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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도시 청춘뻐스 달린다](2)어제날 태머리 처녀 승무원 오늘은‘은룡’몰고 ‘몽경’달린다

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3-09 09:53:22 ] 클릭: [ ]

 -‘녀성 선로’운전기사들의 ‘나비변화’에서 도시공공뻐스업 분투자 발자취 찾아간다

2018년 5월 17일 ‘녀성 선로’명명식날 녀운전기사들이 각자 배정 받은‘은륭’표 순전기신에너지 뻐스앞에서의 출발 대기 모습. / 연길시공공뻐스그룹유한공사 제공

‘때벗이’‘나비변화 ’

“연길시 도시공공뻐스들이 ‘때벗이’ 했소. 뻐스에 오를 때마다 참 기분 좋고 향수(享受)같네. 이 녀운전기사들 차에 오르면 더 멋있구...”

자동차 기름 냄새가 싫어서 웬간한 거리는 걸어다니셨다는 시민 방옥자(75세)로인이 4선 ‘녀성 선로’ 공원 정류소에서 내리면서 한 얘기이다. 연길시 현유 최적화 모든 (39개)도시공공뻐스 선로를 달리는 공공뻐스가 전부 전기신에너지 뻐스로 교체된 요즘 연길시에서 ‘공공뻐스 때벗이’화제가 자주 들린다. 이는 시민들이 도시공공뻐스에 대한 투박하지만 진솔한 평어이고 반가움의 찬사이다. 거기에 공공뻐스 승차 환경조건의 개선에 대한 만족감이 묻어난다.

‘녀성 선로 ’설동영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H99216번 뻐스 안

‘녀성선로 ’운전기사 부경영이 오후 출차 준비로 소속 제1차대의 주차장에서 뻐스를 닦고 있다.

설전 그믐날 정상적으로 ‘녀성선로 ’ 운행에 배차된 1차대 소속 설동영이 새벽 5시5분 2차대에서 발차하는 통근뻐스 기다리고 있다 . 저녁 18시30분에 막차까지 달리고 집에 도착하면 밤 19시30분쯤 된다. 설동영 옆사람은 설동영의 남편, 제2차대 허전귀 부대장이다. 20여년 이들은 이렇게 ‘별을 이고 나가서 달을 지고 돌아오 ’며 연길시도시공공뻐스업 1선에서 일해왔다. “직책에 충실해 왔다. 한도 후회도 없이, 이 일터에서 일 하는 날까지 맡은 바에 최선할 것이다…”고 이들은 말한다.

승무원시절의 태머리 설동영(중간), 단발머리 부경영(오른쪽)과 이들의 다른 승무원친구./부경영 제공

1992년의 연길시공공뻐스공사 련체 공공뻐스와 승무원 모습 및 승무팀구성을 볼수 있는 사진.

사진속 4명 중 사진 제공자 곡중추(谷中秋,오른쪽 두번째)를 제외하고는 다 조선족이다.오른쪽으로부터 첫 승무원은 김화, 운전기사는 김일 ,( 그 다음 승무원은 일찍 뻐스공사를 떠나 이름 불명확)이다. ‘녀성 선로’녀운전기사들과 승무원시절을 함께 했던 곡중추(1991년_1998년 승무원)는 현재 연길시공공뻐스그룹유한회사 배차원으로 있다. /사진 곡중추 제공

연길 기차역↔서역 4선 공공뻐스운행선 -‘녀성(巾帼)선로’가 연길시 도시공공뻐스운행선의 매력 풍경선으로 비껴진다. 이 선로는 연길시공공뻐스그룹유한회사 416명 뻐스기사 대오 중의 23명 녀성운전기사만으로 최적화 조률 배차(调度)되는 선로이다. 통일 운전기사복 차림에 알뜰한 가꿈새의 녀운전기사들이 10.2메터 길이, 14톤 질량(무게)단위의 똑같은 ‘은륭(银隆)’표 순전기에너지뻐스에 승객을 싣고 도심을 뚫고 지나다니는 모습은 그야말로 “멋 부린다”가 절로 나간다.

기자는 ‘녀성선로’ 설동영(薛冬英, 45세), 부경영(富景荣, 47세), 황려걸( 黄丽杰,50세)등 6명 운전기사들의 뻐스에 올라 녀운전기사들의 공공뻐스와 얽힌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었다. 이들의 뻐스안밖은 한마디로 정갈하다. 차체도 반짝반짝, 뻐스안 바닥도 말끔, 구급용 위생보건함은 물론이고 승객이 마실수 있도록 음용수 보온병도 갖추어져 있다...많은 시민승객들이 설마해 “저 물을 우리도 먹을 수 있는가? ” 녀운전기사한테 확인하고 나서는 “이런 호강이 다 있다니! 내가 꿈 꾸는게 아니겠지 ...”한다.

