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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국-조선족 삶의 발자취를 따라 수륙만리

편집/기자: [ 김성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28 15:25:48 ] 클릭: [ ]

[제2편] (하)

김태국-조선족 삶의 발자취를 따라 수륙만리

 
겉보기에도 정의감과 열정이 철철 흘러넘치는 김태국기자가 길림신문사에 들어와 일하게 된것은 2006년 5월이였다.

그때 마침 《인터넷 길림신문》에 올리는 기사를 편집하는 인선을 물색하던중이였는데 “연변 25시” 담당편집으로 일하는 고 박금룡씨가 조양천1중에서 조선어문교원으로 일하고있던 김태국씨를 인터넷신문을 주관하는 김성걸씨에게 소개했다. 16년간 조선어문교원으로 일해온 김태국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신문 관련 업무를 익히기에 힘썼고 한달만에는 독자적인 취재활동을 할수 있게 되였다.

교원으로부터 기자로 사업터를 바꾸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김태국의 시야는 훨씬 넓어졌고 민족에 대한 사명감과 의무감은 더없이 향상되였다. 2007년, 한국정부에서 무연고동포방문취업제를 내와 처음으로 방문취업을 위한 시험을 치를 때 방문취업으로 한국에 가는 방문취업자들을 따라 한국에 가서 그들의 생활을 국내에 있는 독자들에게 알리려는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 그는 방문취업제시험을 치렀고 그들과 함께 한국행을 하게 되였다.

한국에 간 그는 서울, 천안, 평택, 수원, 통영, 고성, 부산, 거제도, 의정부, 일산 등지에 족적을 남기며 방문취업자들을 찾아 취재하였으며 퇴임한 로무현대통령과 정치인 문재인, 안희정 등을 찾아 조선족지위향상을 위한 훌륭한 정책들을 부탁하기도 했다. 당시 그가 다음 사이트에 개설한 블로그는 하루 방문량이 만명을 돌파하는 등 호황을 누렸고 그가 쓴 방문취업자 관련 기사 50여편은 《인터넷 길림신문》과 《길림신문》 지면을 통해 중국의 광범위한 독자들과 만나게 되였다.

취재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한국 통영 안성공단에 위치한 조선소에서 용접일을 하면서 방문취업자들을 취재하는 과정에 그는 커다란 고민에 빠지게 되였다. 중국조선족은 왜 한국에 와서 차별대우를 받으면서 일해야 하는가? 남들보다 더 많은 일, 더 힘든 일을 하고도 왜 한국인들보다 적게 받아야 하고 하등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이런것들이 그가 뼈저리게 풀고싶은 숙제였다.

“한국사람들이 중국조선족을 제대로 료해하지 못하고있구나!”

이렇게 생각한 김태국은 960만평방킬로메터의 광활한 대지에서 자유, 평등의 지위를 얻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중국조선족을 한국사람들에게 알려주는것이 재한조선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매우 유조할것이라는 생각을 정리하게 되였다.

당시 용접사로 일하면서 월로임이 258만원이였던 그는 그대로 한국에 남을것인가 아니면 중국에 돌아갈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수 없었다.

돈도 중요하지만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수십만명 재한조선족들은 그냥 피해를 입게 된다는 현실이 마음에 걸렸다.

한국에서 열달간 체류했지만 취재를 다니다보니 돈도 얼마 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귀국을 결단하고 2008년 11월에 연길에 돌아왔다. 다시 《인터넷 길림신문》의 편집기자로 복귀한 그는 연변분사와 《인터넷 길림신문》 책임자들에게 중국조선족의 형상을 재조명할데 관한 건의를 제기하는 한편 “조선족의 새 터전 새 삶 찾아”라는대형프로젝트를 구상하였다.

그는 자신의 순방일지 후기에서 “2009년 9월 23일에 출발하여 11월 11일에 연길에 도착하였으니 50여일이란 시간을 타향에서 보냈다. 이번 순방취재를 통해 그냥 좋은 신문기사를 써보고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중국이란 대국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중국조선족의 참모습을 보여주려는것이 초심이였다.”고 자기의 심경을 밝혔다. 홀로 중국의 남북을 횡단하면서 12개 성, 시를 순방한 그는 조선족 기업인, 상인, 로동자, 군인, 과학자와 학생 백여명을 취재하여 50여편의 인물통신을 써냈으며 사학적가치가 있는 9편의 순방일지를 남겼다.

그해 기자절에 《인터넷 길림신문》에는 길림신문사 칼럼리스트인 오기활선생의 글 “기자정신 만세!”가 실렸다. 조선족언론가운데서 가장 활약적인 신문이지만 웬간해서는 자기 신문사의 기자를 칭찬하는 글을 내보내지 않는 《길림신문》이 관례를 깨고 김태국기자의 기자정신을 높이 평가해주었다.

그 글에서 오기활선생은 “김태국의 독자적인 당찬 발상과 강렬한 취재욕, 이들의 평생기자정신은 하루아침에 얻은것이 아니다. 엄격한 자기 관리, 사회에 대한 책임, 출중한 자신감, 벼슬을 싫어하는 생리, 거기에 평생분투가 이런 기자정신과 이네들을 탄생시킨다.”고밝혔다.

연변대학 력사학부 리홍석교수는 김태국기자가 쓴 한국시리즈와 중국시리즈를 모두 읽은후 “기자란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가를 확실히 알게 되였다. 한 사람의 노력으로 중국조선족의 위상을 세상에 널리 알렸을뿐더러 《길림신문》의 형상을 높여주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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