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대형련재] 《한락연을 추억하여》(18)1년 동안에 거둔 풍성한 성과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2-03 13:40:37 ] 클릭: [ ]

―한락연 제14차 전시회에 드림

○구금(丘琴)

나는 두 장족소녀가 각양각색의 들꽃이 만발한 푸른 풀밭에서 즐겁게 춤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옷깃은 산들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고원의 청량한 해빛은 그들을 쓰다듬어주고 있으며 환호하는 청년남녀 관객들도 쓰다듬어주고 있다. 아침이슬 안개는 점점 사라지고 성지 라브랑은 졸린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먼산도 우렁찬 노래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산봉우리에는 아름다운 구름덩이가 떠가고 강물은 넘실거리며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작자는 〈성지 라브랑(圣地拉卜楞)〉 유화에 고원의 아침 서곡을 그려내기에 주력했다. 마음껏 즐기는 소년, 소녀들은 자신들의 달콤한 노래소리와 아름다운 춤으로 대지의 잠을 깨우고 있다.

이 1년중 락연은 두폭의 큰 유화를 창작했다. 그중 하나는 3개월간 그려낸 〈청해 탑얼사(塔尔寺)〉이고 다른 한폭은 〈성지 라브랑〉이다. 〈성지 라브랑〉은 소재상이나 정서상이나 기교상에서 모두 〈청해 탑얼사〉보다 뚜렷한 진보를 가져왔다.

나는 그의 1년간 작품(이번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은 전체 작품의 3분의 2이다. 기타 작품은 국외 전시로 준비중이다)을 전부 보았는데 작품에 큰 진보가 있음을 보아낼 수 있었다.

 

한락연의 유화작품 〈라브랑묘 앞에서의 가무〉(228cm × 137cm, 1945년)

독자들은 아마 그의 회화 력사를 잘 모를 수 있다. 그의 예술생애는 15년에 달한다.

유럽에서 그는 수채화를 잘 그려서 이름 났었다. 귀국 후 그는 줄곧 자연을 구가하는 길을 걸었다. 그의 과거 작품에는 사람이 극히 적게 존재하며 존재한다 해도 안받침으로 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가 자연을 그려냄에 있어서 성과는 대단하다. 이번에 전시한 수채화, 대자연의 유혹이 바로 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눈부신 해빛, 늦가을의 산비탈, 진홍색 옷 한벌, 산 앞 호수에는 산의 그림자가 맑게 비껴져있다. 호수에는 부평초가 떠있다. 공기 또한 얼마나 맑은가! 대자연은 조용하고 거룩한 녀성마냥 가슴을 펼쳐 사람들을 그의 품속으로 유혹하고 있다. 많고 많은 란주의 전시회에서 “아직까지 이처럼 나를 푹 빠지게 하는 한폭의 그림은 보지 못했다”고 성근하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올해에 락연은 회화주제 선택에서 현저한 개변을 가져왔다. 그는 자연을 찬미하던 데로부터 인생을 그리기 시작했다. 풍경화외도 그는 민속화에 주의를 돌렸다.

올해의 전반 작품중 대부분은 사람을 주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반 화가와 달리 인물소묘가 아닌 그의 풍부한 스케치 경험으로 웅장한 자연풍경으로 화면을 두드러지게 하고 배경의 받침으로 주제를 현저하게 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유화 〈망망한 천애〉가 바로 좋은 례이다. 곧 지는 석양을 마주한 장족부부는 그들의 자녀를 데리고 전부 가산을 메고 머나먼 곳으로 애처롭게 걸어가고 있다. 석양은 그들의 그림자를 푸른 풀밭에 비춰준다. 눈앞에는 무한한 창망이다. 이 그림을 읽노라면 색다른 쓸쓸함, 아득함이 몰려온다. 동시에 의문도 생겨난다. 장족동포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가? 락연은 장족동포들을 극히 사랑한다. 때문에 이 그림에는 무한한 동정을 기탁했다.

허나 다른 한폭의 장족동포 생활을 그린 수채화 〈한가한 승려〉, 〈새 녀성〉에서는 선의적인 질책을 던지고 있다. 20세기 40년대 승려들은 하루종일 배불리 먹고 놀기만 하면서 한가하게 거리를 거닐기만 했다. 이는 큰 랑비이다. 또 네명의 남자는 집을 보수하고 있는 세 녀성을 지켜보기만 하는데 이는 불공평한 것이다. 력사는 퇴보할 수 없다. 이런 녀성로동에서의 불공평 상태는 오래 존재할 수 없다.

