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리성림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 발표시간: [ 2021-10-29 10:18:05 ] 클릭: [ ]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1. 성급 중공 지도간부

리성림(李成林, 1904—1936): 중공송강성위원회 서기(추대)

원명은 김동식(金東植)이고 김대륜(金大倫), 손정해(孫靖海)라고도 불렀다. 조선 함경남도 함주군 동천면에서 태여나 1914년에 부친을 따라 로씨야 연해주로 갔다가 1915년에 길림성 녕안현 마도석(현재 흑룡강 목릉현 소속)으로 이주했다. 서당에서 수학한 후 1923년에 녕안성립제4중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재학 기간에 진보적인 대중단체인  ‘친목회’에 참가하여 반일선전 활동을 진행했다. 맑스-레닌주의 조직인 ‘만주공산청년동맹’에도 가입하였다. 1925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황가툰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야학 교사를 지냈다. 1926년 가을, 광주 중산대학에 입학하였으며 대학 기간에 황포군관학교에 다니면서 군사도 배웠다. 1927년에 장개석이 ‘4.12’ 반혁명 정변을 일으키자 광주에 계속 머물 수 없어 그 해 6월 녕안으로 돌아와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30년 7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1932년 1월 당조직의 파견을 받고 왕덕림의 항일구국군에 들어가 총부 선전부장이 되였다. 같은 해 10월 항일구국군에서 나와 중공밀산현위원회 선전부장이 되였다. 1933년에 왕덕림부대에서 통일전선 사업을 진행하여 동북인민혁명군 제4군 설립의 토대를 닦는 데 일조했다. 1934년 10월 중공벌리구위원회가 중공벌리현위원회로 승격하자 서기가 되였다. 벌리에서 선후로 7개 곳에 구당위원회를 설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의란, 화천(화남) 등지까지 혁명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각 구에 대표를 파견하여 당조직을 발전시켰다. 공청단, 반일회, 부녀회도 조직하였다. 이 시기 대사참의 공청단원 손정우(일명 손광, 한족)와 결의형제를 맺고 손정해로 변성명한 후 손정우와 함께 조경상(대금산)무장대를 교양, 설득하여 당의 항일대오로 전변시켰다. 또 산림대, 자위군 등을 찾아가 항일구국의 도리를 선전하면서 그들을 항일에로 이끌었다. 1935년 3월, 손정우의 부친 손해도의 자위단 60여명, 조경상무장대 30명, 련주하, 대사참의 농민무장대 100여명을 련합하여 200명에 달하는 련합자위무장대를 결성해 항일투쟁으로 이끌었다. 이 기간에 또 벌리, 의란 일대에서 활동하는 항일련군 제4군, 제5군, 제8군, 제11군에 적정을 탐지해주고 부대의 옷, 식량 등 난제를 해결해주군 하였다.

1936년 3월 하순, 원 중공만주성위원회가 취소되고 중공송강성위원회가 설립되자 성당위 서기로 추대되였다. 1936년 6월, 항일련군 제4군 제2퇀의 부관 류희와 함께 제4군 군부회의에 참가하고저 의란의 흑배로 가는 도중 불행하게도 토비놈들의 습격을 받아 희생되였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사》, 《흑룡강성당사인물》)

/박문봉

0

관련기사 :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