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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조선족' 이라는 부름이 반가운 '외국인 전문가'부부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6-11 10:13:55 ] 클릭: [ ]
[재중한국인 행복스토리6] BNC 기획사 대표 김한수 이숙 부부의 연변 사는 이야기
 

장백산천지에 오른 BNC 기획사 김한수 이숙 부부

현재 연길에서 BNC 기획자문유한회사, BNG 교육과학유한회사 대표로 사업하고 있는 김한수교수는 90년대 초 한국의 한양대학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그것도 IMF시기 국비생으로 미국의 우수한 명문대학인 조지아공대 산업공학과로 류학을 간 엘리트다.

그가 미국에서 박사공부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미국이나 한국의 여느 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면서 대우받는 일이였다. 그러나 미국의 조지아공대 산업, 공학 박사를 마치고 중국 연변의 과학기술대학 교수로 떠나올 때는 “한 3년 봉사를 하고 돌아가자.”는 가벼운 마음이였다고, 18년을 쭉 중국 연변에서 살아온 지금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인연이면 천리밖에서도 만난다고 했는가

미국 조지아공대 공학박사 수여식장에서의 가족사진 (2004.5)

2004년 미국에서 박사공부를 마치고 ‘한 3년쯤’ 연변행을 작심하지만 그때까지도 그는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주변의 중국 류학생들에게 물어도 “그 쪽은 당신 같은 사람이 살 곳은 아니다.”는 충고만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 곳의 랭면은 기막히게 맛있고 그곳 사람들은 또 축구를 잘한다.”는 말도 들었다.

모르는 것이 많으니 호기심만 잔뜩 커지는데 인터넷으로 찾아 볼 수 있는 ‘연변'이라야 고작 〈연변일지〉라는 5분도 채 안되는 짧은 영상물 한편 뿐이였다. 

연변의 과학기술대학을 방문한 여느 영화감독이 인터넷에 올린 그 영상을, 연변이 어디냐는 지인들의 물음에 그는 몇십번을 본의 아니게 이 영상을 보았다고 한다.
 
2003년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찾아 본 〈연변일지〉영상에서의 조선족녀성

<연변일지>영상은, 연길시 북쪽에 위치한 과학기술대학 근처의 한 낡은 뒤골목에서 60대의 조선족녀성이 종이함에 넣은 향수리배(산돌배)를 팔고 있는 장면이였다.

“두근에 1원 50전.” 하면서 함 안에 든 향수리배를 좋은 걸로 골라 저울판에 담고 있는 녀성과 배를 사는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가 들린다.

“왜 자꾸 고르세요? ”

“좋은 걸로 드리려고요.”

“괜찮아요. 또 팔아야지요. 적당히 되는 대로 주세요.”

“아니, 그래도 좋은 걸로 드려야지요…”

김한수 박사는 그 장면을 보고 또 보면서 속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이렇게 어려운 곳에서 일할 수록 더욱 의미가 있을 거야…)

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큰 걸림돌이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아들을 따라 미국에까지 와서 살고 있는 병약한 부모님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아들에게 하루는 아버지께서 속내를 짐작이라도 하신듯 말씀하셨다.

“미국에서 살아 더 좋은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살아 더 좋은 것도 아니더라. 우리는 아들과 같이 사는 것이 제일 좋으니까 중국으로 가려면 우리도 함께 가자꾸나.”

부모님의 그 한마디에 가족 3대가 미국에서 연변으로의 대행차를 하게 되였던 것이다.

기숙사에 짐을 부리고 3세대의 살림살이가 시작되였다. 김한수 교수 부부는 교단에 올라 교수를 해야 하는데 안해는 둘째를 임신중이라 몸이 무거웠다. 거기에다 아들애를 보살피랴, 중풍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돌보랴 늘 일손이 딸렸다.

기적 같이 만난 도우미아줌마를 모시고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도우미 아줌마를 들이기로 하고 하루는 김한수 교수가 퇴근길에 주방에 들어 서는데 웬 아주머니가 설걷이를 하고 있길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도우미 아주머님 오셨네요.”

도우미 아줌마가 들어서는 주인을 향해 머리를 돌리는 순간, 김한수 교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쩌면 미국에서 〈연변일지〉를 보고 또 보면서 목소리마저 익혔던 그 배를 팔던 아주머니일 줄이야! 세상에 어쩌면 이런 기적 같은 인연도 있단 말인가?!

