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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축구기사 팡팡 쏟아내는 열혈축구팬

편집/기자: [ 김성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8 16:28:58 ] 클릭: [ ]

[제2편] (하)

김영화-축구기사 팡팡 쏟아내는 열혈축구팬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를 졸업한 김영화는 2010년 8월에 공개채용 1기로 길림신문사 연변분사에 입사했다.

타사 언론매체들을 두루 보아도 스포츠기자중에 녀기자가 있는것은 물론 다른 분야 녀기자라고 해도 스포츠지식이 해박하고 체육보도에 능한 녀기자들이 많다. 하지만 김영화는 스포츠에 관심조차 없었고 한마디로 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녀기자였다. 하지만 연변축구가 승승장구하면서 김영화기자는 스포츠에 부쩍 관심을 보이며 새로운 시도를 꿈 꾸었다. 스포츠와 담 쌓고 지내던 그가 스포츠매력에 빠지게 된데는 연변축구의 공이 크다.

연변축구팀이 3부리그에 떨어졌다가 기적적으로 갑급리그에 올라가 한창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있었던 2015년 3월, 김영화는 친구들과 연변팀 첫 홈장경기를 구경하러 간적이 있었다. 연변팀 경기구경도 좋지만 그보다도 201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을 맞으며 새로 건설한 연길체육장이나 구경해볼 타산에서였다.

경기장에 미리 가면 어떤 분야라도 좋으니 꼭 현장 메모와 스케치를 해오라던 취재부 주임의 당부도 김영화는 축구를 잘 알지 못한다는 리유만으로 간과해버렸다. 평소 축구에 대한 료해가 전무하다싶이 하니 김영화는 이날 경기에서 다만 잘생기고 뽈 잘 차는 연변팀의 하태균선수를 기억한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였다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튿날, 포치대로 축구 구경을 갔던 신문사 선배기자들은 하나, 둘 축구 관련 기사들을 작성해 발표했다. 그런데 김영화의 축구원고만 텅텅 공백이였다. 부끄럽고 인정하기 싫었지만 어디서부터 무얼써야 할지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막막했던것이다. 기사작성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아야 한다는 신문사 선배기자들의 “강요”에 못이겨 뭐라도 써내야 했다. 다시 기억을 더듬을수 밖에…그 와중에도 김영화는 좋았던 기억보다는 불쾌했던 장면들이 먼저 눈앞에 떠올랐다. 그는 경기 당날 같은 구역에 앉아 구경하던 관객이 경기장으로 생수병을 날려보낸 매너스럽지 못했던 소행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뒤좌석에서 해바라기씨를 마구 버리던 일, 심판원이 일부러 시간을 끈다며 모욕적인 욕설을 란발하던 일, 경기가 결속된후 뻐스를 짓부실것만 같았던 눈꼴 시린 광경들… 생각하다보니 하나, 둘 머리속에 떠올랐다. 이제 생각난 장면들을 글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

축구에 관해서는 피워본적도 없는 글재주에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았던 건의 같지 않은 “건의”들을 적다보니 남들 웃음거리가 될가봐 적었다 지우고 다시 적기를 반복해야 했다. 지면신문 판면을 짜야 된다는 “독촉”에 못이겨 김영화는 “경기장 매너 없는짓”을 둘러싸고 겨우겨우 글 한편을 완성하여 신문에 발표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인터넷에 실린 글을 보고 네티즌들은 “맞아요. 매너 없는짓 그만해야 된다.”며 의외로 공감이라는 반응을 보여줬다. 그렇게 김영화는 첫 축구 관련 취재에 힘 입어 용기를 내여 경기장에 갈적마다 두번째, 세번째 축구 관련 기사들을 뽑아낼수 있었다.

원정경기때면 현장분위기를 느낄수 없었기에 그는 부득불 다른 각도로 취재시도를 해야만 했다. 그러던 2015년 6월초, 김영화는 축구팬인 한 지인의 워이신을 보고 그의 사연을 짤막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쓰게 되였다. 그 글이 바로 연변축구를 향한 84세 로축구팬의 다함없는 사랑과 애정을 다룬 “연변팀 덕분에 ‘효녀’됐어요”라는 짤막한 축구팬이야기였다.

그 기사가 발표된 일주일후 김영화가 쓴 그 기사를 보고 연변장백산축구구락부에서 기사의 주인공 조원국로인을 찾아 위문하고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김영화는 감독과 선수 그리고 부분 구락부 사업일군들을 이끌고 로축구팬의 집을 방문했다. 로축구팬을 방문하는 과정도 뿌듯했지만 김영화의 감격은 남달랐다. 별생각없이 내리적었던 자신의 기사가 연변축구를 떠나 전반 조선족사회를 사랑과 감동으로 물들이며 이슈가 될줄은 생각지도 못했기때문이다.

그때로부터 김영화는 신심이 생겨났다. 자신과 거리가 한없이 멀고 무관하다고만 생각했던 축구 관련 취재는 결코 어려운 선택이 아니란걸 그는 새삼 느끼게 되였던것이다. 그리고 알아갈수록 매력있는 연변축구에 빠져버린 김영화는 좀더 용기를 내기로 했다.

누구나 심중에 담아두고 숭상하는 “스타”가 한명쯤은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 “스타”를 한번쯤 만나보기를 꿈 꾸기도 한다. 연변축구에 빠져든 김영화에게도 언제가부터 그런 마음속 “별”이 생겨났다. 바로 그즈음 연변축구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있던 연변팀의 한국적선수 하태균이였다. 연변에 임대이적으로 온지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인기는 하루아침에 하늘을 찌를듯 치솟고있었고 김영화처럼 축구의 “축”자도 모르던 아마츄어축구팬들마저도 하태균선수가 연변팀의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있었다.

그러던중 하태균선수를 단독으로 인터뷰할수 있는 기회가 행운스럽게 김영화에게 차례졌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반가운 취재임무였다. 하지만 보다 신중하고 사전에 준비할것도 많은게 인물인터뷰여서 하태균선수 단독인터뷰는 그로 말하면 막중한 시련이기도 했다. 신문사 여러 선배기자들의 도움으로 김영화는 인터뷰기획방안부터 사전 인터뷰질문까지 두주일간에 걸쳐 꼼꼼히 작성했다.

(선수에게 자칫 루가 되는 질문은 없을가? 사생활에 영향 주는 질문은 아닐가? 기자로서가 아닌 스타와 팬의 사적질문이 되지는 않을가?…)

그렇게 사전에 작성한 질문은 총 25개, 한국인과의 매끄러운 대화를 이어가고저 평소 자기로서는 표달하기 어색했던 한국어를 김영화는 몇번이나 련습했는지 모른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취재인지라 무사히 인터뷰를 마쳤고 원고작성도 별 어려움 없이 끝마치게 되였다. 그리하여 하태균선수가 중국에 온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되는 단독인터뷰내용이 《길림신문》을 통해 실리게 되였고 김영화는 기자이자 팬으로서의 임무수행을 원만히 마칠수 있게 되였다.

그후로도 김영화는 그 당시 한창 뜨겁게 달아오른 연변축구팀과 축구팬들과 관련된 흥미롭고 가치 있는 기사들을 많이 취재하고 집필하여 팡팡 쏟아내는것으로 보람찬 기자생활을 차곡차곡 채워가고있다.

연변축구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축구의 “축”자도 모르던 김영화는 부지런히 두발로 뛰고 머리로 사색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열어가게 되였다. 그리고 기자직업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든 일이라도 마음만 먹고 열심히 노력하기만 한다면 어떠한 취재라도 본때 있게 해낼 신심과 용기를 얻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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