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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애-문학이란 “한우물”만 파

편집/기자: [ 김성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8 16:59:07 ] 클릭: [ ]

[제2편] (하)

리영애-문학이란 “한우물”만 파

 
장장 28년 동안 문학편집으로 《연변문학》에 뿌리를 내리고있던 리영애는 2013년 8월에 장춘에 있는 길림신문사로 전근하였다.

그해 상반년에 길림신문사에서는 중국조선족문단의 문학창작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기성문인들의 문학창작성과를 긍정하며 문학신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통화청산(青山)그룹(리사장 리청산)의 후원으로 된 “두만강(图们江)문학상”을 설치하였다. 리영애는 신문사의 배치에 따라 “두만강”문학면의 담당편집을 맡게 되였다. 이미 안상근기자와 김태국기자가 “두만강”문학면을 12호까지 펴냈었다. 그런데 “두만강” 문학면(격주 한호씩)을 꾸리자니 좋은 원고가 별로 없고 작품이 거의 고갈된 상태여서 리영애는 골머리를 앓게 되였다. 조바심이 난 리영애는 출근만 하면 전화통에 매달려있다싶이 하였다. 중국조선족문단의 로, 중, 청 작가, 신인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원고를 청탁하였다.

고마운 작가들이 약속을 어기지 않고 하나둘 원고를 보내왔기에 드디여 “두만강”문학면을 제29호까지 마무리할수 있었다. 2014년 5월 29일 《길림신문》 제1회 “두만강문학상”시상식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시상식에서는 대상 1편(상금 10000원), 본상 3편(상금 각각 5000원), 청산우수상 2편(상금 각각 3000원)을 선정하여 표창하였다. 중국조선족문단에서는 《길림신문》에 순 문학잡지 못지 않은 작품들이 실리고 전국 로, 중, 청 작가들과 신인작가들을 운집하는 또 하나의 공간으로 탄생한것에 많은 찬사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2015년 6월 11일, 《길림신문》 제2회 “두만강문학상”시상식이 이어지면서 “두만강문학상”은 중국조선족문단에서 무게와 품위를 갖춘 대표적문학상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였다. 특히 소설가 최국철, 김혁, 김남현, 시인 김학송, 리순옥, 수필가 주향숙, 평론가 김관웅 등 중국조선족문단에서 이름있는 쟁쟁한 작가들이 “두만강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두만강”문학면이 뜨기 시작하였다. “두만강”문학면 제60호까지 펴내는 동안 100여명에 달하는 해내외 중국조선족작가, 문학애호가들의 작품이 발표되였다.

리영애는 매편의 문학작품을 어머니가 귀여운 자식을 다루듯이 온 정력을 쏟아 알뜰히 편집하였다. 이는 작가들을 감동시켰고 수많은 독자들의 긍정을 받았다. 수필가 오경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알뜰히 편집한 수필 ‘스카프’를 단숨에 읽었습니다. 정말 고마와요. ‘울긋불긋’ 이 단어를 보충한것이 정말 예술이예요. 탄복했구요… 그리고 산만하던 수필 ‘손풍구’를 어쩌면 이렇게 감칠맛나게 수정하였어요?! 정말 로편집다와요. 읽을수록 산뜻하네요…”

수필가 안수복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안녕하세요. 신문에 실린 저의 수필 ‘닭의 꿈’을 읽어보았습니다. 허물투성이이던 작품이 아주 세련되고 깔끔하게 잘 편집되였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 비발치는 축하전화와 메시지, 꽃묶음을 받고있습니다. 수고는 선생님이 하시고 축하는 제가 받았습니다.

앞으로 작품창작에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2015년 5월 23일, 중국조선족문학의 최고수준을 대표하는 “단군문학상”실행의식에 참가하고 장춘으로 돌아오던 도중 동행한 료녕신문사 최호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배, 정말 ‘두만강’문학면을 잘 꾸리고있소. 너무 보기 좋소. 연변의 ‘해란강문학상’, 료녕의 ‘압록강문학상’, 흑룡강의 ‘송화강문학상’, 장춘의 ‘두만강문학상’ 등이 든든한 뿌리로 되여 중국조선족문학의 최고수준을 대표하는 ‘단군문학상’이 전국으로 세계에로 향하는 브랜드문학상으로 빛나게 하기요.”

……

작가들의 만족과 즐거움 속에서, 지성인들의 긍정과 격려 속에서 리영애의 가슴은 뿌듯해났다.

