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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답사9]고난의 행군길

편집/기자: [ 길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6-24 10:49:21 ] 클릭: [ ]

백절불굴의 사나이

―4갈래 홍군장정의 코스를 답사한 리완빈의 이야기

○ 김인덕

리완빈은 혼자서 길을 떠나니 가족에게 루를 미칠 근심걱정이 사라져 한편으로는 마음이 몹시 홀가분했으나 주숙이 큰 문제거리였다. 리완빈은 구레나룻을 텁수룩하게 길렀는데 원인은 수염을 깎을 조건도 마땅치 않거니와 제1차장정에서 구레나룻을 기르고 다녔기에 구레나룻은 연도의 군중들이 리완빈을 알아보는 징표로 되였다. 리완빈은 장정길을 4차 답사하는 기간 내내 가죽옷만 입고 구레나룻을 길렀다. 가죽옷을 입으면 길을 가다가 아무데서나 눕거나 앉아서 휴식을 취할수 있었고 또 진흙에 어지러워져도 물로 쉽게 씻어 당장에서 다시 입을수 있었다. 리완빈은 련 며칠동안 연도의 작은 마을의 이집저집에 들러 주숙을 허락해달라고 주인장에게 부탁했으나 대부분 가정들에서는 리완빈의 모습을 보고는 덴겁하여 대뜸 문을 닫아걸었다. 그들은 어지러워진 가죽옷을 입고 미국서부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구레나룻을 기른 홀몸의 리완빈을 몹시 경계하였다.

2006년 음력설날, 리완빈은 옹안(翁安)현 경내의 한 작은 진에 들어섰다. 리완빈은 한 작은 려관에 주숙을 정하고 시가지를 돌았지만 문을 연 음식점은 한곳도 없었다. 리완빈은 돌아오는 길에 상점에 들러 과자 몇봉지를 사왔다. 저녁이 되자 려관의 주인은 물만두를 빚어놓고 자기들과 함께 식사하자고 리완빈을 끌었다. 하지만 리완빈은 가족끼리 오붓하게 식사하는 자리에 끼이고싶지 않아 이미 밖에서 식사했다고 거짓말을 둘러대고는 랭기가 뼈를 쑤시는 빈 방에서 과자로 끼니를 에웠다. 그믐밤이라 밖에서는 송구영신의 폭죽소리가 울리고 집집마다 가족끼리 모여앉아 음력설야회를 시청하고있었지만 리완빈은 숙소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연도에서 찍은 사진을 들춰보는것으로 외로운 심정을 달랬다. 그런데 한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만 노트북이 고장났다.

이튿날, 리완빈은 고장난 노트북을 당지의 우전국을 통해 북경의 한 컴푸터수리부에 보냈다. 그런데 한달후, 수신인의 주소가 틀린 탓으로 보낸 노트북이 당지의 우전국에 되돌아왔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는 이미 리완빈이 500킬로메터를 전진한터라 되돌아가 노트북을 찾을수도 없는 상황이였다. 리완빈은 제2차장정을 마친, 8개월후에 당지 우전국에 련계하였지만 우전국측에서는 임자가 없는 물건으로 알고 이미 처리하였다고 하면서 왜 그동안 찾아가지 않았는가 물었다. 리완빈은 일정에 맞춰 장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발길을 돌릴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른봄이 되여 날씨가 좀 풀리고 주숙을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덴트를 장만하여 풍찬로숙하기 시작하였다. 호남성은 비록 중국 남부에 위치해있지만 이른봄의 밤날씨는 몹시 추웠다. 덴트안이라지만 바깥이나 다름없는 이른봄의 추위에 귀뿌리와 코등은 얼음처럼 차거워지고 손은 시리다 못해 감각을 잃어버릴 지경이였다.

끼니마다 뜨거운 밥을 먹을수도 없었다. 산길로 주로 다니다보니 마을을 쉽게 만날수 없었기에 리완빈은 연도에서 어쩌다가 식당을 만나면 한꺼번에 이틀치 식품을 장만하였다. 식당이 없으면 작은 상점에 들러 사탕, 과자, 초콜릿, 광천수 등 식품을 많이 준비하였다. 초콜릿은 열량을 보충하기 좋았고 또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에게도 선물로 줄수 있어 일거량득이였다. 때로는 더운 물을 얻을수 없으면 신라면에다 태양초고추장을 한숟가락 넣고 찬물에 불려 먹는것이 한끼 식사의 전부였다.

