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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답사3]피로 물든 상강(湘江)

편집/기자: [ 길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6-14 11:30:24 ] 클릭: [ ]

백절불굴의 사나이

―4갈래 홍군장정의 코스를 답사한 리완빈의 이야기

○ 김인덕

10월 12일, 리완빈부자는 서금 운석산(云石山)에서 출발하여 제1차장정을 시작하였다.

10월 15일, 리완빈부자는 어도(于都)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리완빈부자는 우연한 기회에 다른 장정대오를 만났다. 그들로는 하북청년 조학주, 북경청년 등강 등 5명이였고 조학주가 대장직을 맡고있었다. 그들은 리완빈의 얼굴과 다리에 난 깊은 상처를 보면서 상처도 치료하지 않고 4일간 걸어온것을 상상할수 없다면서 경의를 표시했다.

《여기에서 상처를 치료하세요. 우리가 상처가 나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떠나겠습니다.》

리완빈은 하루도 지체할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상처가 훈장처럼 남아 영원한 기념으로 될거요. 허허.》

림시로 구성된 장정팀에는 농민이 있는가 하면 대학교를 금방 졸업한 2명의 청년도 있었다. 리완빈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자신과 같은 리상과 포부를 지닌 청년들이 너무나 돋보였다. 리완빈은 장정팀의 대장직을 맡고있는 조학주의 손에 5천원을 쥐여주면서 어떤 곤난이 있더라도 함께 도우며 장정을 마치자고 약속했다.

11월 15일 리완빈부자는 하남성 도현(道县)에 도착하여 2천원을 주고 말 한필을 샀다. 말잔등에 덴트, 식량, 음료수 등 필요한 물건을 충족하게 실을수 있어 편리한 점도 많았으나 불편한 일도 많았고 더구나 위험한 일에 봉착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우선 매일 아침 두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말에게 풀을 먹여야 했고 저녁에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쉬지 못하고 말에게 또 두시간 정도 풀을 먹여야 했다.

리완빈은 한달간 장정길을 걸으면서 나 어린 아들과 함께 장정을 떠난 자신의 결책이 정확한지, 아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늘 근심이 태산이였다. 매일매일 생각했지만 정확한 답을 얻을수 없었다. 리완빈은 매일 4, 50킬로메터의 로정을 힘들게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면 저녁도 먹지 못하고 벽에 기대여 쪽잠을 자는 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쓰렸고 마음은 초조하기만 했다. 리완빈은 초조할수록 아들이 맥을 놓고 있는것 같아 자고있는 아들을 깨워 장정과 홍군에 관한 력사를 학습하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리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험난한 장정길을 함께 걷는것만도 힘든데 매일 이것도 배워라 저것도 기억하라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여 부자간에는 점차 교류가 적어지고 길을 걸을 때 부자간의 거리도 멀리지기 시작했다.

2004년 12월 1일, 리완빈부자는 상강에 도착하였다. 1934년의 이날, 상강동쪽에 숱한 병력을 배치한 국민당군은 비행기의 배합하에 홍군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진행하였다. 삽시에 짙은 화약냄새와 사람의 시체가 타는 냄새, 피비린내가 진동하여 사람들의 호흡마저 곤난하게 만들었다. 상강전역은 홍군 유사이래 가장 치렬하고 비장한 한차례의 악전이였다. 상강전역을 치르고나서 중앙홍군은 8.6만명으로부터 3만명으로 줄어들었다.

리완빈부자는 상강홍군렬사릉원에 빼곡히 들어서있는 홍군들의 묘지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듯 아팠다.

《당시 희생한 홍군들의 평균나이는 16세도 채 되지 않았다. 그들은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후세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들의 보귀한 생명을 바쳤다.》

리휘도 눈시울을 적셨다.

《아버지, 태여나서 따뜻한 밥 한그릇 배불리 먹어보지 못하고 희생된 홍군전사들에 비하면 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리완빈부자는 상강홍군기념비에 화환을 올리고 새로운 각오로 장정길에 오를것을 다짐하였다.

12월 4일, 리완빈일행은 로산계(老山界)에 도착하였다. 해발 2850메터인 로산계는 산과 산이 어깨를 맞대고있고 절벽이 가파롭고 삼림이 무성하였다.

주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더구나 험했다. 하여 리완빈은 말잔등의 짐을 부리워 여럿이 나누어 메게 하고는 혼자서 말을 끌고 산봉우리로 향했다. 일행은 산봉우리에 거의 다다를 무렵 20메터 가량 되는 가파른 길을 만났다. 몸의 평형을 잘 잡지 못하는 말은 천천히 올라갈수 없는 길이여서 리완빈이 앞에서 말고삐를 급하게 낚아채며 달려올라가야만 했다. 리완빈은 말고삐를 자기 손목에 매고 순간에 말고삐를 낚아채면서 앞에서 달렸다. 단숨에 험한 벼랑길을 15메터가량 올라갔을 때 말이 뒤발을 빗디디면서 중심을 잃었다. 말이 벼랑으로 당금 떨어지려는 순간, 리완빈은 왼손으로 옆에 있는 바위를 꽉 잡고 오른손으로 말고삐를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마침 주봉에 먼저 올라갔던 대원 두명이 달려와 리완빈과 함께 말고삐를 당겼다. 이때 기적이 발생했다. 말은 생사를 앞두고 대원들이 당기는 힘을 빌어 앞발을 바위의 턱에 걸고 훌쩍 우로 솟아올랐다. 리완빈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사력을 다해 자신을 구한 말이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산봉우리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날이 어두웠다. 어두운 밤에 산아래로 내려간다는것은 위험한 일이였다. 리완빈일행은 산봉우리의 비스듬히 경사진 곳에서 로숙했다. 미끌어지는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칼로 두개의 구덩이를 파고 두발로 몸을 지탱하였다. 처음에는 혹한이 칼로 살을 에이는듯 하다가 내장까지 얼구듯 사정없이 몸속으로 옥죄여들었다. 일행은 동상을 입을가봐 잠을 잘수 없어 10분 간격으로 몸을 일으켜 발을 동동 구르면서 몸을 덥혔다.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서야 일행은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리완빈은 하산하면서 아들과 말을 번갈아보면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곤난들이 닥쳐올지 가슴은 돌덩이를 얹은것처럼 무거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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