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류향휘-첫 행차로 진땀을 빼던 풋눈길

편집/기자: [ 김성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8 16:40:43 ] 클릭: [ ]

[제2편] (하)

류향휘-첫 행차로 진땀을 빼던 풋눈길

 
1998년에 류향휘(刘向辉)는 목단강공군부대에서 제대해 고향인 연길시에 돌아왔다. 그 이듬해 7월에 그는 연길시무장부에 의해 연길시텔레비죤방송국에 배치받았다가 8월에 사업의 수요로 길림신문사에 전근해 15년 동안 줄곧 자동차핸들과 씨름하고있다.

그가 갓 전근해왔을 때 신문사는 마침 새 사무청사에 입주할 때였다. 이는 그의 사업의 새로운 기점이기도 했다. 금방 신문사에 전근해왔을 때 모든게 그처럼 신기했다. 또한 편집기자들과 함께 일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이다. 그것도 유일한 한족으로서 말이다. 이렇게 그는 대부분 조선족들로 무어진 신문사에서 명실상부한 “소수민족”으로 되였다. 그때 단위의 남성동료들가운데서 류향휘의 나이가 제일 어렸다. 그런 그를 동료들은 누구라없이 관심하고 돌봐주었다. 그때 그는 그들 가까이에서 조선족들의 열정과 관심을 한몸으로 실감했다. 제일 그를 들뜨게 했던 일은 신문사에 오자마자7층 남자숙소밖에 널려있는 몇벌의 축구복을 본것이다. 가만있는 성격이 아닌 그는 평소에도 뽈차기를 즐겼다. 조선족들의 축구실력은 누구나 알아준다. 신문사에도 꼭 뽈차기를 즐기는 동료들이 적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몹시 기뻤다.

그의 기억속에 깊이 새겨져있는 한가지 사연이 있다. 맨처음으로 리원철부총편집과 리철주기자를 동행해 매하구에 취재를 갔을 때이다. 그번은 그가 신문사에 온후 처음으로 차를 몰고 외지에 갈 때라 도로상황도 익숙치 못했다. 다행스러운것은 리원철부총편집과 리철주기자가 길을 알기에 그들은 아주 순조롭게 목적지에 다달을수 있었다. 그런데 취재 이틀째되던 날 단위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신문사에 더 긴급한 취재임무가 있어 차를 써야 하니 속히 돌아오라는것이였다. 이쪽의 취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상의끝에 리원철부총편집은 류향휘더러 먼저 장춘에 돌아가라고, 자기들은 남아서 계속 취재를 할것이라고 했다. 한번 내려오기가 쉽지 않은만큼 꼭 참답고도 세심하게 취재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그들의 일자세에서 언론인들의 일하는 자세와 작풍을 보아냈다.

매하구기자소 리창근소장은 류향휘가 길을 잘 모를가봐 우심정에서 좌회전하라고 특별히 귀띔해주었다. 길을 다그쳐야 하는 까닭에 류향휘는 미처 귀담아듣지도 못한채 차를 쏜살같이 몰았다. 그런데 몰다보니 어딘가 이상한감이 들었다. 금방 매하구를 벗어나올 때는 장춘쪽에서 오는 “길A”번호판을 단 차나 매하구 당지의 차를 볼수 있었으나 후에는 “길B”번호판을 단 차들이 눈앞에 점점 많이 나타났다. 아차, 잘못 들어섰구나. 이는 길림방향으로 가는 길이였다.

후회막급이였다. 리소장한테 자세하게 물어볼걸. 그때는 GPS(导航仪) 같은것도 없었다. 거기에 길림성내 여러갈래 도로들은 모두 고속도도로 확장건설중이라 많은 길들에는 도로표시제시판이 없었다. 길을 물으려 해도 반나절이 지나도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내 한 마을에 이르러 할아버지 한분을 보고 물었다.

“할아버지, 장춘으로 가려는데 길을 잘 몰라서요.”

할아버지는 아주 유머러스한분이였다. 그는 고의로 말을 길게 뽑았다.

“장춘이라, 음, 들어는 봤지만 어떻게 가는지는 나도 모르지. 하지만 앞으로 계속 가면 연통산이네. 뒤로 가면 매하구방향일세. 그러잖으면 연통산에 가서 다시 알아보게나.”

그는 할아버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올렸다. 매하구, 장춘, 길림 세곳은 마침 3각형인데 당시 그는 자기가 있는 곳이 어딘지조차 파악을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 먼저 연통산에 가서 다시 보기로 하자.또 얼마간 달리자 과연 눈앞에 자그마한 시가지가 나타났다. 마침 앞에 교통경찰이 보였다. 이젠 살았구나 생각하며 그는 다그쳐 차를 그쪽으로 몰았다.

류향휘가 교통경찰에게 자기의 처경을 얘기하자 그는 아주 열정적으로 길을 알려주었다. 그는 곧게 가면 쌍양(双阳)이라면서 쌍양에 가서 다시 물어보라는것이였다. 하지만 외지사람이였던 류향휘는 여전히 알둥말둥하였다. 쌍양뻐스정거장 부근에 가서 길 가는 한 남성길손에게 길을 물어보았더니 그는 아주 열정적으로 대하면서 “내가 길을 아네. 마침 나도 장춘에 가려는데 차에 앉아 길을 알려주지.” 하며 말하는것이였다.

“그런데 나외에도 친구 둘이 같이 가야 하는데 될수 있을가요?”

그 길손이 조건부를 들이대였다. 류향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 세 사람더러 차에 오르라고 했다. 그런데 어쩐지 조금 불안해나기 시작했다. 그 세 사람은 모두 흰 모자를 쓰고있었고 키꼴은 크지 않으나 아주 검실검실해보였는데 어쩐지 나쁜 사람들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그들을 차에서 내리라고는 할수 없었다.

복일지 화일지 그로서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얼굴을 보니 그들은 회족 같았다. 갑자기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남성길손이 “여기에 차를 세워주게나. 우리는 이미 도착했네.” 하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런데 류향휘는 그곳이 어딘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당신들은 올 곳에 왔는데 그럼 보양거리(普阳街)는 어떻게 가야 합니까?”

류향휘가 이렇게 물으니 그 길손은 “자네 고맙네. 그런데 보양거리는 나도 잘 모르겠네. 앞은 동대교(东大桥)일세.”라고 대답하는것이였다. 류향휘는 그럼 기차역은 어디로 어떻게 가느냐고 또 물었다. 그는 앞으로 곧게 내려가면 기차역이라고 알려주었다.

생소한 이 거리를 류향휘는 가면서 묻고 물으면서 가기를 반복했다. 장춘번호판을 단 차를 몰면서 길을 몰라 허둥대는 그 자신이 저으기 망신스러웠다.

갑자기 기차역의 큰 시계가 류향휘의 시야에 안겨들었다. 드디여 집을 찾을수 있게 된것이다. 그때는 장춘에 온지 얼마 안되였는지라 그는 기차역, 길림일보사 그리고 단위 부근의 몇곳 밖에는 더 몰랐다.

단위 령도들은 그가 일찍 출발했는데 늦도록 도착하지 않으니 의외의 사고라도 생기지 않았는가고 불길한 생각부터 했단다.

류향휘가 사장을 만나 돌아올 때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사장은 “안전하게 돌아왔으니 됐다.”며 오히려 그를 위안했다.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