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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스승 강경산원사님을 심심히 추모한다!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국가공간과학쎈터 ] 발표시간: [ 2021-07-05 00:40:20 ] 클릭: [ ]

2019년 강경산원사가 연구실에서 보고를 하다.

○동효룡(董晓龙, 중국과학원 국가공간과학쎈터 부주임)

우리 나라 마이크로파 원격탐지 기술 사업의 창시자이신 강경산원사님께서 6월 27일에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셨다! 나는 스승님께서 입원하신 후, 줄곧 언제 면회를 갈 수 있는지를 물었고 스승님께 가르침을 청할 일도 많았다. 며칠 동안 스승님과 함께 한 지난 장면들이 자꾸 눈앞에 떠오른다. 선생님께서 이미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나는 강선생님과 1996년에 알게 되였다. 그때 나는 서안교통대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북경에 가서 박사후를 하려고 련락하고 있었다. 북경에 처음 갔을 때 강선생님께서는 출장 중이셔서 후에 서안에 와서 면접을 보기로 했다. 스승님을 처음 뵌 것은 서북대학 호텔에서였다. 스승님은 당시 863공간응용전문가 팀 팀장이셨고 서안에서 프로젝트를 검사하고 계셨다. 강선생님께서는 나의 소개를 듣고 간단하게 몇가지 상황을 물으셨다. 그리고 나의 박사론문을 남기시면서 나에게 련락을 주겠다고 하셨다. 일주일뒤쯤 강선생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셨는데 내가 선생님의 박사후로 되는 것을 허락한다고 하셨다.

그후 일주일 동안 박사후의 관련 요구를 알아보고 서안교통대학에 근무하는 동창생에게 나의 상황을 자세히 물어본 후에야 비로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썩 후에야 스승님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였다. 이렇게 나는 스승님의 첫번째 박사후 제자가 되였고 전자파 원격탐지기술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스승님께서 매우 열심히 대하시는 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강선생님의 박사후 제자가 되고 후에 국가공간과학쎈터에 남아서 줄곧 그의 지도아래 성장했다. 스승님께서는 큰 방향에 대한 파악에서부터 구체적인 사업 방법에 이르기까지 나를 줄곧 지도해주셨는바 나의 사업의 인솔자이시고 존경하고 본받을 본보기이시다.

강선생님은 전략가이시다. 그는 줄곧 과학연구 사업의 출발점과 목표는 바로 국가의 수요라는 것을 견지해오셨다. 스승님은 젊었을 때부터 과학기술로 조국에 보답하겠다는 뜻을 품었고 1962년에 쏘련에서 류학하고 돌아와 중국 최초의 인공지구위성 연구에 참가하여 중요한 기여를 하셨다. 강선생님은 동방홍 1호에서부터 마이크로파 원격탐지 사업을 시작할 때까지 국가의 수요를 과학연구 사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가 제기하고 지원한 연구과제는 우선 전부 국가의 수요에서 출발하였고 국가의 수요를 해결하는 것을 과학연구 발전의 방향과 목표로 삼았다. 동방홍 1호 이후 그는 위성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원격탐지 기술의 발전을 방향으로 삼아 레이더와 마이크로파 기술 분야에서의 자신의 특기를 결부시켜 마이크로파 원격탐지 사업을 개척하셨다. ‘컴퓨터—위성 —지면’ 재해감측에서부터 신주 4호 다중모드 마이크로파 원격탐지기, 또 기상과 해양 위성 마이크로파 원격탐지 기술, 그리고 국가 여러 부문에서 추진하고 지지하는 일련의 중요한 발전 방향에까지 그는 모두 국가의 수요에서 출발했다. 최근 몇년간 강선생님은 해양 수중탐측, 무선탐측의 종합응용을 해결하는 등 중대한 응용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를 연구 발전의 방향과 목표로 삼고 계셨다. 강선생님은 일찍부터 론문만을 우선시하고 SCI만을 우선시하는 인도에 대해 비평하셨으며 우리에게 항상 연구만을 위한 연구도, 혁신만을 위한 혁신도 해서는 안되며 과학연구와 혁신연구 성과는 반드시 유용해야 하고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중대한 돌파구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2005년 미국의 유명한 마이크로파 원격탐지 전문가 A.K.Feng이 공간과학쎈터를 방문하여 사진을 남겼다.

강선생님은 착실하게 일할 것을 창도하셨다. 그는 과학연구를 하려면 반드시 착실하게 일해야 하고 성적을 거두는 것이야말로 도리라고 줄곧 견지해왔다. 그는 항상 생각이 있고 목표가 생기면 바로 서둘러 해야지 앉아서 도를 론하거나 모든 조건이 성숙된 후에야 착수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우리에게 기술 돌파는 먼저 만들어서 실제적인 성적으로 성과 응용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하셨다. 그는 신주 4호 다중모드 마이크로파 원격탐지기를 연구 개발하는 동시에 선진 모듈화 마이크로파 원격탐지기, 미리메터파 복사계, 영상형성 고도계, 종합구경 복사계 등 일련의 중대한 응용 수요를 대상으로 하는 첨단기술의 발전을 배치하고 지원함으로써 마이크로파 원격탐지기술 분야에서 실제적인 발전과 돌파를 이루었으며 일련의 중대 임무의 실시와 응용을 추진시켰다.

