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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한락연의 발자취 따라(30)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10-24 23:23:22 ] 클릭: [ ]

▧ 김동수

5. 기름기 도는 벽화

주최측에서 키질석굴 참관을 배치하였다.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얼굴에 여드름꽃이 살짝 피여난 애된 해설원이 일행을 키질석굴로 안내해주었다.

구마라심상

키질석굴 입구의 넓고 아담진 광장에는 흑석으로 조각한 중국 8종 불교(八宗佛敎)의 선조라 불리는 저명한 사상가이며 불교학자이며 철학가이며 번역가인 구마라심(鳩摩罗什)상이 서쪽 방향을 향해 고풍스럽게 세워져있었다. 서역의 쿠처국에서 출생한 구마라심은 필생의 정력을 다하여 무려 300여권의 불경을 번역하였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천여년전에 그가 번역한 《묘법련화경》(妙法莲华经), 《아미타불경》(阿弥陀经), 《금강경》(金刚经) 등은 지금도 중국, 한국, 일본 등 동북아 여러 나라의 수많은 불교 신자들의 심령과 마음을 수련하는 지침서와 교과서로 되고 있다고 한다.

구마라심상은 1994년 키질연구원에서 세웠다. 구마라심상은 전체적으로 불교 색채가 농후하고 조각이 섬세하면서도 치밀하였으며 표정이 진지하고도 자비로왔는바 련꽃 속에 앉아있는 표정과 자태는 자연스럽고 생동했다. 여직껏 인터넷 검색으로만 감상할 수 있었던 구마라심상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우러러 보노라니 불시에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된듯 몸과 마음에 경건함과 자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구마라심상 조금 뒤쪽에 한문, 위글문, 영문으로 〈비단의 길: 장안―천산주랑의 길목 키질석굴(丝绸之路: 長安—天山廊道的路网克孜尔石窟)〉이라고 음각한 거대한 자연석이 보란듯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락연 유작, 키질석굴 전경, 수채, 1946년.

키질석굴은 1961년 국무원으로부터 첫 진의 전국 중점문물보호단위로 명명되였다. 1985년에 신강쿠처석굴연구소가 설립되였고 2009년에 신강쿠처석굴연구원으로 탈바꿈하면서부터 관리 기구와 각종 규제가 완벽해졌으며 이로부터 석굴의 보호 관리와 체계적인 연구는 거족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몇해 사이에 연구원에서는 과학적인 측량, 감측, 조사와 연구 그리고 벽화 모사와 전시, 디지털 보호 공정을 실시하였다. 특히는 세차례의 대규모적인 석굴 본암체에 대한 보호 공정을 실시하였는데 그 성과가 해내외의 보편적인 주목과 긍정을 받았다고 한다. ‘비단의 길’의 찬란한 명주인 키질석굴은 2014년 6월22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여 동서방 문화 교류와 전파, 융합 등 면에서 거둔 위대한 업적을 전세계에 자랑하게 되였고 당대를 위해 봉사하고 인류의 이름다운 미래를 위해 복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되였다.

키질석굴 출입 역시 검사가 심했고 도처에 감시카메라가 눈을 밝히고 있었다. 가방, 카메라, 라이타 등 모든 물품을 통제하였고 키질연구원 활동이므로 특별히 핸드폰만 지니는 것을 허가했지만 동굴 속에서의 촬영은 엄금하고 있었다.

키질석굴은 기원 3세기―9세기에 천산산맥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쿠처 지방의 벼랑에 굴을 파고 세운 불교석굴사로서 서역 지방에 현존해있는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가장 크며 석굴 류형이 가장 완벽하게 구비되여있고 광범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불교 석굴 유적이다.

