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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한락연의 발자취 따라(34)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11-15 14:33:09 ] 클릭: [ ]

▧ 김동수

3. 길은 멀다

누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흔하여 사람들이 밑천 안들이고 향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마도 십중팔구는 공기와 해빛이라고 말할 것이다. 모든 생명은 이것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신앙과 사상, 륜리와 도덕, 높은 지능을 소유한 인간은 단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의 의식주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일이다. 력사와 인문을 탐구하고 그 속에서 전통적이고 우량한 문화 정수를 흡수하고 전승해나갈 때 만이 불확실한 미래보다 우수한 유전자로 거듭날 수 있다.

1993년, 한국 서울의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한락연 유작전이 열렸다.

한락연은 49년이란 짧은 일생을 살았지만 화가와 촬영가의 신분으로 중국의 동북과 화동, 화북, 서남, 서북 등지의 십여개 성과 유럽의 여러 나라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겼다. 비록 여러가지 객관적 원인으로 오래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망각되고 력사의 먼지 속에 파묻혀있었지만 정치, 문화 분야에서 쌓은 경력과 공헌은 세인이 공인하는 바이다.

정치면에서 한락연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와 한국 정부로부터 각기 ‘혁명렬사’와 ‘대통령 표창장’을 수여받은 특수한 인물이다.

예술면에서 그는 20세기 30년대 첫기 프랑스 류학 예술가중의 한사람이고 동북에서 첫번째로 현대 미술교육 교학체계를 갖춘 봉천사립미술학교를 건립하였으며 첫번째로 신강 키질 석굴벽화를 연구한 중국 화가이다.

옥에 티라고 할가? 그가 해방전에 갑자기 희생된 데다가 그 후의 력사적인 원인으로그가 참여하였거나 혹은 직접 완성한 중대한 력사사건들이 전쟁 년대를 경과하면서 문자로 남겨지지 못하였거나 여러가지 연구문헌에도 기록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한락연 탄생 100주년 기념활동.

현재 한락연 연구와 기념 활동은 어디까지 왔을가?

한락연의 연구에 대한 문헌적인 성과는 주요하게 한락연 일생 연구, 혁명사적 연구, 예술경력과 작품 연구 등등으로 나타나있는데 간단히 종합해보았다.

한락연 일생에 대한 내용을 제일 처음 볼 수 있는 문헌은 1947년 한락연이 희생된 후 그의 지기와 전우, 혹은 화가와 학생들이 당시의 《신강일보》, 《민국일보》, 《평화일보》 등등 신문에 십여편의 문장을 발표하여 한락연의 경력을 토막토막 소개한 것이다. 례하면 소애(萧艾)의 〈한락연선생을 추억하며〉, 하유해(夏维海)의 〈한락연을 읊다〉, 왕신령(王新令)의 〈서북 발굴 시기의 한락연을 추억하며〉, 조보기(赵宝琦)의 〈한락연과 함께 하던 나날들〉, 로소비(鲁少飞)의 〈동창생 락연을 추모〉, 하소무(夏绍武)의 〈락연선생을 추모〉 등등이다.

1998년 11월, 중공중앙당학교의 고 최룡수교수가 주필을 맡은 《한락연을 그리며》에는 한락연의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밀한 사이였던 동료들과 학생들의회억록을 집성하여 국부적으로 나마 그의 일생 경력과 기본 면모에 대해 륜곽을 그려냈다. 문집은 한락연 유작 12점과 31편의 회억록 및 27편의 신문과 잡지 문고를 수록하면서 여러가지 사건에 참가한 경력자가 제공한 력사 사실적인 증거로 기타 한락연 연구에 기초를 마련하였다.

2011년 7월, 한락연연구회와 연변대학에서 련합으로 ‘한락연 연구 세미나’ 를 개최하였다. 북경, 심양, 할빈 등지에서 온 학자와 교수, 그리고 당사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이 한락연의 혁명려정에 착안점을 두고 진일보로 되는 분석과 연구 토론을 진행하였다. 사후 연변대학출판사에서 김동수 주필으로 된 《한락연 기념활동 문헌집》을 출판하였는데 론문 대부분이 기서성이 많고 연구성 론문이 적었는바 연구자들은 착중하여 계단적으로 한락연의매 시기마다의 주요 혁명경력과 사건의 경과 그리고 관련된 력사 배경 및 그 가운데서 쌓은 공헌을 규명하였다.

