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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답사6]첫 설산 가금산을 지나다

편집/기자: [ 길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6-14 11:36:32 ] 클릭: [ ]

백절불굴의 사나이

―4갈래 홍군장정의 코스를 답사한 리완빈의 이야기

○ 김인덕

2005년 6월 8일 리완빈은 보흥(宝兴)현성에 도착했다. 아들 리휘와 갈라져 장정한지도 어느덧 한달반이 지났다. 이제 지나야 할 곳은 보흥현성 서북쪽에 있는 가금산(夹金山)이였다.

리완빈은 보흥현성에 도착하기 얼마전에 감죽산(甘竹山)을 지났었다. 감죽산은 해발 3400메터로서 당지사람들은 산을 톺아오르려면 50리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감죽산은 모두 원시림이였다. 원시림에는 번개를 맞은 굵은 나무가 이리저리 넘어져있었고 나무사이로 덩굴이 칭칭 감겨있었다. 그날 비까지 내려 삼림은 밤처럼 어두컴컴하여 한치 앞도 분간할수 없었다. 리완빈은 긴 칼로 덩굴을 쳐내면서 길을 냈다. 비가 내린 탓으로 진흙이 신에 달라붙어 천근처럼 무거워나 한걸음 을 내디디기조차 힘들었다.

가금산은 해발 4500메터로서 홍군이 넘은 첫 설산이다. 비록 지금은 여름엔 산에서 눈을 볼수 없지만 산봉우리에는 일년 사계절 광풍이 몰아치고 기온이 몹시 낮아 새마저 쉽게 날아넘을수 없는 산이라고 하여 민간에서는 신선산이라고 부른다. 리완빈은 감죽산을 넘어온 경험으로 보아 아들 혼자서 가금산을 넘게 할수 없다고 생각했고 또 혼자서는 두사람의 모순을 해결할수 없다고 생각하고 연길에 있는 안해 신향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빠른 시간내에 이곳 사천으로 와서 부자간의 모순을 해결해줄것을 부탁했다. 안해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머난먼 길을 걸으면서 아버지로서 어떻게 하면 이렇게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가고 남편을 책망했다. 신향자는 부랴부랴 연길에서 비행기를 타고 성도까지 온후 뻐스를 갈아타고 보흥까지 왔다. 신향자는 아들에게 출장차 지나가는 길에 보흥현성에 들릴테니 보흥에서 만나기로 이미 약조하였다. 이렇게 한가족 세 식구는 모두 보흥현성에서 회합하게 되였다. 부자간은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자신의 불찰을 털어놓으면서 남자들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6월 14일, 리완빈 세 식구와 하남성 《신향일보》기자 2명, 《하택일보》 기자 1명 등 일행 10명은 가금산을 향해 출발했다. 산기슭에서 올려다보니 산꼭대기는 보이지 않고 산허리에는 안개가 자욱하였다. 며칠전까지만 하여도 혹서에 견디기 어려웠으나 산기슭은 벌써 가을날씨처럼 서늘했고 하늘을 찌르는 나무들로 빼곡했다.

일행이 산허리에 이르자 키가 작은 소나무들뿐이였고 바람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물감을 칠한듯 새파랗던 하늘에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작달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더 걸을수도 없었다. 마침 길을 닦는 민공들이 쓰다버린 간이건물이 보였다. 일행은 움막에서 하루밤을 지내고 이튿날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이튿날 아침, 일행은 컵라면을 찬물에 불려먹고는 일찌감치 길을 떠났다. 산봉우리가 가까와지면서 공기가 희박해지고 기압도 낮아지면서 호흡하기 곤란해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말도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리완빈이 앞에서 있는 힘껏 말을 잡아당겼지만 말은 한걸음도 내디디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파른 비탈길에서 뒤걸음질치다가 산비탈 아래로 10여메터나 미끌어져 내려갔다. 동행하던 기자가 이 아슬아슬했던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놀란 말은 좀처럼 진정하지 않았다. 아래에서 톺아오르던 신향자가 말곁에 다가가자 말은 뒤발로 신향자의 얼굴을 힘껏 걷어찼다. 신향자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리휘가 다가가 어머니의 얼굴에서 손을 떼여내고보니 어머니의 얼굴은 팅팅 붓겨있었다. 신향자가 눈을 떠보려 했으나 왼쪽눈은 뜰수조차 없었고 오른쪽눈마저 앞이 희부옇게 보일뿐이였다.

산의 고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담낭염, 란초종양 등 여러가지 질병을 몸에 지니고있는 신향자가 점점 견디기 어려워했다. 리휘는 긴 막대기를 얻어다가 어머니더러 막대기끝을 쥐게 하고는 앞에서 막대기를 잡아당기며 한걸음 한걸음 어머니와 함께 힘겹게 산을 톺아올랐다. 한창 산에 톺아오르던 신향자가 땅에 물앉으며 가슴이 답답하다며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신향자는 입술이 파랗게 변하며 구역질을 하면서 구토까지 하였다.

산봉우리와 가까와지면서 기온은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고 광풍이 몰아쳐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산정에 도착하자 갑자기 호두만큼 큰 우박이 쏟아졌다. 피할 곳도 없어 일행은 손이나 팔굽으로 머리를 감쌌다. 신향자의 얼굴은 봇나무껍질같이 창백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쇼크했다. 산꼭대기에서 쇼크했으니 다행이였다. 리완빈은 산꼭대기까지 끌고 올라가던 말을 리휘에게 맡기고 신향자를 업고 부랴부랴 하산했다. 내려올 때는 훨씬 쉬웠다. 비교적 완만한 비탈에서 젊은이들은 앉아서 미끄러져내리기도 하였다.

산중턱까지 내려오니 언제 그랬냐싶게 하늘은 맑게 개였고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겨울에서 봄으로 돌아오는 느낌이였다. 땅에는 이끼, 작은 풀이 파릇파릇 돋아나있었고 어떤 곳에는 노란 들꽃이 바람을 안고 한들거리고있었다. 생기가 흘러넘치는 대자연은 힘겹게 가금산을 넘어온 리완빈일행을 반기고있었다.

가금산을 내려온 신향자는 6월 18일 고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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