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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답사11]샹그릴라는 그에게 무릉도원이 아니였다

편집/기자: [ 길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7-12 09:38:51 ] 클릭: [ ]

백절불굴의 사나이

―4갈래 홍군장정의 코스를 답사한 리완빈의 이야기

○ 김인덕

운남의 초여름은 무더위가 .극성을 부렸다. 매일 4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로 밖에만 나서면 도가니속같이 숨이 컥컥 막혔고 좀만 걸어도 땀이 비가 오듯이 철철 흘러내렸다. 리완빈은 태양이 정수리를 뜨겁게 지져도 그늘을 찾아 걷지 않았다.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그늘이 있는 곳에서 걷다가 그늘이 없는 곳에서 걸으면 곱절로 더 힘들었기때문이다. 리완빈은 쉬는 시간에도 그늘을 찾지 않았다. 그늘에서 쉬다가는 피로로 인해 깜빡 조을수도 있었고 또 다시 걸을 때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리완빈의 정수리, 얼굴, 팔뚝, 잔등은 작열하는 태양에 익어 피부가 석류속처럼 빨개지다가 온통 물집이 생겼다. 손으로 팔뚝을 한번 쓸면 물집이 툭툭툭 소리를 내면서 터졌다. 마침 그 지방에는 가는 곳마다 선인장이 많았다. 리완빈은 고통을 완화시키려고 선인장을 따다가 가시를 제거한후 찧어서 온몸에 바르기도 하였다. 며칠이 지나 물집이 잦아들면 온몸의 피부가 봇나무껍질처럼 보풀이 일었고 며칠이 지나면 또다시 온몸에 물집이 생겼다. 물집이 생기면 등을 침대에 대고 누워있기조차 어려워 머리를 침대에 맞대고 누워있어야 하니 온밤을 뜬눈으로 새울 때도 있었다.

어느하루, 리완빈은 리강부근의 한 산장에 도착하였다. 리완빈은 행장을 풀고 짐을 정리하고있는데 복무원이 리완빈의 방에 들어왔다가 팔뚝에 온통 물집이 생긴것을 보고 눈이 화등잔처럼 되였다. 발도 살이 찢겨져 눈을 뜨고 볼수 없을 지경이었다. 복무원은 리완빈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고나서 입을 딱 벌렸다. 복무원은 자기가 보고 들은 사실을 산장주인한테 전화로 알렸다. 그때 산장주인은 몇십킬로메터 떨어진 곳에서 일을 보고있었다. 산장주인은 복무원의 말을 듣고나서 자기 두눈으로 보기전에는 믿을수 없다고 하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산장에 달려왔다. 산장주인은 자기 두눈으로 확인하고나서 숭엄한 표정을 지으며 리완빈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산장주인은 리완빈이 낸 숙박비를 돌려주었고 저녁에는 한상 푸짐하게 차려 리완빈을 초대했다. 산장주인은 푸미족이고 이름은 허모룽이였다.

《저도 소수민족이지만 조선족은 정말 대단한 민족입니다. 당신은 우리 소수민족의 영광입니다.》

2006년 5월말, 중앙텔레비죤방송국 군사프로채널에서는 리완빈과 리휘의 제1차장정을 소재로 군사교양프로를 제작하고있었다. 리완빈은 장정도중 제작팀의 요청으로 비행기를 타고 리휘의 소속부대가 있는 길림성 사평시로 날아갔다. 리완빈의 안해 신향자도 비행기를 타고 연길에서부터 아들의 소속부대로 날아왔다. 이렇게 한집식구 세 사람은 반년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되였다. 리완빈은 부대에 도착한후 부대수장들의 요청에 따라 리휘소속 고사포퇀의 장병들에게 자신의 장정에 관한 강연도 하고 군사프로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그날 저녁, 리휘소속 고사포퇀의 왕정위가 리완빈일가를 식사에 초대하였다. 식사자리에서 왕정위는 70년전에 장정을 한 홍군 제25군이 바로 고사포퇀의 전신이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3차장정을 할지 말지 유예미결하고있던 리완빈은 당장에서 결심을 굳히고 제2차장정을 마치면 홍군 제25군의 장정로선을 따라 제3차장정을 개시하겠다고 부대수장에게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향자는 신체정황이 나빠 리완빈과 함께 제3차장정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3일후에 리완빈은 리강에 돌아왔다. 리강은 독특한 모양의 기암괴석, 산봉우리와 조화를 이루어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듯한 절경으로 유명하다. 수많은 산은 늘 안개에 둘러싸여 보일듯 말듯 신비롭다.

