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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한락연의 발자취 따라(29)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10-23 10:54:32 ] 클릭: [ ]

▧김동수

4. 투루판에는 고창 고성이 있네

신강의 록주(绿洲), 화주(火洲)라고 불리우는 투루판은 언제 한번 꼭 기회를 잡아 가보고 싶던 곳이였다.

한락연 유작, 포도건조실, 수채화, 1946년(32cm X 47cm).

저명한 녀가수 관목촌(关牧村)이 중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던 〈투루판의 포도가 익었네〉라는 노래가 류행되던 지난 세기 80년대 초반부터 투루판에 대한 동경은 줄곧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근간에 한락연 연구에 정진하면서 한락연의 유작 가운데 많은 고창국 고성(高昌国故城)을 그린 유화들과 일찍 투루판 일대에서 옛무덤을 발굴한 기록들을 보면서 그러한 생각은 더욱 불 붙듯 하였다.

드디여 기회가 찾아왔다. 한락연 동상 기증식이 끝나고 하루 여유가 생겨 연변박물관 김휘 관장과 나 그리고 박호만 회장은 내친 김에 투루판의 고창고성을 한번 둘러보고 가자고 약속하였다. 사교술에 능한 김휘 관장이 투루판박물관에 사전 예약을 하고 우룸치에서 투루판으로 가는 고속렬차에 올랐다.

차창 밖 먼곳으로 천산산맥의 뾰족한 설산들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한대 보이지 않는 딱딱하고 메마르고 거칠은 고원지대의 풍경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수풀처럼 들어선 거대한 풍력발전기들과 가끔씩 보이는 높이 자란 백양나무들이 두눈을 즐겁게 했다. 투루판에 거의 들어서면서부터는 해볕도 더욱 뜨거워졌다.

투루판북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가에 있는 둥근 지붕을 한 위글족식 민가들과 포도건조실들이 너무나 이색적이였다. 머리에 앙증맞은 덧빠(위글족 남성들이 쓰는 모자)를 쓴 코 큰 사내들과 목에 화사한 스카프를 두르고 몸매가 한결같이 S 라인인 녀인들의 모습은 독특한 지방 특색을 한결 짙게 뽐내고 있었다.

투루판박물관을 찾아서

우리는 먼저 투루판 번화가에 자리 잡고 있는 박물관부터 찾았다.

굽실굽실한 파마머리에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두눈이 흑포도같이 검은 러나야라고 부르는, 어딘가 순진하면서도 지적인 위글족 해설원이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박물관은 전반 건축 풍격이 위글족 특색과 분위기가 농후하고 내부 전시와 설비는 꽤나 현대적이였다.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투루판은 로천박물관이라고도 부른다고 러나야가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잠간 시간이 생겨 우리는 러나야를 앞세우고 투루판재래시장에 들렸다.

언제부터인가 내게는 타곳에 가서는 그 곳의 박물관과 재래시장부터 둘러보는 습관이 생기였다. 박물관을 현지의 력사와 문화를 료해할 수 있는 산 교실이라면 재래시장은 그 곳의 경제 상황과 풍속, 민심과 백성들의 생활 실태를 엿볼 수 있는 체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도 여느 재래시장과 대체로 비슷비슷했지만 가장 구별이 되는 것은 과일 종류들이 기수부지로 많은 것이였다. 하나만 례를 들면 현재 전국에서 제일 크다는 투루판건포도도매시장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였는데 질 좋은 건포도가 이곳에서 전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까지 팔려나간다고 하였다. 건포도의 종류만도 10여가지였는데 그 색갈과 맛, 크기 그리고 값까지 다종다양하였다. 우리가 러나야가 단골로 다닌다는 매대에서 그가 알선해주는 건포도를 한가방씩 구매하자 머리에 푸른색 스카프를 드리우고 목이 기다란 검은색 가죽장화를 신은 위글족 녀인은 흐뭇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튿날 우리는 러나야의 안내를 받으며 투루판박물관에서 제공해준 차를 타고 30~40키로메터 떨어져있는 고창 고성을 향해 떠났다.

시내를 벗어나자 길가 량옆에는 포도건조실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더는 지나칠 수 없어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한 농가에 들어가 황토 벽돌로 만든 포도건조실을 둘러보았다. 2층 구조인 포도건조실은 자연 건조를 목적으로 모든 것이 설계되여있었다. 해빛과 바람을 최대한 리용하려고 천정과 사면에 네모진 구멍들이 벌집처럼 숭숭 뚫려져있었다. 건조실 안에는 마치도 옷걸이를 줄줄이 세워놓은 것처럼 나무막대기가 세워져있었다. 나무막대기에 촘촘히 박혀있는 못과 가는 쇠줄에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커다란 포도송이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수분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낮과 밤의 온도차가 심한 투루판 지역의 오염없는 환경에서 천천히 자연 건조시킨 건포도라야 진짜 상등품 포도로서 영양가도 높고 값어치도 높다고 주인은 설명하였다. 군침이 올라와 한알 떼여 먹어보니 맛이 일품이고 달기가 꿀맛이였다. 그제야 나는 2,000여년의 재배 력사를 가지고 있는 투루판의 포도가 천하 제일인 리유를 알 것 같았다.

