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대형련재] 《한락연을 추억하여》(22)눈부시게 아름다운 예술진품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2-25 14:35:06 ] 클릭: [ ]

―한락연 유작전시회 찬미

▨ 양력주

‘한락연 유작전시회’가 오늘 개막했다. 우리 전세대의 혁명가 및 국가 지도자인 곡목, 마문서, 뢰결경, 조박초 등 동지들이 참석했다. 민정부의 염명복 부부장도 참석했다. 저명한 중국화 대가이자 한락연의 학생인 황주선생도 참석했다.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 대사와 문화참사관도 참석했다. 그외에도 많은 화가와 리론가들도 모두 참석했다.

다들 무한한 존경과 그리움을 안고 한락연의 예술을 감상했다.

락연의 유화작품 〈위글족 녀인상〉(50cm × 65cm, 1946년)

한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언 56년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깊이 그리워한다. 이는 그가 1923년에 이미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기 때문이다. 후에 프랑스에서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학하는 한편, 프랑스공산당의 반파쑈투쟁에도 참가하였다. 30년대부터40년대 사이에는 주로 우리 나라 서북의 감숙, 청해, 신강 등 지역에서 예술활동에 종사하는 동시에 또 장기적으로 반제국주의 항일투쟁에 종사하였다. 중국 인민의 해방사업에 헌신한 그는 의지가 확고하고 락관적이였으며 어려움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은 무산계급 혁명가였다. 그는 1929년에 프랑스에 류학을 갔으며 국립 루브르예술학원을 졸업했다. 쏘련, 뽈스까, 독일, 이딸리아, 벨지끄, 화란, 스위스 등 나라를 고찰하고 려행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회화 기예가 깊고 견식이 넓었으며 수양이 전면적이였다. 귀국 후, 조국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격정으로 충만되여 대서북 소수민족의 생활 풍경을 묘사하였으며 많은 걸출한 유화 작품과 수채화를 창작하였다. 또 많은 고대 벽화를 모사하여 감숙 돈황, 신강 키질(克孜尔) 등지의 문화재 보물을 보호, 발굴하고 연구하기 위하여 많은 유익한 사업을 하였다.

그는 걸출하고 재능이 넘치는 예술가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1947년 7 월 30일, 한락연은 신강 우룸치에서 비행기를 타고 감숙 란주로 가는 도중에 불행히도 비행기 사고로 조난을 당했다. 이 때는 마침 중국혁명이 곧 승리할 전야였다. 또한 그가 종사하고 있던 혁명사업이 차곡차곡 전진하고 있었으며 예술 창작이 날로 무르익어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너무 일찍 우리를 떠났으며 중국 인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가져다주었다.

한선생은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예술은 영원히 세상에 남아 있다. 그의 소묘 자화상은 선이 분방하고 묘사가 생생하다. 그의 유화는 구도가 풍만하고 청신, 명쾌하며 필치가 류창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리면서 색채가 짙다. 인물형상이 생동하고 민족특색과 생활정취가 아주 풍부하다. 수채화도 마찬가지로 감정이 동하게 그렸으며 형상이 단순하면서도 개괄적이다. 색채가 밝고 투명할 뿐만 아니라 랑만적이면서도 시적인 정취가 듬뿍하다. 물기가 충만하면서도 경쾌하다. 비록 모두 소폭의 작품들이였지만 담아낸 것들이 풍부하고 보기 좋다. 그는 제일 처음에는 서방의 회화도구를 사용해 중국 고대 벽화를 모사했다. 색채가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러웠고 조형이 우아했으며 풍격이 고상했다. 동서방 회화를 아주 아름답게 결합시켰다. 그는 조국의 현대 미술사에 찬란한 예술명주를 더했다. 드물게 특색 짙은 진품은 한락연의 뛰여난 명성과 그 예술이 영원히 남아있게 하였다.

올해 9월 중에 한국 KBS문화사업그룹의 요청에 응해 중국미술관은 서울에서 ‘한락연 유작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한국 시민들의 환영과 더불어 미술계 동료들의 높은 찬양을 받았다. 중국의 한 조선족 화가가 세상을 뜬 지 40여년이 지난 후 그의 걸작으로 친선의 오색띠를 높이 들어올리고 중한 량국 인민의 료해와 진일보로 되는 소통을 증진하였다. 이 의의는 류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한락연의 예술창조가 중국 문화의 보귀한 유산일 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문명의 일부분이며 또한 중국 조선족의 영광이자 전세계 모든 조선민족의 자랑임을 인식했다.

이제 우리는 한국에 가서 전시했던 ‘한락연 유작전시회’를 우리 중국미술관 진렬 홀에서 성대하게 선보이려 한다. 이를 한락연선생에 대한 우리의 가장 진지한 추모로, 또한 천신만고를 겪으면서도 이러한 작품들을 소중히 보존하여 1953년에 사심없이 국가에 기증한 한락연선생의 부인 류옥하녀사와 그의 아들 한건행선생, 딸 한건립녀사에 대한 충심으로 되는 감사와 답례로 삼으려 한다.

한락연선생과 그의 예술은 눈부시게 빛이 나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1993년 11월 4일

양력주(1942년― ): 화가, 1급 미술가, 중국미술관 관장, 당위 부서기, 중국문련 위원, 전국정협 위원, 중국미술가협회 부주석 등 직무를 력임했다.

/편역: 《길림신문》 김가혜기자

/사진: 민족출판사 제공

0

관련기사 :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