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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답사12]신이 내린 땅

편집/기자: [ 길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6-07-20 09:42:04 ] 클릭: [ ]

백절불굴의 사나이

―4갈래 홍군장정의 코스를 답사한 리완빈의 이야기

○ 김인덕

2006년 7월초, 리완빈과 조충건은 운남성 중전(中甸)을 출발하여 사천성 경내 감자장족자치주(甘孜藏族自治州) 경내에 들어섰다. 고산지대에 자리잡은 감자장족자치주는 하늘과 땅이 맞붙은 곳으로 선경이 따로 없었다. 흰 구름이 높이 솟은 산봉우리를 스쳐지나가고 넓은 초원에서 양뗴들이 여유자적하게 풀을 뜯고있었다. 멀리 돌밭으로 목재를 나르는 야크떼들이 느릿느릿 걸어가고있었고 발밑에서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산들바람에 몸을 가볍게 움직이고있었다. 선경속에 시간은 멈춰서고 리완빈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 되는 느낌이였다.

리완빈과 조충건은 해발 4700메터 되는 투얼산(兎耳山)에 올랐다. 멀리 산봉우리에 걸린 폭포는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듯 장관을 이루었다. 이곳에는 가는 곳마다 크고작은 폭포수가 하늘에서 쏟아지고있었다. 리완빈과 조충건은 북쪽 기슭을 따라 산아래로 내려오고있었다. 방금까지 새파랗게 개였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굵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리완빈은 짐속에 넣어두었던 일기책을 꺼내 품속에 넣었다. 그 일기책에는 장정길에서 적은 리완빈의 일기와 연도의 정부나 우전국에서 찍은 소중한 증명도장이 찍혀있었다. 리완빈은 장정길을 답사했다는 징표로 되는 일기책을 천금 주고 살수 없는 보배처럼 아끼고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유람객들이 리완빈에게 방수가방을 주어 소중한 일기책을 비에 젖지 않게 간수할수 있었다.

계곡에 들어서자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기슭을 핥으며 굽이굽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맑은 계곡물은 갈길이 바쁜지 구슬 같은 흰갈기를 날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사천리로 리완빈을 등지고 남으로 남으로 흘러가고있었다. 불현듯 요란한 발동기소리가 들려오더니 울긋불긋 민족복장차림을 하고 오토바이를 탄 대오가 어디론가 줄을 서서 가고있었다. 리완빈과 조충건은 풀밭으로 걸어가면서 사진을 찍다가 한 장족목민을 만났다. 그 장족목민은 여름에는 양을 몰고 이동하면서 방목하다가 겨울에는 집에 돌아간다고 하였다. 대화를 나누다가 헤여질 무렵 목민은 리완빈에게 저녁에 어디서 자는 가고 물었다. 리완빈은 목장이 있는 마을에서 밖에다 덴트를 치고 야외취침을 한다고 말했다. 맘씨 고운 목민은 리완빈에게 자기 집에서 하루밤 묵어가라고 권했다.

《여기에서 10리 가량 북으로 걸어가면 우리 마을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하루밤 편히 묵어가시오. 집에는 안해와 아이 둘이 있습니다.》

《내가 당신 안해도 모르는데 어떻게 묵어갑니까?》

《방법이 있지요. 내가 당신의 비디오카메라에 당신을 하루밤 재우라는 부탁을 담으면 되는거지요.》

리완빈은 소박한 목민의 청을 거절할수가 없어 지니고있던 비디오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들이 대화를 하는 사이 양떼들이 저만치 멀어져갔다. 촬영을 마친 목민은 돌멩이 하나를 주어 힘껏 뿌렸다. 그러자 멀리 갔던 양떼들이 머리를 돌려 목민한테로 돌아왔다. 목민은 양떼를 몰고 5킬로메터 떨어진 산등성이까지 리완빈과 조충건을 바래다주면서 산아래에 있는 마을이 자기네 마을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들이 목장마을에 도착하니 조무래기들이 물샐틈없이 빙 둘러쌌다. 리완빈은 몸에 지니고있던 초콜릿이며 과자, 사탕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들은 길에서 만났던 목민의 집곁에 덴트를 쳤다. 목장곁에 덴트를 치는 원인은 첫째로 안전을 위해서이고 둘째로 마을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볼수 있었기때문이다. 리완빈은 장족지구에 들어서면서 어느때보다 여러가지 식품을 푼푼히 장만했다. 때로는 일주일치 식품을 장만하기도 했지만 연도에서 애들을 만나 나눠주고나면 이틀도 지나지 않아 동강이 나기가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마을이 드문 지역에서 배를 곯을 때가 더 많아졌다. 목민들은 소똥으로 집을 짓고 소똥으로 음식을 끓였다. 리완빈은 늘 허기지다보니 입에 맞지 않은 음식도 곧잘 먹을수 있었다. 이 지방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도 많았다. 어떤 목민가정들에서는 태양열을 리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고있었다. 전기가 없는 고장이라 리완빈은 저녁마다 초불을 켜고 책을 보는것으로 고독을 달랬다.

