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연해지역 민족교육문제 홀시할수 없다

편집/기자: [ 김태국 전광훈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9-09-26 11:25:41 ] 클릭: [ ]

-연태강산유압기계유한회사 허지환 총경리와의 인터뷰

길림 반석현 태생인 허지환(50세)씨는 지식청년으로 농촌에 내려갔다가 1978년에 군에 입대, 18년간 군대에서 복무하면서 중교 부퇀급간부로 사업하다가 1995년에 지방의 좋은 직장에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그의 안해는 수도강철동성회사가 반석으로부터 연태로 이전하면서 1993년에 이미 연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지방정부에서 좋은 직장을 안배하였지만 그냥 개인사업을 하고 싶어 바로 퇴직하고 옛친구 2명과 공동투자해 대련에 무역회사를 챙겼다. 1996년하반기부터 한국회사와 니켈무역을 시작했다. 1년정도 잘 나가던 회사가 1997년 IMF때문에 파산위기를 맞는다. 니켈이 창고에 쌓이고 나중에 적치된 니켈을 렴가로 마구 처리해버리고 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허지환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공동투자를 했던 세사람은 부득이 헤여져야만 하였다. 허지환씨는 홀로 상경하여 목재경영을 시작했는데 그 사업도 여의치 않아 집에 돌아와 1년동안 몸과 맘을 푹 쉬우면서 기회를 노렸다. 99년에 접어들어 한국경제가 차츰 활성화되고 따라서 연태로 들어오는 한국인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첫 사업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실패했지만, 허지환씨는 맥을 버리지 않고 한국어를 배우는 한편 연태에 오는 한국인들을 널리 사귀면서 재기를 노렸다. 2001년부터 한국 굴삭기 유압품에 흥미를 가지고 유압품 상거래를 시작했다. 이렇게 설립된것이 바로 허지환씨가 운영하고 있는 연태강산유압기계유한회사(烟台江山液压机械有限公司)이다. 8년간 열심히 운영하여 국내 40여개 업체와 거래하면서 거의 2억원의 매출액을 창출해냈고 납세액만 2~3천만원이 된다고 한다. 연태개발구에서 두산그룹과 강산유압이 인당 납세액이 최고라는 세관측의 평이다.

허지환씨 가족은 넷, 안해와 오누이 쌍둥이가 있다. 그외 그의 부모들도 고향에서 연태로 모셔와 이웃하여 살고있다고 한다.

오누이 쌍둥이는 연태에서 크다보니 한족학교밖에 못다녔다. 우리 말도 못하는 아들딸이 이미 대학 4학년이 되고 바로 졸업을 앞두자 허지환씨는 자식들의 장래문제로 고민하는 중이다. 한국에 류학보내여 3~4년간 한국어공부도 하고 선진적인 기술도 배우는 동시 가장 큰 기대는 한국인 며느리를 맞는것이란다. 리유는 다음세대의 후대가 우리말을 제대로 할수있고 우리문화를 잊어선 안된다는 막연하지만 희망가득한 생각이란다.

아들의 류학건으로 다음달 5일경 한국에 가게 된다는 허지환씨는 연태지구 조선족교육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이면서 길림신문에서 《관내, 연해 대도시에 공립 조선족학교 분교를 세우자》는 화제로 지상토론을 벌린데 대해 매우 좋은 일을 하고있다고 치하하는것이였다.

허지환씨는 연태지역 조선족기업인들의 모임에서도 이런 문제를 놓고 토론을 많이 한다고 하면서 만일 연변이나 동북 교육발달지역들에서 여기에 분교를 세운다면 연태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면은 지원이 곤난하지만 자금투자는 가능하지 않겠냐고 피력한다.

그는 정부적 차원의 도움과 민족 사업가와 지성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영리목적이 아닌 후대교육추진이 우선시된다면 될것 같다면서 만약 그것이 사실화된다면 연태시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것이라고 말한다. 리유는 자식의 교육문제때문에 연태진출에 곤혹을 느끼는 조선족이나 한국인이 많을것인데 투자유치에 민감한 연태정부가 수수방관하지는 않을것이라는것이다.

민족교육문제에 화제가 돌려지자 허지환씨는 소학3년밖에 조선족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군에서 17년 있으면서 우리말을 감감 잊고 살다보니 창업초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왕지사를 이야기, 후대와 민족을 위한 교육차원에서 본다면 수십만조선족이 모여사는 연해지역에 조선족학교분교를 세우는것은 그 어느 각도로 보나 매우 필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아니겠냐고 반문하는것이였다.

0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윤세미용성형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