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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143]《휠체어의 노래》는 ‘가장 아름다운 가정’의 주제가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1-04 13:25:34 ] 클릭: [ ]

도문시에 살고 있는 2급 지체장애인인 최원(崔源)선생의 가정이 전국부녀련합회에서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가정’(最美家庭)의 한가족으로 된 것은 3년 전인 2018년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경 최원선생이 《휠체어의 노래》(2014년 출판)라는 자서전을 펴낸 뒤로 이어진 삶의 이야기였다.

최원의 자서전 《휠체어의 노래》출간모임에서 남긴 가족사진

지극정성으로 만든 수놓이시계

지난해 9월의 어느 하루, 최원선생은 자신의 자서전 《휠체어의 노래》 출판에 도움을 준 이들을 특별히 한자리에 모셨다.

그는 자기 손으로 귀빈들에게 대접할 반찬을 만드느라고 새벽 4시부터 휠체어에 앉아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씻고 썰고 볶고 지지고 하였다. 그 옆에는 최원선생의 대소사에 부모형제처럼 늘 관심을 쏟고 있는 ‘이웃사촌’ 오기활선생과 그의 부인 김금복 녀사가 있었다.

평생의 은인 '이웃사촌' 김금복녀사(오른쪽)에게 정성으로 수놓은 시계를 선물하고 있다.

정성껏 마련한 풍성한 음식상을 차려놓고 최원선생은 인사말을 올렸다. “여러분들은 제가 가장 어려울 때 도움을 준 분들입니다. 돈 한푼이라도 쪼개 쓰며 쩔쩔 매고 있을 때 길림신문 인터넷부서에서는 저의 자서전을 실어주고 2,000여 원의 원고비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연변인민출판사에서는 출간호 비용도 받지 않고 저의 자서전을 편집, 출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청현 배초구진 봉림촌 당지부 오기철 서기는 《감동중국 조선족》으로 표창받고 돌아오는 그 길로 자기가 받았던 생화묶음을 저에게 안겨주었고 상금전액을 몰래 출판비용으로 내 놓았습니다…”

자서전 출판비용을 몰래 지불한 오기철(왼쪽) 서기를 모시고

사실 최원선생은 여태껏 그 내막을 모르고 있었고 다만 자신과 같은 장애인도 책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었고 그때로부터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되였다”고 토로하였다.

최근에야 우연히 그 사연을 알고 하루 빨리 여러 분들을 모시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다며 자기 손으로 직접 수놓이를 하여 만든 시계를 선물로 내놓았다.참으로 감동이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선물이였다.

자립자강과 시집행 첫걸음

세살 때 심한 소아마비에 걸린 그녀는 지금도 층계를 오르자면 뒤로 돌아앉아 땅을 짚고 엉뎅이를 한층 한층씩 올려 놓아야 한다. 그러니 어린 시절 자기 절로 문밖출입을 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였다.

그러는 그가 “장애자일수록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격려하에 소학교 4년, 그것도 조선족반 2년, 한어반 2년을 다니고 번역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장장 12 년 4개 월을 끈질기게 노력하여 영어중급, 일어고급반을 수료하였고 연변대학 통신학부 본과, 북경언어문자대학 통신학부 공부를 마쳤던 것이다.

최원선생으로부터 뜻밖의 귀중한 선물을 받은 원 연변인민출판사 리성권 사장(오른쪽)

그뒤로 ‘최원단란글방’을 차리고 혼자서 영어, 일어, 한어, 조선어를 가르쳤는데 15 년간 중소학교 학생들을 제외하고도 근 2000여명의 성인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쳐 15개국으로 출국하거나 해외로무를 나가는데 도움을 주었다.

1991년, 친구의 소개로 당산지진 피난민인 한족총각 류봉군과 결혼해 딸애를 낳고 세 식구가 9평방짜리 세집에서 근근득식 살아갔다. 그러나 도박에 손을 댄 남편의 악습때문에 살아 갈 의미를 잃게 되자 그들은 어느 어두운 밤, 북강의 수심이 가장 깊은 팔엽교 다리우에 올라섰다. 가족자살을 작심한 것이다.

“누가 먼저 뛰여 내리겠나? 내가 먼저면 당신이 절로 뛰여 내릴 수 없잖아. 당신이 먼저…” 남편이 안해의 눈치를 보는데 아이는 등뒤에서 자지러지게 울어대기만 하였다.

이때 지나던 길손이 크게 꾸짖었다. “바보짓들을 그만하고 아이를 봐서 당장 돌아가세요!”

이름 모를 길손에 의해 밤장막속의 악몽은 깨뜨려졌다. 이튿날 날이 밝자 사회가두에서 조해를 왔다. “이제 계속 도박에 손을 댔다가는 호구를 떼서 당산으로 돌려 보낼테니 그리 알아서 하세요!”

가두에서 파견한 조해위원의 엄포에 자기 잘못을 심절히 느낀 남편은 삼륜차를 끌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고진감래'라 전국 '가장 아름다운 가정'영예를 지닌 최원 류봉군 부부

딸애의 돌 생일이 갓 지나자 당산에 사는 시어머니는 양력설을 쇠고 막내시누이 결혼식을 하는데 손녀도 보고 싶고 하니 꼭 오란다. 혼자 몸도 움직이기 어려운 형편에 아이까지 꿍져안고 길을 떠나려니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 거기다가 딸애 생일에 받은 나머지 부조돈 170원으로는 차비도 넉넉치 못한 형편이였다.

