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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기획4]봉림촌《오동나무숲》만들어《봉황》부른다

편집/기자: [ 안상근 김성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1-13 09:41:30 ] 클릭: [ ]

두만강은 말한다- 대형계렬보도 4

-왕청현 배초구진 봉림촌 특색촌건설로 승부수 띄운다

오곡풍산마을이라고 불리우는 봉림촌

왕청현 배초구진 동북방향에는 도연명의 시구에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시골마을이 있다. 유유히 흐르는 가야하를 건너 푸른숲 우거지고 만화방초 피여있는 곳에 동화속 그림인듯 자연속에 파묻힌 마을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봉림촌이다.

전하는데 따르면 근 200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는 봉림촌은 수림으로 우거진 분지에 자리잡고있어 지척에 있는 배초구진보다 지온이 2도가량 더 높다. 기후가 따뜻하고 습윤해 농사도 잘될뿐만아니라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청정자연림이 너무 아름다워 머나먼 남방의 봉황도 불러온다는 의미에서 봉림촌으로 불리우게 되였다고 한다.

아름다운 마을이름에 걸맞게 봉림촌은 새농촌건설의 동풍을 타고 날이 갈수록 살기좋고 아름다운 마을로 변모되여가고있다. 특히 2013년부터 특색촌마을전략을 실시하면서 민속정원건설대상을 힘있게 추진하여 아름다운 특색향촌으로 탈바꿈해가고있다. 마을이 아름다워지고 점차 널리 알려지면서 봉림촌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모되고있으며 왕청현 나아가 연변조선족자치주 새농촌건설에서의 매력적인 향촌마을로 거듭나고있다.

동북지구의 11월은 이미 쌀쌀한 초겨울날씨다.

11월 13일, 봉림촌으로 가는 길은 며칠전에 연변지역에 내린 첫눈으로 산과 들이 하얗게 소복단장했다. 봉림촌의 당지부서기인 오기철씨가 배초구진에서 기자일행을 맞이해 함께 봉림촌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몇해전에 배초구진과 봉림촌사이의 가야하를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였던 봉림허궁다리가 량식을 싣고가던 촌민의 차량무게를 이겨내지 못한채 그만 파손되고말았다. 그로인해 촌민들이 식량운수와 나들이 등 교통에 큰 불편을 겪고있었다. 이날도 배초구진소재지에 일보러 왔다가 도보로 마을로 돌아가는 촌민을 오기철씨가 중도에서 차를 세워 태워주었다. 그러면서 오기철씨는 요즘 봉림촌에 새로운 다리가 건설되고있어 촌민들이 흐뭇해하고있다고 말했다.

명년 7월에 개통예정인 봉림교 건설현장

가야하강반에 이르니 연변주교통국과 왕청현에서 1100여만의 거금을 투자해 시공하고있는 신축 봉림교건설현장이 보였다. 이 다리는 명년 7월전에 개통될 예정이다. 봉림촌은 가야하를 건너 배초구진과 이어지지 못하면 오갈데 없는 외딴 섬같은 마을이다. 때문에 봉림촌으로 놓고말하면 다리는 촌민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하긴 다리가 없으면 사람들이 오고갈수도 없을뿐만아니라 특히 봉림촌에서 생산된 농산물들이 밖으로 나올수 없게 되니 말이다.

오기철씨는 봉림촌 촌민들의 오랜 숙망인 다리가 건설되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봉림촌에 봉황이 깃들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오기철씨가 이렇게 말하는데는 그만큼 그의 별다른 리유가 있었다.

봉림촌이 특색촌마을건설전략으로 야심차게 준비하고있는 민속원건설대상 역시 다리가 완공되는 명년 6월께면 완공되여 촌민들이 봉림교통차와 민속원대상의 두가지 경사를 함께 맞이하게 되기때문이다.

봉림촌에 들어서니 깨끗하게 단장된 벽돌기와집들이 눈에 들어오고 시원히 쭉쭉 뻗어있는 촌마을 아스팔트길이 작은 시가지를 방불케했다.

