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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락연생애전시관에서 ‘락연’을 배우다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7-06 12:03:55 ] 클릭: [ ]

연길시에서 룡정방향으로 가는 333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룡정시가지에 들어서기 전 도로 오른쪽에 룡정시당안관 건물이 한눈에 보인다. 연변조선족자치주 홍색교양기지인 한락연생애전시관이 바로 이 건물 1층에 자리잡고 있다.

“한락연생애전시관은 한락연선생 탄생 120돐을 맞는 2018년에 이곳에 세워졌습니다. 현재 1층은 전시관으로 되여있고 그리고 2층은 유치원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한 체험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중국혁명에서 통일전선사업의 전설적인 혁명가이며 화가인 한락연 자료수집과 전시관 개관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온 룡정시한락연연구회 책임자 김동수선생은 이렇게 소개하며 전시관을 개방한 이래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관을 찾은 방문객들이 해설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도 20여명의 방문객들이 해설일군의 설명을 들으면서 전시관을 참관하고 있었다. 한 녀성방문객이 “중국에서 이렇게 유명한 화가가 우리 고장 출신이라는 것에 놀라우면서도 자랑스럽네요. 정말 대단한 분이십니다.”라고 감격해서 같이 온 일행에게 말하자 옆에 있던 나이 지긋한 남성분이 “그렇구 말구요, 두말이면 잔소리지요. 저기 적혀 있는 주은래 총리의 설명문을 한번 읽어보면 얼마나 대단한가 알리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남성방문객이 가리키는 방향 쪽으로 가서 그 내용을 찾아본즉 거기에는 1962년에 주은래 총리가 한락연의 절친이자 중국의 전략정보전문가, 제2차 세계대전중 독일의 쏘련 전면 침공, 일본의 태평양 미군 해군기지 진주만 공습 등 세계사에 남은 중요한 정보 수집으로 중국에서 전설적 인물로 알려진 염보항에게 “방법을 대여 한락연의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그의 전기를 써내야 합니다.”라고 한 설명이 있었다. 비록 짧은 몇마디지만 한락연의 무게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충분한 대목이다.

2018년 5월 23일부터 9월 2일에 거쳐 북경 중국미술관에서는 한락연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여 한락연 미술작품전시를 가졌다. 중국미술관은 한락연을 “20세기 상반기 혁명리상과 예술창작을 가장 긴밀히 결합한 예술가의 한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일생을 여러가지 형식으로 항일전쟁 선전과 보이지 않는 전선인 통일전선 사업에 투신하면서 혁명사업을 위하여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한락연 일화를 설명하는 룡정시한락연연구회 김동수선생.

룡정 한락연생애전시관에 전시한 200여폭의 진귀한 사진과 실물 그리고 한락연의 딸 한건립녀사가 기증한 아버지의 유물 등을 통해 일찍 1923년에 상해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우리 나라의 첫 조선족 당원이자 중국 미술계의 첫 공산당원이기도 한 이 전설적 인물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최적의 환경에서 그 당시의 력사와 문화를 립체적으로 료해하면서 또 음미할 수 있다는 게 박물관이 갖고 있는 매력 중의 하나이다. 전시관을 조용히 돌아보느라면 혁명가와 예술가라는 두가지 사명과 역할을 동시에 훌륭하게 소화했던 한락연의 굳은 혁명의지와 뛰여난 예술적 재능에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온다.

전시관에 조선족소학교 4학년 한어교과서에 한락연의 <나는 중국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다룬 문장이 수록되여있다고 소개한 대목이 유난히 방문객들의 눈길을 끈다. 한락연의 프랑스 빠리 류학시절에 있었던 일을 다룬 글인데 빠리의 몽마르트언덕광장이라는 곳에서 서양인들은 그림을 그리는 한락연의 솜씨를 보고 일본사람이 회화에 조예가 있다고 창찬했다. 이 말에 화가 난 한락연은 자신이 중국사람임을 알리기 위해 그후부터 옆에다 ‘중국화가 한락연 사생작품전’이라는 고지판을 걸어놓고 보란 듯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한락연ㅡ1935년 프랑스 류학시절 자화상.

전시관에는 한락연이 1932년과 1935년 프랑스 류학시절에 그린 두폭의 자화상 사진본이 있다. 한폭은 빠리의 개선문 앞에서 중절모를 쓰고 화필을 오른손에 들고 있는 유화이고 다른 한폭은 소묘작품이다. 시기와 화법, 배경이 모두 다르지만 이 두 자화상은 공통한 분모를 갖고 있다. 바로 잃지 않는 한락연의 락천적인 미소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빠리공원에서 창작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1937년 양호성 장군과 함께 8년간의 류학생활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찍은 기념사진, 1940년대 신강에서 고대벽화 연구와 고고학발굴 길에 나섰을 때 남긴 사진 그리고 몇장의 가족사진에서 한락연은 모두 미소를 짓고 있다. 혁명과 예술 생애에서 언제 어디서나 정열에 차넘치고 락관적였던 한락연의 모습이 너무나도 잘 들여다보이는 좋은 유품이 아닐 수 없다.

전임 국무원 총리 온가보의 백부이며 새 중국 제1대 외교관인 온붕구선생은 1937년에 프랑스 빠리에서 우연히 만나 시작된 한락연과의 인연을 이렇게 감회깊게 회억하고 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서로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안부를 묻는 인사치례 같은 것도 필요없었다. 그는 그렇게도 다가가기가 쉬웠고 또 친절하고 감화력이 있었으며 언제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한락연과 친분이 있는 모든 지인들은 그가 ‘락연’이라는 이름처럼 언제나 락관적이고 열정적이며 정열에 넘쳐있었다고 회억하고 있다.

태여난 고장에서 백년하고도 이십년이 더 돼서 후세 사람들이 자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전시관의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혁명가이며 예술가 그리고 조선족의 우수한 아들인 한락연은 오늘도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향해 그 이름 ‘락연’답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마치도 우리에게 인생은 자고로 순탄한 것이 아니므로 가는 길이 비록 힘들고 지칠지라도 부디 웃음을 잃지 말라고 고무해주고 있는 것 같다.

중국미술관에 소장된 한락연의 부분 작품.

/길림신문 리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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