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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96] 박물관학의 첨병(김철수편5)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1-29 09:21:38 ] 클릭: [ ]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96](김철수편5)

박물관은 문물을 수집하고 소장할 뿐만 아니라 전시도 합니다. 이 전시와 소장은 모두 과학연구를 떠날 수 없습니다. 특히 박물관의 과학연구는 다른 부문과 좀 다릅니다. 하나는 박물관학인데 고고학을 하는 사람은 고고학연구가 있고 민속문물을 하는 분들은 민속학연구가 있고 근현대문물을 연구하는 분들은 또 근현대사 연구가 있습니다.

학술회의를 사회하는 김철수.

박물관학 연구를 보면 1950년대 박물관 건립초기에는 주로 자기의 본 전업 연구에 치중하였습니다. 고고학을 하는 분들은 주로 고고학에 관련된 서적을 보고 문물의 시대를 확정하는 등 일을 하였습니다. 박물관에 대한 전반 연구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당시 박물관학은 중국에서 전문학과로서의 자기의 체계를 건립하지 못하였고 박물관학에 대한 리론도 많지 못하였습니다.

연변의 박물관학 연구는 내가 첫 발자국을 뗐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전람이나 문물수집 같은 면에서 경험은 풍부하나 리론적으로 박물관학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적었습니다.

1982년에 길림성박물관학 건립대회가 열렸는데 각 박물관의 령도들은 물론 학자들이 많이 않으니까 중층들이 참가하라고 통지가 왔습니다. 박물관에서는 그때 나에게 전성 문물사업회의에 내놓을 문물사업에 대한 선진자료를 써라는 임무를 주었습니다. 이 자료를 쓰면서 로동지들과 담화를 하고 료해하다나니까 이 방면에 대한 인상이 깊었습니다. 그래서 박물관의 령도들은 이 기초상에서 이번 박물관학 건립대회에 내놓을 자료를 써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김철수의 과학연구성과.

박물관학에 대해 잘 모르는 정황하에서 문물수집자료로 학술론문을 대체해서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선진자료와 학술론문은 리론상에서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서실에 가서 박물관학에 관련된 책을 찾았는데 구석쪽에 쏘련에서 출간한 《박물관학기초》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가져다가 하루저녁에 다 읽어봤는데 박물관학은 자기의 리론을 가지고 있는 학문이였습니다.

기초리론부터 업무, 응용리론까지 모든 것이 구전한 학문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문물수집은 박물관학에서의 응용리론에 속하는 부분이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리론을 참고하여 박물관에서 맡겨준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장춘에 회의를 가게 되였는데 대회측에서는 박물관학 응용리론부분에서 대회발언을 하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렇게 되여 대회발언을 하였는데 그 론문이 문집에도 실리면서 길림성 박물관계통에서 글을 잘 쓴다고 소문을 놓게 되였습니다.

그 때로부터 박물관학에 대해 연구하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전람이 끝나자 중앙에서 박물관학회의를 소집하게 되였습니다. 김만석 관장이 회의에 가겠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다면서 나한테 글을 쓰라는 임무를 주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재료를 본 다음 <지방사 진렬에 대한 몇가지 문제>라는 제목으로 론문을 써서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 문장이 국가(박물관학)성립대회에서 발표되고 문집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박물관학 연구의 시작이 되였습니다. 그후 우리 연변박물관에는 해설, 설계 등 방면에서 다 론문을 써서 발표한 동무들이 적지 않게 나왔습니다.

그 때로부터 30년 후에 젊은 동무들이 관장을 맡으면서 업무지도를 하게 되였는데 이 동무들이 혁명문물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여서 “내가 30년전에 쓴 론문이 있는데 그걸 읽으면 어떨가?”하고 물었습니다. 된다고 해서 그 론문을 읽었는데 관장이 “이 론문이 발표된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쓸만한 내용입니다.”고 높이 평가하는 것이였습니다.

김철수가 주필을 맡은 연변박물관 건관 50주년 기념문집.

그외에도 박물관학 연구령역은 많습니다. 이를테면 해설원이 어떻게 발음을 할 것인가? 문물보관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등 아주 많습니다. 박물관학에 관한 문장을 많이 썼습니다.

