가 아니라 래일부터 당장 출근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신문사를 나서는 그의 마음은 날듯이 기뻤다.

한달간의 견습기를 가지고 교정실에서 일하게 된 때는 1995년7월(9월 정식수속을 마침), 교정실에 출근은 했지만 신문교정에 까막눈이였던 심영옥은 소학교 1학년생이 식자관을 넘는 그런 자세와 태도로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그때 교정실 책임자는 김정애(별칭 김정함)였다. 그보다 2년 먼저 길림신문사에 들어온 그는 조선언어문학학부 졸업생으로 일솜씨 또한 잽쌌다.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가르치느라면 짜증도 나련만 언제 한번 싫은 내색 없이 그한테 한결같은 인내심을 보여주었다.

그가 금방 입사했을 때는 조판실외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조판실에서 기자, 편집들의 친필원고를 타자해내오면 원문과 대조하면서 틀린 철자, 띄여쓰기 등을 바로잡는것이 교정실의 몫이였다. 한사람이 원고지의 원문을 보고 다른 한 사람이 교정지의 원고를 읽으면서 틀린 부분을 고쳐놓는다. 그런데 기자, 편집들의 필체 또한 제마끔이여서 단어 하나, 문장 한구절을 가지고도 긴가민가 한참동안 싱갱이질할 때도 푸술했다고 한다. 이렇게 눈을 바꿔가며 초교, 2교, 검교 등 세번의 번거로운 절차를 마친후 나중에 총편집의 심열을 거쳐야 한개 면이 비로소 완성된다.

이 과정을 능란하게 받아물려면 띄여쓰기에서부터 단어규범, 어순, 철자, 토에 이르기까지 어문기초가 튼실해야 했다. 그런데 오래동안 조선어와 별로 접촉이 없었던 심영옥은 띄여쓰기에서부터 벽에 부딪혔다. 단어규범은 더 말할것도 없고 낯선 단어들도 너무 많았다. 심영옥은 모르는 문제나 의문되는 부분은 제때에 물어보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특히 모르거나 애매한 단어들은 부지런히 자전을 펼쳐보고 필기장에 일일이 적어두었다가는 퇴근후나 여가에 번져보면서 머리속에 익혀두었다. 지금도 그 필기장은 소중히 보관되여있다고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스스로도 달라지는게 알렸고 배우면서 일하는 하루하루가 너무 흥미롭고 즐거웠다.

심영옥은 이게 바로 내 적성에 맞는 일터라고 판단하게 되였다. 즐겁게 일하는 와중에도 고민은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세번씩이나 교정을 보았지만 오차가 생길 때였다. 그럴 때면 하루종일 기분이 잡쳤다. 특히 대문짝만한 제목이 틀리게 나갈 때면 더구나 그랬다. 그런 “고민”과 “시련”을 겪으며 더 꼼꼼해지고 더 세심해지며 더 참다와지는 슬기를 배웠고 그것이 이후 기자, 편집 생활에 무난히 적응할수 있는 기름진 밑거름으로 되였다.

2년간 교정실에서 일하다 1997년, 심영옥은 수요에 의해 판면설계(划版)를 배우게 되면서 총편집사무실로 자리를 옮기게 되였다.

당시 총편집사무실에는 박문희부총편집과 김영규주임(후날 상해외국어대학으로 전근)이 있었다. 사무실이라야 15평방메터도 될가말가한데 중간에 세 사람의 책상을 붙여놓고나니 더욱 비좁아보였다. 제법 교정일에 익숙해져 재미를 느끼고있을 때인데 판면설계를 배우라니 대뜸 수긍이 가는건 아니였지만 심영옥은 이를 자기에 대한 믿음으로 생각하고 흔연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판면설계는 전문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일에 익숙치 않다보니 한동안은 퇴근후에 집에서 “연장작업”을 하기가 일쑤였다.

총편집사무실에 있을 때 뭐니뭐니해도 제일 견디기 어려운것이 “담배연기”였다. 두분 모두 담배골초이다보니 아침 출근해서는 담배부터 붙여물었고 그렇게 하루종일 줄담배였다. 그때는 스팀설비가 낡아 겨울이면 사무실이 여간만 추운게 아니였지만 담배연기를 빼기 위해서는 한겨울에도 사무실문을 활짝 열어놓아야 했다. 문을 등지고 앉은 그의 등뒤로는 한기가 그대로 엄습해왔다.

하지만 신문사에 들어온지 몇년 안되는 햇내기인지라 찍소리 못하고 그 지독한 “담배연기세례”를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솔직히 그때는 간접흡연의 위해가 더 크다는것도 모르고있었다.

그런들 어떠랴. 그 무엇도 그분들에 대한 존경심에 비할수 없다고 심영옥은 마음을 비웠다. 평생 가도 화를 낼것 같지 않는, 항상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박문희부총편집, 훤칠한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말수가 적어 어딘가 답답해보이기까지 하는 김영규주임, 그분들한테서 그는 신문에 대한 열정과 집착, 신문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꼈다. 전날 늦은 술자리가 있었음에도 이튿날 출근해 보면 어느새 벌써 사무상앞에 마주앉아 담배연기를 피워올리며 원고를 다듬고 있는 모습, 거기서 그는 참다운 사업심과 프로다운 일본새를 배우게 되였다는게 심영옥의 진솔한 고백이다.

갓 입사해서 처음 참가한 어느 회식자리에서 롱담도 잘하는 박문희부총편집이 그를 겁 주느라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다.

“기자노릇하려면 술을 잘 마셔야 하오. 술을 마실줄 모르면 기자로 받지 않는다구…”

심영옥은 그 말이 진담이 아닌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후 수많은 “단련”을 거치면서 녀직원들속에서 술을 꽤나 잘 마시는축에 들기도 했다며 우스개 삼아 말하면서 시무룩이 웃었다.

“남한테 열번 물어보기보다 자기절로 사전 한번 찾아보는게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문자 다루는 일은 장담 못한다. 항상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던 선배님들의 조언과 가르침은 책임편집으로 있는 지금에는 어겨서는 안되는 “원칙”으로 되여버렸다.

올해로 입사 20년, 심영옥은 이 20년은 교정원에서 판면설계원, 판면설계원에서 기자, 기자에서 편집으로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가고 경험을 축적하며 신문사와 함께 성장해온 20년이라고 자부한다. 또한 자기 적성에 맞는 일터에서 최고는 아닐지라도 최선을 다하며 즐기면서 일할수 있어서 늘 행복했다고 말한다. 다시 20대로 돌아가 또 한번 선택의 기회가 차례질지라도 자기는 주저없이 길림신문사를 선택하리라는게 이 시각 심영옥의 배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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