오기철씨가 상급 지도일군들에게 봉림촌건설정황을 소개하고있다

오기철씨의 안내로 먼저 마을에 있는 문화정원대상들부터 구경했다. 농촌에서는 보기 힘든 널직한 레저휴식광장이 촌중심에 마련되여 있어 촌민들이 여가시간이면 광장에서 흥겹게 춤노래를 즐기고있었다. 신체단련에 필요한 건신기재들도 구전히 갖추어져있고 가로등도 가설되여 마을은 하냥 생기와 활력으로 차넘친다고 했다.

광장주변에는 촌도서실과 문화활동실이 세워져있었는데 각종 도서들과 악기, 인터넷이 구전히 갖추어져있어 촌민들이 무료로 농촌문화생활의 혜택을 향수할수 있다고 한다.

현재 봉림촌에는 173세대의 농민들이 살고있는데 그중 조선족이 95세대를 차지해 촌인구의 55.3%를 차지하고있다. 

봉림촌 역시 원래부터 살기좋은 마을이였던것은 아니였다. 2009년도에 락후하고 가난한 봉림촌에 부임해온후 오기철은 농촌산업발전과 농민들의 생산생활환경개선을 위해 많은 실제적인 일들을 했으며 농촌경제발전에 보급가치가 있는 경험과 방법들을 적극 더듬어냈다. 실례로 검정귀버섯재배로 당지 농민들의 수입을 크게 제고시켰으며 농민들을 과학적인 규모화농업에로 이끌어 수입을 늘이게 했다.

오기철씨가 촌당지부서기로 부임해와서부터 락후하던 마을은 차츰 변화를 보이더니 불과 몇년이 지나지 않아 발빠른 발전을 보였으며 지금은 전 왕청현에서도 으뜸가는 살기좋은 마을로 변모했다.

살기좋은 아름다운 마을로 탈태환골된 봉림촌전경

물론 봉림촌이 이렇게 된데는 촌당지부서기인 오기철의 피타는 노력도 있었겠지만 오기철씨는 상급 해당부문과 많은 지도자들이 봉림촌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힘써준 덕분이라고 당과 정부의 관심과 지지에 감사를 표했다.

봉림촌에서는 2011년부터 선후로 5.3킬로메터에 달하는 세멘트 포장도로를 닦았으며 900평방메터에 달하는 목이버섯발효실과 85평방메터에 달하는 위생소, 120평방메터에 달하는 문화실과 도서실, 촌민위원회 사무실도 지었다. 지금까지 이미 30여세대의 낡은 집을 개조했으며 28세대의 초가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었다.

“무슨 일이나 처음에는 어렵지만 하나하나 신심을 가지고 해나간다면 방법과 해법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오기철씨가 이렇게 말하는데는 원인이 있었다. 지난 2013년도에 봉림촌의 촌당지부서기로 부임되여왔을 때까지만해도 봉림촌은 비가 오면 밖에 나돌아다니기 어려울만큼 진창길이였고 낡은 초가집들이 널려있던 락후한 촌이였다.

봉림촌에서 건설하고있는 문화정원대상

농업발전대상건설에서 오기철씨는 봉림촌처럼 편벽한 곳에 위치한 농촌마을일수록 주동적으로 마을발전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둘씩 신심을 가지고 일해나가다보면 정부의 중시를 받게 되고 정부의 해당 정책과 농촌발전에 관계되는 정책적, 자금적지원을 받을수 있게 된다는것이다.

말그대로 오기철씨는 그가 한 말을 자기의 실제행동으로 실천에 옮긴 마을의 훌륭한 “코기러기”이다.

1000여만원을 투자해 가야하 홍수방지언제를 건설했고 500여만원을 투자해 5000메터에 달하는 농용물곬을 뺐다. 그리고 1100여만원을 투자한 봉림가야하대교가 지금 건설중에 있으며 145만원을 투자해 건설하는 봉림촌문화정원대상건설도 마무리단계에 있다. 마을 북쪽에서 한창 건설중에 있는 민족특색이 짙은 7채의 농가가 바로 민속문화정원대상이다.