2년도 안되는 짧디짧은 사이에 《길림신문》에서 리영애가 나래를 펼칠수 있은 비결은 《연변문학》잡지사로부터 정성껏 키워온 조선족작가들과의 친선의 뉴대가 있었기때문이다. 참으로 《연변문학》은 그날 그때까지 리영애의 편집생애와 함께 했던 “부적” 같은 존재였다. 《연변문학》에서 리영애는 문학의 도를 끊임없이 깨치며 중국조선족문단의 이름난 작가, 독자들과 뜻 깊은 인연을 맺었고 햇내기편집으로부터 수석편집, 부주필, 주필로, 산문가로 성장하였다…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리영애는 어찌 보면 처음에는 문학편집으로서는 합당하지 않았던것 같았다. 왜냐하면 편집은 수많은 작가와 독자의 중매군이고 작가의 “조산원”이기때문이다. 그러나 객관적환경은 “요술쟁이”처럼 리영애의 성격을 개변시키고 재능을 꽃피워주었다. 수십년 동안 소설, 산문, 시, 평론 등 맡기는대로 헤아리지 않고 편집하면서 어느새 리영애는 털털하고 당돌하며 수준 높은 문학편집으로 탈바꿈하였다.

리영애는 문학편집에 대한 느낌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눈앞에는 가끔 이름없는 초학자의 소설구상을 함께 짜주고 철자법도 맞지 않는 서투른 작품을 밤을 지새우며 깨알 박듯 까맣게 고쳐 끝내 볕을 보게 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선히 떠오른다. 어떤 작품을 독자들에게 선 보이느냐 하는 과정에 찬양과 원성을 들으며 편집한 작품이 이 세상에 ‘태여날’ 때의 그 희열, 아무런 반향이 없거나 혹은 혹평을 받을 때는 되려 그 작가에게 죄스러운 마음이였다. 그러다가도 세월이 흘러 그 작품이 다시 뭇독자들의 인정을 받을 때면 저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진다. 아마 이런 재미로 편집하는가보다.”

작가와 독자들과 함께 울고웃으며 보다 알차고 무게 있는 작품을 편집하기 위해 늘 동분서주하는 사이에 리영애는 수차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문학》의 선진사업자로 당선되였다. 그리고 리영애가 편집한 많은 문학작품들이 수차 주급, 성급 간행물편집상(1등, 2등, 3등)을 수상하였다.

몇년전의 어느 하루였다. 잡지는 래일 꼭 인쇄공장에 내려보내야 하는데 새로운 코너의 중점작품을 놓고 이름난 로작가와 분쟁이 생겼다. 매호마다 빠짐없이 련재하는 작품인데 한 부분이 현재 한창 학술적으로 의론이 분분하고 또 여느 작가와도 련관되기에 잡지에는 그대로 실을수 없었다. 헌데 작가로서는 그 부분을 꼭 실어야 하는 리유를 충분히 피력하면서 한발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고 리영애는 주필로서의 책임과 문단의 영향을 고려하여 그대로 발표할수 없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둘은 서로 언성이 높아졌는데 대방의 송수화기에서 갑자기 귀청을 째는듯한 어린애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가 먹통이 되였다. 깜짝 놀란 리영애는 송수화기를 다시 들고 수십번 련결했지만 대방과 전혀 련락이 되지 않았다.

순간 리영애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듯했다. 분명히 무슨 사고가 생긴것 같았다. 한창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있는데 고마운 로작가한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너무 흥분된탓에 언성이 높아져 옆에서 한창 놀고있던 어린애가 놀라서 울음보를 터뜨렸다

는것이다. 결국 옥신각신하던 끝에 작가의 동의를 거쳐 이튿날 무난히 잡지를 인쇄공장에 내려보낼수 있었다.

한편의 작품때문에 늘 얼굴을 붉히고 의논하던 이 로작가는 리영애가 《길림신문》에 전근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전 열시에 편집실에 찾아와 기어이 점심을 산다면서 한시간 반이나 기다렸다. 그날 로작가는 풍성한 점심상을 차려 《연변문학》의 편집들을 따뜻이 대접했다…

리영애는 《연변문학》에서 주필로 근무할 때 달마다 원고를 편집하는외에 27만자에 달하는 원고를 심열하였다. 개성이 강한 로,중, 청작가들과의 끈끈한 인연속에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들이 헤아릴수없이 많았다. 한편의 작품때문에 얼굴을 붉히다가 허물없는 친구가 되여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던 뜻 깊은 일 그리고 작가의 작품을 편집하면서 자기가 쓰려던 글감과 문구들을 써먹는 일은 비일비재였다…

