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 [
홍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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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12-08 12: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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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저한테 굳이 물만두를 빚어 먹자는 리유 알았지요”
“‘어제는 립동날입니다. 립동날에 중국에서는 물만두(饺子)를 먹지요. 선생님도 맛 보십시요.’라며 물만두를 들고 오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금방 먹었다는 데도 더 먹으라며 기어이 물만두를 놓고 가는 학생들입니다. 감동이지요, 행복하구요.”라며 11월 8일 취재팀과 만난 길림대학 외국어학원 조선(한국)어 학과의 한길로 (韩吉路,37세) 부교수는 말한다.
길림대학 외국어학원 조선(한국)어 학과 한길로 부교수
그는 길림대학 외국적 교원으로 중국에서 생활한 지 4년 밖에 안되지만 교사간이나 사생들 사이가 모두들 친밀하고 화목해 학교 분위기가 “외가집에 온 것처럼 너무 마음이 편합니다.”고 소감을 턴다.
단오에는 쭝즈, 추석에는 월병…중국의 전통 명절 때마다 명절 음식을 챙겨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 날씨가 추워지면 옷을 두껍게 입으라며 걱정해주는 학생들, 개학이면 무거운 짐과 함께 고향의 특산물을 들고 와서 맛보라며 책상에 올려놓고 나가는 학생들…“이런 학생들이 있어 저는 이곳 길림대학에서 가족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을 많이 느낍니다.”고 한길로씨는 말한다.
2020년,2학기 강의를 마치면서(앞 첫번째 한길로씨)
한편 한길로씨는 학생들의 생일이거나 특별한 날이면 주머니를 털어 학생들과 회식하기도 하고 학생들과 한국 전통 유희인 윷놀이도 놀고 학생들이랑 어울려 롱구랑 탁구랑 배드민턴이랑도 치며 그들과의 가는 정 오는 정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2020년 한길로씨는 처음 중국에서 음력설을 쇠게 되였다. 영화구경이나 할가하며 생각하고 있는데 학과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음력설인 데 함께 명절을 보내자는 초대 전화였다. 그믐날 학과장네 집식구들과 함께 물만두도 빚어 먹고 학과장의 시어머니와 얘기도 나누며 즐겁게 보낸 그다.
2021년 겨울, 학생들과 함께 학교의 눈을 친 후 기념사진을 남긴 한길로씨(왼쪽 6번째) |
“‘누구는 장가 갔다더라’, ‘누구 아들은 성공했다더라’는 부모님들의 ‘잔소리’없는 설을 중국에서 쇠여봤어요.”라며 우스개로 말하는 한길로씨의 얼굴에는 달콤한 행복함이 묻어났다.
중국에서 생활해온 지 벌써 4년이다. 중국에 오기전에는 중국의 음식문화 등 생활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가고 걱정이 많았다. 처음에는 음식에 중국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강해서 조금은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고수의 향기도 반갑게 느껴지고 특별히 마라탕을 좋아한단다. 또한 한국에 있을 때는 벌컥벌컥 랭수를 마셨지만 지금은 따뜻한 룡정차(龙井茶), 철관음차(铁观音茶)를 더 많이 마신다. 따스한 차를 마시니 강의로 힘들어 진 목 보호에도 좋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느낌에서이다.
그가 처음 장춘에 오던 날은 2018년 10월 중순, 한국 습관 대로 내복을 입지 않고 비행기에서 내린 그는 “그날 어찌나 춥던지 눈물이 저절로 나오더라”고 회고한다.
“장춘의 겨울은 서울보다 엄청 추워요. 하지만 이 몇해간 지내다 보니 장춘에는 마음이 따스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한테 특별했던 경험중의 하나가 동지날에 먹었던 물만두였습니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매우 특수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만두를 빚는 과정, 먹는 결과까지 그 의미가 따뜻하고 다정한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저와 함께 만두를 먹자고 하는 것이 저에게는 ‘우리 더 친밀하게 가족처럼 지내요’라는 의미로 들렸습니다.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중국이 아닙니다. 한국 서울과 비교해볼 때 크게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교통, 통신, 의료, 숙박 등 모든 점들이 잘 구비되여있어 살기가 편안한 곳입니다.”
나젊은 한국인 교수를 ‘따거’처럼 따르는 학생들
한길로씨는 자기 한자 이름이 ‘韩吉路’여서 중국 길림성에 정착하게 된 것을 운명인 것 같다고 말한다.
