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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열심히 기반을 다져가는 조선족청년들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2-06 11:46:11 ] 클릭: [ ]

《조선민족의 타향별곡-북경거주 겨레의 삶》(22)

개혁개방정책이 실시되면서 우리 나라의 정치, 교육, 문화의 중심이며 수도인 북경은 우리 조선족이 선망하는 도시의 하나로 되였으며 중국조선족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되였다. 동시에 북경은 조선족청년들이 새로운것을 접하고 배우는 마당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키워가는 넓은 활무대로 되였다. 현재 북경에는 열심히 자신을 키워가고 기반을 튼튼히 다지며 성공의 일로를 걷고있는 조선족젊은이들이 많고 많은데 그중의 몇몇을 소개한다.

두 협회의 사무국장을 맡은 리련희

리련희 사무국장

고향이 길림성 연길시인 리련희(30세)는 2001년에 연변위생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부터 3년간 한국 전주대학에 류학했으며 후에 월드옥타 북경지회에 가입, 그동안 맡은바 업무를 뛰여나게 완수하여 2008년 10월에 대외련락, 회원관리 등 많은 업무를 책임진 사무국장으로 승진했다. 그녀는 지난 1월에는 또 북경고려문화경제연구회 김철회장으로부터 사무국장으로 위임되였다.

그는 지금 자기의 회사를 운영하는 한편 두 협회의 사무국장 중임을 떠메고 매일 분망히 보내며 자신을 충실히 키워가고 있다. 리련희양은 월드옥타 북경지회에서는 해마다 본사의 자금지원으로 차세대무역스쿨을 조직하고 있다고 하면서 25~35세 사이의 북경 조선족청년들이 차세대무역스쿨에 참가하여 자신의 경영관리, 실무능력 등을 제고할것을 희망했다.

그녀는 《지금 선배님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는 단계》라고 겸손하게 말하면서 《우리 조선족이 먼저 경제적으로 뭉쳐야 하며 경제적으로 뭉치려면 돈을 벌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북경중심호텔 고객서비스부 경리 안송일

고객서비스부 경리 안송일

안송일(25세)청년은 길림대학 공상기업관리전업을 졸업하고 고향인 연변주 안도현에서 회사에 다니다가 2008년 3월에 북경중심호텔에 입사, 그때 당시 중심호텔은 장식중이여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다른 호텔로 보내며 정상영업을 못하는 상황이였다. 거기에다 개업후 얼마 안되여 금융위기가 일면서 손님들이 감소되여 불황기를 겪어야 했다.

안송일은 호텔과 환난을 같이하고 힘든 나날을 함께 하는 한편 사업상 자신의 견해를 표달하는 방식의 차이로 힘든 성장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인생수업을 시작했다. 안송일은 카운터 일반직원, 카운터주관을 거쳐 지금 호텔서비스부 경리로 승진, 압력을 동력으로 삼고 맡은바 업무를 잘 완수하여 고객들과 일터에서 긍정을 받고있다.

《저는 높은 급여를 받자고 북경으로 온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히고 발전하며 성공하려고 북경으로 왔습니다. 북경은 우리나라의 수도인만큼 발전공간이 어느 도시보다 높을것입니다》라고 북경진출 당시의 생각을 밝히면서 3년간 일하며 배우고 느낀 점을 위인(为人), 처사(处事), 포용(包容)이라는 여섯글자로 표달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족학교를 다닌 원인으로 조선글을 잘 모르는 상황이지만 대상자는 꼭 조선족처녀를 우선 고려할 타산이라고 하면서 멀지 않은 장래에는 아빠트를 사고 자가용을 굴리겠다는 담찬 꿈도 털어놓았다. 현재 호텔중급관리일군으로 성장한 그는 눈앞의 리익보다 더 멀리 내다보는 안광을 가지고 일을 해나갈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능력을 키워 가는것이 재부를 쌓아가는것이고 자신이나 회사에 가장 필요함을 심심히 느낀다고 말했다.

디지털소품보수부를 꾸린 대학생-전종해

고향이 길림성 류하현인 전종해(27세)는 2006년에 산동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북경으로 와서 한국기업에서 디지털사이트, 컴퓨터 보수 및 번역으로 취직했다. 그사이 그는 열심히 임한 보람으로 회사의 신임을 받고 컴퓨터관리원으로 활약, 2008년 중순에 자신의 사업을 해보려는 타산으로 사표를 바치고 《디지털소품보수부》를 꾸렸다.

그는 망경부근에서 난방시설도 없는 단층집을 세맡고 간고하게 창업을 시작, 낮에는 고객들의 예약에 따라 컴퓨터보수, 프로그램안장, 070전화기설정, 수리 등을 해주고있는데 수입이 괜찮다고 한다. 전종해는 자금을 어느정도 모은후 망경에서 디지털매장을 꾸리는것이 제일 큰 꿈이라고, 대상자는 조선족처녀를 얻을 타산이라고 했다.

중국기업을 선택한 청년

모 중국기업의 품질부에서 과장직을 맡고있는 김모(32세)는 료녕성 태생으로서 8년전에 북경으로 진출, 왜 한국 등 회사를 선택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에 《우리 조선족들의 언어우세가 날로 미약해지고 있는 현황에서 한족들의 장점을 따라 배우며 한족권내에서 발전할 타산으로 한족기업에 입사했다》고 말했다.

북경진출 초기에는 3년도 안되는 사이에 10차가량 직장을 옮겼다는 그는 안착하고 한 우물을 파면서 회사생활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한국인 사장들이 로임대우를 공평히 해주지 않는데다가 어떤 한국기업에서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것도 직장을 빈번히 바꾼 한가지 원인이라고 했다.

20세에 식품점을 경영한 청년

20살 어린나이에 홀몸으로 북경에 와 자체로 한국식품 도매점을 오픈한 흑룡강성 계서시 태생의 최룡(34세)씨의 가게는 지금도 호황을 이루고있으며 자기가 번 돈으로 몇년전에 아파트까지 구입했다.

북경조선족모임이나 활동에 후원금을 내며 애심을 바치고있는 그는 《우리 민족이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발을 튼튼히 붙이려면 서로간에 방조해야 한다》 고 하면서 자기의 자그마한 힘이나마 조선족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털어놓았다.

북경에서 수십년간 생활해온 한 조선족 지성인은 포부와 리상이 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경주하는 이같은 조선족 젊은이들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런 후배들속에서 이름난 기업가와 민족사회의 장래를 이끌어갈 인물들이 나올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이 치렬하고 기회와 도전이 동반된 선망의 도시 북경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임하고 있는 이런 조선족 젊은이들속에서 우수한 기업가와 민족의 장래를 이끌어갈 훌륭한 리더들이 용솟음쳐 나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유경봉 박광익 특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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