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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념비(41)—고점자 전오가자전투(중편)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중앙인민방송 ] 발표시간: [ 2013-02-14 22:41:59 ] 클릭: [ ]

1948년 2월 16일 새벽, 눈길을 헤치며 공격목표로 달리던 독립6사 17퇀도 화피창진 전오가자부근에서 뜻하지 않게 적의 습격을 받았다.

17퇀 전사들이 어둠속을 달리고있을 때 갑자기 이곳저곳에서 조명탄이 하늘높이 치솟아 터졌다. 삽시에 주변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드넓은 벌판에는 흰눈만 쌓였고 그속을 달리던 전사들은 몸을 피할수 없이 모두 적에게 로출되였다. 전오가자(前五家子) 마을주변 유리한 곳에 미리 매복한 국민당군 545퇀은 포격과 기관총사격을 퍼부었다.

독립 6사 17퇀의 일원으로 처절했던 고점자-전오가자 전투에 참가했던 정관채로인, 그는 당시의 전투상황을 아직도 자상히 기억하고있었다.

독립 6사 17퇀 2영 6련 3패 9반 정관채(郑琯采79세 연길).

《오가자에 도착했는데 마을이 이렇게 생겼습니다. 거기 부락이 아래 있고… 그런데 아~갑자기 총소리가 막 나는데 그 소리가 막 벼락치는것처럼 들렸소. 그리고 군마가 놀라 마구 뛰고 그랬소. 이때 또 조명탄이 떠서 50메터 높이에서 터지니깐 땅에 개미새끼 기여가는게랑 다 보일 정도로 환했소. 어떻게 환한지… 조명탄이 대여섯개씩 국민당이 갈기는데 어쩌지 못하겠소. 특히 말들이 놀라 네굽을 안고 막 뛰는데 말 몰던 사람도 말고삐를 쥐고 말에 막 끌려다녔소. 우리는 땅에 바싹 엎드려있지만 말에서 무기를 내려야 사격할수 있는데… 포나 중기가 모두 말에 실려있어 그걸 벗겨야 싸우겠는데… 란통이 되였소.》

아무런 은페물도 찾지 못한 아군전사들은 급작스러운 습격을 받아 시작부터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적정판단과 아군의 원계획에 따르면 고점자에 나온 적 한개 퇀을 소멸하기 위해 17퇀은 정면공격을 가하고 앞서 출발한 16퇀은 적의 퇴로를 차단하기로 되여있었다. 하지만 화피창을 중심으로 한 고점자와 전오가자 부근에는 국민당군 182사 주력이 미리 포진하고있었던것이다.

17퇀 2영 6련 위생반장이였던 리종호 로인은 당시 습격받던 상황과 부상자들을 구하던 일을 회억하였다.

17퇀 2영 6련의 위생반장 리종호.

《당시 신호탄이 뜨자 우리는 저쪽언덕에서 적을 공격했습니다. 놈의 기관총사격이 어찌나 심한지 우리 위생대는 부상병들 곁에 접근할수 없었습니다… 후방에 구급소를 만들고 부상병을 받았는데 부상병이 처음 들어오면 탄알 화약냄새에 피냄새, 옷과 살이 탄 냄새가 확 풍겨옵니다. 그런걸 응급할건 응급하고 안되는건 담가로 날라가구, 못 나갈건 지금 생각하면 네 사람이 못 나왔습니다.》

전투시작부터 대량의 희생자와 부상자가 나타났기때문에 각 부대 위생대원들은 적탄을 무릅쓰고 부상자들을 구원했다. 그들은 상처를 동여맨후 부상자들을 후방으로 업어내왔다. 퇀지휘부위생대의 리순임은 비발치는 탄우를 무릅쓰고 70여명의 부상자들을 전선구급소에 업어내왔다.

1946년 4월에 길림성 왕청현 배초구에서 입대한 리순임은 17세 어린 나이였지만 전사들과 고락을 같이 하면서 자기의 직책에 충직하였다. 그는 병자들을 잘 돌보았을뿐만 아니라 늘 부상자들의 빨래를 해주었고 자기의 수당금을 내여 잎담배를 사서 담배인에 시달리는 전사들에게 주군 하였다. 전사들의 귀여운 녀동생으로, 미더운 누나로 불리운 리순임은 1949년 11월에 열린 영웅모범대회에서 1급 인민영웅칭호를 수여받기도 했다.