2006년 2월중순, 리완빈은 귀양에서 리아이더, 양초를 만났다. 세 사람은 함께 걸어 귀주성 오몽산(乌蒙山)구에 위치한 필절(毕节)지구에 도착하였다. 오몽산은 남북―서남 주향으로 길이가 250킬로메터나 되였다. 산구에는 분지와 깊은 계곡이 많고 뭇산들이 기복을 이루고 산길이 험했으며 사람의 인적이 드물고 기후가 악렬했다. 홍군은 바로 이곳에서 23일간 적들의 코를 꿰고 동서남북을 전전하면서 천리를 행군하였다. 적들은 지칠대로 지쳤고 사기가 저락되고 많은 병력을 잃었다.

리완빈일행은 필절지구에서 갖은 고생을 겪었다. 이 지구는 날씨가 변덕스러워 때로는 비가 오다가 때로는 눈이 왔으며 때로는 진눈깨비가 날렸다. 몇걸음 걷지 않아도 신발에 진흙이 척척 달라붙어 천근처럼 무거워났다. 길을 잃거나 혹은 비가 내려 길이 질척거리면 온 하루 걸어도 10리도 채 걷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어느 하루, 리완빈일행은 10리만 걸으면 마을이 나타난다는 당지 농민들의 말을 듣고 광천수 3병밖에 준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심때가 다가오도록 마을이 나타나지 않았다. 물마저 언녕 굽이 난터였다. 기실 당지사람들은 20~30리 되는 길도 통상 모두 8~10라고 표현하는 말버릇이 있는데다 외지사람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길을 물으면 그냥 되는대로 머리를 끄덕이는 습관이 있었다. 리완빈일행은 입술이 초들초들 타들어갔고 입에서는 겨불내가 확확 풍겼다. 그날 그들은 늦은 밤이 되여서야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30리길을 옹근 8시간이나 걸었다. 그들은 필절지구에서만 근 보름동안 행군하였다. 길을 잃는 일도 다반사였고 매일과 같이 지속되는 힘겨운 로정이였다.

2006년 3월 말, 리완빈일행은 남북반강지구에 들어섰다. 남북반강협곡은 94킬로메터나 되는 대협곡으로 풍광이 매우 수려하고 원고벽화, 고성유지 등 인문경관도 풍부했다. 이곳에는 세계상에서 제일 큰 폭포군(群)인 황과수폭포가 있다. 4개월간 발편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줄곧 강행군해온 리완빈은 지칠대로 지쳤고 게다가 치통까지 앓아 음식도 제대로 씹을수 없어 고생이 막심하였다. 대들보를 얹어도 휘여들지 않을것 같던 몸매도 체중이 20킬로그람이나 줄어들었고 몸은 휘청거릴 정도로 몹시 허약해졌다. 먼저 이발을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한 리완빈은 자그마한 향진병원을 찾아가 이발 3대나 뽑아버렸다. 이발을 치료하던 의사는 리완빈의 지나온 무용담을 들으면서 그의 장거에 감탄해마지 않았다. 의사는 리완빈더러 자기의 집에서 며칠간 몸을 춰세우고 다시 길을 떠나라고 간곡히 만류하였다. 리완빈은 의사의 환대에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리완빈은 일반유람객이라면 이러한 대접을 받을수 없을것이며 홍군의 위대한 정신이 세세대대로 중국인민들의 흉금을 울리고있는것에 가슴은 더없이 뜨거워났다.

며칠후, 리완빈은 반현(盘县)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홍군 제1방면군장정로선을 답사하는 전홍림(田洪林)을 만났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공통한 화제가 많아 대뜸 오래 사귄 친구처럼 가까와졌다. 하지만 행선지가 달랐기에 서로의 련계방식을 남긴뒤 이틀후 헤여져야만 했다. 그후 그들은 장정이 끝날 때까지 서로 련계를 취하면서 교류하고 격려하였다. 2006년 전홍림은 《2006년 중원을 감동시킨 10대 년도인물》에 평선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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