한국 동국대학교에서 석사, 박사 학위 받고 중국인민대학에서 방문학자(2016―2017)로 있다가 다시 한국 동국대학교 국문(한국어) 강사로 있던 그는 2018년 10월, 우연한 기회에 길림대학 외국어학원 조선(한국)어 학과 외국적 강사로 초빙되여 장춘에 오게 되였다.
“그때는 일이년을 근무하다가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과의 정이 깊어지고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게 되면서 중국의 근무환경과 생활환경에 잘 적응하게 되였습니다. 앞으로 쭉 중국에서 근무하고 생활할 생각입니다.”
2018년 외국어학원 더빙(配音)대회에서 원어민 교사들과 함께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한길로씨(앞 오른쪽 두번째) |
올해 1월 길림대학에서 부교수로 진급한 한길로씨는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에 익숙치 못한 1학년 학생들에게는 주로 중국어로 가르치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한국어를 많이 사용하며 연구생들은 전부 한국어로 가르치고 있다.
한국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한 그는 한자를 쓰는 데는 막힘이 없다. 그러나 아직 중국어를 마음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그는 미리 강의 내용을 외워서 수업하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소통이 잘 안될 때면 글로 써서 학생들이 리해할 때까지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 학생들과 함께 장춘의 ‘쩌유산’( 这有山)에서 (왼쪽 첫번째 한길로씨) |
길림대학 외국어학원 조선(한국)어 학과 감우흔(甘宇昕) 학생은 “한선생님은 온화하고 매우 내심성이 있는 훌륭한 선생님이십니다. 그이는 중국어 구사에서 막힐 때면 한국어, 중국어, 영어까지 사용하면서 무슨 방법을 대서라고 우리가 알 수 있을 때까지 가르쳐 주십니다.” 고 감명깊게 말한다.
“교원과 학생들 사이가 서로 배우고 보완하는 수업환경이 더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저는 한국어 선생이 될 때도 있고 중국어 학생이 될 때도 있습니다.”고 한길로씨는 말한다.
“‘打车’의 어원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왜 차를 때린다고 할가요?”, “‘닭알’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나왔을가요?” 학생들의 이런 질문에 한길로씨는 중국어, 한국어 어원을 찾아보고 문법도 찾아보며 한국어도 다시 배우고 중국어도 더 깊이 배우고 있다.
한길로씨에게는 지금 300여명의 위챗 친구들이 있다. 대부분이 이 4년 동안 친해지고 학교를 졸업한 제자들이다. 이미 졸업한 학생들은 이젠 한길로씨를 ‘따거’(형님)처럼 생각하고 믿고 따른단다. 가장 많이 묻는 것은 앞으로의 진로 문제이며 고민 상담도 많이 한단다.
“이국타향에서 생활하는 나와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그런 학생들과의 사이는 서로 의지하는 사이입니다.”
“자주 만나다 보면 서로를 리해하고 정이 듭니다”
“코로나19전에는 아버지 생일이나 집안에 결혼식이 있으면 금요일에 한국에 갔다가 일요일에 중국에로 돌아왔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이렇게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이웃입니다. 부모와도 때로는 얼굴을 붉히는 쟁론이 있듯이 한국과 중국은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오해도 있고 론쟁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화해를 하면 됩니다. 그러자면 민간교류를 많이 해야 합니다. 만나서 오해를 풀고 나면 더 가까워지고 정도 두터워 질 것입니다.”라고 한길로씨는 나름대로 견해를 밝힌다.
온라인 수업중인 한길로씨
2022년 한국정부 인사혁신처의 국가인재로 선정되여 등록된 한길로씨는 젊은 세대로서 중국 체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인터넷상에서의 한국과 중국의 신세대들의 갈등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봅니다. 길림대학에 류학 온 한국 학생들은 많을 때에는 200명 정도 됩니다. 중국에 직접 와 보고 체험해 본 후에 그 친구들의 관점은 달라집니다. 같이 밥을 먹고 대화하고 나누는 그런 경험이 적다 보니 량국의 신세대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중국에서 살면서 제일 인상 깊은 점이 무엇인가고 물으니 한길로씨는 “중국의 우주산업 발전”이라면서 “중국은 미래를 지향하고 세계를 이끌고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우주산업은 인류에게 복지를 마련해주고 미래에 대한 세계인들의 희망을 부풀게 합니다.”고 말한다.
/홍옥 최승호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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