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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연변]“제2고향—연변의 교통 발달과 쾌속적인 변화를 보니 자랑스럽네요”

편집/기자: [ 리전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8-14 18:13:24 ] 클릭: [ ]

—26년 지기 연길 퇴역군인이 교통으로부터 본 제2고향 연변의 변화

리군광이 2000년 부대로 기층취재를 내려가면서 남긴 기념사진  

“18살에 연변에 와서 복역하고 가정을 꾸려 생활하면서 근무해온지 어언 26년이 되였어요. 제2 고향—연변의 교통 발달과 쾌속적인 변화를 보니 자랑스럽네요”

연길뉴스넷 부총편집 리군광(44세)은 ‘연변사람’으로 제2 고향—연변의 교통 발달과 변화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1978년 하남성 안양시(安阳市) 내황현(内黄县)에서 태여난 리군광은 1996년 12월 하남성 내황현에서 참군하여 중국인민무장경찰부대 연변주지대(武警延边州支队)에 입대했다. 2003년 12월에 제대한 그는 연변조간신문(延边晨报)에서 촬영기자 사업에 종사했으며 2013년 1월에 연길뉴스넷 (延吉新闻网)으로 전근하여 기자 사업에 종사, 지금은 부총편집을 맡고 있다.

대회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리군광

리군광은 26년 동안 ‘연변사람’으로 살아오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 발전하는 제2 고향의 모습을 지켜봤고 특히는 교통 발달이 가져다준 변화와 혜택을 가장 깊게 실감한다고 했다.

교통은 한개 지역 발전의 동맥이고 내부와 외부를 련결해주는 명맥이다. 리군광의 마음속에서 교통은 그와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을 직접적으로 이어주는 교량이였다. 특히 교통 발달이 가져다준 혜택은 두 지역 간의 로정 뿐만 아니라 그와 집 사이의 거리도 단축시켰다.

리군광은 “지금은 하남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편해졌어요.”라고 하면서 “오늘날 하남성 고향집으로 가려면 외출 당일로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일 수 있지만 갓 입대하여 고향집으로 돌아갈 때면 고난의 출행이였지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1996년 12월에 입대하여 연길에 첫걸음을 내디뎠던 지난날이 마치 어제 일만 같다고 했다. 리군광은 집에서 해방표 트럭을 타고 안양에 도착한 후 안양에서 록색 바곤 기차를 타고 몇번 역을 갈아타면서 2박 3일이 지나서야 연길에 도착했다.

1996년 갓 입대할 때의 리군광

“지난날 교통의 불편함은 연변의 경제 발전은 물론 연변을 찾는 관광객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였지요.”라고 말하는 리군광, 하여 교통이 불편했던 예전에는 거리와 소요시간이 멀다보니 고향집으로 가려면 짧은 명절 기간에는 엄두도 못냈고 3년동안 가지 못했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오늘날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는 물론 정주 직행 비행기도 있어요. 교통이 발 빠른 변화를 가져왔지요. 예전의 2박 3일의 로정이 10여시간도 안되여 집에 도착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고향집으로 통하는 교통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리군광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교통의 변화는 연길의 급속한 발전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1999년 연변 력사상 첫 고속도로인 연길—도문 구간 고속도로 건설이 시작되였고 이어 고속도로, 립체교, 턴넬 등 교통시설들이 파죽지세로 일떠섰다. 20여년간의 노력을 거쳐 연변의 8개 현, 시는 이미 기본적으로 고속도로 상호 련결과 상호소통을 실현했다. 또한 연변은 여러 갈래의 국도, 성도, 현도, 촌도를 적극적으로 새로 건설하여 빠르고 편리하며 사통발달한 교통망을 점차 형성했다. 특히 향촌도로 건설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 성과를 이룩했는바 촌마다 마을마다 세멘트 도로를 깔았고 서로 련결되고 서로 통하는 종합적인 교통망이 기본적으로 형성되였다.

2015년 9월 20일 장훈 도시간 고속렬차가 개통되였고 2021년 3월 연길—정주—란주 항로가 개통되였다. 교통의 쾌속적인 발전은 지난날 불편했던 교통으로 고향집 나들이에 곤혹을 겪었던 리군광을 비롯한 외지인들에게 전례없던 편리를 가져다주었다.