전사들을 구하기 위해 단호히 헌혈하는 리순임간호사.

눈 덮인 동북대지, 피를 말리는 혈전이 진행되고있었다. 려명전의 암흑으로 주변은 캄캄하였고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불줄기가 길게 뻗어나오고 대지는 무시로 터지는 수류탄굉음에 부르르 떨고있었다.

급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지휘체계를 잃지 않은 17퇀 각 부대 장병들은 마을어구 벼낟가리와 탈곡장, 담벽, 초가집 등 은페물을 찾아 몸을 숨기고 반격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17퇀 선봉에 선 2영은 전오가자마을을 공격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3영은 좌측으로 철길을 따라 고점자방향으로 공격하기로 하였다. 앞장선 2영의 각 련은 비발치는 적탄을 무릅쓰고 마을로 공격해 들어갔다.

왕청에서 만년을 보내고있는 17퇀 2영 5련의 반장 마학범로인은 당시 전투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2영 5련의 반장 마학범.

마학범 전투소조가 적의 기관총진지를 탈환하였던 자리.

《그날 련장은 나를 척후장 하라 명령했습니다. 우리패가 척후패 그다음 5련 그다음 전 퇀이 뒤에 따르게 되였습니다. 어두워 떠나서 목적지는 고점자인데 거리는 백여리가량 될겁니다. 백여리를 걸어갔습니다. 길북 5퇀이 철퇴하였는데 지금처럼 전화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때는 말을 타고 소식을 전하는것도 괜찮은 편이였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두다리로 뛰여가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래 우리는 길북 5퇀이 철수했다는 통지를 받지 못하고 가는데 전오가자와 화피창언덕까지 왔을 때 놈들이 중기를 쏘면서 길을 봉쇄하고있었습니다. 그래 공중에는 조명탄을 터지고 그랬습니다. 나는 척후장임무를 맡고 어찌하나 마을에 들어가 발을 붙이는것이였습니다.

5련 선봉을 맡은 마학범반장은 신속히 적정을 판단하고 과단한 조치를 취했다. 그는 적의 기관총사격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집중 봉쇄하고있음을 판단하고 길량쪽으로 공격할것을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그는 적의 조명탄이 터졌다가 사라지고 다음 조명탄이 미처 터지지 못한 잠깐의 기회를 빌어 전사들을 거느리고 신속히 마을로 돌진했다. 다시 조명탄이 밝아지자 마학범과 대원들앞에는 적 기관총진지가 나타났다. 적 기관총 사수와 조수 그리고 탄약 공급자가 중기관총주변에 있었고 그뒤에 조명탄을 쏘는 적 두놈이 있었다. 느닷없이 코앞에 나타난 아군전사들을 보자 놈들은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이틈을 타서 마학범은 총탁으로 신속히 적중기관총수와 그 조수를 쓰러뜨렸고 기타 전사들도 날렵하게 달려들어 남은 적을 생포했다.

(마학범)《마침 조명퇀이 사라질 때 돌격하였습니다. 나는 길오른쪽으로 달렸는데 거리가 200메터 됐습니다. 나도 어떻게 갔는지 모릅니다. 가니 중기관총 거기에 셋이 있는데 둘이 조명탄을 쏘고있었습니다. 나는 그놈들을 재껴놓고 적의 기관총을 돌려놓는데 우리 련장이 왔습니다. 들어와서 〈잘했수. …마반장 큰 공 세웠소.〉 하고 칭찬하더니 계속 전진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그래 우리는 또 왼쪽으로 향해 가는데 조낟가리에 국민당군 다섯이 엎드려있었습니다. 나는 그놈들 뒤로 우회해서 다가가 놈들을 향해 〈총을 들엇!〉 하니깐 투항했습니다. 그래서 한개조를 파견해 포로들을 련부에 보내고 우리는 계속 마을로 들어가는데 적이 또 있었습니다. 한개조가 포로수송을 갔으니 남은 사람은 아홉이였습니다.》

마학범반장은 김인한련장의 명령에 따라 다시 남은 9명 전사들을 거느리고 마을어구 절당쪽으로 공격했다. 하지만 적의 화력은 더욱 강해졌다.

