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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전-신문사를 눈동자처럼 아끼는 신참

편집/기자: [ 김성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8 16:45:35 ] 클릭: [ ]

[제2편] (하)

리전-신문사를 눈동자처럼 아끼는 신참

 
리전은 2014년에 공개시험을 거쳐 길림신문사에 입사했다. 그는 “길림신문사 가족의 일원으로 된것이 아주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다. 비록 십년, 몇십년씩 일터를 지켜온 선배님들에 비하면 토끼꼬리 같은 짧은 일년이란 시간이지만 나한테는 그렇듯 보귀하고 소중한 나날들이였다.”고 하면서 길림신문사라는 대가정속에서 많은것을 배워가면서 자신을 충실히 하리라 작심하였다.

기자사업은 그가 어려서부터 품어왔던 꿈이였다. 어릴 때부터 글짓기에 남다른 흥취를 갖고있었던 그는 전국백일장글짓기경연, 꼬마작가상현지글짓기경연 등 여러 글짓기경연에서 수차 금상, 은상, 동상을 따냈고 또 어릴 때부터 소년기자로, 중학생기자로 활약해왔다. 연변대학 조선-한국어학원을 지원한것도 남들보다 독특한 스찔의 기사를 척척 써낼수 있는 훌륭한 언론인이 되기 위한 사전작업이였다.

신문사에 입사해서 처음 석달간 그는 교정실에서 실습을 하게 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신문기사를 많이 읽고 문법기초를 든든하게 다지게 되였다.

실습이 끝난후 리전은 연변분사에서 기자사업에 종사하였다.

그는 남보다 더 많은 취재감을 찾기 위하여 로고를 모르고 뛰여다녔고 매편의 기사를 정성껏 써냈다. 그의 식을줄 모르는 열정과 재치있는 글수준은 선배기자님들의 아낌없는 절찬을 받았다. 매번 취재때마다 최선을 다하는 근면한 성품 또한 많은 사람들의 긍정을 받았다. 그한테 걸려오는 취재요청전화도 나날이 늘어갔다.

여유시간이면 선배기자들이 쓴 기사들을 열심히 열독했고 그속에서 글쓰기 기법과 엮음새를 터득하려고 애썼다. 매일 하루 점검을 견지해오면서 오늘 하루를 후회없이 살았는지를 확인했고 게으른 정신자세는 제때에 바로잡으려고 애를 썼다. 일요일 저녁이면 다음 주일에 어떠한 기념일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에 따르는 취재계획을 짜놓았다. 그는 매주 평균 여섯편, 일곱편의 기사를 써냈다.

“집일인데 게을리해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젊었을 때 많이 뛰고 많이 배워야죠.”

그는 기자의 사명감을 안고 신선하면서도 무게감 있고 독자들이 즐겨보는 기사를 쓰기 위해 두발로 부지런히 뛰여다녔고 그에게 조언을 해주시는 선배기자들의 말들은 메모지와 머리속에 새겨두면서 자신의 능력향상에 신들메를 조였다.

“한국에 환영받고있는 코미디언들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연변의 자랑인 코미디언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는 “떼떼가족”을 취재할 때의 인상을 떠올렸다.

2015년 음력설 전야에 그는 음력설문예야회 준비현장을 찾아가 연변연극계의 별인 “떼떼가족”을 취재했다. 조선족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있는 인기코미디언들을 만난다고 하니 무척이나 긴장되였다. 오전에 취재한 기사를 깔끔히 마무리하고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도 머리속은 온통 인터뷰할 물음으로 꽉 차있었다. 문예야회 준비에 땀동이를 쏟고있는 “떼떼가족”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고 바쁜 와중에도 살갑게 맞이해주는 그들이 고맙기만 하였다.

