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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산 일대기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중국과학원 ] 발표시간: [ 2021-07-05 09:38:50 ] 클릭: [ ]

중국공산당 당원이며 중국공정원 원사이며 중국과학원 국가공간과학쎈터 학위평정위원회 주석이며 연구원이며 박사생 지도교수인 강경산동지가 병으로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2021년 6월 27일 14시에 북경에서 서거했다. 향년 85세.

강경산동지, 조선족, 1936년 2월 길림성 룡정진에서 태여났다.

1952년 8월 북경사립대동중학 고중부(현 북경24중)에 입학, 1955년 8월 북경로어학원 쏘련 류학 예비부에 입학했으며 1956년 8월 구쏘련 레닌그라드 울리아노프전기공학학원(현 로씨야 싼끄뜨-­뻬쩨르부르그국립전자공학대학)에서 무선전 기술을 공부했다.

1962년 5월 쏘련 류학을 마치고 귀국, 원 중국과학원 지구물리소 2부(중국과학원 국가공간과학쎈터 전신)에서 사업했다.

1981년―1983년 고급 방문학자, 부교수로 미국 캔자스대학에서 마이크로파 원격 탐지 연구 사업에 종사했다.

1992년―1995년 중국과학원 공간과학 및 응용연구쎈터에서 주임직을 맡았다. 1999년 중국공정원 원사에 당선되였다.

일찍 863 우주항공 분야 응용 전문가조 조장, 전문가위원회 고문, 유인 우주 프로젝트 응용 시스템 부총지휘, 달 탐사 1기 프로젝트 부총설계사, 국가국방과학기술공업국 우주 탐사 중대 항목 실시 방안 론증 전문가위원회 위원, 국가공간과학전문가위원회 위원 등 직무를 담임했다.

20세기 60년대 쏘련 류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강경산동지는 우리 나라 첫 인공위성 관련 기술 시스템 연구에 참여, ‘량탄일성(兩彈一星, 원자탄·수소탄, 미사일과 인공위성)’  사업의 참여자였다.

1975년 중국 원격 탐지 기술 발전 계획 제정에 참가, 마이크로파 원격 탐지 발전 계획 초안 작성을 맡았다.

1984년부터 선후로 우리 나라 돌발성 재해 감시 및 예측 시스템 연구 개발을 주관,  ‘기­-기-­지(机-机-地)’,  ‘기­-성­-지(机-星-地)’  고속 정보 실시간 전송 시스템을 건립했다.

1991년부터 우리 나라 유인 우주 프로젝트 응용 시스템 경제 기술 타당성 론증조 부조장을 맡았다.

2002년 12월, 강경산동지가 제기하고 연구 개발을 주관한 다중모드 마이크로파 원격 탐지기가  ‘신주 4호’  우주선 주하중(主載荷)으로 성공적으로 발사됨으로써 우리 나라 우주 마이크로파 원격 탐지 령의 돌파를 실현했으며 일련의 중국 마이크로파 원격 탐지 업무 위성의 가동과 발전을 추동했다.

강경산동지는 우리 나라 달 탐사 프로젝트의 주요 추동자의 한사람으로서 국제 최초로 피동적 마이크로파 원격 탐지 기술로 달 궤도에서 달 표면에 대한 탐측을 진행하는 방법 및 공정 실현을 제기, 인류 최초의 ‘마이크로파 달’을 구축하고 일련의 원시적 혁신 성과를 거두었다.  

강경산동지는 국가과학기술진보 특등상, 1등상, 2등상, 국가 ‘5.7’, ‘8.5’ 난관돌파 표창, 중국과학원 과학기술진보 특득상, 1등상과 기타 성부급 상 여러 개, ‘중국 유인 우주 프로젝트 돌출 기여자’, ‘달 탐사 프로젝트 돌출 기여자’, ‘증헌재유인우주기금상 돌출 기여자’ 등 영예칭호를 획득한 바 있다. 전문 저서, 각종 론문 200여편을 발표하고 한패의 과학기술 선도 인재를 양성해냈다.

강경산동지는 마음속에 조국을 품고 넓은 안목으로 세계를 내다보면서 혁신에 진력하고 과감히 앞장 서며 진리를 추구하고 사덕이 고상했다. 그는 일생 동안 우리 나라 우주비행 사업에 몸을 담고 그 발전을 추동해왔다. 우리 나라 원격 탐지 기술의 주요 창도자의 한사람이며 마이크로파 원격 탐지 기술의 주요 개척자인 강경산은 우리 나라 최초 인공지구위성, 유인 우주 프로젝트와 달 및 우주 탐사 프로젝트 임무중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

/중국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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