화염산을 지나면서

투루판에서 유명한 포도 골짜기를 벗어나 한참 달리니 길 왼켠에 불그스레한 빛을 떠인 우중충한 산발들이 나타났는데 화염산이라고 러나야가 알려주었다.

파초부채로 불을 끄며 화염산을 넘었다는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가 잠시 후 길가에 ‘손오공문화원’(孙悟空文化园)이라고 간판을 쓴 웅장하게 건설된 유람지가 나타났다. 하지만 시간이 허락치 않아 그냥 지나치고 어느새 고창 고성에 도착하였다.

관광비수기라 려행객이 얼마 없어 우리는 아무런 불평 없이 러나야의 해설을 들으며 고창 고성내를 둘러볼 수 있었다.

고창 고성은 투루판시 하라하좌향(哈拉和卓乡) 소재지 부근에 위치해 있는데 투루판분지의 북변을 흐르는 목두구하(木头沟河) 록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창 고성은 일찍 기원전 1세기부터 건설되였는데 한진(汉晋)시기(기원전 1세기―기원 4세기)에는 고창벽(高昌壁)으로 불리웠고 남북조(南北朝)시기로부터 수당(隋唐)시기(4세기―7세기)에는 고창군(高昌郡)과 고창왕국(高昌王国)의 수도로 되기도 하였으며 당조(唐代)시기(7세기―8세기)에는 고창현(高昌县), 송원(宋元)시기(9세기―13세기)에는 고창회홀왕국(高昌回鹘王国)의 수도였고 14세기에 와서 페기될 때까지 근 1,400여년을 이어 사용하였다고 한다.

신강 고창고성을 탐방하였다

고창 고성은 1961년 첫 진의 전국 중점문물보호단위로 비준되였고 2014년 6월 22일,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였다. 지금까지 유적에서 발견된 제일 이른 유물은 3세기―4세기 것이고 현재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유적은 대부분 고창회홀시기(9세기―13세기) 것이라고 한다. 고창 고성의 둘레길이는 5,440메터이고 총 면적은 198헥타르로 불규칙적인 정방형 모양으로 조성되였으며 외성, 내성, 궁성(可汗堡라고도 함)으로 구성되였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성벽, 성문, 해자(城濠) 유적과 성내의 일부 종교 건물과 건축 유적들이였다.

고창 고성은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 14세기까지 ‘비단의 길’ 연선 투루판분지의 중심 도시로서 한당(汉唐) 등 중원 왕조들이 이곳에 군, 현을 설치하고 ‘비단의 길’의 개척과 당지의 번영 발전을 추동하고 보장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견증해준다. 또한 고대 서역 지구의 고창국과 고창회홀왕국 등 문명의 존재와 그 특징은 도시 문화, 건축 기술, 여러가지 종교와 민족 문화가 투루판 지역에서 서로 교류하고 전파되였다는 것도 견증해주고 있다고 한다.

투루판 백질극리극천불동을 찾은 필자

뒤이어 우리는 말 타고 꽃구경 하는 식으로 투루판시 주변에 있는 유명한 카얼징(卡尔井), 교하유적, 소공탑, 아스타나무덤 등 이름 있는 력사 문화 유적지들을 둘러보고는 우리를 열성껏 안내해준 러나야를 뒤에 두고 아쉬운 마음으로 귀로에 올랐다. 가랑가랑한 눈빛으로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주던, 멀어지는 차창가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신강 천지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시간이 허락치 않아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언젠가는 꼭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속으로 되뇌이였다.

어느덧 나의 눈앞에는 푸르른 하늘 아래 기화요초 우거지고 미풍에 잔물결 넘실대는 신강 천지의 청수한 풍경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민족의 성산, 아버지의 산으로 상징하여 칭송하는 장백산 천지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도 우렷이 떠올랐다.

동북 땅의 장백산 천지와 서북땅의 신강 천지, 동북에서 태여나고 서북에서 생을 마감한 한락연, 그 곳에서 대대손손 지혜롭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조선족과 위글족 사람들, 어쩌면 끈끈한 인연과 뉴대를 맺으라고 내려준 기회와 선물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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