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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국 나의 집(17)] 철인정신은 그들을 감화시켰다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5-29 22:32:45 ] 클릭: [ ]

‘나의 조국 나의 집’(17) 철인정신은 그들을 감화시켰다

—영화감독 박준희(조선족)와 마대산(한족)이 영화 《철인 왕진희(铁人王进喜)》를 만들어낸 이야기

박준희(朴俊熙) 프로필:

1987년 상해희극학원 영화텔레비죤연출전업 졸업, 국가 1급 연출.

TV 주요작품: 텔레비죤련속드라마 《초연속의 수리개》(전국 준마상 수상),

영화 주요작품:

《태양 따라》(씨나리오, 연출) 평양국제영화절 특별상 수상,

《철인 왕진희》(연출) 오문국제영화절 최우수영화상 수상,

《두손의 비밀》(총기획, 집행연출),

《사랑의 종소리》(씨나리오, 연출) 전국 류재아동 공익영화상 수상,

《아모의 승낙》(씨나리오,연출)

길림성 10대 최우수영화텔레비죤예술사업자 칭호 획득

 

마대산(马岱山) 프로필:

국가 1급 연출, 대경시영화텔레비죤쎈터 주임(초빙).

TV주요작품: 텔레비죤드라마《풍운세월》,《녀경관》,《안선생의 일가》;

영화 주요작품:《철인 왕진희》, 《감은호대무개차》

 

대경의 왕진희라 하면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반세기 남짓한 사이에 왕진희의 사적에 근거해 만들어진 영화만 해도 3부, 즉 《창업》,《철인》,《철인 왕진희》이다. 그 가운데서 박준희와 마대산이 연출을 맡은 《철인 왕진희》(씨나리오 마대산)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새로운 돌파를 가져와 관중들과 업계 전문가들의 절찬을 받고 있다.

2012년에 《철인 왕진희》는 국무원 중앙기업 ‘5개 1’공정상, 오문 국제영화절 최우수예술영화상, 미국 ‘신개념국제영화절’ 최우수예술영화상을 수여받았다.

영예의 수상자는 바로 《철인 왕진희》를 만들어낸 조선족 영화감독 박준희와 한족 영화감독 마대산이다.

 

우연한 상봉, 친구로 사귀다

지금으로부터 24년전인 1998년, 영화 《태양 따라》(2002년 개봉)의 씨나리오를 써놓고 영화 제작비용을 구하러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던 박준희는 우연히 대경의 한 음악교원을 만나 그의 소개로 대경에 가게 되였는데 거기서 마대산을 알게 되였다. 마대산은 당시 대경시영화텔레비죤쎈터 주임으로 있었는데 그의 전공은 극본 창작이였다.

“솔직히 말해 내가 대경에서 마대산과 만날 때는 내가 가장 어려울 때였다. 영화인들이 늘 말하듯이 영화를 만드는 작업 과정은 영화 못지 않게 곡절적이다. 대경으로 가게 된 것은 영화 《태양 따라》의 제작 비용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어려운 상황을 알게 된 마대산은 나를 자기 집에서 류숙하게 하고 여러모로 나의 일을 도와나섰다.” 박준희의 말이다.

마대산은 한족이지만 조선족과는 특수한 인연이 있었다. 그는 조선 청진에서 화교의 아들로 태여났고 아홉살에 중국에 돌아왔다.

왕진희의 사적을 영화로 찍어볼 욕망으로 가득찬 박준희와 마대산은 그날 밤을 패가며 교류하면서 친숙해졌다. 바로 영화를 열애하는 공동점이 그들 두사람을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친구로 만들었다.

“나는 왕진희의 사적을 진정 영화로 찍고 싶었다. 나는 사업의 첫발자국을 대경에서 떼였고 그러다보니 왕진희는 나의 마음속에 우상으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왕진희의 완강한 철인정신이 나로 하여금 창작에 몰입하게 했다. 박준희도 대경에 체류하면서 나와 함께 씨나리오를 수정하고 영화 촬영 제작을 준비하는 과정에 왕진희의 철인정신에 완전히 매료되였다.” 마대산의 말이다.

 
《철인 왕진희》 영화 포스터

고생을 향수로 여기다

박준희는 그때의 감수에 대해 이렇게 피력한다.

“왕진희의 사적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감수는 정말 달랐다. 너무도 충격적이였고 이같은 영웅인물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만 생각해도 자랑스러웠다. 게다가 마대산이 장악한 수많은 왕진희의 진실한 사실 가운데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굵직굵직한 알맹이들이 있어 우리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러니 고생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았고 오히려 그 고생을 향수로 여겼다. ”

영화는 2011년에 봄에 촬영을 마치고 그 해 7월에 개봉했다.

촬영은 겨울에 했기에 간고했지만 순조로왔다. 마대산은 본지 사람이라 촬영준비중의 장소 설치, 군중역 조직 등은 그가 없으면 촬영이 정지될 지경이였다. 정직한 품성에 고지식한 성미인 그는 당지 지도일군들과 여러 협작부문과 다투기까지 하면서 영화의 촬영제작을 제기한내에 마칠 수 있도록 담보하였다.

