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리창근-시골과 함께 울고웃으며 때를 묻혀온 “농민기자”

편집/기자: [ 김성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8 16:47:20 ] 클릭: [ ]

[제2편] (하)

리창근-시골과 함께 울고웃으며 때를 묻혀온 “농민기자”

 
리창근은 지난 30년 동안 매하구기자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농민들과 한집식구가 되여 그들과 함께 울고웃으며 고락을 같이해왔다.

그래서 30년간 농촌의변화와 농민생활을 보도하면서 농촌이라는 “한우물”만 파온 그를 두고 린근에서는 “농민기자”로 친절히 부른다. 또한 조선족농민들의 애로점을 제때에 반영하고 풀어주는 매하구기자소는 “제2의 민족사무위원회”로도 불리우고있다.

매하구시의 조선족들은 주로 벼농사를 하기에 리창근은 기자소의 주요 취재 내용과 대상을 조선족농민과 벼재배에 맞추었다. 매하구시에 통화시농업연구원이 있기에 매하구시의 벼재배기술과 농업정보는 다른 지역보다 발달하였다.

기자소 건립초기부터 리창근은 농촌문제를 중점으로 삼고 농업기술홍보에 앞장섰다. 조선족벼농사의 3조재배방법과 희식재배방법은 지난 세기 80년대와 90년대에 매하구기자소 리창근이 취재하고 쓴 기사를 통해 전 성에 보급되면서 벼수확고증산에 크게 이바지하게 되였다.

리창근은 농촌변화를 제때에 파악하고 무게 있는 농촌보도를 제때에 내놓았다. 지난 세기 90년대에는 대면적을 다루는 벼재배능수들을 대상으로 취재하였고 2000년후부터는 농업기계화와 농촌경영합작사에 대해 중점적으로 취재하였다. 2005년부터는 삭막해진 조선족농촌의 현실에 비추어 조선족촌을 단위로 계렬보도 “조선족촌으로 가다”를 펴내 조선족촌의 건립과 발전과정 및 위기를 보여주고 도전과 기회를 제시해주어 조선족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매하구시의 《길림신문》 발행량은 길림성 산재지역에서 앞장서고있다. 련속 10년간 해마다 발행량이 1000부에 달했고 홍수의 피해를 입은 1995년에도 발행량이 1300부까지 올라가 새로운 기록을 창조하였다. 여기에는 리창근의 구슬땀이 슴배여있다. 그는 신문사내에서 “발행달인”으로 인정받고있다.

리창근은 늘 조선족학교, 조선족촌, 조선족단체들을 자기의 집처럼 여기고 진정을 담아 취재하였고 조선족학교, 조선족촌, 조선족단체들도 리창근을 떨어질수 없는 자기들의 영원한 구성원으로 반기고있다. 따라서 《길림신문》도 포근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길림신문》을 항상 자기들의 신문으로 여기고 아끼면서 적극적으로 주문하였다.

리창근은 또 새로운 발행방도를 고안해내였다. 1995년 이전까지 실시해오던 농촌 위주의 발행을 가두, 학교와 조선족 단체, 기업에로 핸들을 돌리는 방법을 신문사내에서 제일 처음으로 제기한 뒤를 이어 조선족기업에서 신문주문으로 농촌을 지원하는 등 발행방법도 내놓았다.

1995년부터 리창근은 조선족기업인, 조선족촌간부, 학교책임자들이 참여한 《길림신문》 발행모임의 장을 여러번 만든적이 있다.

이는 후날 신문사 지도부의 충분한 긍정을 받았다.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