이에 기초하여 장효서와 위아리는 2012년 8월에 《한락연전》을 출판하였다. 작자는 부동한 시기 력사배경과 결부하여 한락연의 일생경력과 발전맥락, 그리고 그가 참가한 혁명활동과 예술활동의 전반 과정과 성과를 비교적 세심하게 서술하였다.

조선족의 이름난 소설가 김혁은 2013년 12월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한락연의 이야기》를 펴낸 뒤를 이어 《장백산》 잡지 2017년 제1기부터 《한락연평전》을 련재하였다.

한락연의 혁명사적에 대한 연구는 주요하게 두개 류형인데 하나는 계단성 사건연구가 위주로서 당사인이 어느 단계의 경력 혹은 모 사건과 발전과정에 대한 회억 등이다.

례하면 고 최룡수(崔龙水)교수의 〈혁명가 예술가 한락연〉, 김추실(金秋实)과 한건립의 〈혁명화가 한락연 소전〉, 리운창(李云昌)의 〈혁명가 화가―한락연〉인데 특히 류옥하의 〈락연에 대한 회억〉은 그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한락연의 언어학습, 도치악과의 사교, 감옥에서의 정황, 서북에서의 고고학 발굴 등 활동내용을 서술하였다. 김삼순(金三顺) 〈한락연: 찬란한 혁명의 길〉, 최순희(崔顺姬)는 〈고모부 한락연이 룡정에 있던 나날을 회억하여〉에서 한락연이 룡정에서 ‘3.13’ 반일운동에 참가한 사실을 서술하였고 부서운(傅瑞云)의 〈한락연과 격언정〉에서는 1929년 한락연이 치치할에서 격언정을 설계하고 건설한 과정을 간술하였다.

동북에서의 당조직 건립 시기 활동을 서술한 문헌으로는 왕은보(王恩宝)의 〈한락연: 민족주의자로부터 공산주의자로 이행 려정〉, 장로(张璐)의 〈동북 당조직 건립의 개척자 한락연〉, 소자원(苏子元)의 〈한락연동지를 회억〉, 소진(肖震)의 〈할빈에서의 한락연〉 등 문장들에서는 시대적 배경과 결부하여 동북 조기 당조직 건립 활동에 참가하고 정보공작과 교육활동을 진행한 경력과 관련 구체 사건에 대한 맥락을 서술하였다.

2007년, 오문에서 한락연 회화예술전이 열렸다.

항전 시기, 활동을 서술한 라점원(罗占元)의 〈한락연과 동북항일구망총회〉, 강기민(康冀民)의〈특수 전선에서의 한락연―전지당정위원회〉, 강극부(姜克夫)의 〈대 무한 보위 시기 한락연을 회억하여〉 등 문장에서는 한락연이 ‘동북항일구망총회’와 ‘전지당정위원회’에 들어가게 된 배경과 경과 당시 부닥쳤던 악렬한 환경 그리고 소속부대 사이의 마찰과 모순을 해결해야 하는 간고한 임무 및 종사한 혁명활동을 서술하면서 비교적 상세한 사료적 정보를 제공하였다.

양공소(杨公素)의 〈한락연동지를 그리며〉는 한락연이 연안 방문 시기의 일부 정황과 체포되기 직전의 정치적 관계 및 배경을 기술하였고 추근(丘琴)의 〈영원한 추억―한락연〉은 한락연이 여러 전방을 시찰하게 된 배경과 과정 공작방법과 효과 및 영향을 서술하였다.

한락연의 예술경력 연구는 사건에 대한 연구가 위주로 되여있다. 동북 시기 예술경력을 포숭산(包崇山)은 〈한광우와 봉천미술전문학교〉라는 문장에서 한락연이 봉천미술전문학교를 세우게 된 배경과 전반 과정을 서술하였다. 상수홍(常书鸿)은 〈화가 한락연동지를 그리며〉란 글에서 두사람이 프랑스에서 처음 서로 만난 사실과 프랑스에서의 한락연의 경력 그리고 귀국 후 서북에서 함께 벽화모사를 진행하던 경과를 서술하였다.