그중 <연변조선족박물관사업의 발전과 전망>이라는 론문이 있습니다. 조선족박물관의 정황을 보면 연변에 유일하게 연변박물관밖에 없습니다. 그 때 조선족인구가 약 70만명이 되였습니다. 한개 나라를 놓고 말하면 박물관의 인구비례에 따라서 그 나라의 문화소질을 잘 설명해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국같은 경우는 2만명 인구에 박물관 하나가 있고 미국은 십몇만 인구에 박물관 하나, 일본도 몇만명 인구에 하나꼴로 박물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70만명에 박물관이 하나씩 있습니다. 이건 아직도 외국에 비하면 문화상에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런 내용을 밝히고 어떤 곳에 어떤 박물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썼습니다. 하여간 박물관학에 관련된 론문을 많이 썼습니다.

연변박물관이 전국 10대 현급지구급 박물관으로 평의될 때에도 내가 연변박물관의 력사, 규모, 소장품 등 많은 재료를 가지고 문장을 썼는데 그번 평의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여튼 10대 박물관이 되고 내 문장도 박물관통신에 실렸습니다.

연변박물관 연구일군들의 연구성과.

박물관전시를 하면서 많이 느낀 점이 많습니다. 박물관사람이라면 력사도 연구해야 하고 문물수집도 해야 하며 박물관전시도 해야 합니다. 나의 전업은 지방사이면서도 조선족사입니다. 조선족력사를 문물을 결부하여 발굴하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발언권이 많게 되였습니다. <자그마한 항일근거지의 연구>라는 문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전반 항일유격근거지의 분포정황이라든지 력사와 결부하여 연구하다나니 그 때 시기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많이 해결하게 되였습니다. 조사하는 가운데서 력사문헌과 결부하여 연구하다보니 많은 문제가 해결되였습니다.

례하면 항일투쟁사에서 추수투쟁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추수투쟁이라면 1931년 9.18사변 후에 조직한 투쟁을 말합니다. 그런데 1930년 가을에 추기농민폭동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두 투쟁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개 운동입니다. 추기농민폭동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일어난 운동으로 토지혁명입니다. 지주들의 토지와 량식을 몰수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이런 혁명이였습니다. 그러나 1931년의 추수투쟁은 감조감식 즉 소작료 인하를 목적으로 한 투쟁입니다. 이 두 운동을 지금도 혼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김철수가 집필한 력사교육도서.

처음엔 나도 잘 몰랐습니다. 기층에 내려가 조사하고 문헌과 대조하는 가운데서 똑똑히 밝히게 된 것입니다. 후날 후배문인들이나 연구자들이 력사관련 글을 써서 나한테 가져와 심열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이런 문제가 많이 존재함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번 지적해주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에 중시를 돌리지 않습니다.

안도 신합향 경내에 미혼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항일련군 제2군이 성립된 곳입니다. 대석두림업국 화평림장경내에 있습니다. 림장은 돈화 대석두림업국 관할 림장이나 땅은 안도현의 땅입니다. 그런데 당사를 연구하고 력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미혼진회의에서 항일련군 제2군을 성립했다는 것만 이야기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일련군 제2군이 이 곳에서 건립되였다는 것은 틀리지 않지만 문헌자료를 통해 항일민족통일전선에서 조선민족에 대한 통일전선을 락실한게 이 회의라는 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우리 조선족에 놓고 말하면 아주 중요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회의인 것입니다.

지난번에 당사를 연구하는 동무가 글을 써서 가져왔는데 항일련군 제2군이 건립되였다는 내용밖에 없어서 이글을 쓴 사람은 력사를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고 이 문제에 대해 중시를 돌려야 한다고 지적해주었습니다.

문물연구와 문헌재료를 결부하면 허다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대학시험을 칠 때 력사전업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매우 적습니다. 그러나 나는 력사를 연구하면서 상당히 자부감을 느낍니다. 원래는 력사연구가 지망이 아니였으나 력사를 연구하게 된후 사회상의 인정을 받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철수가 주필을 맡은 《연변문물략편》.

