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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답사13]사나이중의 사나이들

편집/기자: [ 길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7-27 10:07:57 ] 클릭: [ ]

백절불굴의 사나이

―4갈래 홍군장정의 코스를 답사한 리완빈의 이야기

○ 김인덕

제3부 제3차장정

1934년 10말, 국민당군 16개 퇀은 호북성, 하남성, 안휘성 혁명근거지 대해 대대적인 《포위토벌》을 감행하였다. 당시 호북성, 하남성, 안휘성 혁명근거지에는 군장 정자화(程子华), 정위 오환선(吴焕先), 부군장 서해동(徐海东)이 이끄는 홍군 제25군이 혁명근거지를 지키고있었다. 당시 제25군에는 홍군 3천명밖에 없었다. 적들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홍군 25군은 부득불 혁명근거지에서 철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1934년 11월 16일, 중국공농홍군 25군은 《중국공농홍군북상항일제2선견대》라는 기치를 높이 들고 하남성 라산현 하가충(罗山县何家冲)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향했다.

홍군 25군에는 12세~13세 되는 청소년들이 특별히 많았다. 지어는 8, 9세 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부모, 형제들을 따라 홍군의 요람에서 평범하지 않은 장정세례를 겪으면서 혁명의 계승자로 성장하였다.

홍군 25군 12퇀 공급처에는 웅발룡(熊发龙)룡이라는 홍군이 있었다. 야장출신인 그는 8살밖에 안되는 아들을 업고 참군하였다. 홍군이 장정을 떠날 때, 부대에서는 정병간정을 실시하여 로홍군, 로약자, 환자, 부상자들은 장정에 참가할수 없게 되였다. 웅발룡은 아들을 등에 업고 장정에 참가하였다. 만약 이런 정황이 상급에 들키면 웅발룡은 부대를 떠나야만 했다. 웅발룡은 아들을 마대에 넣고 부대를 따라 행군할 묘한 생각을 하였다. 종이로 불을 감출수 없는것처럼 결국 마대로 아들을 가릴수는 없었다. 후에 웅발룡은 부대수장한테 아들을 감추고 행군한 사실이 들키게 되였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라 부대수장도 눈을 감아주었다. 홍군이 섬북에 도착하였을 때에도 그 아이는 홍군에 참가할 나이가 되지 않았다. 그 아이는 항일전쟁이 시작된후 팔로군에 참가하고 후에 련장으로 승급하였다.

2006년 11월 12일, 리완빈은 하남성 라산현에 도착하였다. 영국청년 리아이더(李爱德), 숴난쟈춰(索南加措) 그리고 리완빈과 제1차장정을 함께한 하남성 《신향일보(新鄕日報)》 왕고봉(王高鋒) 등 3명이 리완빈의 제3차장정을 응원하기 위해 라산현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 당시 리아이더는 영국에 있었다. 제2차장정을 결속 지을 때 리완빈은 년내에 제3차장정을 시작할것이라고 리아이더에게 말했다. 당시 리아이더는 리완빈이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제3차장정을 시작하는것은 무리이며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리아이더는 《리선생이 만약 년내에 제3차장정을 시작하면 난 지구끝에 가 있더라도 달려와서 당신을 전송할것입니다.》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리아이더의 예상은 빗나갔다. 리아이더는 영국에서 리완빈이 곧 장정을 시작한다는 기별을 받고는 부랴부랴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리완빈, 리아이더 두 사나이는 모두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숴난쟈춰(索南加措)는 제2차장정이 끝난후 리완빈이 제1차장정때부터 쓰던 말을 두달간 살뜰하게 보살폈다. 리완빈이 제3차장정을 시작할 무렵에 숴난쟈춰는 감숙성 정서(定西)에서부터 말을 화물차에 싣고 리완빈한테로 달려왔다.

일행 4명은 4일 동안 라산현에 머물면서 홍군 장령들의 고향을 방문하고 혁명전적지를 둘러보았다.