‘녀성 선로’운전기사들은 승객을 ‘아름다운 승객’, ‘친인 같은 승객’이라 한다.

“‘녀성 선로 ’를 3년째 달려온 감수 어때요?”

설동영운전기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날‘은룡’(한자에서 ‘은륭/银隆’과 동음)을 ‘몰’고 매 회차에‘아름다운 승객’들로부터 ‘연길, 참말로 아름답다! 녀운전기사 멋지다!’는 찬사까지 한가슴 안고 달리느라면 마냥 신바람 나고 이 직업에 대한 애착과 고마움, 자부심, 보람을 느낀다. 꼭 더 잘 봉사할 것이다...

녀운전기사 대부분이 연길시공공뻐스공사 승무원 출신이다. 이들은 1991년~1995년 기간 연길시공공뻐스공사에 모집되 와 애송이 태머리 처녀 승무원으로부터 오늘날 최현대식 순 전기신에너지 대형 공공뻐스 운전기사로의 변신, 연길시공공뻐스그룹유한공사의 봉사창구 ‘모델’로의 변신을 가져왔는데 이들의 그 과정은 ‘나비 변화’과정을 련상시키며 이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 오늘날 아름다운 ‘나비’로 확실한 변화를 가져왔다.

출발역과 몽경

윗 사진은 지금의 연길공공뻐스그룹유한공사 마당 , 아래 사진은 1993년의 연길공공뻐스공사시기 마당이다. 아래 사진은 당시 곡중추 승무원네 승무팀이 팀 뻐스앞에서 남긴 기념사진이다. /곡중추 제공

연변주건설위원회계통 ‘승무원 모범’에 당선된 연길시공공뻐스공사 승무원 기념사진(‘녀성 선로’운전기사들과 같은 시간대 승무원 포함) / 연길시공공뻐스그룹유한공사 제공

연길시도시공공뻐스는 녀운전기사들의 태머리 시절 꿈의‘출발역’이다. 18살~22살 때 외태머리, 쌍태머리 애송이였던 그들은 그 때 이래서 승무원으로 되고 싶었다 한다.

“그냥 차를 실컷 타보고 싶어서...”

“어렸을 때 연길에 왔다가 처음 련체(双节)공공뻐스에 오른 기억이 신기했고 녀승무원이 그렇게 멋져보여서...”

“그 때 연길공공뻐스공사가 연길담배공장보다도 돈 잘 번다해서...”

...

그시기 뻐스공사 녀성 승무원 모집에서 ‘연길 호구’전제를 내걸었으나 결국 외지 처녀들이 꽤 모집되왔다. “우리들은 뻐스공사에서 제공하는 ‘조간 당직 숙소(早班宿舍) ’라는데서 방 하나에 근 20명씩 여러 방에 들었었다. 왁작왁작하는 그 숙소에서 나가는 경우는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와 결혼해서 나가는 경우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면서 힘들어서 ‘때려치운다 ’며 울먹거린 적도 있지만 우리는 잠 자고나면 언제 그럈냐 싶게 어느새 뻐스를 향해 달려간다...”고 설동영 ,부경영 등은 회억한다.

그때부터 이들은 새벽 4:30~5:00시면 뻐스공사에 도착해야 하고 12시간 지나야 귀가할 수 있는 , 녀성이지만 남자에 뒤지지 않고 주말도 ,설날도 무관하게 오직 배차(调度)를 따르는 삶의 궤적에 들어선다.

이들은 승무원시절의 공공뻐스 상태를 ‘양철판 차’라 표달한다. 특히 승객용 문이 3개 달린 련체뻐스 (혹은 련결뻐스,双节公交 혹은 通道车)에서 고생하던 때를 녀운전기사들은 몸서리 나 한다. 한겨울 차가 달리기만 하면,게다가 바람 세거나 눈보라 부는 날이면 차바구니 간의 풍천같은 련접선으로부터 바람서리가 아래 위로 쐬여 드는데 아무리 솜다비에 솜신을 신고 솜바지에 솜옷, 솜외투까지 껴입어도 몸은 얼어들기만 하고 손발,귀,낯에까지 동상을 입기 십상이였다.여름엔 하늘에서 큰 비 오면 문틈과 그 련접선에서는 작은 비 내리고...삼복 때면 선풍기도 없는데다가 차체 양철판까지 열 받았다고 뜨거워나고 , 승객은 많기는 매 한가지여서 130명~140명씩 오를 때 푸술...승무원 3명이 문 3개에 나누어 서서 목을 빼들고 소리 지르며 승차권을 빠뜨림없이 사게 하고 질서를 유지해야 하고...1998년 2월에 연길공공뻐스공사가 매각되 연길공공뻐스유한회사로 되였다. 그해말까지 회사에는 선로 뻐스가 58대있었는데 그중 18대는 련체 뻐스였다. 그해로 연길공공뻐스유한회사는 소형뻐스 105대를 매입한다.