(마학범) 《적들은 밖을 내다볼수 있었지만 우리는 집안에 숨어 사격하는 적을 볼수 없었습니다. 총소리는 계속 자지러지게 울렸습니다. 적들도 우리의 행동을 간파하고 중기관총으로 집중사격을 했던것입니다. 우리는 한발작 떼면 한사람이 쓰러지고 그랬는데 조금 지나니 여섯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상병원들도 구하지 못하고 다 희생될것 같았습니다. 〈안 되겠다. 너네 셋이 부상병을 옮기라!〉하고 명령하고 나두 일어서서 달렸는데 몇발자국 못 가서 다리에 적탄을 맞았습니다. 그냥 몽둥이로 다리를 치는것 같았습니다. 나는 쓰러져 못 일어났습니다.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반장이 총탄을 맞고 쓰러지자 전사들은 일제히 달려와 그를 후방으로 보내려 했다. 하지만 마학범반장은 이를 마다하고 계속 공격하라고 전사들에게 명령하고는 비술나무뒤에 숨어서 최후를 준비하고있었다.

(마학범) 《전사들이 달려와 나를 후송하자 했습니다. 그걸 〈안된다〉하고. 나는 집뒤의 비술나무 네댄가 서있었는데 거기 불어서 〈너네 구하지 못할 때 결사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수류탄을 놓고 준비하고있는데 불이 번쩍하더니 〈땅~〉 소리가 났습니다. 집에 국민당이 있었던것입니다. 나도 거기에 대고 총을 쏘고 저쪽 비술나무로 옮겼습니다. 그렇게 한창 싸우는데 최동무가 찾아와 나를 불렀습니다. 그래 거기서 호송되여 대대에 왔습니다. 그때 우리 련이 120명 전투원인데 나머지가 얼마 안되였습니다. 대대 위생원이 나의 성처를 보더니 골절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정신을 잃고 힘이 없었습니다. ……》

날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더욱 많은 국민당군이 치렬한 접전을 치르고있는 전오가자마을을 포위하고있었다.

피동적인 국면을 돌려세우려면 마을어구 절당에 설치한 적 지휘부를 제거해야 했다. 마을흙담에 붙어 적의 동정을 면밀히 살피던 5련 김인한련장은 드디여 마을어구 절당자리가 적의 대대지휘부임을 발견하였다. 그는 즉각 지도원이 거느린 돌격조와 부련장이 거느린 돌격조를 보내 절당을 점령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적의 기관총사격에 희생되고말았다. 두눈에 노기가 가득 찬 김인한련장은 직접 몇명 전사를 거느리고 적 지휘부로 돌진했다. 첫번째 담을 넘고 전진하던 그는 두번째 흙담을 넘다가 그만 적탄을 맞고 희생되였다.

김인한련장마저 희생되자 손일남(孙日男)이 돌격조를 거느리고 계속 싸웠다. 그는 담을 넘어들어가 총창으로 적 세놈을 찔러넘기고 기관단총을 빼앗았다. 그는 다리에 총탄을 맞은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적 네놈을 생포하고 드디여 절당을 점령하였다.

한편 전투가 시작되자 6련의 정관채는 한창범과 같이 마을에 진입해 총창으로 적 여러놈을 찔러눕히며 싸웠다.

