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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뉴미디어시대를 선도하면서

편집/기자: [ 김성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8 15:38:49 ] 클릭: [ ]

[제2편] (하)

김파-뉴미디어시대를 선도하면서

 
2015년은 김파가 길림신문사에 입사한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2004년에 대학을 졸업한 김파는 2005년말에 길림신문사에 입사하여 신문사의 유일한 리공과생으로 기자생활의 길에 들어섰다. 그때 가 바로 《인터넷 길림신문》이 “부활”하기 시작할 때였다.

《인터넷 길림신문》을 꾸리기 위해 신문사에서는 새롭게 연길에 “인터넷부”를 내왔고 김파는 이 부문에서 신문사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리공과생출신으로 기술적인것을 떠나서 글쓰기에 재주가 없는 그로서는 기자(편집)생애의 시작이 쉽지는 않았다.

김파는 시사번역부터 시작하면서 사진촬영, 취재까지 차츰차츰 배우면서 해나갔다. 그러면서 웹디자인도 배웠고 자체로 홈페지를 개판, 설계, 제작할수 있게 되였으며 기자로서, 인터넷신문 기술편집으로서도 손색 없는 신문사 일원으로 성장했다.

한해는 연변축구팀의 중국축구갑급리그홈장경기의 현장 문자 보도기자가 필요했지만 딱히 할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 임무는 김파가 맡게 되였다. 스포츠보도를 그것도 현장 실시간보도를 한번도 해본적 없는 그는 스포츠용어나 묘사방법 등을 한편으로 배우면서 1년간의 보도임무를 그나마 순조롭게 끝냈다.

당시 인터넷신문은 원고비나 편역비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김파는 축구현장보도, 북경올림픽 실시간 편역보도, 동북아박람회현장보도 등 보도에 직접 참여했으며 김성걸, 김태국, 김청수, 김파 등으로 구성된 인터넷 편집부는 인터넷신문의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편 뉴미디어시대를 맞으면서 2010년 《인터넷 길림신문》은 중국길림넷 조선문판으로 탈바꿈했고 그후 길림신문사는 지면과 인터넷의 온오통합을 실현했다.

그때 중국은 스마트폰의 점차적인 보급과 함께 이동인터넷시대로 나아가고있었다. 따라서 인터넷으로 교류하고 소식정보를 찾아 보던 사람들은 점차 더욱 간편한 스마트폰을 리용하기 시작했다.

워이신은 사용료 저가의 가장 많은 스마트폰 쇼셜네트워크써비스(SNS)프로그람이다. 이 기회를 본 중국어매체들에서는 잇달아 워이신공중플래트홈을 리용한 뉴스정보써비스 제공의 새로운 플래트홈을 선 보이기 시작했다.

길림신문사에도 워이신뉴스써비스플래트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김파는 신문사 지도부에 《길림신문》워이신공중플래트홈 운영에 관한 제안을 올렸다.

신문사 지도부의 동의를 거쳐 《길림신문》워이신공중플래트홈이2013년 4월 2일부터 시운영에 들어갔다. 그 당시 조선문으로 운영되고있는 워이신공중플래트홈은 없었다. 《길림신문》워이신공중플래트홈도 처음에는 한문제목에 조선문내용으로 발표했다. 제목까지 전부 조선문으로 정식 운영하기 시작한것은 2013년 6월 4일부터였다. 이는 최초 조선문워이신공중플래트홈들중의 하나였고 중국조선족 4대 신문사에서 처음으로 운영된 워이신공중플래트홈 뉴스써비스였다.

현재 운영된지 2년이 넘는 《길림신문》워이신공중플래트홈은 만여명의 고정독자를 보유하고있다. 그동안 김파는 워이신공중플래트홈 운영에 관해 많이 모색하고 탐구하면서 꾸준히 이어나갔다. 어떻게 하면 더욱 많은 독자들을 끌가? 어떤 뉴스가 젊은 독자층에서 영향력이 클가? 어떤 생활정보나 오락취미내용에 관심을 많이 가질가? 비록 혼자서 고민할 때가 많았지만 신문사의 기타 동료분들한테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로써 길림신문사 2014년 사업총화대회에서 김파는 2014년 길림신문사 “워이신공정혁신상”을 받는 영예까지 지니게 된다. 그러면서 별명이 하나 생겼는데 동갑내기동료들은 김파를 때때로 “워이신총편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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