“공공뻐스라는 이동 봉사 차에 목적지가 다른 사람들이 올랐다가 각자의 목적지서 내리는 걸 보면서 공공뻐스의 운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하는 일인가 하는 것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보면 자신이 하는 일이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1993년 18살 잡아 연길공공뻐스공사 승무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설동영은 1년 지나 왕청현 천교령 시골 부모님 앞으로 처음으로 갈 때 그간 1년 넘게 모은 돈으로 천연색텔레비죤수상기를 사들고 간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 때 “직책을 다한 기쁨을 알았다 ”고 한다.

“공공뻐스 승무원, 운전 기사는 자기 자리를 에누리 없이 지키는 직책감이 더구나 앞서야 한다. 내가 그 어떤 리유든 간에 배차를 따르지 못하게 된다면 그 부분은 비울수 없기에 조률해 누군가에게 배차되 간다...거기서 이미 응분의 직책이 닿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일터에서 그걸 터득했고 또 신념으로 삼아왔다. 내 가족에게 미안하더라도 직책은 지켜야 한다고 .”설동영은 녀성운전기사들이 이 자리에까지 올수 있고 남자들 못지않게 자기 몫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공공뻐스 운전직업인으로서 직책을 우선시해 리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녀자라하지만 남자에 뒤지지 않는다(巾帼不让须眉)”

2001년부터 무인 승차권 구매 및 IC카드 시대가 열렸다. 처녀승무원들한테는 결혼하고 애 엄마 되는 인생의 또다른 전환점도 그때에 겹친다.이들은 일자리를 다시 배치받고 , 선택해야 하는 문제를 직면한다. 한편 공사는 공공뻐스 운영 활성화,규모 확대 및 종업원들에게 기회를 부여하자해 2002년, 2004년 두차례에 걸쳐 뻐스운전 면허 따기 단체 훈련반을 조직한다.오늘날 회사의 녀운전기사들은 바로 그때에 뻐스 운전면허증을 딴 사람들이다. 뻐스회사에서 공공뻐스선로를 증가 확장하는데서 운전기사가 부족해 녀운전기사들은 2003년부터 륙속 선로뻐스 운행선에로 달려왔던 것이다. 2000년에 이르러 연길시공공뻐스유한회사에서 보유한 도시공공뻐스는 433대, 그중 소형뻐스가 354대에 달한다.

설동영은 2002년에 면허증을 받고 2003년에 남보다 먼저 운전대를 잡았다. “겁없이 운전석에까지 앉고 보니 정말 쉽지 않았다” 그와 ‘녀성선로 ’운전기사 동료들은 그때 자기네는 또 새로운 시련을 직면했다고 회상한다.

“그 신물나게 한 ‘양철판 차’를 내가 혼자서 끌고 나니게 될 줄이야...”

부경영기사는 발차시간에 연축기가 반응해 주지 않아 두발로 올라 서서 내리 디디던 일, 설동영은 도로 상황상 로타리에서 잠깐 시동을 껐는데 다시 시동이 걸리지 않아 비지땀을 흘린 일, 황려걸은 겨울에 발동기 가열에 더운 물 담은 초롱을 량손에 들구 다니다 옷을 적시며 넘어지던 일...녀기사들은 함께 울고 웃으면서 분투해온 려정을 못잊어한다.

이들의 평균 녀녕은 45세, 올해로 2명이 정령 퇴직기를 맞는다. “마음은 언제나 청운을 달린다 ”는 이들은 지난해 코로나 악영향 속에서도 52만여 키로메터의 리정표를 달렸다.

