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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답사15]대를 이어 홍군을 따르는 가족

편집/기자: [ 길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8-23 10:41:54 ] 클릭: [ ]

백절불굴의 사나이

―4갈래 홍군장정의 코스를 답사한 리완빈의 이야기

○ 김인덕

안해가 온 다음 리완빈은 하숙집을 얻기도 쉬워졌다. 부부가 함께 다니니 마을사람들도 리완빈에게 쉽게 접근하면서 서로 자기 집에서 주숙하라고 리완빈부부를 끌기도 하였다. 또 떠날 때면 다음 목적지에 가서 누구네 집에 주숙하라고 소개해주면서 전화를 걸어주었다. 당지 사람들은 문화는 없었지만 마음씨가 소박하고 매우 후더웠다. 리완빈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서 대부분 당지 사람들이 당년에 홍군 25군을 이끈 지도자가 리선념이라고 잘못 알고있다는것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홍군 25군의 군장은 정자화(程子华)이고 정위는 오환선이라는것을 알려주고 또 홍군의 장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어느 하루, 리완빈은 경운기를 몰고 닭을 팔러 다니는 농민을 만나 짐을 다음 목적지까지 실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농민은 리완빈의 청탁을 쾌히 받아주었다. 오후 2시 무렵, 리완빈이 공로에서 안해와 걷고있는데 아침에 짐을 맡겼던 농민이 경운기를 몰고 리완빈부부앞에 나타났다.

그 농민은 경운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늘 비낀 얼굴로 리완빈에게 말했다.

《제가 두분한테 죄를 지었습니다. 장마당에서 장을 보느라 선생님의 짐 한짝을 잃어버렸습니다.》

농민이 잃어버린 짐짝에는 갈아입을 옷 몇견지가 들어있었다. 리완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리 중요한 물건도 아닙니다.》

《제가 잃어버린 옷만큼 사드리겠습니다. 어서 경운기에 앉으시오.》

《안됩니다. 우린 도보로 장정로선을 답사하기에 한걸음도 차에 앉을수 없습니다.》

《그럼 제가 다음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근심하지 말고 팔던 닭이나 파시오.》

리완빈부부는 그 농민의 두팔을 붙들어 농민을 억지로 경운기의 운전석에 앉혔다.

오후 4시 무렵, 리완빈이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 농민은 리완빈이 하숙을 정한 주인집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그의 손에는 새로 산 옷 몇견지가 있었다.

《옷이 몸에 맞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장정을 무사하게 마치기를 바랍니다.》

그 농민은 리완빈부부가 사양할가봐 말을 마치자마자 경운기를 몰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1월 3일, 리완빈부부는 유가하(庾家河)에 도착하였다. 리완빈부부는 당지에서 유명한 인물인 양청산네 집에 하숙을 정했다. 양청산네 가족은 세세대대로 홍군과 인연이 깊은 가족으로 현재 양청산의 저택은 산서성의 중점문물로 지정되였다.

홍군이 유가하를 지날 당시만 해도 유가하는 몇십호밖에 안되는 작은 향진에 불과했다. 유가하는 예로부터 남북통상의 길목이였다. 매번 장이 열리는 날이면 방원 몇십리의 마을사람들이 유가하에 몰려와 성세를 이루었다. 하여 유가하의 사람들은 모두 점포를 꾸려 생계를 유지하고있었다.

홍군 제25군은 유가하에서 국민당군과 큰 전투를 치렀다. 그 전투에서 부군장 서해동은 적군의 탄알에 맞은후 피를 많이 흘리고 의식을 잃었다. 탄알은 서해동의 왼족 볼을 맞힌후 오른쪽 귀를 관통하여 나왔다. 전투에서 영용무쌍한 서해동은 언제나 전사들의 앞장에 서서 적들을 무찔렀다. 서해동은 무수한 전투를 겪는 가운데서 두다리, 팔, 어깨, 가슴 등 17곳에 크고작은 부상을 입었다.

홍군 25군은 20일간 유가하에서 500킬로메터를 이동하면서 여러차례의 전투를 치렀다. 유가하전투를 거쳐 홍군 25군은 적들의 기염을 꺾고 섬서성남부에서 새로운 국면을 전개하는데 유리한 군사적, 정치적 토대를 닦았다.

홍군 25군이 유가하에 진입할 당시, 양청산의 할아버지 양청영(杨靑荣)은 유가하에서 약방을 경영하고있었다. 양청영은 홍군이 《얼굴에 피를 바르고 붉은색 머리를 가진 괴물》이란 소문을 듣고 부근의 산에 피신하였다. 그날 저녁, 양청영은 깊은 산속에서 홍군에게 잡히게 되였다. 홍군은 머리에 모자를 쓰고 솜옷을 입은 양청영을 보자마자 《대토호》라 여기고 정위 오헌선한테 압송하여왔다. 오헌선은 이웃들에게서 양청영이 약방의 학도로부터 의학지식을 배워 약방을 꾸린 경력과 이웃들을 잘 돕는 선량한 사람이라는것을 료해하게 되였다. 오헌선은 친히 양청영의 포승줄을 풀어주면서 홍군의 잘못을 사과했다. 양청영은 홍군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홍군에게 감사의 정을 담아 곡식을 내주었다. 또 양청영은 홍군부상병을 엄호하고 약을 지어 서해동 등 홍군들의 부상병을 치료해주었을만아니라 자기 집을 홍군의 회의장소로 빌려주었다.

당과 정부에서는 홍군의 병을 치료해주고 중국혁명에 이바지한 양청영의 후대를 잊지 않고 해마다 양청산가족에게 위문품을 보내고있다. 현재 위가하소학교의 음악교원으로 근무하고있는 양청산은 홍군에 대한 깊은 감정을 담아 홍군을 노래하는 가요 300여수를 창작하였다. 뿐만아니라 장정로선을 답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소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비롯한 온 가족을 동원하여 홍군의 복장을 입고 홍군을 노래하는 문예종목을 공연하기도 한다.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한 홍군과의 인연은 양청산에 이어 그의 아들까지 그 바통을 이어가고있다.

리완빈부부는 양청산네 저택에서 사흘 묵고 길을 떠났다. 떠나는 날 아침, 양청산은 리완빈과 함께 길을 나섰다. 양청산은 집과 10킬로메터 되는 지점에서 샛길로 접어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길옆에 두개의 묘소가 나란히 자리하고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양청산이 리완빈에게 말했다.

《이 두개의 묘소는 유가하전투에서 희생한 이름 모를 두 홍군전사의것입니다. 비록 제가 해마다 청명이나 추석에 묘소를 찾아 가토하고 벌초하지만 묘소가 너무 볼품없어 가슴이 아픕니다.》

이름 모를 홍군전사의 묘소를 리완빈에게 소개하던 양청산의 눈에는 이슬이 촉촉하게 맺혔다.

리완빈은 묘소의 앞에서 묵념하고 두손으로 묘소에 난 풀을 뽑으며 말했다.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십시오. 제가 언젠가는 여기에 비석을 세우고 묘소를 수건하겠습니다. 저는 선생님에게 한 약속을 꼭 지킬것입니다.》

리완빈의 약속을 들은 양청산은 목이 꺽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리완빈의 두손을 꼭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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