서북에서의 한락연의 예술경력은 그의 제자 황주(黄胄)가 쓴 〈명화가 대사막의 무기개〉에 나타나있는데 한락연을 따라 함께 생활하고 그림을 배우고 여러 곳을 고찰하면서 사생하던 경력을 서술하였다.

이외에도 조보기(赵宝琦)의 〈키질석굴 고찰활동에 대한 회억〉, 진국찬(陈国灿), 후찬(候灿), 리정(李征)이 공동 저술한 〈한락연과 신강문물 발굴〉, 엽천여(叶线予)의 〈화가의 려행〉 등 문장들은 한락연이 신강에 두차례 가서 석굴을 발굴한 경력과 문물 보호에서 거둔 성과와 적극적인 공헌을 기술하였다.

 

룡정실험소학교에 한락연장학금을 설립하여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발급했다.

한락연의 작품에 대한 연구와 평론은 일찍 20세기 20년대의 《성경시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록등(绿藤)의 〈미술학교 습작 전람을 본 후〉(1924. 11.19), 소천(小天)의 〈미술전문학교 그림전람중의 가작〉(1924. 12. 7), 하서(柯西)의 〈한락연군의 작품〉(1924. 12. 25), 유거(儒丐)의 〈청년화가 한락연〉(1925. 6. 25) 등 문장들에서는 봉천미술전문학교의 새로운 기상과 한락연의 일부 작품들을 평가하였다. 1940년대 후 《신강일보》와 《서북일보》에 구금(丘琴)의 〈한 촬영가의 이야기〉, 〈풍작의 열매―한락연의 14차 그림전에 드림〉, 양영(杨楹)의 〈예술로 본 개척자의 예술〉, 범군(帆群)의 〈한락연선생의 그림전을 보고〉, 황진가(黄震遐)의 〈그림 속의 신강―예술과 발굴로 본 천지〉 등 문장들은 한락연이 서북 지방에서 진행한 고고학 발굴과 그림전람 등 내용을 소개하였다.

20세기 80년대에 와서 상수홍, 성성(盛成), 황주 등 예술가들의 예술평가는 한락연 예술 연구에 대한 리론계의 중시를 불러일으켰고 일정한 추동 역할도 놀았다. 후반기에 미술평론가 류희림(刘曦林)은 한락연 리론 연구의 첫시작을 떼였다고 할 수 있다. 류희림은 〈피로 물들인 단청의 길―한락연의 생애와 작품세계〉란 문장에서 한락연의 유작에 대하여 ‘인물초상’, ‘민족풍습’, ‘자연풍경과 건축’, ‘벽화모사’ 등 4개 종류로 분류하고 많은 작품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류희림은 한락연의 예술풍격과 예술정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개괄하였다.

첫째, 한락연은 평범한 로동대중의 생존 정황을 관심하고 로동생활에 대해 열정적으로 노래하였는바 20세기 전반기의 서민의식과 현실주의 정신을 두루 갖춘 예술가의 한사람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둘째, 대자연에 대한 열애는 한락연으로 하여금 20세기 전반기에 탁월한 성과를 거둔 풍경화가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셋째, 한락연은 프랑스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빛과 색채의 표현을 중시했는바 특히 인물유화에서 이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넷째, 한락연의 예술정신은 락관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시종 밝은 미래를 지향했는바 이는 그의 개성, 기질과 관련되며 혁명자의 리상, 신념과 관련된다.

다섯째, 한락연은 불요불굴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한락연이 혁명가 겸 예술가로서의 본색이다.

성성교수는 “한락연의 작품은 활발한 기운이 넘쳐나고 필력과 필법을 겸비하였다. 이름이 사람을 닮았고 사람은 그의 예술을 닮았다. 그의 인품이 그의 그림 풍격이고 그의 그림 풍격이 곧 그의 인격이다.”라고 하면서 한락연의 연구에서 그의 혁명가적 품격은 탈리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중국미술관 전임 관장 범적안은 “한락연의 예술특징은 중국 서북지역 문화유산과 풍토인정의 미를 발견하고 표현하였으며 현실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애정으로 넘쳐난다”고 지적하였다.