2006년 11월 16일, 리완빈은 하남성 라산현 하가충(罗山县何家冲)에서 제3차장정을 개시하였다. 리아이더와 숴난쟈춰는 자신들의 일을 제쳐놓고 리완빈과 함께 한 구간의 장정로선을 동행하기로 하였다. 장정길에서 쌓은 그들의 우의는 반석처럼 굳었다.

11월 20일, 리완빈 일행은 3일간 걸어 하남성 신양(信陽)시 근교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리완빈과 리아이더, 숴난쟈춰, 왕고봉은 작별인사를 하였다. 리완빈은 일찌감치 짐을 싸들고 묵고있던 려관을 나섰다. 리아이더와 숴난쟈춰도 5리 가량 리완빈을 따라 나섰다. 리완빈이 연신 돌아가라고 그들의 등을 떠밀어서야 그들은 발길을 돌렸다. 그들은 서로가 시야에서 멀어지도록 가끔씩 되돌아 손을 저으면서 석별의 정을 달랬다.

일주일후 리완빈은 밀향현(泌阳县)에 도착하였다. 밀양현성 북쪽지구는 지세가 평탄하고 촌락과 위채(围寨)가 별무리처럼 널려있었다. 홍군이 이 고장을 지날 당시 지주토호렬신들은 각기 자기의 위채를 차지하고 지방무장을 갖추고있었다. 규모가 큰 위채에서는 몇백자루의 총을 소유하고있었을뿐만아니라 자기절로 만든 대포까지 무장하고있었다. 위채 바깥에는 도랑을 깊이 파고 물을 가두었으며 위채의 출입구에는 들어올릴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 위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다. 반동무장들이 둥지를 틀고있는 위채가 홍군의 길을 가로막고있는 상황에서 25군 지휘부는 홍군의 각 부대에 위채에 주둔하지 못하며 길을 비켜주는 토호렬신들에겐 례의를 갖춰 대하라는 명령을 하달함으로써 홍군이 손실을 줄이고 순리롭게 위채를 지날수 있었다.

2007년 11월 25일, 리완빈은 하남성 방성현 독수진(方城县独树镇) 부근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겨울이지만 쩍하면 비가 내려 오솔길은 진흙구덩이나 진배없었다. 리완빈은 진탕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넘어졌는지 모른다. 한번 넘어질 때마다 리완빈은 흙사람이 되였다.

70여년전 홍군 제25군도 바로 이곳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홍군 25군사상 류례없는 한차례의 악전을 치뤘다. 당시 홍군은 추운날씨에 홑옷을 입고 초신을 신고 이곳을 지났다. 홍군은 하루밤을 행군하여 한 작은 도착한후 뜨거운 물이라도 끓여먹으려고 마을사람들의 집에 들렀다. 물을 가마에 넣고 방금 불을 지피고있는데 적정이 나타났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서해동은 경위원더러 전사들을 독촉하여 행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대부분 전사들은 너무나 피곤하여 잠을 깨지 못했다. 급한 나머지 서해동은 몽둥이를 들고 한집한집 찾아다니면서 몽둥이찜질로 200명의 전사들을 깨웠다.

진눈깨비가 내려 전방의 가시도는 매우 차했다. 홍군의 선두부대가 적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늦은 때였다. 게다가 전사들은 손가락까지 얼어 방아쇠마저 당길수 없었다. 좌우량측으로 밀려오는 적들의 공세는 아주 맹렬했다. 이때 정위 오헌선이 진두지휘에 나섰다. 그는 견결하고도 과단하게 모래처럼 흩어지는 홍군대오를 정비하고 평원지대에서 유일하게 의탁할수 있는 밭둔덕, 묘지를 진지로 삼아 적들의 진공에 맞섰다. 홍군의 선두부대가 한창 적들과 생사 판가리의 격전을 펼치고 있을 때 서해동이 거느리는 후원부대가 도착하였다. 홍군은 강적에 맞서 영용하게 분전하여 끝내 적들의 포위를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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