박준희는 영화를 찍는다 하면 그냥 ‘미친’ 사람과 다름없었다. 눈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그 해 겨울은 도무지 눈이 내리지 않아 다들 조바심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눈이 내렸다. 해가 뜨면 그 눈이 다 녹아버릴가봐 박준희는 잠이 폭 든 제작일군들과 배우들을 모조리 들깨워 촬영장으로 향하게 하고 해가 뜨기전에 촬영임무를 끝마쳤다.

 
《철인 왕진희》 대경 촬영 현장에서의 연출 박준희(왼쪽)
 

정감선으로 인물형상을 부각

그들은 인물성격 부각을 《철인 왕진희》를 형식과 내용면에서 새로운 돌파를 가져오는 데서의 관건으로 삼고 극정을 몇개의 세절 장면으로 설정하고 세절마다 정감선으로 흘러넘치게 했다.

영화는 인물의 정감세계를 그려냄으로써 철인정신을 구현하였다. 즉 정감선을 우선으로 내세우고 인물성격을 성공적으로 부각했다. 왕진희와 제자, 왕진희와 안해, 주총리와 왕진희, 왕진희와 반란파 두목 등등의 인물관계는 다 정감선으로 이어진다. 시추대 사고로 부상을 입은 제자를 관심하여 얼음을 가져다주는 세절, 녀기술원한테 양털탄자를 가져다주는 장면, 착오를 진 제자와 자기를 박해한 반란파에 대한 관용, 안해에 대한 송구함에 못이겨 대야에 물을 담아 안해의 발을 씻어주는 장면, 왕진희에 대한 주총리의 지극한 배려 등 세절은 모두 정감의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주총리 역을 맡은 류강이 병상에 누워있는 왕진희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맞대고 병이 완쾌되면 대경으로 함께 가자고 약속하는 장면은 눈물이 없이는 차마 볼 수 없는 너무나 감격적인 세절이다. 이러한 것들이 점점이 쌓여 집합될 때 결국엔 일종 정신으로 부상한다. 이렇게 철인정신은 단순한 구호만이 아닌 인간의 숭고한 사랑으로 안받침되였기에 발산하는 그 정신력도 강력했다.

정절에 따라 소박한 언어로 설득력 있게 처리했다. “당신은 인민의 공신입니다.”왕진희의 병문안을 갔을 때 주총리는 왕진희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기실 이는 왕진희에 대한 당과 조국의 최고의 평가이다. 제자가 도망간줄로만 오해하고 왕진희가 쫓아갔을 때 위를 앓는 스승을 위해 외투로 입쌀을 바꿨다고 하자 왕진희는 배고파 땅에 쓰러져있는 제자를 그러안고 “네가 왜서 그런 걱정을 다하느냐”라고 말하면서 눈굽을 적신다. 왕진희는 한 제자가 고생을 이겨내지 못하고 대경을 떠나려고 할 때 곧바로 쫓아가 “왜서 고만한 좌절 앞에서 머리를 숙이느냐”,“사람이라면 정신이란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타이른다. 이런 언어들은 정감적 형태로 나타나면서 정신력을 구현한다.

왕진희 역을 맡은 장지충의 서북지방 언어 사용, 활달한 성격과 맞먹는 우렁찬 노래 등은 왕진희의 강의한 성격 창조에서 크게 작용하였다.

 
미국 "신개념국제영화절"에서 최우수예술영화상을 수상한 씨나리오/공동연출 마대산(가운데)

형식면에서 혁신

루시가 미국의 한 매체 기자의 신분으로, 과거에 세계 기록을 돌파했다는 미국 석유로동자의 손녀의 신분으로 대경에 와서 왕진희의 사적을 취재하고 자기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미국의 굴진기록을 릉가했다는 대경의 기적을 확인하고 철인정신의 함의를 깨닫는 참신한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철인정신을 돋보였다.

아래의 두 단락의 대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루시가 전국강을 보고 하는 말: “나는 지금 도대체 왕진희는 당시 무얼 바라고 그렇게 일했는지, 도대체 무슨 힘이 정상을 뛰여넘는 그런 수많은 기적을 창조하게끔 작용했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는군요.”

루시가 할아버지와의 대화: “당시 왕진희와 그의 대원들이 당신(미국)들이 돌파했던 세계기록을 릉가할 수 있게 된 데는 별다른 비결이 없었습니다. 더우기는 그 무슨 비밀무기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보통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한가지 정신으로 이런 장거를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 정신이 바로 자기 조국에 대한 그들의 무한한 열애입니다. 중국인민은 그 정신을 ‘철인정신’이라고 일컽고 있습니다.”

혁신면에서의 다른 하나의 혁신이라면 기록화면을 전반 영화의 관건적인 대목에 삽입함으로써 진실감을 더해주었고 관중들의 강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박준희와 마대산의 첫 합작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 때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친구정은 여전히 변함없다. 오히려 더 깊어졌다. 이제 오문 항일사를 다룬 영화로 두번째 합작이 곧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길림신문/ 리영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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