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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조선족대학생들의 믿음직한 어머니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1-17 21:38:03 ] 클릭: [ ]

《조선민족의 타향별곡-북경거주 겨레의 삶》(18)

-북경조선족애심장학후원회 리란사무총장의 이야기

북경 조선족들가운데서 리란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리란은 《스타》급 인물이다. 그럼 리란은 도대체 누구일가?

북경에는 10여년동안이나 줄곧 경제상황이 어려워 계속 학업을 이어가기 힘든, 품행과 학습성적이 우수한 조선족대학생들에게 근 50만원의 사랑의 장학금을 전달하며 경제적, 정신적으로 큰 힘과 용기를 주는 민간단체 북경조선족애심장학후원회가 있다.

리란은 바로 이 장학후원회 창시자의 한사람이자 사무총장이다.

길림성 룡정현 태생인 리란(53세)은 1978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중앙민족대학에 입학, 1982년 6월에 졸업후 중앙민족번역국에 배치받아 사업하다가 지난 2007년에 퇴직했다. 흥취가 다방면인 그는 1989년부터 연변일보사 북경주재 특약기자로 활약하면서 매년 봄에 열리는 전국 인대대회, 정협회의의 조선족 위원, 대표들에 관련된 기사와 북경의 민족동태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2000년 3월경, 주중한국대사관의 참사로부터 《경제난으로 공부를 계속하기 어려운 조선족 대학생들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리란은 북경대학, 중앙민족대학 등 북경의 여러 대학들과 련락하여 40명을 추천했다.

그후 한국재외동포재단에서 마련한 장학금 지급식에 참가해보니 추천한 40명중 15명이 매달 50딸라의 장학금을 받는외 나머지 25명은 현지 한국인들의 지정지원을 받기로 되였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그중의 어떤 학생들은 장학금을 한번도 받지 못한채 어렵게 계속 공부하고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리란은 북경의 유명한 조선족기업가이자 자선가인 남편 김의진에게 이같은 사실을 터놓았다. 그러자 김의진은 《한국인들까지 우리 민족 빈곤학생들을 돕고있는데 같은 민족의 우리 지성인들이 모르는척해서야 되겠는가?》고 하면서 조선족기업가들과 협의하여 북경에 조선족애심장학후원회를 세우자고 건의했다.

하여 2001년 1월, 리란은 중국조선족대학생센터(KSC) 사이트 개통 1주년을 맞으며 정인갑,정신철, 리동춘, 김록성, 김인우 등 지성인들에게 힘을 모아 장학후원회를 설립하자는 건의를 제출, 그들의 지지속에서 장학회전문 구좌를 개설했다.

3000원의 종자돈으로 구좌를 개설하고 몇달동안의 간난신고와 준비사업을 거쳐 2001년 10월 15일에 북경조선족애심장학후원회가 마침내 정식으로 고고성을 울렸다. 장학금관리위원회는 북경 조선족사회에서 성망이 높은 서영섭, 한경천, 김록성, 김인웅, 리란 등 5명으로 구성, 리란이 여러 사람들의 한결같은 추천으로 사무총장을 맡았다.

2002년 10월, 북경조선족애심장학후원회에서는 빈곤한 조선족대학생 19명을 선정하여 인당 150원씩 지급했다. 경제형편이 어려운 조선족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지급된 애심장학금은 비록 적은 돈이였지만 어려운 처지에 처한 조선족 대학생들에게는 《설중송탄》이였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말까지 북경조선족애심장학후원회에서는 10년동안에 사회 각계 330여명 후원자들로부터 루계로 71만 4200원의 장학금을 접수, 그중 230여명의 빈곤한 조선족대학생들에게 49만 1470원을 지급했다.

김의진, 리란 부부가 조남기상장, 리덕수주임을 모시고.

리란은 모금행사때마다 의식적으로 조선족기업인들을 동참시켜 그들의 적극적인 후원금을 받는 한편 호소문을 작성, 배포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흡인하고있다. 하여 장학후원회는 초기에 전부 한국의 후원금에 의거하다가 몇년전부터는 대부분 조선족애심인사들의 후원금에 의거하게 되였다.

일부 사람들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하자고 했지만 리란은 경제상황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야 된다고 고집한다.

현재 장학후원회에서는 조선족, 한국인을 막론하고 민족, 지역, 국적, 신앙을 벗어나 기업가, 일반 직원, 부녀, 로인, 중학생, 소학생 할것없이 자원적으로 성금을 보내오고있다.

취재시, 리란은 《장학후원회가 10년간 끈끈히 이어올수 있은것은 바로 이같이 따뜻한 마음을 지닌 평범한 고마운 분들이 있었기때문》이라며 감격조로 말했다.

리란은 고정된 사무실도, 전문 일군도 없어서 이곳저곳에서 사무를 보며 거의 혼자서 장학후원회의 업무를 책임지고있다.

지난해부터 그는 조선족대학생들에게 단순한 경제적 도움만이 아닌 정서적, 심리적 도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매달 카드로 송금하던 장학금 지급방식을 개변, 3개월에 한번씩 만나 교류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직접 지급했다. 하여 장학금 수혜학생들은 민족사회의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피부로 직접 느끼게 하고있다.

그는 《애심장학활동은 생활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어 용기를 북돋아주는데 의미가 크며 더우기는 민족 사회에서 기부와 나눔의 문화를 선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강조하며 더 많은 조선족들이 참여하여 애심을 바치기를 희망했다.

장학후원회 업무외에도 리란은 2000년의 북경시조선족운동회와 2002년의 북경시조선족음력설맞이야회 등 묵직묵직한 행사를 성공적으로 조직하면서 후원기업들도 재치있게 홍보해주어 서로 윈․윈의 조화를 이루며 자신의 다재다능한 조직자와 활동가의 본성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특히 2005년 북경시조선족음력설맞이야회를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조양극장에서 성황리에 개최했으며 저녁에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례당에서 좌담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우리는 다른 기업가들처럼 한꺼번에 수십만, 수백만원씩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민족을 위하는 마음을 꾸준히 10여년간 소중히 간직하고있기에 조선족행사와 선행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리란은 남편 김의진과 함께 10여년사이 조선족사회에 해매다 10-20만원씩 기부했다. 그들의 서재와 객실에 더 진렬하지 못할 정도로 가득 차있는 여러 가지 감사패, 공로패, 증서들이 이를 설명해주고있다.

감사패, 공로패, 증서들로 가득찬 서재에서.

2007년 5월에 북경애심녀성네트워크를 설립하여 회장을 담임하고 민족사회를 위한 사업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는 그해에 한국녀성부 변도윤 장관으로부터 세계한민족녀성네트워크 제4기 북경지역담당관으로 임명되였다. 지난해에는 한국외교통상부 장관으로부터 특별히 표창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수도권 민족사회와 빈곤 대학생들을 위해 10년간 로심초사한 리란사무총장, 거액의 돈을 달갑게 쓰며 나눔의 문화를 선도해온 리란의 처사는 빈곤대학생들과 조선족들의 가슴속에 감격과 베품의 씨앗으로 심어져 수도권 조선족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가는데 좋은 밑거름으로 되고있다.

북경애심녀성네트워크 행사에서(왼쪽이 리란임).

북경애심녀성네트워크 행사에서(가운데사람이 리란임).

/유경봉 박광익특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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