김상룡 전공회주석은 그시기 연길뻐스공사가 선로 뻐스 안전 무사고률 기준 수위를 높혔고 정각발차률을 99%에 도달시켜 상급 부문으로부터 표창받았던 일을 회고하는 가운데서 녀기사들이 “녀자라하지만 남자에 뒤지지 않는다 ”는 정신으로 직책을 잘 리행해 뻐스회사의 안전운행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2017년 5월 9일 연길시정부에서는 연길시공공뻐스유한회사를 되 수구해 회사 이름은 그때로부터 연길시공공뻐스그룹유한회사로 바뀐다. 전에 이 녀성운전기사들이 각 차대에 소속되 있으면서 남자들하테 짝지지 않게 자기 몫을 해왔다면 지금은 ‘녀성선로’에로 최적화 조합되 연길공공뻐스의 봉사창구 정체 의미지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회사 내외의 긍정을 받고있다. 이들 가운데서 황려걸은 ‘녀성 선로 ’전 이미 2008년, 2010년 연길뻐스그룹유한회사에서 ‘안전선진 운전기사’로, 2019년에는 연길시 ‘우수녀성 ’에 당선, 서효화는 2019년 연길시 및 연변주당위 선전부, 정신문명판공실로부터 ‘례의 스타’로 추대되였고 리취취는 2017년에 연길시 ‘우수녀성’에 이어 올해 연변주 ‘립공건업(立功建业 기준병’ 에 당선 되였다...

기자와의 관련 인터뷰 가운데서 연길시공공뻐스그룹유한회사 석선규 (石善奎)당위 부서기는 녀운전기사들 각자의 우수성을 짚으면서 ‘녀자라하지만 남자에 뒤지지 않는다(巾帼不让须眉)’라 치하함과 아울러 “‘녀성 선로’는 우리 연길시 공공뻐스운행선의 명브랜드로 ,도시 아름다운 풍경선의 또 하나의 명함장으로 되였다 ”며 자랑스러워 한다.

고진감래...‘천당’

‘녀성 선로’ 황려걸 운전기사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

오는 9월로 정령퇴직을 앞둔 황려걸은 ‘녀성선로 ’에서 첫 정령 퇴직인으로 연길공공뻐스운행 사책에 남게 된다. 그녀는 30년간 단 하루의 결근이 없이 직책을 충실히 리행하고 기여해온 ‘녀장부(女汉子)’로 연길시도시공공뻐스업에 알려져있다.

쌍태머리 20살 처녀로 달려와 승무원직에서 3년, 이어 배차원직에서 12년, 2006년부터 지금까지 15년째 연길시공공뻐스그룹유한회사 녀운전기사로까지 달려온 30년에 대해 그는 이렇게 귀납한다. “간난신고 속에서 분투하고, 도시공공뻐스업 개혁 발전속에 템포를 같이하며 성장 발전하고, 도시공공뻐스업 쾌속 발전도상에 미더올라 행복을 누리는 30년”

한편 그속에서 자기는 “녀성의 존엄을 살아(活出)내고 ‘남성의 본색’을 살아냈다”고 자부한다.

승무원으로 ‘양철판 차’에서 손발을 얼구며 20전짜리 승차권을 팔던 때, 로 해방표 련체뻐스를 운전하던 데로부터 디젤엔진뻐스로 교체해 이젠 정말 ‘해방됬다’고 로 해방표 련체차와 고별한 때, 이런 최현대식 순전기신에너지 뻐스로 디젤엔진차와도 고별하는 단계에 올라선 도시공공뻐스업의 발전이 30년간 “땅과 하늘만한 격차“를 보인다고 말하면서 “그전 시기에 대비하면 우리는 벌써 천당같은 뻐스에 앉아있는 거다. 때문에 지금은 매일 차에 오르는 자체가 행복을 누리는 거고 몽경을 달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옹근 청춘을 바쳐 분투해온 직장을 차마 떠나기 아쉽다 한다. 30년을 동고동락해온 동료자매들과 헤여질 걸 생각해도 벌써 섭섭하다며 그녀는 특히 녀운전기사 동료자매들한테 이 남아있는 날까지의 시간을 기회로 생각하고 ‘녀성선로 ’, 연길공공뻐스를 더 빛내가기를 바란다는 기탁을 남긴다.

황려걸을 비롯한 녀운전기사들은 “간난신고를 아니 두려워하고 일터를 소중히 여기고 맡은 바에 최선 다 하며 기여 ”하는 도시공공뻐스업령역의 아름다운 분투자이며 도시공공뻐스업발전사의 산 증인이다.

속보:

8일,3.8부녀절을 맞아 연길시부련회에서는 일터 직책과 의무를 훌률하게 리행하고 제반 도시공공뻐스운행선의 봉사 의미지를 격상하는 데서 모델 역할을 일으키고 있는 ‘녀성선로 ’에 연길시‘녀성문명일터 ’로 표창했다.

‘녀성 선로’경춘매 운전기사

‘녀성 선로’왕귀진 운전기사

‘녀성 선로’부경영, 리취취(오른쪽) 운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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