(정관채) 《국민당병과 처음 맞다드니깐 팍 찔렀지요. 찌르는데 턱 보니 국민당 병사 하나가 뒤에서 오는데 나를 찌르려 했소. 그래 턱 피했지 뭐. 그러니까 그놈이 제사람을 푹 찌르더란 말이요. 눈우에서 발이 미끄러워 몸을 제대로 운전 못한것 같았소. 그래서 제사람을 찌르니깐 저도 끔쩍 놀라는걸 그대로 탁 쳤지 뭐. 낯판대기를 총박죽으로 탁 치니 눈알이 푹 빠져나왔소. 그러면서 싸우는데 정신이 없었소… 한절반 싸우는데 탁 몽둥이로 치는것 같았소. 손을 턱 넣어보니 손이 펄럭 들어갔는데, 총알이 빠져나간데로 손이 퍽 들어가는것이였소. 그날도 탄띠를 이렇게 둘렀는데 그것만 없었더면 난 그날 죽었소. 이렇게 띠였는데 총알이 두 배짐을 끼고 한배짐을 꿰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소. 그래 다리에 총탄을 맞았는데 주먹이 풀럭 들어가더란 말이요. 》

정관채와 한창범은 수차 죽을 고비를 넘기며 기타 전사들과 마을절당부근에 모이게 되였다. 거기에는 손일남을 비롯한 5련의 수십명 전사들이 있었다.

5련과 6련 전사들이 모여 절당의 적을 물리쳤지만 도리여 적지원군에게 포위되고말았다. 전사들은 6련 홍성룡지도원의 명령에 따라 화력을 집중해 공격해오는 적을 수차 물리쳤다.

(정관채) 《우리 이쪽에서 불벼락을 뿜어댔지, 거기서 갸(적)들이 많이 죽었소. 삼렬로 들어오던게. 하도 많이 들어오니 우리는 중도에서 헤체져 쏘는데… 야~ 죽겠소. 이걸 죽이면 저게 접어들고 저거 죽이면 또 저놈이 접어들고…국민당들이 그냥 형편없이 많았소. 그냥 와글와글해.》

아무리 용감하게 싸워도 적은 소멸할수록 많아지는듯싶었다. 살아남은 전사들은 모두 절간에 모였다. 정관채가 총에 맞은 다리를 끌고 절간에 와보니 전투영웅 신수산을 비롯해 40여명 부상자가 절당에 있었고 일부 적포로도 있었다.

적은 계속 공격해왔고 60미리포까지 동원해 사격했다. 상황은 아주 위급하였다. 몸을 일으킬수 없게 된 신수산은 수류탄 3개를 남겨주고 빨리 떠나라고 재촉했다.

홍성룡지도원은 할수 없이 수류탄 세개를 신수산을 비롯한 6명 중상자에게 남겨주었다. 남은 40여명 부상자들은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중상자들과 작별하고 비장한 각오로 새로운 돌진을 준비하였다.

정관채, 권국선, 김중천, 김승인, 김지연, 손일남, 홍성룡 등 20여명 장병들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돌진했다.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아군 전사들의 불타는 눈빛과 마주친 놈들은 더럭 겁을 먹고 주춤거렸다. 이 기회를 기다리던 전사들은 일제히 수류탄을 던지고 사격을 하면서 포위를 뚫고나왔다. 수류탄 터지는 연막을 빌어 절당밖으로 탈출한 그들은 마을을 빠져나와 구사일생으로 철뚝쪽으로 나갔다.

절당에 남은 신수산을 비롯한 중상자들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전우들을 바랜 다음 적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일제히 《공산당만세!》를 부르며 수류탄을 터쳐 장렬히 희생되였다.

(흐느끼면서 정관채) 《우리가 산중턱에 올라오는데 기병을 만났소. 소리를 치니 기병들이 와보는데 기가 막혔소. 서로 끌어안고 우는데 우리도 울고 가들도 울고… 정말 천명으로 살아나오는데. 그래 마차를 타고 차로하로 들어갔소. 차로하로 가니 저녁이 되였소. 거기서 한집에 들었는데 우리 방에서 희생자가 셋이 나왔소. 16퇀의 최학규라고, 키가 크고 잘 생겼소. 밤새 어떻게 돌아눕고 돌아눕구 보채더니. 〈나도 죽겠는데 그러지 마.〉라고 소리도 쳤소. 이튿날 죽이랑 먹어라 흔드니 이미 죽었소. 밤새 죽느라니 몸부림치고 그랬던거였소…》

/중앙인민방송국 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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