“1999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마지막 림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유감이였어요.” 리군광은 교통이 불편했던 지난날을 회고하면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 한구석이 무겁기만 하다고 했다.

오늘날 교통의 변화, 발전으로 리군광의 고향집까지의 행차는 지난날의 2박 3일에서 오늘날 비행기를 타고 고속철을 갈아탄 후 뻐스까지 타면서 길에서 소요되는 전반 시간까지 다 합쳐도 10여시간도 안되게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여 지금은 해마다 꼭꼭 한번씩 고향집 행차를 떠난다고 했다.

“연변으로 오기 전에 연변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요? 연변에 대한 첫 인상은 어떠했나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리군광은 “입대하기 전에는 연변에 대해 몰랐고 중조 변경으로 간다는 것만 알고 있었어요. 연길 기차역에 도착하여 연변 연길에 대한 첫 인상은 때가 마침 엄동설한이였고 중부지역에서 살다가 동북으로 오다 보니 엄청 추운 것이 인상적이였는데 도시가 아담하면서도 깨끗했어요.”라고 회억했다. 그간 복역하면서 느낀 점이라면 연변인민들은 열정적이였고 특히 조선족들은 더욱 열정적이였으며 선량하고 례의가 바르며 후더웠다고 했다.

복역기간 리군광은 정상적인 군사훈련을 마친 후에는 학습을 열애했는데 특히 촬영과 글쓰기를 즐겼다. 하여 늘 부대 간행물에 작품을 발표했었다.

2003년 12월 리군광은 제대했다. 당시 연변조간신문사가 금방 설립되여 기자를 모집하고 있었는데 기자직업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던 리군광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신청했고 결국 채용되여 지금까지 보도사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행복하고 단란한 리군광네 가족

현재 리군광은 파릇하던 청년에서 안해와 두 아들을 거느린 집안의 가장으로 오붓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안해는 리군광이 제대한 후 하남성 고향에서의 직장을 버리고 리군광을 따라 연길로 왔는데 남편 리군광이 열애하는 모든 일에는 드팀없는 지지한다고 했다. 현재 안해는 연길백화청사주식유한회사에서 출근하고 있고 두 아들은 조선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장남은 곧 연길시제2고급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며 둘째 아들은 연길시중앙소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두 아들을 전부 조선족학교에 보내게 된 데 대해 리군광은 “두 아들이 전부 연길에서 태여났고 중국조선족 집거구인 연변의 일원으로서 아이들로 하여금 조선족문화를 체계적으로 알게하고 언어 하나라도 더 장악하도록 하기 위해 조선족학교에 보내게 되였어요”라고 말했다.

“가정이 행복해야 일터도 즐겁지요.”라고 말하는 리군광, 그는 선후로 개인 3등공 두번, 우수당원 두번, 길림성 홍수대처 선전보도 선진개인의 영예를 획득했다.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지요. 안해의 드팀없는 지지와 신임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라고 덧붙였다.

1999년 공을 세우고 표창을 받다

기자직업에 종사해오면서 리군광은 “사통발달한 교통이 가져다준 연변의 거대한 변화를 견증해왔지요.”라고 말한다.

연변의 교통사업은 거족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사통발달한 교통운수망의 거대한 변화를 실현했다. 사통발달 뻥 뚫린 종합 교통시스템은 연변의 경제 사회 발전을 이끄는 ‘선도자’로 되여 아름다운 연변 건설을 질적으로 추진하는 데 유력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리군광은 기자가 되여 곳곳을 누비면서 제2 고향의 변화들을 지켜보고 체험했고 이러한 변화들을 자신의 뉴스 보도에 남김없이 반영했다. 례하면 연변 연길의 도시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고층건물들이 우후죽순마냥 일떠서는 변화며, 고속도로 개통으로부터 고속철도 개통에 이르기까지 연변의 쾌속적인 발전과 변화를 홍보하고 반영해왔다.

“제2의 고향 연변에서 저의 기자 꿈을 이루었고 영글어가면서 그 꿈은 더욱 큰 행복과 희망으로 커져가고 있습니다.”라고 리군광은 말한다.

남북종횡, 동서관통, 고능률 일체화의 립체 교통망 구축과 더불어 제2의 고향—연변의 경제, 사회 발전의 도약의 꿈을 안고 오늘도 리군광은 기자사업에 열정을 불태워가고 있다.

/길림신문 리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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