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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한락연의 발자취 따라(7)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3-08 20:10:32 ] 클릭: [ ]

 

한력연이 1945년에 그린 루이 · 애리의 초상(유화). 이 유화는 미국 경매시장에서 팔렸다.

▧ 김동수

제2장 황포강반에서

1. 한씨는 누구일가

여기서 잠간 한락연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제3공산국제와 어떤 관계가 있었는가를 살펴보고 넘어가려고 한다.

제3공산국제는 1919년 3월 레닌의 지도 아래 설립된 세계적인 공산국제조직이였다. 1920년 3월 공산국제의 지부인 쏘련공산당 원동국(远东局)이 설립되였고 4월에는 위진스끼(维经斯基)를 대표로 하는 당원소조를 중국에 파견하여 혁명운동 정황을 고찰하였다.

1982년 2월, 국제 우호인사이고 중국인민의 오랜 벗인 루이 · 애리(路易 艾黎)는 《사회과학전선》 잡지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락연은 중국공산당 당원이다. 락연이의 풍격과 기질은 그의 이름자와 같이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굴함이 없이 혁명사업에 대한 신심을 잃지 않는 그것이다. 그에게는 불같은 정열과 사람을 감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국제 우호인사인 루이 · 애리는 1891년 뉴질랜드에서 출생하였고 1927년에 중국에 왔다. 그는 장기간 중국에 거주하면서 중국 혁명과 건설사업을 위하여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일찍 모택동, 주은래, 송경령, 등소평 등 동지들이 그를 접견하였고 그의 사업을 지지해주었다고 한다. 1982년 북경시정부에서 그에게 ‘북경시 영예시민’ 칭호를 수여하였다. 그는 1987년 12월에 세상 떴는데 등소평동지가 ‘위대한 국제주의 전사는 영생불멸하리라’는 제사를 써주었다고 한다.

 
 루이 · 애리(좌1)가 한락연의 부인 류옥하녀사(좌2)에게 한락연의 사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루이 · 애리는 한락연과 생전에 서로 각별한 친구 사이였고 후에 한락연의 부인 류옥하에게 많은 도움과 자료들을 제공해주었다.

1982년 루이 · 애리는 한락연의 부인 류옥하에게 쏘련 홍군 중국 주재 첩보원이였던 유진피커(尤金皮克)가 1927년에 쓴 《적색분자들의 장악중에 있는 중국》(在赤色分子掌握的中国)이라는 영문판 책을 보여주면서 “이 책 속의 성이 한씨인 사람이 바로 한락연이다. 한락연이 언젠가 나에게 그 때 사실을 상세히 이야기하였는데 기억에 생생하고 아주 인상이 깊다.”고 말했다고 한다.

《적색분자들의 장악중에 있는 중국》 영문판

아래에 례를 든 문장은 한락연의 딸 한건립녀사가 필자에게 제공해준 한어로 된 문장 일부를 번역한 것이다.

4월 13일 나(유진피커)는 특수한 임무를 완성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밤 11시에 유람선을 타고 한구에서 상해로 가야 하는데 나의 임무는 리립삼(李立三)이 안전하게 상해까지 도착하도록 보호하는 것이였다… 내가 보니 그들은 회의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리립삼, 워이진스키, 다쓰반다(达斯万大)와 성이 한씨인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일본사람이 아니라 조선사람이였다. 틀림없이 조선사람이다.

배에 오른 후 나는 또 다른 사람들을 보았는데… 중공 서기 진곰보(진독수)도 있었다…

날이 밝을 때 너우란드가 차를 파견하여 리립삼과 한씨, 그리고 다쓰반다가 차를 타고 기타 사람들은 인력거와 마차를 타고 역전으로 갔다.

4월 17일 날이 채 밝지 않아서 우리는 상해 북역에 왔다. 리립삼, 진곰보, 한씨와 다쓰반다는 짐을 우리에게 넘겨주고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워이진스키는 먼저 려관을 잡고 짐을 보관하자고 하였다.

책과 잡지가 들어있는 상자 하나를 보았는데 한어, 영어, 일어, 인도어, 그리고 한가지 다른 문자로 된 것이 있었는데 십중팔구는 조선어였다. 틀림없다…

국제 우호인사 루이 · 애리

물론 상술한 자료만 가지고는 한씨인 사람이 한락연이라고 완전히 긍정할 수는 없고 다만 선색을 제공할 뿐이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서 1%의 가능성이라도 놓치지 말고 파고들 때만이 100%의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법이다.

만약 한씨인 사람이 정말로 한락연이라면 그는 벌써 20년대초에 공산국제 전권대표 조수중의 한사람으로 중국에 와서 리립삼, 진독수 등 당시 거물급 인물들과 접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까지 필자의 추측과 덜 익은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의 자료 발굴과 연구가 십분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한씨는 과연 누구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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