이틀후, 리완빈과 조충건은 리당(理唐)현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리완빈은 4천원을 주고 한번도 사람을 태운적이 없는 밤빛말 한필을 샀다. 이튿날 그들은 현성을 떠나 감자로 향하는 공로에서 행군하고있었다. 야생말이나 다름없는 말이라 언제 도망칠지 몰라 리완빈은 말끈을 손에 감고 걸었다. 정오의 태양은 따갑게 리완빈의 정수리를 비추고있었다. 지칠대로 지친 리완빈은 말끈을 손에 감고 끌려가듯 가파른 공로길로 오르고있었다. 이때 자동차엔진소리에 놀란 말이 공로를 벗어나 산비탈로 내뛰다가 걷잡을수 없이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말끈을 손에 감고있던 리완빈도 말끈을 풀 사이도 없이 말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모든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리완빈은 말과 함께 가파른 언덕아래로 20메터가량 굴러갔다. 말이 멈춰선후 리완빈은 몸을 일으켰다. 걸으려고 한발 내디디니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리완빈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말을 타지 않고 10킬로메터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한후 한 자그마한 려관에 짐을 풀었다. 저녁이 되자 통증은 더욱 심해지고 다리가 부어 일어설수조차 없었다. 맘씨 고운 려관주인은 차를 내여 리완빈을 병원에 실어다주었고 사흘 려관에 묵는 동안 주숙비 한푼도 받지 않았다.

3일후, 다리의 상처가 나은 리완빈은 조충건과 함께 길을 떠나 5일후에 신룡(新龍)현성에 도착하였다. 신롱현성에서 리완빈과 조충건은 작별인사를 했다. 리완빈은 멀어져가는 조충건의 뒤모습을 보면서 눈에 이슬이 맺혔다.

사천성경내에 들어서면서 말에게 풀을 뜯기는것이 리완빈에겐 큰 근심거리였다. 말은 승냥이가 근처에 오면 고도로 경계하면서 풀을 뜯지 않았다. 그때면 리완빈은 저녁을 먹기 바쁘게 말을 지켜야 했다. 혹시 승냥이가 나타나면 담배를 피우거나 전지불을 비추는것으로 승냥이의 접근을 막았다. 근처에 풀이 없으면 낫을 갖고 풀을 베 왔다. 풀이 작은 봄에는 새벽에 일어나 말을 옮겨 매야 했다. 또 풀을 먹인 다음엔 또 량식을 먹였다. 말이 풀만 먹으면 배탈을 만나기때문이다. 매일 말에게 풀을 뜯기고 사료를 장만하는것은 아주 힘든 고역중의 한가지였다.

어느날 리완빈은 늦게까지 행군하고 공로곁에다 덴트를 쳤다. 이튿날 리완빈은 날이 밝자 자리에서 일어나 덴트에서 나왔다. 그런데 공로곁에 3대의 차가 멈춰서 있었고 7~8명이 모여서 리완빈이 있는 쪽을 바라보면서 웅성거리고있었다. 리완빈은 웬일인가 덴트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머리가 쭈뼛이 일어서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두운 밤에 덴트를 벼랑가에 쳤던것이다. 덴트를 고정시키는 마지막말뚝은 바로 벼랑끝에 꽂혀있었다. 한걸음만 더 나아가면 깊은 벼랑이였다. 리완빈은 덴트를 거둘 때 먼저 세개의 말뚝을 뽑고 마지막 말뚝은 덴트의 천을 잡아 당겨 뽑았다.