사랑과 포용, 개방과 발전의 요람에서

연변에 온 이듬해인 2005년 말, 병환에 계시던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저세상으로 가셨고 연길시 북쪽 과기대동산 납골당에 묻혔다. “이것도 아마 연변을 못 떠나는 리유중의 하나”라고 김한수 교수는 말한다.

그리고 둘째 딸이 태여났고 도우미 아줌마의 손길아래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그 뒤로 또 셋째 아들이 연변에서 태여나 지금 열다섯살을 잡고 있다.

가족일동

“이곳은 사람들이 특별히 좋아요. 그리고 말이 통하고 정서도 통하는 데다가 음식도 입에 맞으니 사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어요..” 안해 이숙 교수는 연변생활에 퍽 만족해 하고 있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치렬하게만 살았는데 이곳에서는 서로 간의 정을 느끼며 살 수 있으니 정말 ‘사람 사는 동네’답네요.”

이숙 교수는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경영정보시스템 학과를 가르치면서 많은 학생들과 접촉해 왔는데 학생들 뿐만 아니라 연이 닿은 사람들은 모두 친구처럼 대해주고 되려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고 말한다. 이곳 사람들은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당연한 처사에도 감사해 하며 오래토록 잊지 않고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할 세라 수시로 찾아 준다고 덧붙인다.

중국은 비지니스사업에서도 필요한 제도장치들이 제때에 보완되고 또 핸드폰결재 같은 혁신기술의 변화는 한국이나 미국보다도 훨씬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에서 중국의 무한한 발전 잠재력이 느껴지고 희망을 느끼며 살게 되니 참으로 행복하다고 말한다.

김한수 교수 또한 연변에서 사는 느낌을 ‘감동’으로 표현하였다. 당시 과학기술대학에는 산학협력처라는 회사차원의 기구가 있었는데 다른 교수들과 함께 BNC기획자문회사를 설립하고 김한수 교수는 회사 부총경리와 산학협력처 처장직을 겸직하고 있었다. 

BNC 직원들과 함께

2009년경, 변경도시 도문시 정부에서 건시 45주년을 맞으면서 두만강광장 개발 자문을 요청해왔다.

“당지 정부에서 외국인 전문가들을 믿어 준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였는지 모릅니다.” 김한수 교수는 어제일처럼 추억을 되살렸다.

도문시 정부의 요청으로 처음 디지털전시관부터 설계하고 또 문헌에 따라 도문시 내의 전체 소수민족수를 상징하는 12개 기둥을 두만강 광장에 세우면서 설계를 그려갈 때 도문시를 연변의 ‘변경 제1도시’로 건설하려는 열망을 안고 감동과 헌신 속에 벅차게 뛰였던 나날들은 지금도 가슴을 뛰게 한다고 김한수 교수는 자랑스러워 했다.

그렇게 도문시 소년궁전과 중국조선족무형문화유산전시관 설계 및 건설에 동참하게 되였던 것이다. 두만강 광장엔 조선민족 전통정자가 고풍스럽게 들어 앉고 광장 한켠에는 또 커피 한잔 마시면서 두만강변의 운치를 감상할 수 있는 혁신건설의 신선함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도문시 두만강광장 (2010).

BNC 기획회사에서는 두만강광장에서 열리는  2010년 제 1회 두만강문화관광축제 기획과 조직을 맡아 나서기도 하였다. 도문시 시민들이 중심이 되여 두만강광장에서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과 하나로 어울리며 중국조선족두만강문화광광축제를 즐기고 또 축제로 도시 발전을 이끄는 광경은 그야말로 바라보기에만도 큰 감동이였다고 김한수 교수는 말했다.

중국조선족빛축제와 함께 새로운 희망과 사명을 꿈꾸며

고도의 책임감과 헌신, 봉사로 열심히 일하는 과기대 산학협력처 기업들에 대한 연변 각지의 믿음과 기대가 점점 커져 갔다. 훈춘 방천의 3국풍경구 룡호각, 연길시서부지구도시개발 정보통신(IT)부문 컨설팅, 룡정시 시민문화예술활동중심 건립프로젝트, 연길시소년궁 건립프로젝트, 길림한정인삼공사 ‘은백연’연변축구단 홍보프로모션 총감독 등 중요한 프로젝트에 초청받게 되였다.