정작 마주한 조선족 며느리가 이 정도의 장애자일지는 생각지도 못한데다 가지고 온 부조돈 마저 기대와 어긋나는지라 시어머니는 울며 불려 노발대발 해댔다. 시집동네는 가난하기로 등불마저 어둑시그레하고 사처에 꾀죄죄한 때자국이 얼룩져 있고 미개하고 우매한 풍습들이 숨 막힐 지경이였다.

“어떻게 사지가 성한 사람들이 못산다 해도 이 정도로 못 살수가 있단 말인가요?! 우리부터 춰서야 해요! 우리부터….”

모든 것이 가난과 무지 때문이였다. 다시는 그 불길했던 시집행 첫 걸음을 입에 올리지도 말자며 그들 부부는 귀로에 올랐다.

그 뒤로 몇년간 세집살이를 하던 그들부부는 2000년에 120평 되는 아빠트를 사서 ‘단란글방’을 차렸다. 다른 애들을 가르치느라 여념이 없는 엄마를 옆에서 서글프게 바라보며 딸애는 자기 일은 자기 절로 알아서 했다.

그녀는 딸에 한해서 공부가 유일한 출로가 아니라며 과외공부를 따로 시키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장끼를 키우도록 하였는데 딸 류설영은 소학교 5학년때에 전국적으로 3만 5000명이 참가한 제1차 ‘창신컵’ 서법경연에서 3등상을 수상하였고 중학교시절에 서법 10급, 색스폰 9급에 통과되였다.

그리고 세식구는 전국유람을 자주 하면서 만리장성에도 오르고 남방 소수민족 지역 탐방도 하면서 함께 산지식을 공유하고 애국심도 키웠다. 류씨 가문의 유일한 대학생인 딸은 지금 중국해양대학 연구생까지 졸업하고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전국 ‘가장 아름다운 가정’의 주인공으로

최원선생은 글방운영을 계속하는 한편 또 남편더러 ‘원산샘목욕탕’(源山泉浴汤)을 운영하도록 맡겼다. 허나 자금류동이 따라가지 못하고 사람손이 딸리는 경영이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때 ‘이웃사촌’ 오기활기자님의 부인 김금복녀사가 자기 일처럼 간주하며 자금도 대주고 팔을 걷고 목욕탕의 닦개질에 나섰다. 그 덕에 목욕탕은 알뜰한 환경속에서 손님을 반기며 경영을 유지하게 되였다.

최원선생은 또 시집식구 살리기에 머리를 짰다. 천교령에서 가난하게 사는 큰 시동생네 세식구를 데려다 인력거까지 마련해주며 살길을 열어주었다. 몇년후 시동생네는 아빠트를 사고 승용차도 사서 택시업을 벌리면서 윤택나게 잘살아 갔다.

《휠체어의 노래》출판에 도움을 준 신문사와 출판사의 관계자 분들을 모시고

로송령에 사는 큰시누이네가 하도 구차하여 골머리가 아팠다. 큰조카를 데려다 학습지도를 해 주어 복동탄광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리고 달마다 생활비를 100원씩 보내주면서 졸업할 때까지 뒤를 대주었다. 조카는 후에 계속 통신대학 공부까지 마치고 장춘 양초구탄광에 배치받아 기술원으로부터 당지부서기, 부단장으로 발탁되였다.

그리고 하북성 당산의 시집식구들의 살림을 돕는다는 것은 어쩌면 밑굽 빠진 항아리에 물붓기였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에 희망이 있기 마련이다. 그는 그들의 생활형편을 자주 물으며 시내 이웃들의 옷가지며 신들을 모아 계절마다 보내주군 하였다. 그리하여 시집 동네에서는 시집식구들이 제일 잘산다고 부러워들 한다고 하였다. 한편 막내시동생과 막내시누이더러 당지 해산물을 갖고 연변으로 다니며 장사를 하도록 알선하여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시어머니의 80돐 생신이 되였다. 시어머니는 막내시동생이 모시고 사니 늘 마음이 쏠렸다. 그리하여 평소 생활비를 보내면서도 생일이 되니 새옷견지들을 사고 돈 1000원을 보내드렸다. 물론 자기는 두부 사 먹는 돈도 아끼면서 모은 돈이다.

시어머니께서 점차 거동이 불편해지자 아예 도문에 모셔다 치아를 해드린다 용돈을 드린다 하며 효성을 다 하였다. 시어머니가 세상을 뜨게 되자 한족풍속에 따라 장례를 치러 드렸다.

도문시 옥림 1구에서는 “안해머리 남편다리”로 일떠선 그들부부를 두고 ‘효자’가 따로 없다고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또 전국‘가장 아름다운 가정’으로 선정되였다. 그것은 필경 운명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과 과감한 개척정신 및 사회적 기여로 자신의 운명과 가족의 운명을 개변한 《휠체어의 노래》의 연장이였으며 최원 류봉군 부부의 운명의 노래였던 것이다.

/ 길림신문 김청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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