2006년 8월 28일, 리완빈은 사천성 홍원현 색지향(红原县 色地乡)에 위치한 초지를 지나다가 핸드폰을 초지에 떨구었다. 핸드폰에는 연도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입력되여있었기에 꼭 찾아야만 했다. 리완빈은 오던 길을 돌아서 반나절 걸으면서 샅샅이 수색했으나 허사였다. 리완빈은 늦은 저녁에 향장 리지강(李志康)을 찾아갔다. 향장은 리완빈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삶은 야크고기를 내놓았다. 리완빈은 식사를 하면서 향장에게 핸드폰을 잃어버린 사연을 말하였다. 이때는 밤 9시도 넘은 때였다. 향장은 당장 향간부 6명을 불러 리완빈과 함께 핸드폰을 찾으러 초지로 나갔다. 그들은 수시로 리완빈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면서 리완빈이 걸어온 길로 초지 깊숙이 들어갔다. 밤 10시가 되여서야 일행은 핸드폰을 찾을수 있었다.

리완빈은 초지를 옹근 일주일동안 걸었다. 리완빈은 두번째로 초지를 지나다보니 길도 익숙하고 모든 곤난을 이겨낼수 있었지만 인가가 드문 곳이라 밤마다 승냥이가 출몰했기에 말이 풀을 뜯는것을 지키느라 온밤 뜬눈으로 말을 지켰다. 말은 제대로 먹지 못하면 이튿날 아예 제자리에서 뻗치면서 걸으려 하지 않는다. 당시 홍군은 쌀 한톨 없이 초지를 침대로 비가 오는 날씨를 모기장으로 7일간 초지를 건넜다. 리완빈은 당시 홍군이 갖은 곤난을 전승하면서 초지를 건넌 경과를 생각하면서 지친 몸을 끌고 모든 곤난을 전승해나나가면서 초지를 벗어났다.

9월초, 리완빈은 감숙성 경내에 들어서면서 물고생을 많이 했다. 감숙성의 농촌마을들에서는 비물을 가두어놓고 음료수로 마시고있었다. 감숙성은 황토고원에 자리잡은지라 수토류실을 피하기 위해 공로가 산꼭대기에 있고 마을이 중턱에 자리잡은것이 특징이였다. 리완빈은 공로로 걷다가 마을이 멀어 물이 없으면 길옆에 고인 물을 마시기가 일쑤였다. 때로는 웅뎅이에 고인 비물에 쥐의 시체가 둥둥 떠있기도 했다. 당지 사람들은 비물을 끓여먹어도 배탈을 만나지 않지만 리완빈은 늘 배탈로 몸살을 알아야 했다.

2006년 국경절날, 리완빈은 질부현(迭部县)에 있는 장족청년 숴난쟈춰(索南加措)네 집에 도착하였다. 이때로부터 리아이더, 양초, 리완빈, 숴난쟈춰는 4명이서 함께 한달동안 장정을 함께 하였다. 리완빈은 주인으로부터 장족들이 가장 귀한 손님들에게 선물하는 하다를 받았다. 리완빈은 그 자리에서 돈 300백원을 꺼내 주인에게 주면서 장정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하다를 선물하라고 부탁하였다. 이때로부터 리완빈은 장족청년 숴난쟈춰(索南加措)와 같이 한달간 나머지 길을 함께 걷게 되였다.

얼마후 리완빈은 왠양에서 영국청년 리아이더(李爱德)일행을 다시 만났다.

10월 12일, 리완빈은 말을 몰고 감숙성 중부에 위치한 통위현(通渭县) 현성으로 가고있었다. 밤 8시가 지나도록 마을이 나타나지 않자 리완빈일행은 계속하여 행군하고있었다. 어제밤부터 하루종일 비가 내린지라 길은 매우 질척거렸고 가끔씩 습지도 나타났다. 어두컴컴한 밤인지라 길이 잘 보이지 않아 말이 그만 습지에 빠졌다. 3명이서 힘껏 말을 당겼지만 이미 네다리가 몽땅 습지에 묻힌 말을 좀처럼 끌어낼수 없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어 7명 촌민들의 힘을 빌려서야 겨우 말을 습지에서 건져낼수 있었다.

10월 22일, 리완빈은 근 일년간의 대장정을 거쳐 홍군 제2방면군의 장정종착지인 장태보(将台堡)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리완빈의 장정답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리완빈은 제3차장정을 시작하려고 3일후 홍군 제25군의 장정출발지인 하남성 라산현(罗山县)으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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