“지금은 국가에서도 특색농촌건설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주고있습니다. 이러한 관심과 지지가 바로 우리가 봉림촌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나가고 싶은 욕심을 가지게 하지요.”오기철씨는 특색농촌건설이 바로 날이 갈수록 황페화되고있는 현실의 농촌발전에서 틀어쥐고 추진해야 할 아주 중요하고 의미있는 과업이라고 말했다.

항상 춤노래로 흥성한 봉림촌

봉림촌의 민속문화정원은 잊혀져가고있는 조선족농촌민속문화와 전통을 세인들에게 펼쳐보이고 사람들에게 농촌관광과 체험의 장소를 제공하기 위한데 취지를 두고 건설되고있다고 오기철씨가 소개했다.

민속문화정원에는 30년대로부터 40년대 50년대, 7,80년대에 이르기까지 조선족농촌풍토인정을 보여줄수있는 전시물들과 소품들이 전시될것이며 외지인들이 농촌문화체험을 할수 있는 체험장소도 마련될것이다.

누구든 중국조선족향촌문화를 체험해보고싶고 전원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봉림촌에 와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농촌생활의 즐거움을 누리도록 설계되여있다고 오기철씨는 소개했다.

퇴마루가 달린 조선족전통농가의 민속적인 분위기에 젖어들어 도시의 소음과는 멀리 떨어진 아늑한 봉림촌에서의 청정자연을 이웃한 전원생활은 생각만해도 아름다운 행복이 깃들것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기철씨에 따르면 봉림촌에서는 마을을 찾는 손님들에게 볼거리, 놀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민속정원에 공연무대도 마련하고 마을주변의 야산에 봄이면 진달래 곱게 피는 아름다운 진달래동산도 만들 구상을 하고있다. 사철 아름다운 꽃과 산새가 지저귀는 주변 수림속에 등산로도 만들 계획이다.

봉림촌도서실에서 문화생활을 만끽하고있는 촌민들

아직 완전한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오기철씨는 생각이 닿는데까지 그리고 부단히 우수한 다른 향촌의 경험과 방법들을 도입하여 봉림촌을 진정으로 왕청현에서 으뜸가는 조선족민족풍속전원마을로 탈바꿈시키겠다는 타산이였다. 연변에서는 몰라도 왕청현에서는 조선족하면 제일 처음으로 봉림촌을 떠올릴수 있을 정도로 봉림촌을 조선족민속특색마을로 건설해갈것이라고 오기철서기는 장담했다. 그러면서 오기철서기는 아늑한 민속정원에서 도시와 농촌의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생활하고 보다 나은 생활의 꽃을 수놓는 아름다운 정경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봉림촌의 동구밖 수양버드나무아래에는 오래된 연자방아가 놓여져있어 사람들의눈길을 확 끌었다. 오기철씨가 지난해 9월에 촌민들과 함께 오랜 세월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연자방아를 파낸것이였다. 이 연자방아는 지금도 그 후손이 남아있는 마을의 원 지주였던 왕씨네 울안에 있었던것이라고 하는데 근 200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다고 한다. 마을의 력사와 운명을 함께 해온 연자방아가 다시금 세상에 빛을 보였으니 촌민들마다 연자방아를 단지 마을력사의 견증물로만이 아닌 마을발전의 징표와 상징으로 삼고 싶어해서 이렇게 전시했다고 오기철씨는 소개했다.

근 200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다고 전해지는 봉림촌의 연자방아

“민속특색촌발전에서 농민들을 절대 외면할수 없습니다. 우리가 민속정원을 꾸리는것도 농민들로 하여금 더 잘 살고 우리 농촌을 더 흥성하게 가꾸어가기 위한데 있지요.”

오기철씨는 이렇게 말하면서“산업이 있어야 농민들도 더 잘살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명년에 봉림촌의 민속정원공사가 마무리되고 사용에 교부되면 많은 도시사람들이 봉림촌을 찾게 될것입니다. <오동나무>를 심고 가꾸었으니 <봉황>을 불러오는셈이지요...”

“오동나무숲”에봉황”이 깃드는 일은 이제 시간문제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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