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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입니다

편집/기자: [ 최승호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7-19 10:44:08 ] 클릭: [ ]

 

[나의 조국, 나의 집3]우리는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입니다

--허동철, 백정숙 가정에 가보다

“우리는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이다. 우리 부부는 외지에서 장춘에 왔다. 지난 세기 80년대 초반에 장춘에 정착해서 지금까지 당과 정부 그리고 장춘 조선족사회의 도움으로 성장했으며 요즘은 퇴직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허동철, 길림성 농작물재배 고급전문가(2급 연구원), 백정숙의 남편

백정숙, 장춘시록원구조선족소학교 전임 교장, 허동철의 안해

허흔, 길림성공상학원 경제무역학원 강사, 허동철과 백정숙의 큰딸

허청,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산디에고분교 의료정책과 연구원 고급연구원, 허동철과 백정숙의 둘째 딸  

이는 허동철, 백정숙 가정 식구들의 프로필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맡은 바 일터에서 나라와 사회를 위해 열성껏 일해오면서 영예도 따내고 긍정도 받았다. 그들은 늘 그 영예와 긍정은 당과 정부 그리고 사회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허동철은 길림성 농업분야의 고급전문가

1959년, 집안시 청하진에서 출생한 허동철은 1983년에 연변농학원을 졸업, 선후로 길림성농업기술보급본소, 길림성농업청에서 식물보호, 벼생산새기술보급, 농약관리업무에 종사했다.

그는 1995년에는 고급원예사로, 1999년에는 국무원 특수수당금을 향수, 2000년에는 국가인사부와 농업부로부터 보급연구원으로 평의되였으며 2005년에는 길림성 당위와 정부로부터 제일 첫 진의 “고급 전문가”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2015년에 2급 연구원으로 되였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대학입시가 시작되였기에 림시공으로 일하던 나는 대학공부를 할 수 있었고 그후 농업분야에서 자신의 젊음을 불태울 수 있었고 길림성 농업 발전을 위해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1979년 연변농학원에 입학한 허동철은 우수한 성적과 조직력을 인정받아 학교 학생간부로 일했고 1983년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농학원을 졸업하고 길림성농목청(농업청의 전신)에 배치받았다. 그는 처음에 농작물 병충해 예측업무에 종사했다. 농작물 병충해 예측이란 전 몇해의 병충해 정황과 기후상황에 근거해 당해와 몇년 후의 병충해 상황을 예측하여 관계부문에서 대응방안을 제정하게 하는 것이였다. 그는 이 부서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배워 몇년 후 전성 식물보호분야에서 큰 공헌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뒤 그는 사업의 수요에 의해 길림성농목청 벼생산판공실에 자리를 옮겼고 1992년에 일본 미야기현에 가서 벼생산기술을 연수받았으며 1994년부터 벼생산판공실의 부주임으로 업무를 주최했다.

길림성 농업기술보급본소와 벼생산판공실이 합병되면서 길림성기술보급본소의 부소장직을 맡았으며 2002년부터 2009년까지 길림성식물보호를 책임졌다.

그는 길림성식물보호계통의 간부와 군중들을 이끌고 한해에 루계로 1억무 이상의 농작물 병충해와 쥐피해를 예방퇴치했으며 9년동안 만회한 량식손실은 루계로 230억근에 달한다.

그가 주도한 전성 통일 쥐박멸사업은 전국의 전형으로 되였고 길림성TV방송국에 의해 <농작물의 보호신>이란 제목으로 보도, 길림성의 농촌경제발전과 농민증수를 위해 커다란 공헌을 했다. 2002년부터 2003년사이 그가 주도한 “옥수수 명충 생물예방퇴치 기술 보급”프로젝트는 농업부 “농목어업 풍작상”2등상을 수여받았다.

2011년 길림성농업위원회의 파견을 받고 전문가팀을 이끌고 조선에 가서 벼재배 새 기술을 시범하고 돌아온 그는 2012년부터 길림성새품종인입재배쎈터 주임으로 발탁되였다. 2015년에는 길림성농업라지오텔레비죤방송학교 교장으로 사업하다가 2019년에 퇴직했다.

그 사이 그가 주도한 과학연구보급 프로젝트들은 7차나 농업부의 “농목어업풍작계획”상을 수여받았으며 길림성과학기술진보상, 길림성정부의 “풍작계획”2등상을 받았으며 10여부의 가치를 인정받은 론문을 발표했고 3부의 저서 ㅈ집필에 참가했다.

백정숙은 산재지역 민족교육의 파수군

허동철과 백정숙네 두 집은 조선족이 드문 청하진에서 허물없는 사이로 아주 가까이 살았다. 백정숙의 셋째 동생을 허동철네 집에서 한동안 키웠고 허동철의 소학교 담임선생이 또한 백정숙의 어머니였다. 후에 백정숙의 아버지가 장백현으로 전근해가면서 백정숙네는 장백현에 이사를 갔다.

그러다가 허동철이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두집에서는 혼사말이 오갔고 1985년에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였다.

장백현조선족중학교에서 한어교원으로 교편을 잡고 있던 백정숙은. 이듬해에인 1986년에 남편을 따라 장춘시록원구조선족소학교에 전근했다. 그는 한어교원, 담임교원으로 있다가 1989년에 대대보도원으로, 1998년부터 부서기로 사업하다가 2002년에 교장으로 임명되였다.