리완빈은 리강에서 리와이더, 양초를 다시 만났다. 또 뜻밖으로 리완빈부자와 제1차장정을 함께했던 하북성 보정시의 청년 조충건이 리완빈을 찾아왔다. 조충건은 리완빈의 제2차장정을 응원하기 위해 한달간 리강에서부터 감자(甘孜)까지 5백킬로메터를 함께 걷겠다고 하였다. 리완빈은 의리의 사나이 조충건에 너무 감사했다. 장강제1굽이 석고(石鼓)진에서 리완빈과 조충건은 당년 홍군 제2방면군 제6군단의 장정로선을 따라 우측로선으로 행군하고 리아이더와 양초는 홍군 제2군단의 장정로선을 따라 좌측으로 행군하기로 결정을 짓고 네 사람은 감자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며칠후 리완빈과 조충건은 옥룡설산(玉龙雪山)에 도착하였다. 옥룡설산은 리강(丽江)에서 서북부 20㎞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옥룡설산은 지구 북반구에 있는 만년설산중 가장 남단에 있는 산이며 해발 5,596m로서 산기슭 하곡으로부터 봉우리에 이르기까지 아열대, 온대, 한대의 완정한 수직자연경관을 구비하였다. 13개 봉우리에 쌓인 눈이 마치 한마리 룡이 누워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하여 “옥룡설산”이라 불린다.

옥룡설산은 유람객들로 붐볐다. 리완빈은 그날 한국에서 온 단체 유람객 20명을 만났다. 그날 옥룡설산에는 무지개가 비끼였다. 리완빈과 조충건은 몇시간의 악전고투끝에 봉우리로 톺아올랐다. 솜덩이처럼 하얀 구름이 얼굴을 스칠듯 흘러가고 시원한 바람이 달아오른 몸을 식혀주었다. 골짜기마다 눈이 쌓여있었는데 산봉우리의 바위들도 모두 흰색이여서 하늘과 산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산봉우리 아래로 어깨를 맞대고있는 뭇봉우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룡처럼 꿈틀거려 장관을 이루었다. 리완빈은 대자연의 조화에 넋을 잃고 연속 사진기의 샤타를 눌렀다.

6월초, 리완빈과 조충건은 샹그릴라에 도착했다. 샹그릴라는 장족어인 샹블라에서 유래했다. 샹그릴라는 영국 작가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다. 오래전에 영국의 몇몇 사람들은 의외로 한 낯선 곳에 도착한다. 이곳은 사면이 설산으로 둘러싸여있고 대협곡에는 금광이 있었다. 세상과 단절된듯한 이곳에서 그들은 당지목민들의 극진한 접대를 받으며 시간의 의의를 잊어버린다. 여기의 사람들은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황금을 탐내지 않았으며 자유자재로 살아가면서 모두 장수했다. 이때로부터 샹그리라는 영원, 평화, 평온의 상징으로 되였으며 소설은 영화로 각색되여 사람들이 추구하는 무릉도원으로, 유토피아로 상징되였다.

그날, 리완빈과 조충건은 샹그릴라의 산봉우리로 향해 톺아오르있었다. 그들은 3시간 가량 걷다가 험한 벼랑을 만났다. 울창한 원시림은 하늘마저 가려 동서남북조차 분간할수 없었다. 길을 잃은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할지 궁리가 돌지 않아 이리저리 바장이는데 어디선가 자동차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멀지 않은 곳에 공로가 있을것이라 단정하고 자동차소리가 나는 곳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그런데 소리가 나는 곳 가까이에 다가가서야 소리의 진원지가 벌둥지였음을 알게 되였다. 하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벌둥지에 있던 벌들은 일제히 두 불청객에게 새까맣게 달려들었다. 벌떼들은 두 사람의 팔과 얼굴을 쏘아댔다. 리완빈은 바늘이 온몸을 쑤시는듯 아파나 두팔로 머리를 감싸쥐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벌들이 집요하게 달려드는지라 두 사람은 두손으로 벌떼들을 이리저리 쳐버리며 가속도를 붙였다. 그러자 벌들은 더욱 성난듯 짓궂게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급한 김에 한길이나 넘는 벼랑도 훌쩍 뛰여내렸다. 근 20분이나 달려서야 벌들은 공격을 멈추었다. 벌에게 쏘인 두 사람의 얼굴은 대뜸 팅팅 부어올랐고 속골마저 쑤시는듯 아파나 견디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벌에게 쫓기는 바람에 2시간이나 톺아오른 길을 단 20분만에 달려내려온 기적을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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