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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색기억, 동북군정대학길림분교유적지기념관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11-24 13:41:18 ] 클릭: [ ]

룡정제4중학교 교정에 자리잡은 동북군정대학길림분교유적지 기념관은 1946년 6월 당시 상급의 지시에 따라 동북군정대학동만분교, 화전군정학교, 조양천교도대와 길동군정대학 등 군정학교를 합병하고 그해 9월에 학교가 룡정으로 옮겨 터전을 잡으면서 2년 4개월에 거쳐 남긴 한단락의 혁명력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홍색전시관이다.

룡정제4중학교 교정에 있는 동북군정대학길림분교유적지 기념관.

동북군정대학길림분교의 전신은 혁명의 성지 연안에 있던 연안중국인민항일군정대학 제3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당중앙은 ‘남쪽으로 방어하고 북쪽으로 발전’하는 전략방침을 확정했다. 항일군정대학 본교는 지시에 따라 1945년 10월에 제1대대, 제3대대, 제4대대와 학교직속대의 3천여명이 섬서성 북부의 수덕에서 출발해 동북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두달이라는 시간에 8개 성을 경과하면서 그해 12월 길림 매하구의 산성진에 도착했다. 이듬해인 1946년 2월에 항일군정대학 본교를 동북민주련군 군정대학으로 개명하고 동만, 남만, 북만과 서만 등 4개의 분교를 잇달아 설립했다.

동북군정대학 동만분교는 연길에서 개편된 뒤 왕청현 라자구에 잠간 머물다가 룡정으로 이전하여 1946년 10월 18일에 개교식을 성대히 가졌다. 이때 동만성당위가 길림성당위로, 동만군구가 길림성군구로 명칭을 바꾸면서 학교 명칭도 따라서 동북군정대학 동만분교를 동북군정대학 길림분교로 개명했으며 주보중 장군이 교장을 겸임했다.

동북군정대학길림분교의 학생들은 3개 대대로 편성되여 새중국의 탄생을 맞이하기 위하여 드높은 열정과 구지욕으로 정치, 군사 등 지식을 학습했다. 학원들 중에는 아버지와 딸이 같이 학습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또 오빠와 누이동생 그리고 3형제가 같이 공부하는 정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당시 길림분교에서는 아버지와 딸, 오빠와 누이동생, 삼형제가 같이 학습하는 모습도 볼수 있었다.

동북군정대학길림분교 제1기 학원인 조남기 장군은 2013년 4월 필자가 취재할 당시 이렇게 회억했다. “군정대학에 들어갈 때 나는 소학교문화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며 한자와 한어를 거의 몰랐다. 그때 부대에서는 전 중국을 해방하자는 구호를 제기했는데 나는 속으로 한어와 한자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전 중국을 해방하는 운동에 참가할 수 있게는가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족반에 가겠다고 한사코 요구했으며 조선족으로서는 유일하게 한족반에 들어가 학습을 시작했다. 한자를 배우기 위해 사판에 나무가지로 글을 써가면서 매일 열글자씩 익히려고 노력을 거듭했으며 한어말도 열심히 배웠다. 그렇게 견지했더니 반년 후에는 크게 진보했으며 후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지방정부에 분배받아 나의 첫 정치생애를 시작하게 되였다.”

동북군정대학길림분교의 학원들은 상급의 지시에 따라 학교에서 학습 외에도 지방에 파견되여 토지개혁사업과 생산회복운동에 참가해 연변경제의 회복과 발전을 지원했다. 학원들은 또 길림성정부 량식징수사업대를 조직하여 멀리로는 만주리까지 진출하여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량식 징수와 호송 임무를 원만히 완수했다.

부대 장병과 군중 속에 내려가 공연하고 있는 길림분교 문예선전대원들.

동북군정대학길림분교는 설립시작부터 30여명 학원들로 구성된 문예선전대를 조직해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대원들은 장병들과 군중 속에 내려가 자체로 창작한 가무와 극본을 통해 우리 군의 투지와 사기를 북돋아주었으며 연변 각지를 돌면서 토지개혁, 참군, 전선지원 등을 적극 호소했다.

량식을 징수해 기차로 호송하는 길림분교 학원들.

길림분교 제1기 학원인 조남기 장군과 교우들.

1947년 동북군정대학길림분교는 룡정에 있던 의과대학을 흡수하여 의학원을 설립하고 규모를 확대했다. 의학원은 1947년 5월부터 1948년 10월까지 4기에 거쳐 257명을 양성했으며 대부분 학원들은 전선 의료일군으로 나가고 일부가 후방병원과 연변병원에 들어갔다.

동북군정대학길림분교는 룡정에서 2년 4개월이라는 시간에 4기에 거쳐 4,800여명의 학원을 배출하였으며 동북과 전중국 해방을 위해 대량의 우수한 군정간부를 수송하였다. 1948년 11월 동북이 전부 해방된 후 동북군정대학길림분교는 룡정에서 자신의 력사적 사명을 완수하고 치치할로 이전했으며 그후 여러차례의 개편을 거쳐 지금의 대련륙군학원으로 발전했다.

/길림신문 리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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