키질석굴은 불교석굴사가 인도로부터 북쪽으로 중국에 전해진 후 지역적으로 가장 서쪽에 위치해있는 석굴군이며 인도와 중아시아 지어는 중원 북방 불교 예술 등 여러가지 영향으로 서역 지방 불교석굴사의 본보기로 되였으며 인도와 중원 북방 석굴 예술의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키질석굴은 자체의 독특한 동굴 모양과 벽화 풍격으로 불교가 서역을 지나 동쪽으로 전파된 흔적과 전파 과정에서 형성된 본토화 즉 귀자풍격을 명확하게 제시하여 비단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유적지 가운데의 하나로 되였다.

키질석굴은 많은 불교 이야기 벽화들을 보존하고 있다. 벽화의 주제는 본생 이야기, 인연 이야기와 불교 전도 이야기 등 석가모니와 관련된 이야기가 위주인데 릉격구도(菱格构图)의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구체적으로 본생과 인연(本生因緣) 이야기가 100여종, 불교 전도 이야기가 60여종이다. 불교 그림 이야기들은 내용이 극히 풍부한데 인도와 중국 내지를 초과한다고 한다. 이는 기원 3세기―9세기에 천산 남쪽 지역의 불교 중심지였던 귀자국의 성황을 견증해준다고 한다.

키질석굴을 참관한 한락연연구회 성원들.

키질석굴 내외에서는 쿠처문(庫車文), 범문(梵文), 한문(汉文), 돌궐문(突厥文) 등 여러가지 문자와 문서들이 발견되였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는 력사적으로 여러가지 종교와 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활동하였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목전 세계적으로 극소수의 전문가들만 귀자(龟茲)문자를 읽고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벽화를 통하여 보여주는 귀자민족의 언어, 인종, 복식, 신앙과 생산, 생활 및 가무 활동 등 활동 장면들은 소실된 귀자 문명에 대한 견증으로 되고 있다. 독특한 생활 방식들은 불교 예술, 음악과 함께 지난날 ‘비단의 길’에서의 귀자고국의 번영을 생동하게 재현해주고 있다.

키질석굴의 조각은 색을 올린 진흙조각(彩繪泥塑)과 목조각(木雕), 석조각(石雕) 등 형식으로 불(佛), 보살(菩薩), 천인(天人) 등 불교 내용을 표현하면서 석굴 건축과 벽화와 서로 조화되고 하나의 정체를 이루면서 신비하면서도 장엄한 종교 분위기를 나타낸다.

예술 표현과 풍격상에서 건타라(犍陀罗), 급다(笈多), 페르시아(波斯), 희랍, 로마 예술 및 중원 문화와 일체를 이루면서 독특한 키질 예술 풍격을 형성하여 우리 나라 하서 지구와 중원 불교 조각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이는 중국과 세계의 조각예술사를 연구하는 전범(典范)으로 되고 있다. 여러가지 력사적 원인으로 목전 키질석굴에 남아있는 조각은 몇개 안된다. 그리하여 더욱 진귀하고 귀중하다고 한다.

벽화 가운데의 많은 가무 형상은 키질석굴 벽화의 독특한 매력으로 되고 있다고 한다. 현란하고도 아름다운 춤사위와 자태 그리고 인도, 중서아시아, 중원 및 쿠처 본지 등 여러 곳의 풍부하고 다양한 악기들을 연주하는 모습은 비록 무성이지만 마치도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장엄한 ‘비단의 길’ 음악 편장을 연주하는 것 같아 사람들의 절찬을 자아낸다.

키질석굴을 참관하노라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자신도 어느새 신성한 불교 신자가 되여 아아한 그 옛날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며 금방 그려놓은 듯한, 아직도 기름기 도는 벽화를 창작한 이름없는 화공들의 지혜와 솜씨에 혀를 차며 감탄하게 된다. 따라서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벽화에 도굴의 칼날을 서슴없이 날린 무치한 인간들을 저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수륙천리 떨어져있는 멀고도 먼 서북의 벽지에 찾아와 력력한 발자국을 남기고 키질석굴 벽화 연구와 보호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우리의 주인공 한락연에게 머리 숙여 깊은 경의를 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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