리영애는 인간학으로서의 문학이 인간을 사상적, 예술적으로 다루게 되여있는 그 본체에 대해 편집하면서 익혀갔다. 그는 “알고보면 우주보다 더 거창한것이 인간세계이고 파고들수록 더 복잡다단한것이 인간관계이다. 인간심리만큼 변화무쌍하고 오묘한것이 없다. 그리고 천태만상의 자기 얼굴을 가져야 하는것이 문학의 예술이다. 문학편집은 복잡한 인간세상을 가늠할줄 아는 예리한 안목과 옳바른 판단능력이 있어야 하고 자기 스찔의 천부적인 예술적재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강산이 몇번 변하는 사이에 리영애의 손을 거쳐 발표된 많은 작품들이 문단의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리영애는 편집은 자기를 희생하는 사업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기에 늘 주말과 밤낮이 따로 없이 열심히 일하였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리영애를 비롯한 편집진들의 노력하에 《연변문학》은 제25회 동북3성조선문우수잡지상, 제2회 “모드모아”최우수도서정기간행물상, 제4회 “중국조선족출판문화대상―정품간행물상” 등 영예를 안아왔다.

타향에 있으면서도 리영애는 지금도 《연변문학》은 늘 자기의 마음속에 커다란 산으로 우뚝 솟아있고 자기의 문학편집생애에서 영원한 길라잡이로 되고있다고 말한다.

리영애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후반기는 글 한편 발표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리영애는 대학시절에 아동문학잡지 《시내물》에 처녀작 동화 “부러진 보습날의 운명”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중국조선족소년보》에 동요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게 되였다. 대학교시절 연변인민출판사 아동문학부에서 실습하였다. 그때 그의 꿈은 아동문학작가로 되는것이였다.

그런데 대학교를 졸업한후 리영애는 성인문학지인 《연변문학》잡지사에 배치받았다. 그후 편집하면서 전 십년동안은 선배선생님들의 독촉과 고무와 지지하에 닥치는대로 민간이야기도 수십편 수집, 정리하고 소설도 몇편 발표하면서 소설편집도 하였다. 또 잡지사의 실정에 따라 한시기는 시, 평론 편집도 맡아하였다. 후에 수필편집을 담당하면서 주로 수필창작에 주력하였다. 그러다가 편집에 완전히 몰입하면서 한동안 글쓰기도 뒤로 접어야 했다. 편집에서 보람을 느꼈지만 어쩐지 리영애는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하였다. 부지런히 편집하면서 저도 모르게 짬짬이 쓴 알찬 열매를 꽃바구니에 담아서 독자들에게 선물로 내놓고싶은 마음이 불 붙듯하였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세상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속심을 나누고싶었다. 마음에 닿는 진솔한 글, 사랑이 넘치는 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런 감동적인 수필을 쓰고싶었다.

이리하여 수필, 실화, 소설 등 부지런한 필경(笔耕)의 길에 수필 “자리”로 《길림신문》 “미인송”컵 수필상, 수필 “버려진 의자”로 제6회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수필부문 1등상, 수필 “버리는 지혜”로 중국조선족수필상을 수상했으며 수필 “살맛이 나는 세상으로”로 《장백산》잡지사 “장백산진흥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수필 “‘오로라’를 향한 풍경”과 수필 “차라리 더 이상 부끄러웁더라도” 등 작품은 한국 《에세이 21》 전문수필잡지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10년 3월, 리영애의 수필 수십편이 수록된 산문집 《‘오로라’를 향한 풍경》이 출간되였다. 그리고 이 산문집은 201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제7회 “진달래문학상” 창작상을 수상하였다.

리영애는 늘 가지가지 편집이야기들을 엮으면서 삶의 참된 보람을 느꼈다. 그만큼 리영애는 청춘과 젊음을 다 바쳐 문학편집이란 “한우물”만 파는 삶을 후회하지 않았다.

리영애는 “무정한 세월의 흐름속에서 남들이 ‘우러러보는’ 일을 해왔지만 정다운 작가들의 모든 기대에까지 아직 미치지 못하였다.”고 겸허히 말하면서 “더 깊이 있는 문화적사고로 오늘의 중국조선족사회를 주목하고 중국조선족의 삶을 정확히 리드하는 편집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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