연변박물관이 설립된 후 (출판된) 첫 저작은 《연변문물략편》입니다. 이 략편은 고대문물, 근현대문물, 민속문물 이 세가지 문물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입니다. 이 책은 내가 조직하고 집필하고 출판사와 련락하여 만든 책입니다. 당시 출판사의 동무들이 적극적으로 책출판을 지지하였는데 그 때 나는 연변에서 가장 좋은 책으로 만들려고 계획하였습니다. 그 때까지 연변에서는 채색인쇄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출판사동무들과 토론하니 출판사에서 돈 만원만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내가 성에 가서 돈 만원을 얻어다가 출판사에 가 떼질 쓰다싶이 하여 5천원으로 출판경비를 해결하였습니다. 그후 책이 출판된 후 우리는 원고비도 받지 않고 나머지 5천원으로 책을 몽땅 사왔습니다. 그렇게 꿩먹고 알먹기로 책을 출판하였는데 우리 박물관 동료들은 처음으로 자기 이름이 들어간 책을 받아보게 되였습니다. 인젠 30년이 되다나니 책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성씨의 획수에 따라 책의 저자를 밝혔는데 나는 박물관에서 만드는 첫 책이기에 박물관의 소유의 업무일군들의 이름을 다 넣고 싶었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상당히 평가가 좋았고 여러가지로 역할도 컸습니다.

김철수 공저로 된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

이 외에도 책이 여러권 출간되였는데 례하면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와 같은 책입니다. 이 책은 그 때 혁명투쟁사 가운데 력사상에서 존재하는 일부 문제들에 대해 쟁론이 많은 의견을 통일하기 위해서 만든 책입니다. 당시 이 문제는 주를 거쳐 성의 부서기로 계시는 전철수동지에게 전달되였는데 그분이 차라리 책을 하나 만들자고 제기하여 성당위 선전부로 있는 등개동지한테 이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 때 주당위 선전부의 리득룡 부장과 나 그리고 주 해외문제연구소의 김영만 등 몇분이 갔댔습니다. 그번 회의에서 이런 책을 쓰라는 임무를 맡고 우리는 연변에서 집필위원회를 내왔습니다. 나는 이 책 집필에서 주요하게 항일부분 즉 9.18부터 1945년까지의 부분을 맡았습니다. 이 책은 글자수가 30여만자 됩니다.

그후 연변에서 연변의 조선족사가 나와야 된다고 해서 주당위 선전부의 지원으로 《연변조선족사》가 나왔는데 상책은 연변대학에서 맡고 나는 역시 항일부분을 맡아 집필하기로 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의 내용도 있어야 한다고 해서 내가 그 부분까지 맡게 되였습니다. 이 책은 토론을 거쳐 자치주 창립 60돐 헌례도서로 출간되였습니다. 이 책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창립될 당시 주덕해동지가 북경 천안문성루에서 건국대전에 참가할 때부터 시작하여 연변에 돌아와서 경제복구, 항미원조, 공업화와 농업, 수공업, 공상업에 대한 개조, 대약진, 사회주의 개조운동, 문화혁명, 진리탐구 번안반정, 개혁개방 이렇게 2009년까지 선을 긋고 집필하여 2012년에 출판되였습니다. 자치주 창립 60돐에 이런 책이 나온 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만족해했습니다. 후에 이 책은 조선말로 번역되였습니다.

조선문판 《연변조선족사》 (상, 중, 하).

나는 박물관에서 진렬사업을 하면서 전통교육에 대한 선전사업에 대해 머리를 많이 썼고 또 그쪽에 정력을 많이 넣었습니다. 박물관사업은 주요하게 진렬을 통해서 선전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리용하여 선전품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회교육부에 있던 서봉학 주임이 40집이나 되는 <연변아리랑>을 찍을 때에 력사고문을 맡았고 형제부문에서 전적지를 답사하거나 촬영품을 만들 때에도 함께 참여하였으며 방송국을 위해서 《연변투쟁사》, 《연길감옥투쟁》을 썼고 출판사와 손잡고 《그림과 함께 보는 조선족항일투쟁사》, 《이야기 중국조선족력사》와 같은 책도 썼습니다. 내가 이렇게 쓴 력사선전품만 해도 120여편이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신문이나 라지오잡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되였습니다.

김철수의 방조하에 제작된 영상자료-조선족항일투쟁사.

그다음 소학교나 정부의 기층단위 등에 전통교육을 할 수 있는 전시를 적지 않게 해주었으며 학교와 가두에서 전통교육보고회를 조직하기도 하였습니다.

글 구성/ 김태국 기자

사진 영상/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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