이날 그는 인자하고 성근한 리동훈씨, 맏언니다운 서글서글한 오선옥씨, 익살꾸러기 김광철씨와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식사시간까지 놓치면서 취재를 계속했다. 준비해왔던 취재외에도 많고많은 재미 있고 훈훈한 정이 오가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였다. 그는 리동훈씨가 생면부지인 김광철씨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순회공연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모든 정성을 진심으로 쏟아부었다는 세부를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뜨거운 난류가 목을 타고 오름을 느꼈다고 한다. “떼떼가족”의 주동적인 협조하에 취재를 원만히 끝냈고 취재가 끝난후에도 가끔씩 문안인사가 서로 오간단다.

《길림신문》은 대형기획시리즈로 유명하다. 2015년부터 대형기획시리즈인 “백성이야기”를 펴낸다는 방안이 새해 년초에 공개되자 그는 관련 요구를 열심히 읽어보고 주인공들을 찾기 위해 분망히 보냈다. “‘백성이야기’ 준비과정은 저한테 인물발굴의 능력을 키워주었고 좋은 단련의 기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취재대상들은 저한테 많은 놀라움과 깨달음을 선물했습니다.”라고 하며 백성을 취재할 때의 소감을 이야기해주었다.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도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그는 취재대상들앞에서 항상 자세를 낮추었다. 취재대상들의 특점과 장점을 발굴하기에 애썼고 섬세한 얼굴표정, 자그마한 사건들마저 빠뜨릴세라 열심히 메모했다. 취재대상의 립장에 빠져보기도 하고 방관자의 태도로 정확히 관찰도 하면서 최대한 글의 진실성과 생동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글이 다된후에는 여러번 수정을 진행하여 글을 매력적으로 가꾸기에 노력했다.

소주자수공예로 인생을 수놓아가는 허인봉의 사업에 대한 열애와 풍부한 지식, 열심히 자기 꿈을 향해 분투하는 박혜자의 드팀없는 견지와 자기 성과에 대한 겸손한 태도는 그가 글에서 가장 표현하고픈 주제이자 자신도 따라배우고싶은 장점이라고 했다.

그는 허인봉을 취재하기전에 소주자수공예에 대해 거의 공부하다싶이하였다. 취재전에 물어볼 내용을 미리 메모해놓고 또 관련된 지식을 장악하게 되면 참신한 물음들이 더 생각나게 된다는 선배기자의 말을 되새기면서 인터넷을 통해 소주자수공예에 관한 지식들을 열심히 수집하였다. 하여 허인봉씨와의 취재시 소주자수에 관한 많은 료해로 가깝게 대화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두터운 믿음속에서 취재는 활발하고 생동하게 진행되였다. 취재대상과의 시간을 맞추느라고 식사시간까지 건너뛰였지만 글이 완성된후에는 그 성취감으로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되였다고 한다.

박혜자의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그는 몇날, 며칠간의 수소문, 료해, 취재, 글쓰기 등 많은 노력을 진행하였다. 팔가자출신에 박혜자라는 정보를 알고 그는 팔가자진파출소, 화룡시공안국, 연길시공안국 등 여러곳에 수소문하여 그의 정확한 련계방식과 상세한 정보를 얻었다. 박혜자가 출연한 프로인 안휘TV에 직접 련계를 취하면 그의 련계방식을 쉽게 알아낼수 있으련만 그는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제가 이 방법을 쓰게 된 리유는 련계방식보다도 관련 정보의 확신을 위해서입니다. 절차의 번거로움보다 정확한 정보수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복잡한 절차더라도 제가 직접 관련 정보를 확인해야 진실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할수 있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기자라는 직업이 주는 희열은 발로 뛰는 취재과정에서 분명해집니다. 읽고 쓰고 달릴 때 저는 가장 건강해지고 행복해집니다.”

그는 그간 장춘, 연변 등 지역의 취재를 다녀오면서 진정 민족신문의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기자라는 사명감을 안고 당보인 《길림신문》과 동고동락하면서 매 하루를 새로운 마음으로 신들메를 조이고 보람 있게 열심히 뛰는 기자가 되련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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