한락연 연구에서 이룩한 가장 풍성한 열매는 두편의 박사 론문이 발표된 것이다. 2004년 심양로신미술학원 리광군(李光军)교수는 한국 원강대학원에서 〈한락연의 생애와 예술관〉이란 박사 론문을 발표하였다. 2016년 할빈사범대학 주림(周琳)교수는 〈혁명과 예술 사이에서―민국 시기에 활동한 화가 한락연 연구〉란 박사 론문을 발표하였다.

2021년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을 맞이하면서 남경예술학원에서 제작한 포스터.

옥에도 티가 있는 법이다. 한락연 연구에서 존재하는 부족점에 대하여 할빈사범대학 주림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첫째는 현유의 문헌 성과들은 회억성 문장들이 대부분으로서 모 사건의 부분만을 회억하는중에 내용상에서 표술자의 기억이 준확하지 않아 사실과 편차가 존재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준확하고 정확하게 구체 사건을 연구하는 데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다. 아울러 원시자료의 결핍으로 일생 경력 연구에서 많은 의문점이 존재하는데 앞으로 명백하게 밝혀야 할 부분이다.

둘째는 연구내용면에서 주견없이 덩달아 맞장구를 치는 표현이 많고 중복되거나 서로 중첩되는 표술이 많다. 또한 많은 자료들이 동일한 사건에 대한 서술에서 시간과 세절적인 서술에서 차이가 나고 모순되고 상황이 같지 않은 현상이 수두룩하다.

셋째는 표현방면에서 비교적 두리뭉실하고 사실적 근거나 론거가 부족하며 평가가 많고 분석이 적으며 제기한 관점이 증거가 적고 심도 있는 론술과 해석이 결핍하며 결론 제기에서 주관성과 부분으로 전반을 개괄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넷째는 전문적 문제에 대한 대응성 연구가 적고 예술리론방면의 연구는 더욱 박약한데 문장 수량도 적을 뿐만 아니라 리론적 심도도 부족하다. 근근히 작품과 풍격의 겉층에 대한 묘사에 국한되여있고 연구 각도가 단일하고 국한적이며 개별 사건과 력사배경의 련관 등 문제에 대하여 소수 문헌에서 간단히 언급하였을 뿐 전반 사회 발전 즉 력사발전 가운데서의 한락연의 예술특징에 대한 분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울러 기타 예술가들과의 공성과 차이성에 대한 비교성 연구와 분석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락연 학술연구는 목적성, 계통성, 종합적인 연구가 결핍한데 기타 동시대 예술가들의 연구와 비교해볼 때 매우 뒤떨어져있는 상황이다.

한락연 기념활동은 한락연 유작전시를 주요 내용으로 여러가지 좌담회, 연구토론회, 한락연 화책 출간, 한락연 장학금 발급, 락연컵 미술경색 등등 의의 있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0년 북경 단청에서 열린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주년 경축 회화전에서는 한락연의 유작 33점을 전시하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북경, 연변, 심수, 서울 등 국내외 여러 곳에서 수차 한락연 유작전을 가지였고 기념화책도 출판하고 연구세미나도 진행하였다.

한락연 연구와 기념활동은 날이 갈수록 정부의 중시와 대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2018년 길림성당위, 성정부에서는 룡정시당안관에서 새롭게 건설하는 한락연 기념전시에 180만원의 전문자금을 조달하여주었다. 근간에는 한락연 유작들이 새롭게 발견되여 정부 해당부문과 회화 연구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자아내고 있다. 그 례로 흑룡강성미술관에서는 40여만원을 들여 대만으로부터 한락연의 유작 〈주단시장〉을 구입하여 소장하였다.

천리길도 한걸음으로 시작된다. 길은 발밑에 있고 갈길은 멀고 멀다. 이 길에는 도로표시도 없고 네비게이션도 없으며 화려한 주단이나 꽃다발은 더더욱 없다. 있다면 고난과 시련과 노력 뿐이다.

스스로 택한 길은 멈추지 말고 끝까지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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