강선생님은 혁신을 견지하셨다. 그는 혁신을 통해 돌파와 발전을 이루는 것을 줄곧 중시해오셨다. 그는 쏘련과 미국에서 류학한 적이 있고 영어, 로어, 일본어 등 여러가지 외국어를 정통하며 국제적인 시야를 가지고 국제 과학과 기술 발전의 첨단을 료해하셨다. 강선생님의 지도아래 우리의 마이크로파 원격탐지 기술의 발전은 시작은 비록 늦었지만 기점이 높아 곧 국제 발전의 선두에 설 수 있었다. 우리 나라의 우주 마이크로파 원격탐지 기술은 신주 4호 다중모드 마이크로파 원격탐지기에서 출발했는데 처음부터 ‘정량화’를 발전의 중점으로 삼았는바 강선생님은 일찍부터 마이크로파 원격탐지기술은 반드시 ‘그림을 보고 글을 읽는 데’서 떨쳐나와야 한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바로 이 근본에서 출발하여 중국 풍운 3호 마이크로파 습도계, 해양 2호 레이더 고도계, 교정복사계, 마이크로파 산란계 등이 모두 첫 발사에 이미 고품질의 정량 데이터를 제공하여 국내외에서 중대한 응용효과를 일으켰다. 강선생님은 혁신을 통해 발전을 실현하는 것을 견지하셨다. 그의 지도와 지원 아래 ‘상아 1호’와 ‘상아 2호’ 달 마이크로파 탐측기, ‘천궁 2호’ 관예복 3차원 영상 형성 고도계, ‘중국—프랑스 해양위성’ 부채형 파속스캔 산란계 등은 모두 국제적으로 솔선적으로 돌파함으로써 우리 나라 우주 마이크로파 원격탐지 기술이 국제의 선두에 설 수 있었다.

2006년에 강경산원사가 미국의 유명한 마이크로파 원격탐지 전문가인 몰교수, 연구실의 일부 일군들과 사진을 남겼다.

강선생님은 길잡이셨다. 그는 항상 후대양성을 중시하여 젊은이들의 성장을 도우셨다. 강선생님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책임을 지우고 인재로 배양하는 것을 중시하셨는데 특히 젊은이들이 과학연구에서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독립적으로 일하도록 격려하셨다. 내가 공간과학쎈터에서 박사후를 하기 전에 마이크로파 원격탐지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못했다. 강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다중모드 마이크로파 원격탐지기’의 스케일 방안을 맡기셨다. 나는 이 사업을 맡으면서 정량화가 마이크로파 원격탐지에서의 중요한 의의를 빨리 리해하게 되였고 레이더 고도계, 마이크로파 산란계와 마이크로파 복사계 시스템에 대해 전면적인 리해를 가지게 되였으며 더한층 체계적인 연구를 전개하는 데 튼튼한 토대를 닦아놓았다. 이 일에서 강선생님은 구체적인 사업에 직접 관여하는 일이 매우 적었지만 항상 업무 방법에 대해 지도를 해주셨기에 내가 정확하게 독립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수 있게 되였다.

바로 강선생님께서 젊은이들에게 일을 시켜주셨기에 비로서 마이크로파 원격탐지 여러 방향에서 모두 한몫을 담당할 수 있는 젊은 골간대오가 육성되여 중국의 마이크로파 원격탐지 기술의 혁신 발전에서 관건적인 역할을 일으킬 수 있었다. 강선생님은 젊은이들에게 항상 격려를 위주로 하여 젊은이들의 자신감을 높여주셨다. 강선생님은 성격이 강직하셨다. 강선생님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는 중요한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심지어 매우 날카로운 의견과 건의를 하시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는 항상 너그럽고 온화한 어른이셨는바 비판을 하실 때도 완곡하게 일깨워주시면서 세심하고 소리없이 젊은이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을 주셨다.

강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옆에서 일한 지가 어언 25년이 다 되여간다. 구체적인 과학연구 프로젝트부터 장원한 발전전략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상적인 지도를 받는 것이 습관으로 되였다. 력사에 대한 총화에서부터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그의 일상적인 지도를 듣는 것은 일종의 수요로 되였다. 스승님께서 갑자기 우리 곁을 멀리 떠나셔서 지난 일들이 하나둘 끊임없이 눈앞에 떠오르고 마음은 오히려 텅텅 빈 것 같다. 스승님은 평생 동안 과학기술로 조국에 보답하고 혁신으로 국가를 위하시면서 우리의 영원한 본보기가 되셨다. 선생님은 이미 떠나셨지만 그의 정신은 영원하며 그이께서 개척하신 사업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존경하는 스승이신 강경산원사님을 심심히 추모한다!

2021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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