2016년 길림성정부 ‘외국인전문가'초청대회에 참가한 김한수 교수

성과가 이루어지면서 여러 도시 정부와 해당 부문으로부터 공로패를 증정받고 각종 영예를 받아 안으며 벅찬 긍지를 느꼈다. 김한수 교수는 특히 2016년 길림성인민정부로부터 ‘우수외국인전문가'상을 수상하면서 연변에 더욱 깊은 애정과 책임을 느끼게 되였다고 한다.

“저는 워낙 교육과 산업의 결합에 늘 관심을 가지고 연변의 젊은 기업가들에게 사업아이템을 주면서 그들을 이끌어 산업도 이루고 이왕이면 창업까지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이 노력해 왔습니다.” 김한수 교수는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일관한 꿈이기도 하다고 한다.

얼마후 과학기술대학은 운영이 정지되고 협력처 멤버들은 각기 흩어져 갔다. 하지만 김한수 교수는 산학협력의 운영가치를 그대로 살려 지역사회에 공헌하려는 의지를 굳히고 그 명맥을 이어갈 뿐더러 BNG 교육과학유한회사를 차리고 그 경영범위를 넓혀 갔다.

 
BNG교육과학유한회사 창업식 (2016.11)

그러던 2017년, 연길시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5돐 맞이 문화축제를 준비하면서 김한수 교수를 총괄기획자로 초청하였다. ‘더없는 영광’앞에 김한수 교수는 주요화두를 떠올렸다. 흔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서시장거리에서는 “모두 다 갔다”는 노래가 떠들썩하고 집안을 훈훈하게 지켜주던 도우미 아줌마도 떠나고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서 표현을 바꾸어‘세계로 뻗어가는 글로벌조선족’들이 다시 ‘마음의 고향’ 연변에 모이는 구상을 해보게 된 것이다. 그 뿌리는 그동안 연변에 살면서 감동과 충격으로 알게 된 중국조선족의 자랑찬 력사와 문화가 핵심을 이루었다.

물론 연변의 문학가, 예술가와 지성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생명과 희망의 빛’이라는 주제로 민족의 력사와 오늘, 래일을 상징하는 수천,수만개의 등불을 밝혔다. 그리고 자랑스런 중국조선족 33개 빛 상자를 만들고 그 내용을 큐알코드에 담아 다매체를 통해 그 자랑찬 력사와 문화를 알리는 일에 성공한다. 이것이 33일간 33만인차의 방문객을 맞이한 2017년 연길 부르하통하강반의 멋진 ‘중국조선족빛축제'였다.

2017년 부르하통하 '중국조선족빛축제' 현장

달과 강과 빛이 아우르는 밤문화속에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이 하나로 어울리는 모습을 담은 부르하통하 빛축제는 관객들의 한결 같은 찬사를 자아냈다. 김한수 교수는 “사랑으로, 탁월하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 “좋은 음식은 좋은 그릇에 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변의 훌륭한 문화를 선진적 기획과 디자인이라는 멋진 그릇에 담아 그 가치를 높이는 것, 그것이 곧 자신의 리념이며 철학이라고 한다.

김한수 교수는 “‘세계로 뻗어가는 글로벌조선족’들이 연변에서 빛축제와 같은 문화행사를 해마다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서로 우의를 다지고 소통하고 미래를 위한 계획과 실천의 장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속심을 터놓았다. 김교수는 이러한 것들이 연변과 중국조선족을 대표하는 국제적 브랜드축제로 자리잡아 연변지역 발전과 나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또 ‘신조선족’으로 이 같은 축제에 동참하여 지혜와 힘을 이바지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하였다.

BNC 기획자문회사에서 기자들의 인터뷰를 받고 있는 김한수 대표

그동안 연변에 살아 오면서 수 많은 영예를 받았지만 ‘신조선족'이라는 부름만큼 친절하게 다가오는 ‘영예'는 따로 없다며 ‘신조선족'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할 것이라고 김한수 교수는 말한다. 

그는 “롱담 같은 욕심이 있다면”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돐 경축행사에서 지역문화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초청을 받고 참석했던 것처럼,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100돐 경축행사에도 초청을 받고 참가하여 행사장 여느 끝자리에서라도 누군가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하며 손잡아 준다면 그것이 가장 큰 기쁨이고 보람일 것이라고 한다.

김한수 교수는 또 올해는 중한수교 30돐이 되는 해로서, 새로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중국과 중국의 제일 교역국인 한국 간의 상호 호혜적 동반자적 협력관계가 량국 미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경제뿐 아니라 가까운 이웃으로 오래동안 함께 할 수 있도록 민간차원에서라도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토로하였다.

/기자 김청수 안상근 정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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