“조직에서 나더러 교장직을 맡으라고 할 때 참 고민이 많았다. 남편이 농작물보호로 항상 출장을 다녔고 장춘에 애들을 부탁할 친척도 없는 없는 나로서는 열몇살 밖에 안되는 애 둘을 키우기에는 정말 무리였다. 내가 부서기로 있을 때는 애들을 자전거에 데리고 학교로 가다가 자전거 바퀴에 발이 들어가기도 하고…그때 어려움을 말하려면 끝이 없다. ”

이런 가정의 어려움이 많았으나 백정숙은 록원구조선족소학교의 운영에 모든 심혈을 기울였다.

백정숙은 학교를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꾸려나갔다. 정부나 기타 조직에서 조금씩 나오는 지원금들을 모두 학교건설에 돌려 실험실 설비를 구매하고 교실 창문을 바꾸고 외벽타일을 다시 붙이면서 학생들의 학습과 생활을 잘 보장했다.

2013년, 장춘시록원구정부는 보양거리에 있던 장춘시록원구조선족소학교를 기륭북거리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학교의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백정숙은 학교 주변에 살던 학부모와 사회로부터 오는 압력을 이겨내고 장춘시의 조선족 간부와 여러 지성인들의 지지를 얻고 학교 이전을 반대하던 사람들을 설복하여 끝내 학교를 이사시켰다. 또한 교육부문으로부터 학교통학차량 4대를 쟁취했고 학교 체육관 건설도 답복을 받아냈다.

2014년 9월 26일, 장춘시록원구조선족소학교 신축교사 락성식이 성황리에 펼쳐졌다. 백정숙 교장은 환영사에서 당과 정부 지도자들의 학교에 대한 관심과 력대 교장, 교원들의 로고에 감사를 표하면서 “학교는 사람됨됨이를 근본으로, 인성화 관리로 특색학교를 꾸리는 것을 학교운영리념으로, 세가지 언어를 장악하고 책임감있는 사회공민으로 양성하는 것을 운영목표로 삼고 조선민족문화를 전승하고 개성발전을 추진하는 다문화교육을 학교운영특색으로 확정하는 등 민족교육명품학교 건설에 힘다해왔다.”고 밝혔다.

백정숙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련속 3년동안 장춘시 록원구 훌륭한 교장, 우수공산당원으로 평선되였고 장춘시 우수교육사업자, 민족단결선진 등 영예를 안게되였다. 퇴직한 지금에도 '백정숙선생님'이라 하면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찬탄해마지 않는다.

자식농사가 곧 나라에 대한 기여

허동철, 백정숙 부부는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큰딸 허흔은 2009년에 연변대학에서 국제정치 본과를 마치고 아세아-아프리카 언어문학 석사를 졸업했으며 2012년에는 한국 숭실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2013년부터 길림성공상학원 경제무역학원의 국제무역전공 강사로 일하고 있다. 아들 딸 두 자식의 엄마로 된 허흔은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본업에 충실하여 성급간행물에 15편의 론문을 발표했고 5개의 성급 과학연구, 교학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둘째 딸 허청은 2014년에 서남민족대학 공공관리 본과를 졸업하고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산디에고 분교에서 의료정책과 법률 석사를 졸업, 현재 산디에고 분교에서 고급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의료정책과 약품정책 방향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국립위생연구원 창업지원자금을 얻어 빅데이터 분석회사의 공동 창시자와 주주로 있으며 또한 미국식약감독관리국과 미국마약단속국의 합작한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이렇듯 우수한 두 딸은 부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가? 대답은 이러했다.

“우리의 성장과정과 가치관, 세계관 형성과정에서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줄곧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여야 하고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말과 행동으로 가르쳤다.”

기자가 북경에 휴가를 나가 있는 큰딸과 미국에 있는 둘째 딸에게 따로 질문했을 때 똑같은 대답이 나와 허동철, 백정숙 부부의 자식교육의 한결같은 정수에 대해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때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아주 엄했다. 내가 두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보니 그것이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 두 아이의 엄마로 된 큰딸 허흔은 이렇게 말한다.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아주 행복한 가정을 마련해주었다. 이전엔 행복한 가정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했지만 외국에 와 있다 보니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다 있는 것은 아니였다. 내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던지 부모님들은 항상 리해해주려 하고 지지해주었다. 이런 부모님들이 있어 항상 고맙고 행복하다.” 둘째 딸 허청은 이렇게 말했다.

실로 행복한 가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허동철 백정숙 부부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든 비결은 어디에 있을가?

그들 부부의 말을 들어 보면 그 답이 나온다.

“부부가 남남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줄곧 평온할 수는 없다. 부부도 서로 리해하고 지지하고 자식들의 생각도 리해해주고 지지해주며 사는 것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길이다.”

“사업이 바빠서 가정을 버린다는 것은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나라에 책임지는 자태가 아니다. 자식을 잘 키우고 사회의 유용한 인재로 만드는 자체가 바로 나라와 사회에 대한 기여이다.”

/길림신문 최승호 정현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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