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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한락연의 발자취 따라(15)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7-12 16:13:19 ] 클릭: [ ]

《세기유산》 화책은 프랑스 류학 화가이며 저명한 사회활동가인 한락연 가족이 󰡐염가로점󰡑에 거주하였다고 설명하고 사진을 게재하였다.

▧ 김동수

3. 중경촌 17호

비행장에 가도, 역전에 가도 어디 가나 사람천지였다. 오만가지 잡냄새로 숨이 턱턱 막히고 발을 옮겨 디딜 자리조차 없이 란잡하고 붐비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속을 용케도 꿰뚫고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산성(山城), 혹은 안개도시(雾城)라고도 불리는 중경은 장강 상류에 위치한 가장 큰 종합적인 공업도시로서 서남 지구 수륙교통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중국의 4개 직할시중의 하나로 승격되면서 중경은 그 위상과 위용을 만방에 떨치고 있었다.

중경역에 내리니 길림대학을 졸업하고 중경시 정부부문에서 사업하는 박회장님 누이의 아들인 김용걸씨가 일행을 마중하고 호텔까지 잡아주었다. 뿐만 아니라 중경시당안국에 한락연에 대한 자료가 있으면 도움을 주라고 미리 련락까지 해놓았다는 것이였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였다. 어느 한번은 직접 중경시도서관에 찾아가 내가 필요한 《반공》잡지를 찾아 복사까지 하여 보내주었다.

중경촌 17호에 거주하던 염보항의 부인 고소

무한이 함락된 후인 1938년 9월말, 동북항일구망총회는 당의 상급 조직의 결정에 좇아 중경으로 옮겨왔다.

류란파가 연안으로 파견된외에 염보항, 우이부(于毅夫), 왕탁연(王卓然), 왕화일(王化一), 서수헌(徐寿轩), 한락연, 진선주(陈先舟) 등 사람들은 중경촌 17호에 거주하고 있는 염보항의 사택에서 사무를 보았다고 한다. 그 해 10월에 동필무의 지시로 새로운 당조를 세웠는데 우이부가 서기를 맡고 한락연은 여전히 당조 성원이였다.

염보항과 그의 부인 고소(高素)는 자기 집에 드나드는 많은 진보적인 청년들과 혁명가들을 열정적으로 접대하고 진심으로 대해주었는데 사람들은 친절하게 ‘염가로점’(阎家老店)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중경시 량로구 신촌 5호에 위치해 있는 송경령옛집진렬관

염보항의 셋째 딸이고 상해염보항사회공익기금회 리사장인 염명광의 주필로 출판한 《세기유산》화책은 한락연의 가족사진을 게재하고 ‘염가로점’에 거주하던 프랑스 류학 화가이고 조선족의 저명한 사회활동가인 한락연 부부라고 주석하여 밝혔다.

1939년 한락연은 중경에서 미국 콜롬비아대학 사회학부 학사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녀성청년회 전국협회’에서 항일구국사업을 하던 광동 처녀 류옥하(刘玉霞, 1905―1988)와 결혼하였다. 결혼식은 염보항의 자택에서 간소하게 치뤘다. 류란파가 주최하고 중경에 있던 유지들과 당시 아시아태평양국제평화위원회 중국 주재 대표이며 뉴질랜드 우호인 사인 루이 · 앨리 등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중경시당안관 일군들이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섰다.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지금의 중경시 량로구로 5호(两路口路5号)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송경령옛집진렬관’(宋庆龄旧居陈列馆) 바로 옆에 있는 힐튼호텔(希尔顿宾馆) 자리가 바로 ‘염가로점’ 유적지―중경촌 17호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반공》 잡지 편집부와 인쇄소 등 사진들도 수집하였다.

중경에 가면 누구나 꼭 한번 쯤은 들린다는 자기구.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여유가 생겨 주공관(周公馆)과 중경 대한민국림시정부 유적지도 참관하였다.

저녁에는 김용걸씨 부부가 중경에서 가장 전통적이고 특색 음식인 중경 마라탕으로 우리 일행을 접대했다.

1년중 해를 보는 시간이 얼마 안되고 게다가 눅눅한 안개와 습기는 중경사람들의 독특한 생활습관과 정서, 그리고 색다른 음식문화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어쩌다 쨍하고 해 뜨는 날이면 시내의 공터와 공원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길가에까지 사람들이 물같이 쏟아져나와 해볕을 쪼이며 마작을 두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풍경이라고 한다.

용걸씨의 부인은 한족녀성이였는데 생김새나 몸가짐, 태도가 우리 조선족녀성들 못지 않게 은근하고 공손하고 례의 밝았다. 내가 엄지손가락을 내밀자 용걸씨는 자기가 기초훈련을 잘 시킨 덕이라고 어깨를 으쓱하며 우스개를 하였다. 진짜 얼얼하고 매운 맛으로 입술은 떨어져나갈 것 같았고 화끈하고 열정적인 부부의 진정으로 마음은 더없이 뜨거워났다.

저녁을 먹고 거리에 나오니 산간도시인 중경의 야경이 그토록 아름답고 매혹적이였다. 평원도시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산성도시의 자연적인 립체감으로 ‘천하 제1 야경’(天下第一夜景)이라는 이곳 사람들의 말이 과언이 아님을 두눈으로 실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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