자연으로부터 인생에로 바뀌는 과정에 그는 탁월한 성과를 보여줬다. 이번에 전시한 산단공합배려학교 생활 클로즈업의 10여폭 그림은 그가 숙련된 기교를 응용하여 우리에게 농촌 공업화의 찬란한 화폭을 보여줌으로써 새 중국 공업전도에 무한한 동경을 갖게끔 한다.

금년 그의 전부 작품은 구조 방면에서 갈수록 완벽해지고 엄숙해진다. 작년과 비할 때 화면도 더욱 명랑하고 가뿐하다. 나는 〈밤새 풍사가 고국을 덮쳤다〉는 작품을 더 좋아한다. 흑수성의 유적을 그린 이 작품에서 사면의 사막중 토성 일각이 뚜렷하다. 흑수국의 침몰 자체가 대비극이다. 현재는 사막중에 토성 일각만 남겨져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추모하게 한다. 누군들 생각했으랴, 모래 폭풍의 위력이 천지를 뒤덮는 기세로 이 고성을 침몰할 줄이야, 천만명의 비명과 부르짖음에도 모래 폭풍은 끝내는 이곳을 침몰하고야 만다.

다른 한폭의 수채화작품 〈절간이 가을의 정취를 잠그다〉도 나는 아주 좋아한다. 해의 그림자가 절간에 소리 없이 비춰지고 무표정한 흙보살의 얼굴, 나무잎이 꼼짝도 하지 않을 때 이 가을의 절간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지지배배 제비의 지저귐이 없고 새의 시끄러운 소리도 없다. 있다면 매미소리 뿐이다.

이번 전시회 작품중 일부 소재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는 란주의 독자들에게 큰 매력이다. 우리는 날마다 생활이라는 그림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비록 몸은 그림 속에 있지만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런 그림은 모두가 서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강가의 수차와 양피떼목이다. 이는 서북의 특수 경물을 대표하지만 세기 로인의 발걸음이 기계 전성년대에 들어섬에도 우리는 아직도 우둔한 수차로 대지를 양육하고 양피떼목으로 사람들을 건네주고 있다. 이는 전반 중국 사회발전의 불평형 현상이 아닌가!

독자들은 이상하게 여길 수 있다. 칭찬은 자자하지만 독자들에게 주의를 주고 싶은 것은 성공의 금자탑 뒤에는 무수한 신근하고 간고한 로동이 뒤받침된 것이다. 락연의 회화 길은 굴곡적이다. 그는 불요불굴의 정신과 예술에 대한 견강한 신념으로 심리상과 물질상의 약점을 이겨냈다.

20년전 대련에서 유럽 2류 작품전시회가 열렸었다. 그는 참관 후 크게 실망했다. 우월한 생활 속에서의 유럽 작가들도 40, 50세가 되도록 성공적인 작품을 창작하지 못했는데 이처럼 락후한 중국의 형세하에서 성공의 결실을 가져오기란 생각지도 못할 일이 아닌가, 그는 분노하면서 그림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릴 생각도 했었다. 프랑스에서 생활이 빈곤하여 전시회를 열 수 없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모리배들에게 헐값으로 그림을 판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락심하지 않았다.

프랑스 남부 니스성에서 전시회를 연 그는 당시 50, 60세 되는 로예술가가 낮은 값으로 작품을 파는 데도 물어보는 사람조차 없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로예술가에게 판매상황을 물었다. 로예술가는 격분해하며 “젊은이, 총으로 강탈할지언정 그림을 그리지 마오. 이 사업으로는 입에 풀칠도 못할 것이네.”라고 했다.

그러나 락연은 계속 간고하게 분투했다. 그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악전고투하면서 끝내는 영예를 따냈다.

락연이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면 피와 땀으로 얼룩져있다. 때문에 그가 오늘 거둔 성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정한 독자의 한명으로 작가에게 자그마한 요구를 전하고 싶다. 이번에 전시된 ‘많은 훌륭한’ 작품중 인물에 대한 부각에서 심도가 깊지 못하다. 희망컨대 이 방면에서 더 연구하기 바란다. 그가 1년간 거둔 풍성한 열매를 보면서 마음속에 한없는 기쁨이 넘쳐흐른다. 이 문장으로 이번 전시의 성공을 기원한다.

(출처: 1944년 《서북일보》)

/번역: 《길림신문》최화기자

/사진: 민족출판사 제공

0

관련기사 :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